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29화 (129/142)

영원은 선언하듯 말했다.

―여기 게이트에서 몸 좀 풀고, 그다음엔 돔 없애러 가겠습니다.

―일단 돔 안에 계시는 분들은 조용히 대기하고 있으시면 됩니다.

―돔 안이나 밖에서 사고 치는 건 뭐, 어쩔 수 없죠. 제가 여러분들 자유의지를 다 통제할 수는 없으니까 굳이 그러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셔도 되는데요.

―그 대가로 뭘 치르셔야 할지는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하세요.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 주시면 더욱 좋고.

영원의 를 타이틀로 한 라이브 방송 채팅창은 조용했다.

영원이 모든 각성자들을 초대한 뒤 게이트에 들어가느라 나가버린 채팅창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문장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컴퓨터 키보드나 핸드폰, 태블릿 자판, 상태창 위에 손을 올리지 못하고 동공만을 떨었다.

너무 놀라서 제 모습이 어떤지도 몰랐다.

―쿠구궁.

초현실적으로 화려한 색색의 세계가 보였고, 그 세계 전부가 영원이나 여현의 힘에 녹아 사라져갔다.

화려하게 생긴 차원이, 화려한 색감의 아이스크림이 녹듯 흘러내렸다. CG 같은 장면이었다.

―쏴아아.

붉은 비 같은 것이 위에서 쏟아지기도 했는데, 여현의 힘이 펼친 우산이 영원과 여현을 완벽하게 보호해냈다.

심영원이나 김여현이 강하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SSS급 게이트에 놀이공원에 데이트하러 가듯 손잡고 들어가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고 다 때려 부수는 건…… 단순히 강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실화인가?’

공통된 의문이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S급일 때 둘이서 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으니까, SSS급도 끝낼 수 있다 쳐도……. 저건 그 수준 이상으로 강한 거 아닌가?’

‘뭐, 뭐야, 미친?!’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야? 저거 생중계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거야?’

그 외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자라났다.

‘……저렇게 쉽게 쌈 싸 먹어도 되는 건가?’

누군가는 그렇게도 생각했다.

‘……왜 SSS급 게이트가 상추 위의 쌈장 발린 삼겹살로 보이지?’

결국, 의문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손가락을 움직여 차례로 묻기 시작했다.

[이거 진짠가요?]

[Is it REAL?]

[????]

영상 옆의 채팅창에 수만, 수백만 개의 문장이 순식간에 달렸다. 수십 개의 언어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모든 문장이 물음표로 끝난다는 것만은 같았다.

굳이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모두 그 내용을 알 것만 같았다.

금방 채팅 과부하로 인한 렉으로 채팅 전부가 막혔다.

[익명253(???): SSS급, 저게 오류일 순 없는 거죠?]

영원이 게이트에 들어가면서 나가게 된 채팅방.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도 조심스레 물었다.

[백율(ES6): 없습니다]

영원의 능력을 잘 알 법한 상대에게서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다시 각성자들의 채팅창도 조용해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백율의 옆에 붙은 세계 랭킹에 또 놀랐다.

세계 랭킹 6위. 김여현의 랭킹이 9위에서 4위까지 올라가기 전에 백율이 차지하고 있던 세계 랭킹 순위였다.

이곳은 전 세계 단위의 채팅창이라 에스퍼들의 순위가 세계 단위로 표시될 수밖에 없었는데, 김여현으로 인해 밀렸던 백율의 순위가 다시 상승한 게 보였다.

김여현이 백율보다 다시 약해졌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김여현 역시도 등급 상승으로 랭킹에서 빠졌다는 얘기였다.

‘계속 S급 랭킹에 있었는데?’

‘업데이트가 막혀 있었던 건가?’

사람들에게 비슷한 의문이 동시에 피어났고, 그들은 금방 답을 찾게 되었다.

[에스퍼 김여현]

[세계 가이드 랭킹 SSS급 1위/1인]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사람들은 이 우주가 갑자기 자신을 따돌리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크르릉.

그 와중에도 SSS급 게이트가 말 그대로 박살이 나는 장면은 드론을 통해 계속 생중계되었다.

영원은 마치 맛집 리뷰 방송을 하듯이,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걸 차근차근 설명해주며 방송을 이어갔다.

―이상하게 무지개가 섞인 공간 같죠? 게이트 내부는 보통 이렇게 다양한 색감이 섞여서 좀 초현실적인 형태더라고요.

―여기에서 말하고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운지 궁금하실 텐데, S급 이상 게이트에 들어오면 에너지 밀도가 높아서 압력이 좀 세게 느껴지기는 해요.

―처음 명동 게이트 들어갔을 땐 좀 힘들었어요. 그때는 또 여러 이유로 신체가 좀 약했을 때라.

―보통 사람이라면 바로 죽었을 텐데, 아무튼 전 과거에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영원은 맛집 컨텐츠를 제작하는 크리에이터가 음식점에 가서 자신은 보통 사람보다 매운 걸 잘 먹는다는 말을 하듯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뒤, 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이어갔다.

난도가 매우 높아 보이는 무언가를 하겠다고 한 뒤, 즉각 그 일을 해내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일단 제가 저 무지개처럼 생긴 벽 녹일게요. 연금술을 좀 쓸 건데,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자 벽이 녹았다.

영원은 그녀만 쓸 수 있는 특유의 힘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도 더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껏 능력을 감추는 건 피곤해지기 싫어서였다. 그러나 그녀를 피곤하게 만들 만한 사람들은 다 그녀의 능력을 알게 된 지 오래였다.

이제는 그냥 세상을 구해버린 다음에 펜트하우스로 도망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누구도 자신을 괴롭힐 수 없게 하겠다는 쪽으로 잉여생활을 위한 전략을 수정했다.

―여기도 녹일게요.

이상한 라이브 방송은 유사한 형태로 계속 이어졌다.

이상한 내용이었다. 정말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음. 여현이가 저기 없앨게요.

금방 여현이 벽을 녹였다.

―여현아, 저기 저쪽도 대륙 같은 것도 다 녹여 줘.

영원이 말하자 바로 또 그렇게 됐다.

모든 게 한다고 하면 그냥 그렇게 됐다.

조용하던 각성자들의 채팅창에, 가끔가다 물음표 몇 개가 올라왔다.

[익명421(???): ??]

[익명342(???): WHAT THE ????]

SSS급 게이트가 다 정리되는 데에는 10분도 넉넉했다.

에너지와 에너지의 충돌도 그냥 여현이 게이트를 쌈 싸 먹듯 하니 끝이 났다.

―사아아아악.

게이트 안에서 영원은 가뿐한 몸으로 날아다녔다.

여현이 몸을 치료해준 후, 여현의 그릇이 좀 더 영원의 가이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해 가이딩 자체가 훨씬 편해지기도 했다. 매칭률도 어마어마하게 높으니 더욱 그렇게 느꼈다.

여러 가지로 108시간 동안 고통을 느끼다 대제의 신체와 싱크로율이 100%가 되었을 때보다도 더 상쾌한 기분이었다.

영원은 자기 자신의 힘에 감탄하기도 하며 SSS급 게이트 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레이는 SSS급 게이트의 생성이 영원에게 오락을 선물하는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일이 됐다.

‘짱 센 거 너무 좋아.’

영원은 여현과 함께 오랜만에 합을 맞추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먼치킨의 삶. 짜릿해. 언제나 새로워.’

영원은 드론 조작과 라이브 방송을 하는 법도 금방 익혀, 자신과 여현의 미친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진 힘을 영상으로도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래 봐야, 엄청난 위기는 없이 그저 모든 걸 녹이는 장면뿐이기는 했지만.

결국 끝은 왔다.

―쏴아아아아아.

게이트 전부가 여현과의 힘의 대결에서 졌고, 차원이 완벽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자, 끝!

―어때요, 참 쉽죠?

일을 가뿐히 마친 영원이 환히 웃으며 화면 너머의 사람들에게 물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두 가지 행동밖에 하지 못했다.

말없이 심장 위에 손을 얹거나, 아무 말 못 하고 머릿속으로 현실부정만 하거나.

그 타이밍에 영원은, 혹시 잊었을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또 한 번 경고를 날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다시 제주도 근처의 바다가 배경이었다. 저 멀리 돔도 작게 보였다.

―안에서도 보고 있는 거 알아.

영원은 지금 말을 하는 대상들에게는 존칭을 생략했다.

―뇌가 있다면, 어떤 미래가 올지 다들 답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나는 돔을 부술 거야. 오래 걸리지 않아.

―내가 돔만 부술까? 그 안에도 똑같이 비슷한 짓을 해주겠지.

―멍청한 너희가 잊었을까 봐 다시 알려주는데.

―백기 투항을 한다 해도 선처는 없어.

영원의 말을 들은 돔 내부의 각성자들은 모두 그게 근미래를 예고하는 협박임을 이해했다. 하지만 영원의 말대로, 그녀에게 선처를 구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덜덜 떨거나, 그녀가 돔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말은 허풍이라 믿으며 열심히 희망 회로를 돌리는 것만 할 수 있을 뿐.

―하지만 밖에서 아직 안 들어간 사람들은, 살려는 줄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을 멈추고, 이 근처에는 얼씬거릴 생각도 하지 마.

SSS급 게이트를 열어 시간을 끌고자 했던 그레이의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게이트는 영원과 여현을 오래 사로잡아두지 못했고, 그레이는 영원과 여현이 사라진 와중에 서울에 유효한 공격을 몇 번 날리지도 못했다.

서시용, 이창결, 백율의 방어에 가로막혀 단 한 명의 사람도 죽이지 못했다.

그레이의 시도로 무언가를 얻은 건 영원뿐이었다.

영원은 자신과 여현이 얼마나 미친 먼치킨인지를 모두에게 알릴 홍보전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다.

돔에 들어가려고 하던 각성자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마음을 접었다.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저 심영원에게 맞설 수는 없었다.

―들어가려고 접근하면, 돔의 벽과 먼저 만날지, 아니면 나랑 먼저 만날지 뇌를 한번 굴려보도록 하세요.

―나랑 만나면, 서로 반갑게 어서 오라고 인사만 하게 되지는 않겠지?

영원의 상냥한 말을 듣고 결심을 더 유지할 수는 없을 터였다.

자잘하게 벌어지던 사건사고 역시 순식간에 멎었다.

조금 전까지는, 어차피 그레이가 지배하게 될 세계에서 그들을 벌할 자는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SSS급 게이트가 녹을 때 함께 녹아 사라졌다.

전쟁의 기본은 선전을 통한 심리전이다. 그레이는 미디어를 이용한 전쟁에서 가장 먼저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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