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1층 회의실.
―쾅!
벽면 한쪽에 걸린 화면을 통해 역삼 근처의 상황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콰광!
S급 던전석을 넣어 특수제작한 드론이 상공을 날아다니며 전송하는 영상이었다. 저편 멀리서 서시용, 이창결, 백율이 그레이의 공격에 맞서는 모습이 보였다.
삐비비비비빅.
드론이 특수장비를 통해 계측한 계측치도 그 옆의 화면에 빼곡하게 채워졌다.
윤희유 교수, 의총, 요련은 숨을 죽인 채 여러 개의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방출되는 에너지의 크기가 갈수록 불어나는 중이었다.
사아악.
번쩍.
생중계 영상이 폭발로 인한 빛으로 채워질 때는, 회의실 창문 밖도 똑같이 번쩍였다.
―콰과광!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가면 스피커를 통해 들렸던 소리가 스피커를 통하지 않고서도 똑같이 들려왔다.
―콰과광!
여현의 펜트하우스도 S급 에스퍼 세 명이 그레이의 공격에 맞서고 있는 곳에서 아주 멀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곳의 세 사람은 역삼의 방어가 뚫리면 곧장 그들 역시 무사할 수 없는 상황이 되리라는 걸 오감으로 느꼈다.
사실상 이곳도 싸움의 현장이었다.
―콰광!
돔에서 쏘아진 공격은 모두 지표면에 닿기 전에 서시용, 이창결, 백율의 힘으로 완벽하게 무력화됐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오밤중의 빛공해나 소음공해만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피해라고 할 만한 건 없었다.
하지만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S급 에스퍼 셋은 처음에는 꽤 여유롭게 그레이의 공격에 맞서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갈수록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었다. 먼 곳에서 찍는 영상만으로도, 그들이 점차 방어에 힘겨움을 겪는 게 보였다.
―콰ㅇ…….
삐빅.
윤희유 교수가 화면에 연결된 스피커의 음량을 매우 작게 줄였다. 인이어 너머에서 작게 들려온 화연의 말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현장 상황 말씀드립니다.
윤희유 교수, 의총, 요련은 음량이 확연히 줄어든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화연이 인이어 저편에서 전하는 말에 집중했다.
―역삼 본부 쪽으로 오는 공격은 아직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입니다.
당연하게도, 화연의 말에 안심하는 이는 없었다. 영상만 보아도, 그 ‘수준’이라는 게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
―그러나 역공을 할 여유는 없습니다. 저희의 역공이 그레이의 돔에 닿는다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다소 비관적인 진단도 덧붙었다.
회의실에 있는 세 사람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레이는 서울이든 어디든 돔의 외부 아무 곳에나 공격을 날릴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돔에 아무런 타격도 가할 수 없는 게 현재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핸디캡이었다.
―침실에 계신 두 분은 혹시 어떠신가요?
화연이 물었다.
“…….”
질문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결국, 이 상황에서 그나마 기댈 것은 영원과 여현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쯤 눈을 뜰 수 있을지, 언젠가 눈을 뜨기는 할지, 누구도 무어라 답할 수 없었다.
영원의 변함없이 낯은 생명 활동 수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괴로워, 그에 대한 업데이트도 한참 동안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쾅!
벽면의 스피커가 아니라 화연의 인이어를 타고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인이어를 통해 이렇게 큰 소리가 들릴 정도라면 현장에서는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났을 게 분명했다.
―쾅!
아니나 다를까, 펜트하우스 밖에서도 뒤이어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이곳은 일단 저희가 막고 있겠습니다. 현재 걱정해야 할 건 지금 이 공격이 아니라…….
다행히 크게 다칠 만한 일이 벌어진 건 아니었는지, 화연은 엄청난 소음에도 동요 없이 말을 이었다.
―그레이가 금방 알게 될 거라는 거예요.
사실, 모두가 머릿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레이가 김여현의 부재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김여현 에스퍼님이 나타나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그레이가 곧 알게 될 겁니다. 아무리 길어도 10분 안에요.
“…….”
하아.
모두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간절히 기도하듯 영원과 여현의 회복을 소망했다.
“화연 가이드님. 거기서, 여현 에스퍼님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죠?”
윤 교수가 물었다.
―10분까지는 인적, 물적 피해 없이 버티는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20분까지도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을 겁니다.
10분, 20분.
끔찍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윤희유 교수는 화연처럼 침착하게 다음 질문을 이었다.
“그럼 일단은, 싸움에 집중하며 최대한 오래 버텨주세요.”
―쾅!
다시 굉음이 들렸다.
―네. 일단은, 이쪽에 집중하겠습니다.
“뭐 달라지는 거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무런 성과 없이 통화가 끝났다. 종종 들리는 작고 큰 폭발음만을 제외하면 회의실은 한동안 조용했다.
당장 그들이 역삼에 있는 이들을 도울 방법은 없었다.
“…….”
요련은 화면을 계속 보았다. 다소 무력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희망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한참 이르다고 생각하면서.
이상하게도, 아직은 여현과 영원의 도움을 포기할 때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완전히 현실감각을 잃은 건가?’
요련은 다소 붕 뜬 기분으로, 얼마 전 새벽에 윤 교수와 의총이 자신 곁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했다.
‘교수님.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사례를 뒤져도 흔치 않겠죠?’
‘네. 여러모로, 비슷한 사례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요. 저는 그걸 생각하면 이상하게…….’
‘……이상하게?’
‘……두 사람이 결국엔 돌아와 세상을 구할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제가 미친 걸까요?’
‘……저도 그래요. 지금 다 비슷하겠죠.’
요련은 그때 대화에 끼어들어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결국엔 세상을 구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고.
지금 같은 생중계 장면을 함께 보고 있는 둘의 표정을 보아도, 그들 역시 그녀 자신처럼 아직 희망을 접은 것 같지 않았다.
‘다들 현실감각이 없는 걸까?’
요련은 각인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말하던 여현의 말도 회상했다.
‘고요련 가이드님.’
‘……네.’
‘완전히 상관없어요.’
‘…….’
‘각인이나 고통은 조금도 제가 신경 쓸 것들이 아닙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영원이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도 떠올릴 수 있었다.
‘요련 언니, 있잖아. 정말로 나한테 고통은 아무런 문제가 안 돼.’
요련은 다시 생각했다. 아직도 이상하게, 두렵지가 않다고.
“…….”
요련은 자신을 지나친 낙관론자라고 칭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떠올렸다.
화연이나 영원도 종종 그런 말을 했다.
‘넌 좀 지나쳐.’
‘언니의 긍정회로도 정말 만만치가 않네.’
그런데 요련은 항상 자신이 품은 것은 지나친 낙관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는 했다.
‘내가 하는 건 지나친 낙관이 아니야.’
‘세상에 이렇게 대단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이게 낙관이야?’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거지.’
생각하면 생각해볼수록 이 세상에는 대단한, 결국 해내야 할 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 않나?
그래서 비관해야 할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비관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비슷했다.
‘영원이는 당연히 깨어날 거야.’
‘그러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요련의 생각이 이어지고 있던 바로 그때.
똑똑.
누군가 회의실의 문을 두드렸다.
“…….”
요련, 윤 교수 그리고 의총의 시선이 차례로 닫힌 회의실의 문으로 향했다.
그 상태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똑똑.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
누구……?
세 사람의 머릿속에 같은 의문이 차올랐다. 그리고 비슷한 답이 떠올랐다.
두근. 두근.
그들은 긴장감에 굳은 채 입술을 떼지 못했다.
이 회의실 앞에서 인기척을 내고 있을 사람들이 그들이 짐작하는 상대가 아닌 누구일 수 있을까.
다른 가능성이 있을까?
누구도 답을 하지 않고 있던 그때, 노크한 이가 답을 듣지 않고 문을 먼저 열었다.
달칵.
“오래…….”
기다렸던 목소리가 들렸다.
영원이었다.
“기다리셨나요.”
문이 다 열렸다. 긴 시간 그리워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
영원이 회의실로 성큼 들어왔다.
영원의 표정은 밝았다. 원래보다 살이 빠지고 얼굴이 조금 더 창백해진 것 같기는 했지만 병약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보고 싶었죠?”
영원이 장난스레 물었다.
누구도 바로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으나, 영원은 대답을 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덧붙였다.
“그럴 줄 알았어.”
와락.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영원의 앞까지 뛰어온 요련이 그녀가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으로 영원을 안았다. 뒤이어 급히 다가온 윤 교수도 영원과 요련을 함께 꽉 끌어안았다.
의총 역시도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몇 걸음 다가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며 영원을 바라보았다.
영원은 어떤 언어보다 분명한 무언의 답을 세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느꼈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고, 돌아와 주어서 정말로 기쁘다는 마음이 꾹꾹 눌러 담긴 분명한 답.
하지만 영원은 재회의 시간을 오래 만끽하지 않았다.
“근데…… 여러분, 저희 지금 그레이 공격 처리가 좀 급하지 않나요?”
대신, 침착하게 요련과 윤 교수를 조심히 밀어내며 물었다.
영원에 이어 회의실에 들어온 여현도 입을 열었다.
“5분 안에 상황 요약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윤 교수, 요련, 의총이 정신을 차리면서, 단시간에 영원과 여현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일단, 46시간쯤 전에 돔이 생겼고…….”
급히 설명이 시작되었다.
“화연 가이드님이 현장에서 전한 말에 의하면…….”
잘 요약된 핵심사항이 매우 빠르게 전달되었다.
***
삐빅.
눈을 뜬 때로부터 정확히 10분이 지났을 무렵, 영원이 인이어를 착용했다.
역삼 근처에 있는 서시용, 이창결, 백율, 장제권, 화연과 순식간에 통신이 연결되었다.
“펜트하우스에서 알립니다.”
영원은 지체 없이 말했다.
―…….
다섯 사람이 무어라 서로 말하고 있던 인이어 너머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지금 갑니다.”
그들이 어떠한 답을 주기 전에, 역삼에 먼저 도착해 줄 생각이었다.
영원은 당연하다는 듯이 여현에게 안겼다.
여현은 영원을 안아든 채, 펜트하우스 회의실의 거대한 창문을 순식간에 떼어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굳이 주출입구를 이용할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