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15화 (115/142)

제10장

영원의 수레바퀴

여현이 잠든 영원의 손을 조심히 잡고 역가이딩을 시도해봤던 첫날, 여현은 갑자기 공허한 암흑 속에 홀로 서게 됐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어둠뿐이었다.

대체 이곳은 어디인가.

아마도 치유의 순간에 끌려 들어갔던 영원의 바다처럼, 현실이 아닌 공간임은 분명했다.

현실과 겹쳐져 있는 영원과 자신만의 공간.

다만, 그 이상 파악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여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주시해 보기도 하고, 레이더를 뻗어 주변을 파악하려고도 해 보았다.

아쉽게도 여전히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레이더를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여현은 이 공간이 아무 의미 없이 텅 비어 있기만 한 공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영원에게 역가이딩을 시도해보려다 도착한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일 리가 없었다. 그러니 무언가를 찾아내야만 했다.

타박.

여현은 두려움 없이 몇 걸음을 내딛어보기도 했다.

타박. 타박.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영원의 흔적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기분도 들었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녀에게 가까워지고 있는지, 멀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올바른 방향을 찾으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자라났다.

여현은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여기서 영원과의 매칭률을 올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요련은 영원이 가이딩을 할 때 환영처럼 생겨나는 수레바퀴를 돌려 매칭률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현 에스퍼님도 역가이딩을 시도할 때 똑같이 매칭률을 조정할 수 있는 수레바퀴를 보게 되실지도 몰라요.’

‘현실과 겹쳐져 있는 환영 속에서 말이죠.’

‘네. 저는 그 공간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에스퍼님이 역가이딩을 하려다가 어떤 환상 속에 들어가게 되신다면, 거기에 수레바퀴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주세요.’

‘네.’

이 암흑 속에서는 수레바퀴는커녕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여현은 한참을 서성이다 시간이 다한 듯해 다음을 기약하며 그 공간을 벗어났다. 첫 역가이딩 시도는 그렇게 끝이 났다.

두 번째도 비슷했다. 역시 암흑뿐이었다.

세 번째도 특별한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여현은 조금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영원의 손을 잡고 역가이딩을 시도했으며, 암흑 저편 멀리까지 걸어가 어둠의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파악해 보려 했다.

여현은 그 경험을 윤희유 교수, 화연, 요련, 의총과 공유하기도 했다. 영원을 어떻게 깨어나게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윤 교수와 요련이 여현과 많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교수님. 아직은, 수레바퀴 같은 게 보이진 않습니다. 아주 넓은 땅 위의 짙은 어둠뿐입니다.’

‘음……. 여현 에스퍼님이 접근할 수 있는 자리에 그 수레바퀴가 없는 걸 수도 있고, 사실 그 넓은 공간 어딘가에 수레바퀴가 있는데 여현 에스퍼님이 그걸 볼 수 없는 것뿐일 수도 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걸을 수 있는 공간이니까 더 걸어 다녀 보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특이한 느낌이 드는 곳은 없는지. 바닥이 없는 곳으로 추락해도 좋으니, 조금 거침없이 구시면서 살펴봐 주세요. 영원이와 교감하는 환상 속에서 실제로 다치진 않으실 테니까요. 분명 여현 에스퍼님 쪽에서도 매칭률을 조정할 방법이 있기는 할 거예요.’

‘네, 가이드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현은 하루하루 빠르게 나아지지 못한다고 해서 조급해하지는 않으려고 애썼다.

영원을 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던 때보다는 확실히 나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열 번째 시도가 있었던 날, 여현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했다.

쿵.

그의 어깨가 딱딱하고 차가운 무언가와 부딪힌 것이다.

여현은 굳은 채로 정지했다. 천천히 고개를 그 방향으로 돌렸다.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 형체를 지닌 무언가가 있었다.

여현은 긴장한 채로, 방금 느낀 감각이 착각이 아니기를 바라며, 그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

상상을 초월하는 강도의 고통을 느꼈다.

숨이 턱 막혔다.

신체 내부의 모든 장기가 쥐어 짜지듯 비틀리는 감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고통 외의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현은 급히 환상에서 깨어났다.

“헉. 하아, 하. 하아…….”

그는 잠든 영원의 곁에서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했다.

고통은 서서히 사라졌지만, 온몸을 경직시킨 긴장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으. 하아.”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그래도 다행히, 침대 위에서 전과 똑같이 눈을 감고 있는 영원은 특별한 동요 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하아.”

여현은 십여 분의 혼란 끝에 안정을 찾았다.

영원을 기다릴 때 느끼는 감정적인 고통이 신체를 실제로 타격하는 고통으로 변모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은 점차 여현의 기분을 희망으로 상기시켰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것은, 영원의 고통을 공유하게 된 거라고.

다만, 영원이 비슷한 크기의 고통을 계속하여 느끼는 중일 거라는 사실이 여현을 잠시 끔찍한 기분에 몰아넣었다.

“…….”

희망을 찾아 기뻤지만, 동시에 미칠 것같이 괴롭고 먹먹해졌다.

영원이 걱정됐다. 설명하기 어려운 애틋한 감정이 밀물처럼 급격하게 밀려와,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여현은 영원의 손을 다시 조심히 잡아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방금 어깨가 닿았던 그것은 분명히 영원의 수레바퀴일 거라고. 여현은 금방 그 사실을 윤 교수와 요련에게도 알렸다.

“교수님. 요련 가이드님이랑 계신가요?”

—네. 무슨 일이죠?

“수레바퀴를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그들에게까지도 번졌다.

여현은 몇 번의 시도를 거친 뒤 그 딱딱한 것은 무조건 수레바퀴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수레바퀴를 돌려 매칭률을 높여야 했다.

여현은 요련이 새로 제작한 매칭률 기기를 펜트하우스에 가져와 영원의 침대 옆에 두고는, 역가이딩 시도 전후로 계속 매칭률을 확인했다.

어둠에 들어가서는 수레바퀴를 돌리기 위해 애썼다.

몇 번 시도한 끝에, 수레바퀴가 아주 약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깨어나서 확인해 보니, 정말로 매칭률에 변화가 생겼다.

[매칭률: 80.11%(possible)]

그다음 방문에는, 그때까지 전혀 형체를 볼 수 없던 수레바퀴가 조금씩 뿌옇게 형체를 드러내기도 했다.

수레바퀴를 더욱 선명하게 인식할수록 고통 역시 더욱 선명해졌다.

이미 수레바퀴를 만질 때 극단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심한 수위의 고통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여현은 더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더욱 깊이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할 뿐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 따위야 알 바 아니었다. 영원이 걱정될 뿐.

“허억. 하아.”

매번 고통에 허덕이고 숨을 몰아쉬며 깨어났지만, 여현은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전혀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가이드님.”

이제는 잠든 영원에게 용기 내어 말을 걸기도 했다.

“제가…….”

들려주고 싶은 말을 작게 속삭였다.

“무엇이든 드릴게요.”

숨이든, 시간이든, 무엇이든, 그녀가 받아주기만 한다면 제게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

“무엇이든지, 필요하다면 모든 걸 할게요.”

그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다짐도 반복했다.

앞으로 휴식이 없는 삶만을 살아가야 한다 해도 괜찮았다. 수레바퀴를 만질 때의 고통을 평생 지고 살아야 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육체의 고통에는 완전히 적응했다. 다만 영원과 대화를 할 수 없어 느끼게 되는 상실감에는 여전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여현은 매일 느리지만 꾸준하게 수레바퀴를 돌려갔다.

[매칭률: 80.13%(possible)]

사흘이 흘렀고,

[매칭률: 80.56%(possible)]

일주일이 흘렀으며,

[매칭률: 84.92%(possible)]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여현은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에 점점 다가서고 있었다.

여현은 영원과 다시 만날 것을 믿었다. 제게는 영원에게 헌신해야만 하는 삶을 건 사명이 있다고도 믿었다.

그는 그의 이명異名에 깃든 운명을 의심하지 않았다.

***

여현이 고통을 느끼는 모든 순간마다, 영원은 수레바퀴 너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레바퀴가 돌아갈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되는 여현의 모습이 허상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영원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희망적이었다.

그가 자신을 볼 수 없는 것 같기는 해도,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쁜 마음에 뛰어가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영원은 금방 절망을 봤다.

쿵.

수레바퀴에 이르기 전에, 그녀를 막아서는 벽을 느꼈다.

“…….”

거대한 문양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넘어설 수 없는 족쇄.

고통을 끊임없이 불어넣는, 지울 수 없는 연성진.

쿵.

쿵. 쿵.

두드리고 또 두드려도 문양과 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원은 오열하고 싶은 기분으로 힘없이 물러나야 했다.

‘돌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현아. 네가 이 벽을 넘어서서 내게로 올 수는 없어.’

청성과의 교환에 따라, 심영원은 고통의 진 안에 갇혔다.

여현이 수레바퀴를 돌리고, 더 가까이 오려 할수록 그는 더 강렬한 고통만 느낄 뿐, 그녀를 밖으로 꺼낼 수는 없을 터였다.

실제로 여현은 매번 더 큰 고통에 힘겨워하는 듯했다.

심장이 저렸다. 감정이 주는 고통이, 계약에 따른 고통보다 더 극심했다.

이제는 그가 다시 돌아오는 게 기쁘지 않았다.

‘포기해도 돼. 이해할게.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

그러나 여현은 다시 돌아왔다.

‘오지 마.’

영원의 중얼거림에도 불구하고, 매번, 매일 다시 그녀의 앞으로 돌아왔다.

여현은 절대 영원을 암흑 속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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