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은 화연의 귀환을 담백하게 환영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네.”
화연도 여현의 환영 인사를 담담하게 받고는, 하늘의 공간에서 탈출한 경위에 관해서는 그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마스크를 벗은 여현의 얼굴에도 놀라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이미 처치해버린 과거의 문제는 당장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대신 화연은 더 중요한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며 여현의 뒤편에 누워 있는 영원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지금 영원 가ㅇ…….”
그러다 강력한 힘에 접근을 저지당했다.
쿵.
화연은 몸을 막는 힘에 놀라 굳었다. 내부적인 충격에 놀란 심장이 정지하는 기분이었다.
“왜, 다가가시는 거죠.”
여현이 차갑게 물었다.
희게 질린 화연의 얼굴이 여현을 향했다.
화연은 백율 부장의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괴물 김여현’을 이제야 보게 됐다.
사락.
서늘한 기운이 또 한 번 답을 뱉지 않는 화연을 휩쓸고 지나갔다.
스쳐 가는 것만으로도 긴장으로 숨통을 조이게 하는 강력한 힘이었다.
엄청난 경계.
허락 없이 누군가가 그와 영원 사이에 끼어드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두려울 정도로.
여현은 자신의 그러한 날 선 태도를 감출 마음도 없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무엇을 하시려고요.”
여현이 굳어 있는 화연에게 다시 물었다.
온 힘을 다해 쥐어짜도 다정함을 조금도 찾을 수 없을 어조였다.
화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원래부터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사람 같은 느낌마저 사라졌다.
저렇게 변하게 된 이유야 하나였다.
영원이 깊은 잠에 빠져들어,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그게, 제가…….”
화연은 압도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며, 문장을 끝맺지도 못한 채 이창결 부장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요.”
“그래, 현아.”
역시 화연을 막는 힘에 놀랐던 이창결 부장도 가세했다.
“찾아온 이유를 자세히 말하기 전에, 먼저 영원 가이드님한테서 확인할 게 있어.”
“…….”
“화연 가이드님이 영원 가이드님을 잠시 가까이서 볼 수 있을까? 당연히 나쁜 목적은 절대 아냐.”
“……네.”
이창결 부장이 화연을 바라보자, 화연이 다시 영원에게 다가갔다.
“잠시만요.”
포옥.
침대 옆에 도착한 화연은 여현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폭신한 침대에 걸터앉았다.
“잠시, 손을 댈게요.”
화연은 여현에게 자신이 할 행동을 찬찬히 설명하면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비이성적인 경계심을 보인다 해도, 당장은 여현의 기분을 생각해서 그를 배려하는 게 옳은 태도인 것 같았다.
전담 가이드를 잃을지도 모르는 전담 에스퍼에게 상식과 배려를 기대할 순 없으니.
여현은 계속 그의 가이드에게 접근하는 화연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무리 영원과 가까운 화연이라고 해도, 영원과 그의 사이에 끼어든 타인이라는 생각은 떨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화연은 묵묵히 진단을 이어갔다.
여현에게 헛된 희망을 주지 않기 위해, 반드시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영원이 정말 제대로 호흡하고 있는지, 가이드의 그릇은 여전히 견고한지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
다행히, 온 힘을 기울여 세심하고 꼼꼼하게 살펴보아도 걱정하던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10여 분이 지난 후 화연이 이창결 부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이창결 부장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참았던 호흡을 다시 시작했다.
“하아.”
여현은 아직 두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채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방 안은 조용했다.
이창결은 여현에게 ‘영원 가이드님이 잘하면 깨어날 수도 있다’는 말을 꺼내기까지 오래 뜸을 들였다.
이것이 혹시, 여현이에게 망상 같은 가설로만 들리지는 않을까.
혹시, 여현이가 해낼 수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많은 걱정이 그를 주저하게 했다.
이창결은 다시 작게 한숨을 쉬고는 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여현이에게 방법을 알려주는 건 혼자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전문가 여섯 명이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정이었다.
여현이 영원을 치유할 수 있다는 가설은 조금도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원을 깨울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시도해보는 게 옳았다.
다만 이창결은 혹시 모를, 여현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깊은 패배감을 걱정하며 주저할 뿐이었다.
여현을 믿지 못해서는 아니고, 그를 너무나 아끼는 마음에.
“부장님.”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한 이창결 부장을 여현이 먼저 불렀다.
“……응.”
“가이드님 관련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
“화연 가이드님께서 확인하셔야 할 걸 다 확인하셨으면, 부장님께서 말씀하시죠.”
더는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정말로 이제 결단은 여현의 몫이어야 했다.
준비해 온 바통을 여현에게 넘기기 위해 이창결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
“현아. 영원 가이드님에 관해서…….”
이제는 여현이 정말 이론상으로만 가능해 보이는 치유를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알아가야 했다.
“네.”
여현은 아직 무미건조한 표정이었다.
화연이 영원에게서 떨어지자, 다시 그녀를 경계하며 재차 영원에게 접근할 길을 막아선 채기도 했다.
“우리가 어떤 가능성을 찾았어.”
이창결 부장은 이 모든 게 다 나쁜 쪽으로 어긋나 전부 다 산산조각이 날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확실하지는 않아. 회복이 쉬울 거라 단언하기는 어렵지.”
“……무슨 말씀이시죠.”
여현은 높낮이가 거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아직 여현은 이창결 부장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특별히 희망에 찬 것 같지도, 그 반대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창결 부장은 본론을 분명히 전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가능성을 찾았어. 너의 힘으로 영원 가이드님이 회복할 가능성.”
방에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여현은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정적을 깬 건 이창결 부장이었다.
“화연 가이드님이 제시한 방법인데, S급 던전석을 사용한 역가이딩 같은 치유를 하자는 거야.”
“…….”
“현아, 그 방법을 통해서 네가 영원 가이드님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몰라. 깊은 잠에서.”
“…….”
“아, 선행 조건들이 필요하기는 해. 일단은 매칭률부터 더 올려야 하거든. 90% 정도까지.”
여현은 당장 희망을 찾은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면의 무언가가 동요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각인’을 각오하기도 해야 해. 앞으로 영원 가이드님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가이딩을 못 받게 되는 거야.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을 수 없다는 게 걸릴 수는 있을 텐데…… 괜찮지?”
“…….”
“…….”
이창결은 지금 여현의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생각의 회로를 정확히 짐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현이 무엇에라도 응하리라는 것만은 알았다.
“……어떻게요?”
더 시간이 흐른 뒤, 여현은 그의 예상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제가 무엇을 각오해야 하든 상관없어요.”
목숨도 걸 수 있다.
또 다른 것을 더 걸어야 하더라도 상관없다.
여현은 그런 반응이었다.
그는 그가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걸 수 없을 것까지 걸어야 한다 해도 상관없는 듯했다.
그는 무엇이라도 더 바치고 싶은데 그를 바치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 눈빛으로 이창결을 바라볼 뿐이었다.
***
화연은 이론적인 배경을 차분히 설명했다. 여현이 앞으로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아까도 들으셨겠지만, 마지막 치유 과정을 거칠 때는, 그 반작용으로 다른 가이드의 가이딩은 영원히 받지 못하게 되실 수도 있어요.”
“네. 들었습니다.”
“기계 가이딩이야 계속 가능할 테지만, 인간으로부터는 영원히 가이딩을 못 받게 되시는 거예요.”
“네. 그래서, 그게 다인가요?”
김여현다운 물음이었다.
화연으로서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고작 그게 제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 전부인가요?”
여현은 다시 물었고, 화연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통의 에스퍼들에게 ‘가이드에게 각인을 당하라’는 말은, 물을 마시는 걸 포기하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여현에게는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 사고회로는 조금도 평범하게 굴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목숨도 걸지 않고 영원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놀라워할 뿐이었다.
무엇도 손해 볼 게 없는 일이 아닌가.
그에게 가이드는 원래 단 한 명뿐이었다.
그녀에게밖에 가이딩을 못 받는다는 건 조금도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목숨을 수십 번 걸어야 한다고 해도 좋았다.
영원에게 각인되어 다른 가이드에게는 영구히 가이딩을 받을 수 없는 몸이 되는 것은 현재 상태에서 무언가가 변화하는 일도 아니었다.
물리법칙처럼 당연한 일일 뿐이다.
김여현의 세계에서 가이드는 원래부터 단 한 명뿐이었고, 영원히 그럴 예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