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05화 (105/142)

제9장

괴물

‘저 애는 괴물이야.’

여현은 각성 무렵부터 괴물이라 불렸다.

괴물 같은 힘.

괴물 같은 자체회복력.

전신 화상을 입고서 190cm 가까이 자란 뒤엔, ‘괴물 에스퍼’는 그냥 김여현을 칭하는 표현이 됐다.

성인이 된 여현은 사람들이 자신을 무어라 부르든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누구나 태초부터 강한 것은 아니기에, 여현 역시 아주 어릴 때부터 모든 평가에 무던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괴물-시한폭탄의 탄생]

[괴물폭주의위험…가상시나리오]

어린 여현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해외 언론이 추측성으로 자극적인 보도를 했다.

어쩌다 그 기사를 읽어버린 어린 여현은 속상한 표정으로 이창결 부장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잔인한 말과 행동을 쉽게 하는 걸까요? 심지어는 그들을 위해 열심히 애쓰는 이들에게까지.’

이창결은 언론에 분개한 채로 어린 조카의 반응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그때 이창결은 자신만은 여현을 괴물이나 시한폭탄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여현이 전신에 화상을 입은 뒤 그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괴물.

그건 여러모로 애정을 담아 붙여진 별명은 아니었으니까. 여현의 힘이나 외양에 대한 껄끄러움만을 담은 표현일 뿐.

그러나 최근, 이창결 부장의 생각이 급격하게 변했다.

‘……정말 괴물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이창결마저도 여현이 괴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괴물.

이창결은 자신마저 두려움 속에서 여현을 보게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살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졌다.

‘혹시라도 저 상태로 엇나가기 시작하면…… 대체 누가 저 아이를 말릴 수 있지?’

유일하게 여현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영원은 잠들어 있었다. 바로 그 ‘그녀의 잠’이 괴물을 탄생시킨 가장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영원이 잠든 순간, 무언가가 바뀌었다.

김여현이 변했다.

내면 깊은 곳 어딘가가 가이드를 잃은 충격으로 삐뚤어졌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인간성을 고정하던 나사 같은 것이 틀어진 것만 같았다.

그냥 괴물이 된 것도 아니었다.

미친 괴물이 됐다.

이제 이창결은 여현을 ‘괴물’이라 부르는 세간의 평가가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

그마저도 그에 동의하고 있었으니까.

김여현은 진짜 괴물이 되었다고.

***

며칠 전.

―그레이가 종적을 감춘 때로부터 나흘 뒤입니다. 여기는 그레이의 별장이 있는…….

쾅!

생중계되는 뉴스 화면 뒤로 여현이 나타났다.

여현은 영상에 어떤 모습이 찍히든 상관없다는 듯 아무런 바리케이드를 치지 않고 적진에 다가섰다.

싸우는 장면을 보이는 것을 경계하던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행동이었다.

이제 여현은 잔인한 장면을 보이더라도 제가 해야 할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쩌저적.

그레이 측 각성자들이 안에 있던 고층 건물의 외벽이 찢기듯 갈라졌다.

쿠궁.

각성자우월주의자들 다수가 밀집해 무력시위를 벌이던 곳이었다.

여현은 그들에게 그레이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들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여현은 뉴스를 보던 이들을 곧장 공포에 굳게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건물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

여현은 말없이 상황을 정리하고 떠났다.

두려워할 건 자비 없는 그레이 딘하우스만이 아니었다.

김여현이라고 반대편의 각성자들에게 특별히 자비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레이가 다시 영상을 업로드하며 분노의 술래잡기에 엄청난 불을 붙였다.

―K, 포에버가 많이 그리운가 봐?

―네가 이렇게 스스로 정신 나간 괴물이라는 걸 증명하고 다닐 줄, 나는 네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지.

―이렇게 반대편에 서서 서로를 증오하게 된 건 안타깝지만. 아직 문은 열려 있어.

―아무튼, 나한테 화가 많이 났어? 나를 찾아내서 죽이고 싶어?

―그럼, 찾아봐.

―‘돔’이 완성되기 전에. 그게 어디에 생겨날지.

그레이는 말없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것에 대하여는 조금도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며 여현을 비웃었다.

그러면서 각성자우월주의자들의 터전인 ‘돔’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찬양했다.

―선택받은 자들만이 안전한 곳으로 들어올 수 있어.

―내가 이미 몇 번 졌다고? 아니. 너희가 착각한 거야.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싸움을 통해 딱히 잃은 게 없어.

―오히려 센터가 던전석도 빼앗겼고, S급 가이드 둘을 잃었지.

―K.

―잃은 S급 가이드 둘 중 하나, 포에버는 네게 가장 소중한 상대였지, 아마?

―이제 앞으로 너에게 전담 가이드가 생길 일이 있을까?

―아, 나도 포에버의 가이딩을 받아보지 못한 건 안타까워.

여현은 그레이의 거점을 새로이 찾을 때마다 그곳으로 가 각성자우월주의자들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알려진 그레이의 전략적 거점은 모두 박살이 났다.

모든 곳이 순식간에 쓸려나갔다.

사아아아.

주요 거점이었던 건물이 세워져 있던 장소들은 수십 분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평지로 변했다.

캘리포니아의 연구소.

베를린의 비밀기지.

뉴욕의 금고.

공개적으로 그레이의 측근임을 선포한 이들도 여현에 의해 계속하여 사라져갔다.

소리 소문 없이, 아니면 공개된 장소 한복판에서.

여현은 표정 없는 얼굴로 세계 전역에 나타났다.

매 싸움이 그의 완승이었다.

여현은 잠도 자지 않는 듯, 아무 때에나 출몰하여 단 두 가지 일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첫째로 괴물 같은 힘을 썼고, 동시에 둘째로, 가이딩 밴드를 통해 영원의 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했다.

삐빅.

삑.

여현은 멀리서도 영원의 모든 생명 활동을 느낄 수 있도록,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가이딩 밴드를 새로이 제작해 착용했다.

삐빅. 삐빅.

드르륵.

가이딩 밴드는 영원의 체온과 심박 수, 산소포화도 등 모든 상태를 끊임없이 비언어적 정보로 알렸다.

병적인 집착이었다.

‘만들어서, 가져다주세요.’

‘멀리서도 모든 걸 알 수 있도록.’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여현이 펜트하우스에서 센터에 연락해 가이딩 밴드를 당장 새롭게 만들어 달라 요청했을 때, 누구도 ‘그건 병적으로 정신 나간 집착’이라고 말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김여현은 가이드에게 미친 에스퍼였다.

그것도, 그를 가이딩할 수 있는 유일한 가이드에게 미친 물리계 S급 에스퍼.

히스테리가 겨우 이 정도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더 미치지 않은 것에 그저 감사할 판이었다.

의총 역시도 돔 설계를 연구하는 작업을 잠시 미루어두고 가이딩 밴드 설계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네. 오후까지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맞춤형 가이딩 밴드가 어느 때보다 빨리 제작되었다.

그 완성품을 손목에 찬 다음에야 여현은 에스퍼 정복을 걸치고 펜트하우스 밖으로 나섰다.

마스크도 벗은 채로.

이제 가릴 화상도 없었다. 영원이 상처를 모두 치료하고 게이트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가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공개된 장소에 등장한 날.

가려진 것 없는 얼굴이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본 모든 이들은 무의식중에 입을 벌리고서는, 침묵했다.

“…….”

벌어진 입은 한동안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충분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작은 탄식이 나왔다.

“아…….”

모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미친.’

‘대존잘…….’

얼빠들의 주접 회로가 뜬금없이 가동되었다.

시와 때에 맞지 않는, 김여현의 비주얼을 찬양하는 부적절한 보도도 포털 사이트 구석을 채웠다.

[포토: 베일을 벗은 미남]

[특집: 마기꾼이 아니었던 자]

[조회수多 1위: 서시용과는 완벽히 다른 결의 냉미남, 김여현]

그러나 분명히, 그의 외양이 주는 충격보다는 무력행사가 주는 충격이 압도적이었다.

수려한 얼굴은 그레이 측 각성자들을 쓸어버리며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적들에게 일부러 고통을 주며 고문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온정을 베풀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죽음 앞에서도 감정 없어 보이는 표정이 섬뜩했다.

김여현은 상대가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게 무자비했다.

단호하고, 잔인하고, 냉담했다.

괴물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센터에서 김여현을 서포트하는 이들마저도 그렇게 생각했다.

김여현은 괴물, 혹은 기계가 되었다고.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김여현의 입술이 열릴 때면, 고저 없는 기계 같은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레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뒤의 결과는 뻔했다.

틈틈이 역삼 본부 별관으로 복귀해 기계 가이딩을 받을 때도, 기계뿐 아니라 연결된 신체까지 기계 같아 보였다.

김여현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고, 생명도 없는 것 같았다.

필요한 만큼 기계 가이딩이 이루어졌다 싶으면, 여현은 배터리가 채워진 기계처럼 다시 사무실을 나섰다.

여현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영원을 위해서도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다.

센터의 안내에 따라 다음 장소로, 또 다음 장소로 갔다.

그 행위의 목적은 하나였다.

그레이 딘하우스 찾기.

여현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그레이를 찾아 없앤다고 영원이 깨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현은 그레이를 반드시 찾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생각이었다.

그게 영원이 원하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일한 이유는 영원이었다.

눈을 떠서 하는 모든 건 영원을 위한 일뿐이었다.

여현은 종종 싸움을 마치고 여유가 생기면 영원의 곁으로 돌아갔다.

“저 왔어요.”

그렇게 작게 말하고는 이전처럼 영원의 곁에 앉아 하염없이 그녀만을 바라보았다.

싸움 혹은 기다림.

괴물의 하루는 그 둘로 양분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레이의 편에 선 자들에게 철퇴를 휘두르다가, 그 사이사이에는 영원의 곁으로 와 다정한 시선으로 그녀를 기다렸다.

영원과 함께 있을 때만 생명을 얻은 것 같았다.

둘만 있을 때만, 괴물이나 기계가 아닌 것 같은 모습을 했다.

펜트하우스 밖으로 나서서 영원이 보이지 않을 때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시도도 하지 않았다.

여현도 자신이 완전히 미쳐있다는 걸 알았다.

영원이 눈뜨지 않는 이상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런 하루들만이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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