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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02화 (102/142)

대제의 연금술은 SSSSS급 게이트의 응축된 에너지를 빛으로 바꾸어냈다.

사르륵.

아무런 폭발도, 충격도 없었다.

영원은 대재난의 씨앗을 아무런 피해 없이 이 땅 위에서 완벽하게 삭제해냈다.

게이트는 금의 벽 속에서 고요하게 녹아내리며 빛으로 변했다.

그 빛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에 두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과 태평양으로. 결국엔 먼 우주 밖으로.

사아.

순식간에 주변의 땅이 밝아졌다.

빛은 밤이 와 있던 지역을 갑자기 환히 비추었고, 비가 내리던 지역에 기적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투두두두둑.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하늘이 믿을 수 없이 밝아지면서 사방에 무지개가 보였다.

기이한 밝음은 수 분 동안 유지되었고, 아무런 재해를 남기지 않고 떠났다.

“…….”

“방금, 뭐였어?”

빛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자신이 방금 무엇을 경험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너도 방금 같은 거 본 거야?”

누군가가 침묵을 깨고 옆에 있던 이에게 너도 방금 그 빛을 보았냐고 물었다.

“……응. 그런 것 같아.”

답하는 이 역시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빛이 쓸고 간 다른 지역들에서 오가는 대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이로운 장면은 모두를 경탄케 했다.

“혹시 신이야?”

“정말 신이 온 거야?”

몇몇은 종교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답을 얻지는 못했다.

단지, 무언가 초월적인 힘이 세상에 내려왔었다고만 확신할 뿐.

***

그리고 다시 이곳, 기적의 중심인 블라디보스토크.

“…….”

영원이 실제로 연금술을 행한 땅에서 신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각성자들은 모두 방금 일어난 기적은 신이 아니라 심영원이 벌인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가 하늘로 떠올랐고, SSSSS급 게이트의 틈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기적이 일어났고,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의식을 잃은 그녀만이 남았다.

“…….”

잠시 모두가 침묵했다.

SSSSS급 게이트가 세상에 생겨났다는 것부터 쉬이 믿을 수 없었는데, 그게 한 사람에 의해 이렇게나 빨리 사라졌다는 건 더욱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게이트가 사라졌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속으로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낸 거지?

SSSSS급 게이트가 분명 이곳에 있었는데, 가이드 단 한 사람, 심영원에 의해 그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싹.

완벽하게.

영원과 가까운 이들은 연금술이 그 수단이었을 거라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영원이 SSSSS급 게이트까지 없앨 수 있을지는 몰랐던 터라 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슨 일이죠?

―갑자기 왜 조용하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방금 여기 서울까지 밝혔던 엄청난 빛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여러분?

요련과 윤희유 교수의 목소리가 연이어 인이어 너머에서 들렸다.

그들 역시 무언가에 당황하고 있었다.

“……사라졌습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창결 부장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뭐가……요?

“…….”

―네?

윤 교수가 되물었고, 이창결 부장이 다시 설명했다.

“SSSSS급 게이트가.”

―…….

“없어졌습니다.”

―…….

인이어 너머에서 들리던 소리도 조용해졌다.

동시에, 그레이 측 각성자들은 발작적인 공포를 느끼는 듯 행동하기도 했다.

“뭐, 뭐…….”

SSSSS급 게이트마저 어떠한 충격도 없이 빛으로 녹여 없앤 엄청난 힘이 방향을 틀어 자신들을 향해 오기라도 할까 봐.

공포가 급격히 몰려왔다.

“으…… 으으.”

각성자 한 명이 몸을 떨며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그만큼 심각한 동요는 아니었지만, 그레이 역시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욱.”

그는 빛이 사라질 무렵, 눈을 크게 뜨고 심장에 손을 얹었다.

‘뭐야.’

미약한 고통이 심장을 자극하고 사라졌다.

‘포에버가 쓴…… 대제의 힘?’

이후로는 계속 속이 울렁였다.

대제의 힘의 여파가, 자신의 몸에 닿아 무슨 짓이라도 저지른 듯했다.

“읍.”

이상함을 느낀 그레이가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구역질이 났다. 게다가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쿵.

쿵쿵쿵.

심장이 부정맥이 온 듯 규칙성을 잃고 엇박자로 뛰어댔다.

그는 도망치듯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는 K와 역삼 본부 각성자들의 위치를 살폈다.

김여현, 이창결, 백율 모두가 당장은 자신을 주시하고 있지 않았다.

다들 의식을 잃은 포에버만 보고 있었다.

팟.

그레이는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없어졌다.

그는 조지나, 이반 등 측근들에게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사라졌다.

K가 넋이 나가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도망쳐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인식하고서.

몸 상태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는 여현의 힘이 미치지 않을 먼 곳으로 대피해야 했다.

조지나나 이반에게 뭘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그레이……. 그레이는 어디로 갔어?”

조지나는 한 박자 늦게 그레이가 사라진 사실을 눈치챘다. 그녀 역시 영원이 한 일에 놀란 채 정신을 놓고 있었다.

“어?”

이후, SSSSS급 게이트가 있던 부근은 그레이 측 각성자들의 혼란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돌아……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

조지나는 주변에 퇴각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이반 하이제렌도 당황한 표정으로 조지나와 함께 서둘러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다.

두 사람 역시도 그레이와 마찬가지로 여현이 외부의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멍한 상태일 때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가이드에 미친 에스퍼는 가이드가 다치면 정말로 정신 나간 짓을 벌인다.

여현의 반응을 볼 때, 그의 가이드는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다.

다른 그레이 측 각성자들도 그를 모르지 않았다. 모두가 블라디보스토크의 현장을 등지고 날거나 달려가려 했다.

“도…… 도망……!”

“어디로?”

백율이 물었다.

“어…… 어. 그게…….”

서둘러 대피하려던 그들은 센터 측 각성자들에게 가로막혔다.

이창결과 백율은 조지나나 이반은 놓쳤을지라도, 나머지 범죄자들까지 편히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사르륵.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 다시 백율의 꽃밭이 펼쳐졌다.

이창결 역시 범죄자들을 한 명 한 명 잡아 감옥 같은 막사에 넣었다.

그레이, 조지나와 이반을 제외한 그레이 측 각성자들은 모두 생포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여현은 SSSSS급 게이트가 있던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영원을 품에 조심히 안고서.

정지한 조각상 같은 모습이었다.

범죄자 생포를 마친 이창결은 여현에게 바로 다가서지 못했다.

“…….”

정확하게는 몰라도, 영원이 의식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다쳤으리란 걸, 여현의 반응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약하게 들리는 숨소리를 보면 죽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영원히 그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이창결로서는 여현의 기분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다가서지 않고 여현을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창결 부장은 여현의 뒤로 다가갔다.

“현아.”

여현은 조심스러운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이창결은 작게 한숨을 쉬고 함께 여현의 곁으로 온 백율을 향해 고개를 양옆으로 저어 보였다.

“약간만 더 기다려보자.”

백율의 말에 이창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연아. 목소리 들리면 상황을 알려줘.”

백율은 그러면서 인이어 너머에 있을 화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류하늘과 함께 알 수 없는 공간으로 간 화연과도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다행히 가이딩 밴드를 통해 화연의 생명 활동이 정상적이라는 건 파악할 수 있었다.

백율은 화연을 걱정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화연이 무사할 것을 믿으며 현재 이쪽 상황에 대한 설명 몇 개를 덧붙인 메시지만 추가로 남겼다.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센터 측에 좋은 결과였다.

SSSSS급 게이트의 소멸은 믿을 수 없는 성과였다. 이 정도의 희생으로 끝날 일로 보이지 않았으니.

그런데 누구도 눈에 띄게 기뻐하지 못했다.

영원에게 일어나 버린 일을 생각하면.

장제권 역시 굳은 표정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여현은 추락한 영원을 품에 받아든 상태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저희는 먼저 유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네.”

각국 센터의 각성자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조국의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생포된 그레이 측 각성자들은 각국 정부의 교섭 끝에 서울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사건은 일단락된 듯했다.

영원과 화연에게 일어난 결과만을 제외하고는.

이창결 부장은 다시 여현에게로 다가갔다.

감정을 알아서 수습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현아.”

“…….”

여현은 가만히 품에 안아 든 영원만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 사고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한 뒤로도 정상적인 생각은 힘들었다.

‘…….’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영원을 깨워 묻고 싶을 뿐이었다.

정말로,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진 게 맞는 건지.

영원이 게이트에 뛰어들기 전에 했던 말을 생각하면…… 영원은 절대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영원히 내 가이드로 곁에 있을 거라, 약속하지 않았나?’

여현은 답을 들을 수 없는 물음을 던졌다.

‘약속하지 않았던가요?’

묻고 싶었다. 그 말을 믿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냐고.

다정한 목소리로 뱉어지는 답도 듣고 싶었다. 어떤 변명이라도 다 받아들이고, 원망하는 마음은 모두 없앨 테니까.

처음엔 단순히 잠든 거라 믿고 싶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눈을 뜨며 깨어날 거라고, 현실부정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신체가 보이는 생명 활동의 흔적이 지나치게 미약했다.

당장 숨이 멎는다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가이ㄷ…….”

그녀를 작게 불러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힘을 사용해 그녀가 깨어나도록 조금씩 자극해 보아도, 깨어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했다.

“……님.”

답이 없었다.

미칠 것 같았다. 점점 숨이 막혀왔다.

여현 자신에게도, 목숨을 바쳐서라도 세상을 구하고 싶었던 순간은 있었다.

그게 사명이라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녀를 만난 이후에는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지는 않게 됐다.

세상이 얼마나 지옥 같은 곳이 되든, 목숨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는 아니었을까.

여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를 안아 들고 미약한 온기를 느끼고 있는 것밖엔.

그래도 유일한 희망은, 그녀의 호흡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움직임이 무언가를 망칠까 봐 가만히 숨소리에만 집중했다.

두려웠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 미약한 생명력마저 서서히 잃어간다면 그건 어떻게 견뎌야 하지?

“…….”

영원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잊지 말라고.

멀쩡히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어떻게, 내가 이 사람을 잊을 수가 있을까.

정말 그녀는 그런 것을 걱정했을까.

나를 얼마나 모르면 그럴 수가 있는 거지.

모든 게 꿈 같았다.

SSSSS급 게이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 자리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지만 꿈은 아니었다.

품에 안긴 영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들었다. 목소리가 아주 작게 전해졌다.

‘변할 건 없어.’

그녀는 틀렸다.

모든 게 변했다.

[속보: SSSSS급 게이트 소멸]

[센터1보, “발생·소멸 원인 규명 중”]

[빛의 기적… SSSSS급 흔적인 듯]

세상 전역에 기적을 담은 뉴스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기적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여현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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