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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01화 (101/142)

영원의 치료가 끝났다.

여현의 몸에 남았던 흉터가 모두 사라졌다.

영원과 여현 사이에만 빠르게 흐르던 시간도 끝났다.

쾅!

여현은 엄청난 반응속도로 그레이의 공격부터 튕겨냈다.

영원이 치료를 시작하며 시간을 빨리 감기 전에 그레이가 시도했던 바로 그 공격이었다.

동시에 여현은 어떻게든 영원에게 다시 말을 걸어 그녀를 말려보려 했다.

“가이ㄷ…….”

쾅!

그러나 그레이의 연속된 공격과 게이트의 변화가 여현을 방해했다.

그는 다른 해결방안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영원의 희생으로 SSSSS급 게이트가 처리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우우웅.

SSSSS급 게이트는 여현의 절박한 기분과 무관하게 화사한 빛을 발하며 계속 커졌다.

여현은 연금술을 잘 알지는 못했다.

다만 영원이 엄청난 힘을 사용하는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만은 알았다.

영원은 그녀가 그를 영원히 떠나갈 것처럼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절대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영원이 하려는 일은 여현에게만은 절대로 세상을 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김여현의 세상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일일 뿐.

쾅!

다시 그레이가 공격했다.

여현은 그레이의 공격을 빈틈없이 막아내는 것만은 매우 잘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을 말리는 일은 그렇지 못했다.

“가이ㄷ……!”

영원은 여현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여현과 그레이의 싸움을 뒤에 두고 멀어져갔다.

여현은 그레이를 막아내느라 영원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역삼 본부 멤버들은 영원과 여현 사이의 대화를 몰랐다. 그래서 절망 어린 표정으로 SSSSS급 게이트와 그레이 측 각성자들의 공격을 경계하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여현은 그레이와 싸우면서도 시선으로는 게이트 쪽으로 향하는 영원의 뒷모습을 간절하게 쫓았다.

그때였다.

쿵. 쩌적.

갑자기, 부풀어 오르던 게이트 중심부에 균열이 생겼다.

쩌저적.

콰과광!

동시에 영원이 게이트의 확장을 막기 위해 소환한 금의 벽이 게이트를 사방에서 원형으로 둘러쌌다.

쿠궁.

―소환召喚―

―연금鍊金―

쿵.

완벽한, 순도 100%의 금이 연성되었다.

대제가 절대적인 힘을 사용하기 위해 그 영역을 선포한 것이었다.

“…….”

이창결, 백율, 장제권, 화연은 영원이 하려는 일이 무언지 몰라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지금 괜찮나요?

―무슨 일이죠?

그들은 인이어를 통해 들리는 물음에 정확한 답을 줄 수 없었다.

그레이마저도 눈을 크게 뜨며 영원을 잠시 돌아보았다.

“힘을…….”

그레이의 동공이 커졌다.

근처의 다른 각성자들 역시 알 수 없는 힘에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영원이 만들어낸 것은 상공에서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브로치처럼 보일 형상이었다.

중앙부에 크게 금이 간 진주를 순금이 동그랗게 안고 있는 브로치 같은 모양.

영원은 사람들을 지표면 근처에 두고, 홀로 매우 빠르게 날아올랐다.

게이트의 중앙부 상공으로.

베이징에서 힘을 쓴 다음부터 나빠진 몸 상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금방 사용할 연금술은 체력으로 해내야 하는 게 아니니까.

“가이드ㄴ……!”

쿠궁.

영원은 멀리 있는 여현의 간절한 외침을 들었다.

다만 그 부름은 영원을 막지 못했다.

영원은 SSSSS급 게이트를 없애는 걸 관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누구도 못해.’

‘이대로 두었다가는 더 끔찍한 일이 생길 게 분명하고.’

우우웅.

콰직.

게이트가 계속 부풀어 금의 벽을 뚫고 나가려 했다.

쩌적.

중앙부에 만들어진 균열은 폭이 더 넓어졌다.

영원은 그 벌어진 틈을 향해 밑으로 내려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게이트를 처리하기 위해 가장 적절할 장소는 저 균열이 만들어진 부위였다.

에너지의 밀도도 가장 높았고, 시공간의 불안정함도 가장 극심했다.

우웅.

영원은 게이트 상부의 갈라진 균열 속으로 빠질 수 있을 정도에서 이동을 멈추었다.

우우웅.

영원을 제외하고는 에너지의 밀도 때문에 누구도 멀쩡할 수 없을 것 같은 위치였다.

시공간이 불안정해서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레이더마저 왜곡되어, 이제 저 멀리에서 여현이나 그레이 등등이 무슨 반응을 보이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게이트와 영원만이 이곳에 존재하는 듯했다.

“…….”

영원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바깥 세계에 대한 관심을 모두 지워버렸다. 특히, 여현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그저 발아래만 주시했다.

게이트는 가까이에서도 보석처럼 보였다.

당장 이 세상을 망가트릴 수 있을 만큼 위험한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균열까지 고려해도 그랬다.

영원은 그를 차분한 시선으로 훑었다.

‘SSSSS급이라. 일생일대의 도전이네.’

우우우우우웅.

다시 천천히 내려갔다.

거대한 균열의 틈으로 발부터 서서히 들어갔다.

균열의 폭이 십 미터는 되어서, 영원이 서 있는 곳은 여전히 허공이었다.

결국, 앞뒤 모두에 보석 같은 게이트가 자리하게 됐다.

영원은 두렵지 않았다.

표정도 평온했다.

다만, 여현을 조금 걱정할 뿐이었다. 여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ㄷ님! 가지……!”

영원의 몸이 굳었다.

가지 말라는 말이 갑자기 다시 들렸다.

엄청난 에너지의 밀도와 시공간의 불안정함을 뚫고, 약간의 음파가 고막을 진동시켰다.

영원히 다시 들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목소리가, 잠시 들렸다가 끊겼다.

“…….”

심장이 멈추었다가 다시 뛰는 느낌이었다.

영원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면서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못 들은 척해야 했다.

쩌적.

그런데 또, 여현이 쓰는 에스퍼의 힘이 영원이 선 균열의 중심부까지 닿으려 했다.

영원은 이를 악물고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그 힘을 밀어내며 더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영원의 몸은 게이트의 균열 중앙으로 완전히 들어섰다.

투둑.

더는 여현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힘에 감정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라져가는 힘에 분노와 절망 같은 것이 담겨 있는 듯 느껴졌다면 내 착각일까.’

영원은 씁쓸하게 웃었다.

우웅.

조금만 더 움직이면, 보석 같은 게이트의 표면에 닿을 터였다.

우웅.

영원은 팔을 들었다.

에너지를 분출하는 게이트의 압력을 이겨내고, 팔을 더 뻗었다.

‘밀어내는 에너지가 강해지고 있어.’

‘그래도, 몸을 던져 넣어야지.’

더 지체할 수 없다.

시간을 끌어봤자 위험은 커지는 대신 안타까움만 짙어질 것이다.

여현에게 할 말은 이미 다 했으니 미련은 버려야 했다.

우웅.

우우우우우우웅.

우…….

텅.

영원의 손끝이 게이트에 닿았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느낌은 오묘했다.

전해지는 진동은 대폭발의 전조 같기도 했고, 일상적인 파동 같기도 했다.

게이트의 표면은 대제로서도 성질을 알 수 없는 물질이었다.

‘아니, 그저 에너지일 뿐 물질이랄 게 아닌가.’

영원은 아주 잠시 자신이 살아온 평생의 삶을 돌이켰다.

‘언젠가 이런 식으로 목숨을 내걸 짓을 하게 되리란 걸 알았지.’

다만 짐작하지 못했던 건, 그 동기였다.

김여현.

그를 향한 애정에 휩쓸려 이런 선택을 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이드ㄴ……!’

이제 여현의 부름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방금까지 들었던 부름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

영원은 늦게 답했다.

짧은 문장은 여현을 향한 대답이기도 했고, 자신을 향한 격려이기도 했다.

“변할 건 없어.”

영원은 마지막으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이곳은 원래 심영원이 없던 세계였다. 심영원이 영원히 잠들어 봤자,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남은 그레이의 악행은 여현이가 결국 막아줄 거라 믿자.’

그레이가 되찾은 악의가 걱정되기는 하였으나, 둘 사이의 팽팽했던 대치를 고려하면 여현이 숨겨둔 힘도 그레이가 되찾은 악의에 뒤질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영원은 최대한 애를 써서 게이트를 없앨 때 그레이에게까지 상처를 입힐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무엇보다 SSSSS급 게이트를 잘 처리해야 하고.’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쓰러지기 전에 그레이에게도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면 좋을 거야.’

그 이후에 다친 그레이는 여현이 처리해 줄 터였다.

과거의 김여현에게는 가이드가 없었다. 그러니 그는 다시 가이드 없이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강한 사람들은 상처를 딛고 결국 나아가기 마련이야.’

‘김여현은 강하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야.’

‘믿어.’

슬프고, 괴롭지만, 동시에 어쩐지 앞으로 해낼 일에 가슴이 벅찬 느낌도 들었다.

우웅.

영원의 손이 게이트에 조금씩 빨려 들어갔다.

‘구할게. 너를.’

영원은 마지막에 느꼈던 여현의 슬픔보다는, 자신이 이 과정을 통해 그에게 줄 수 있을 미래를 생각했다.

그것이 여현이 바라지 않는 것이라 하여도.

제가 바라는 일이기에.

어쩌면 이번 한 번만 제가 바라는 대로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에 영원이 뱉은 것은 다른 차원을 향한, 초월적인 부름이었다.

―연성문鍊成門, 강제개방―

초월의 언어로 문이 열렸다.

―청성靑星―

오랜 계약자로서, 이 부름에 청성이 응답할 것을 확신하고 이야기했다.

막대한 힘은, 차원 너머의 존재를 불러 힘과 대가의 크기를 저울질한 뒤에야 사용할 수 있었다.

―‘교환’을 요청한다―

쿵.

쿠구구궁.

응답이 왔다.

하늘에서 청색 빛이 내렸다.

강렬한 빛이 눈부셔 눈을 감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차원 너머의 응답은 기적 같은 모습으로 왔다.

―나의 영원.

차디찬 음성이 영원을 불렀다.

영원은 그에 바로 요구사항을 말했다.

―이곳―

―영역 내부―

―차원의 파멸―

―그리고―

―다른 대제의 고통―

의지는 관철될 것이다.

―앞부분은, 뜻대로.

―뒤는, 잘 모르겠군.

청성이 요청에 답했다. 영원이 제안에 응했다.

【■■■■■■■■■■】

【■■■■■■■■■■】

이 순간 둘에게만 들리는 연금의 언어로 언약이 맺어졌다.

청성은 영원의 힘을 최대치까지 끌어내고, 영원은 무엇이 되었든 그 이후에 주어질 고통을 감내하기로 하는.

영원은 당장 대가로 치를 고통의 크기를 알 수 없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결국 저 SSSSS급 게이트가 소멸하리라는 것에 안심했다.

청성은 영원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지언정, 절대 결과로 기망하지는 않을 존재였다.

그레이에 관한 문제는, 여현을 믿어보기로 했다.

세계가 번쩍였다.

게이트가 순식간에 영원의 힘에 휩싸였다.

“영ㅇ……!”

다시, 들을 리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여현의 음성이 들렸다.

동시에 영원의 힘이 기적을 구현했다.

파지직.

콰과광.

법칙을 다스리는 힘이, 대제의 의지를 관철했다.

SSSSS급 게이트가 녹아내렸다.

한여름 햇볕 아래 얼음처럼.

순식간이었다.

【나의 영원, 오래 편히 쉬어】

건조한 음성이 단발의 회갈색 머리칼을 헤집고 갔다.

스륵.

영원은 눈을 감고 서서히 쓰러졌다.

의식이 사라져갔다.

【영원히】

【혹은】

【혹시 모를 기적에】

【잠이 다할 때까지】

영원은 청성의 이어지는 말은 듣지 못했다.

풀썩.

영원은 높은 상공에서 쓰러지며, 먼 지표면으로 추락했다.

그녀를 안기 위해 달려온 여현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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