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웅.
SSSSS급 게이트는 미미하게 진동하며 계속 부피를 키웠다.
그 속도마저 점점 빨라졌다.
어느새 백율의 꽃밭 전부가 게이트에 삼켜졌다.
영원은 여현에게 안긴 채, 품에서 미니 문어를 꺼냈다. 그리고는 문어의 머리를 두드려 S급 던전석 여섯 개를 손에 쥐었다.
두두두.
여현은 영원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영원은 그를 알면서도 여현에게 자신이 방금 던전석을 손에 쥔 이유를 바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건, 내 욕심이 아니라 내 에스퍼님을 위한 거기도 해.’
그 순간, 그레이가 가까이 접근했다. 여현이 공격을 멈춘 틈을 탄 것이었다.
쾅!
여현이 그레이의 공격 시도를 막아내는 동안, 영원은 품속에 문어를 도로 넣고는 다시 여현의 목에 팔을 감았다.
꺼낸 던전석 몇 개는 여전히 손에 쥐고 있었다.
“여현아.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그 상태로 영원이 작게 속삭였다.
“대가는 모르겠어.”
“…….”
“나는 깨어나지 못할지도 몰라.”
최대한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했다.
“…….”
여현은 반응하지 않았다.
쿠궁.
꽉. 여현은 그저 영원을 안고 그레이의 4차, 5차 근접 공격을 막아낼 뿐이었다.
그동안 영원은 머릿속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계산을 마쳤다.
저 SSSSS급 게이트를 없애기 위해 얼마나 강하고 거대한 힘이 필요할지.
또한,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일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을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잠들어 있게 될지.
‘무엇도 정확하지는 않아.’
연금술사 대제로 군림했던 과거의 시간까지 모두 통틀어도, SSSSS급 게이트를 처리하는 것에 비할 경험은 없었다.
‘저걸 없애는 건, 이 우주보다도 더 막대한 세계를 없애는 것과 같아.’
‘SS급 게이트만 해도…… 그 크기가 이 우주의 몇 배는 되었지.’
‘저건 나도 상상하기 힘든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
‘감당할 수 있을까?’
‘해야지. 피할 수 없어.’
아무리 오래 생각해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해낼 수 있는 수단도 하나뿐이었다.
삶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연금술.
어느 때보다 막대한 값을 고통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다른 괜한 추측은 그만하자.’
영원은 막연한 희망 회로를 돌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희망적인 전망이 도움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지 더 곰곰이 생각하는 편이 이로우면 이로웠지.
‘최악은, 실패하는 거지.’
‘그런 일만 만들지 않기로 해.’
영원은 실패가 아닌 모든 결과를 받아들기로 했다.
‘안타까운 면이 없는 건 아닌데.’
‘현실은 원래 가끔 이래.’
‘예기치 못했던 시련이 오고, 갑자기 손해를 보아야 하기도 하지.’
‘그래도 내게 저런 굉장한 재난에 대응할 수단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까지 나쁜 상황은 아니야.’
영원은 희망 회로는 포기했어도, 긍정 회로는 놓지 않았다.
다만, 문제가 하나 남기는 했다.
생각할수록 더 갑갑해지는 문제.
자신의 에스퍼.
김여현.
고통이나 대가는 괜찮은데, 홀로 남을 그가 걱정됐다.
‘…….’
떨칠 수 없는 갑갑함은, 오직 여현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포기해야 하는 건 빨리 포기해야 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여현이는 나를 만나기 전에도 곧고 바르게 잘 살아왔잖아.’
‘그러니까 내가 영원히 잠든다 해도, 버틸 수 있을 거야.’
영원은 이 순간, 여현에게 자신이 절대적인 의미만은 아니기를 소망했다.
특별한 의미는 있기를 바랐으나, 그의 마음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냥, 심영원에 대한 기억을 오래오래 마음에 품고 있는 정도이길.
“여현아.”
“…….”
“미안. 잠시만, 이해해 줘.”
그리고 영원은 동의 없이, S급 던전석을 이용해 여현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
여현의 몸이 굳었다.
그레이가 즉각 그 틈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레이의 공격은 둘에게 닿지 않았다.
영원의 치료가, 여현과 영원의 시간만을 매우 느리게 흘러가게 만들어버려서.
스으으으윽.
그레이의 접근이 너무나 느리게 느껴졌다.
사실상 그가 정지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얼마 전 영원이 여현을 치료했던 바다로 왔다.
그곳은 여전히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가이드님, 이건…….”
“저번에 알게 됐어. 여기서는 외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게 만들 수도 있어. 내가 법칙을 조종할 수 있는 곳이니까.”
“…….”
“나는 원래 이것저것 배우는 게 빠르잖아.”
이 현상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다시 바다 위에서, 영원은 여현을 마주 보았다.
그를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절대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본론부터 했다.
아무리 시간을 길게 늘여놓아도,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어느 순간엔 그레이의 공격이 닿을 터였다.
그 전에는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여현아.”
여현은 정말로 혼란스러워 보였다.
“이기적으로 굴어서 미안해.”
“……가이드님.”
“너를 동의 없이 다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도, 미안해.”
“……”
“꼭. 끝까지 치료는 해주고 가고 싶어서.”
영원은 호흡을 삼켰다.
‘으. 근육통.’
그냥 가이딩만 하려는 것인데도 다시 전신에 근육통이 밀려왔다.
무리하는 중이란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멈출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대로 여현을 두고 가면, 영원히 여현이 치료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 너무 힘들어하지 마.”
“가이드님. 그만하세요.”
여현이 힘주어 말했다.
영원은 고개를 저었다.
뒤에는 저번과 똑같은 바다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분위기는 조금도 평온하지 않았고, 영원은 여현의 눈에서 어떠한 편안함도 읽어낼 수 없었다.
지금 분명히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진정으로는 무엇도 회복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가이드님. 하지 마세요.”
여현은 재차 영원의 뜻을 거부했다.
“……여현아.”
“다른 방법을 찾아낼게요.”
“그런 거 없어.”
“왜 그렇게 단언하세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
여현은 온 힘을 다해 영원의 행동을 거부하고 싶어 하면서도, 영원을 막기 위해 당장 영원을 밀쳐내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치료뿐 아니라 이 여유까지 곧바로 끝나버리고, 그레이의 공격이 날아오면서 영원이 바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영원은 계속하여 여현의 눈을 봤다.
검은 두 눈을 계속 보고 있고 싶었다.
무언가에 이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고백했다.
마음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현아.”
마법에 걸린 것처럼.
“나는 너와 함께한 시간이 항상 너무 좋았어.”
“…….”
“내 생에 이렇게 즐거운 나날이 있을 줄 몰랐어.”
솔직히, 힘들고 귀찮은 부분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보다 그로 인해 얻은 행복이 컸다.
“내 삶에 이런 행복이 있을 줄이야. 많이 놀라기도 한 것 같아.”
김여현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더 가까워질 시간이 있으면 좋기는 했을 텐데. 아쉽기는 해.”
여현은 그렇다면 더 남아있으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러나 영원은 여현이 끼어들 틈 없이, 말을 이었다.
“그거 알아? 나는 무언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관계가 망가질까 봐 무섭기도 했어.”
“…….”
“언제까지 유지되는 감정일까, 그런 이상한 두려움까지 들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선 내가 겁이 많아질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
“…….”
“너를 좋아한 거야.”
여현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강렬한 감정일 것이다.
“정말, 그런가 봐. 새삼스럽지만.”
감정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심장이 더 거세게 뛰는 듯했다.
“가끔 너를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심장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어.”
“…….”
“처음엔 그저 내가 네 불행에 감응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걸 알겠어.”
좋아해서 그랬던 거야.
그 이유 때문이야.
“내게 너는 가장 특별한 사람이었어. 모든 차원에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다 털어도 그래.”
“…….”
“그러니까 기억해 줘.”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구에게도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어디에도 기록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어딘가에 남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여현에게만은 달랐다.
“난 내게 부여된 원대한 사명이 있다고 믿은 적 없어. 운명론도 믿지 않아. 그런데…….”
그러나 어떤 순간에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김여현의 간절함에 대한 응답으로 여기까지 이끌려 오기 위해, 그 끔찍했던 고통을 견뎌온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너를 만나기 위해.
너를 더 수월히 구하기 위해.
나는 그런 운명을 안고 살아온 건지도 몰라.
“내가 김여현의 유일한 가이드이고, 내가 아니고서는 너를 불행에서 꺼낼 수 없다는 서사가…….”
영원은 잔잔하게 웃었다.
“내가 너를 운명이라 느끼게 해.”
“…….”
“나는 사람들이나 나의 세상을 구하고 싶은 게 아냐.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저 너의 세상을 구하고 싶어.”
영원은 연이어 말했다.
“그러니까, 여현아.”
“…….”
“이건 내가 해결할게.”
김여현을 위해 남은 시간을 다 쉽게 놓아버리게 만드는, 애정이란 무엇일까.
영원은 자신에게 물었다.
과거에도 무언가를 향해 얕은 애정이 생겨났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들은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금방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너무 빨리, 쉽게 금방 무뎌졌다.
김여현도 비슷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인연, 그 정도인 게 절대 아냐.
완벽하게 유일하고,
특별하다.
사랑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걸까?
영원은 그 환상을 믿지 않았었다.
인간에게 희생을 강요하기 위해 생겨난 개념, 인간들의 멍청함을 은폐하기 위해 탄생한 궤변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알겠어.’
‘세상 어딘가엔, 정말 사랑이 있었나 봐.’
김여현을 향한 깊은 애정이 있다.
그 애정은 영원이 더욱 거대한 희생을 감내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게 했다.
“여현아.”
이건, 사랑인지도 모른다.
“그래, 세상에는 이런 감정이 있었나 봐.”
늦게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래서 이기적이지만, 정말로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
혹시 몰라 다시 강조했다.
나의 에스퍼만은,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 바람을 간절히 꾹꾹 눌러 담아냈다.
“잊어서는 안 돼.”
그것만 바랄게.
“내가 너의 유일한 영원이었어.”
영원의 헌신자, 너는 영원히 이름에 나의 흔적을 품고 있을 거야.
그 사실이 영원을 조금은 안심시켰다.
“……그만하세요.”
“여현아.”
“…….”
“내게 너보다 특별했던 사람은 없어.”
“…….”
“내 모든 시간을 통틀어, 사람도, 무엇도 없어.”
너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으로 영원히 남기를 기대해.
믿어.
너만은 나를 잊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