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99화 (99/142)

그리고 서울.

세계 각국의 주요도시 중 그나마 평화가 유지되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선하기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지금 그레이와 여현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한 에스퍼라 할 서시용이 모든 시민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평화를 해치면 네가 위험해진다.

X되게 해봐라. 네 인생은 1초 뒤에 더 개X될 테니까.

X랄해도 좋다. 내가 진짜 개X랄하는 게 뭔지 세상에 알려줄 때 3D 서라운드로 1열 VVVIP석에서 감상하고 싶으면.

‘제 자리에서, 일상을 그대로 살아내세요.’

‘우리는 그냥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으면 되는 겁니다.’

‘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이 행간에 감추어진 저의 수많은 욕설, 협박들이 여러분의 귀에 잘 들렸길 바랍니다.’

‘서 시장이 설마 그런 상스러운 생각을 할까? 네. 합니다.’

‘여러분의 상상 이상으로 매우 잘합니다.’

그 메시지가 대한민국 전역에 뿌려진 결과라고 할 만했다.

물론 반항하는 자들은 있었다.

그레이에 동조하려고 했던 S급 에스퍼 하나와 S급 가이드 둘이 빈사 상태로 각성자 감옥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을 경악에 물들인 뉴스였다.

이어진 서시용의 멘트는 경악의 수위를 높였다.

‘사형집행, 오랜만에 이루어질지도 모릅니다.’

서시용은 섬뜩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권한을 가진 영역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의 말대로 될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제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아직 그 제도 폐지는 안 됐던데?’

사이코 같은 말을 하는 그 얼굴마저 잘생겼다는 이유로 광공 컨셉의 수많은 짤이 후속작으로 생성되기는 했다.

각성자특별법위반(내란)죄.

서시용의 경고대로, 결국 그들 셋에게는 그런 혐의가 적용되었다.

법령의 엄격한 해석에 따르더라도, 높게는 사형, 아무리 관대한 처분을 받아도 최소 무기징역형이 선고될 터였다.

그리고 그레이의 계획이 성공한 순간.

SSSSS급 게이트의 존재가 이곳에도 알려졌다.

가장 빠른 1보가 광화문의 전광판에 떴다.

드르륵.

드드드드드득.

띠링.

띠리링.

모든 이들의 핸드폰이 엄청난 알람을 울리며 진동했다.

[속보: SSSSS급 게이트 오픈]

소식을 들은 서시용은 그래도 평온한 얼굴이었다.

사실은, 뉴스를 전해 듣기 전부터 느끼고야 있었다.

‘엄청난…….’

‘끔찍한 뭐가 생긴 것 같은데.’

S급 에스퍼로서, 저 정도의 에너지 격동에 반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뭐야.’

‘뭐지?’

아무리 저 멀리 위쪽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태평양 해저, 해구 속에서 열린 게이트라 해도 바로 알았을 터였다.

그 진상을 알게 되었을 때, 시용은 충격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 중얼거렸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놀라지 않은 것은 조금도 아니었다.

‘SSSSS급. 가능한 건가?’

사실은 여전히 믿기지 않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놀랄 만한 일이 남아있는 줄 몰랐는데.”

서시용은, 어쨌거나 겉으로는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북쪽을 보며 마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어떤 전화를 받게 되었다.

상상도 못 한 엄청난 인물로부터.

무려, 백악관의 주인.

미합중국의 대통령.

‘그레이가 아직, 나를 설득하는 건 포기하지 못했구나.’

SSSSS급 게이트를 느꼈을 때만큼 놀라진 않았다.

상대방은 시용의 예측대로 이제라도 그레이의 편이 되어달라 부탁했다.

시용은 잠시 통화를 멈추자고 말했다.

“…….”

그리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직 정의가 세상을 구하리라고 믿고 싶은 걸 보면…….”

혼잣말이 계속 나왔다.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었나? 이 나이를 먹고?”

서시용은 그 말을 마치며, 잠시 홀드가 걸려 있는 전화기를 보았다.

상대편은 서 시장의 진중한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도 버텼지.”

서시용은 여현과 영원을 생각했다.

대단한 조합이었다.

더, 기대해도 될까.

아니면, 이젠 끝일까.

톡, 톡.

서시용은 핸드폰을 올려둔 한강대교의 난간을 두드렸다.

여현에게 베이징의 유명한 베이징덕 식당을 추천해주며, 둘이 언젠가 데이트를 하러 가길 바란다고 진심으로 말했다.

‘맛있더라고.’

‘데려간 여자들 다 좋아했어.’

‘김여현 에스퍼님이 구애하고픈 상대방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와인 한잔 같이 해. 분위기도 꽤 좋아서, 키스할 무드야 쉽게 만들어질 텐데.’

‘키스는, 애들 같아서 별로 바라는 게 아닌가?’

여현은 답하지 않았다.

시용도 웃어넘기고 말았다.

이후 베이징에서의 일은 나름대로 좋게 정리되었지만, 둘이 정말 그 음식점에 갈 일이 금방 일어날 것 같진 않았다.

그레이가 바로 반격을 하는 바람에.

“데이트는 멀었네.”

서시용은 베이징에서 영원이 보여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톡톡.

다시 대교를 두드렸다.

“대단했지.”

베이징에서의 1라운드는 역삼 본부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은 채였다.

이제 2라운드일까.

서시용은 긴장 없는 얼굴로, 보안등급 최상위의 국제전화를 다시 연결했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그 너머의 상대에게 답했다.

“꺼지세요.”

―…….

잠시 당황했던 상대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레이가 돔을 펼치면, 그 안에는 안전한 지대가 형성될 겁니다.

“아까 잘 들었습니다. 저 뇌 팽팽 돌아갑니다.”

―밖에는 SSSSS급 게이트가 있어도, 게이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돔을 그레이가 건설해낼 거고…….

“싫다고 했잖아요. 됐어요.”

―…….

“닥치라고.”

―…….

“SHUT UP.”

혹시 몰라 그의 모국어로도 말해주었다.

―…….

“FXXX YXX.”

뚝.

통화는 끝났다.

서시용은 핸드폰을 한강 아래로 던졌다.

파직.

물에 닿기 전에, 서시용의 힘으로 그 전자기기는 가루가 되었다.

‘일단은, 정의의 편에 다시 베팅을 해보기로.’

그는 손을 뻗어, 멀리 있는 딸들을 가까이 오게 했다.

‘정의를 추구해서만은 아니고.’

‘김여현과 심영원이 SSSSS급보다 더 강할 것도 같아.’

어쩌면 그럴 것도 같았다.

“원래 지키는 싸움이 더 어려워.”

그러나 거기서 끝인 게 아니었다.

“또, 지킬 게 있는 이들은 강해져야 하는 것보다 더 강해지는 편이지.”

그러니까 지키는 쪽이 이길 것 같았다.

화악.

드래곤들의 날갯짓에 서시용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딸들도 그의 뜻에 동의하는 듯했다.

시용은 여현과 영원이 딸들의 집을 보호해줄 것이기에, 그들의 편에 영원히 서 있기로 마음을 굳혔다.

***

화연은 어둠 속에서 힘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자신을 공격할 준비를 하는 류하늘의 위치와, 잡혔다가는 죽을 것 같은 트랩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수하면 끝이다.

―들려?

인이어 너머에서, 백율이 물음을 던졌다.

“네. 잘 들려요.”

화연은 백율에게만큼은 쾌활하게 답했다.

―입구에서, 멀리 있니?

백율은 이창결 부장이 겪은 것과 유사한 상황을 걱정하는 듯했다.

화연은 여전히 쾌활한 톤으로 답했다.

“음. 잘 모르겠어요. 입구랄 게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또 3억 광년이겠어요? 설마. 아,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싸울 수는 있는 환경인 것 같고요.”

―…….

“어떻게 상황이 좀 나아지게 한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제가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콰과광!

화연은 인이어 너머로 들려오는 폭발음에 인상을 쓰며 답했다.

아마, 이반 하이제렌이 퍼부은 포탄 소리일 터였다.

이쪽에서 이렇게 들릴 정도면, 저편에서는 정말 고막이 찢어질 정도겠지.

―……그래.

통화는 끊겼다.

화연은 다시 어둠 속에서 풍경을 파악하려고 했다.

여러 개의 블랙홀과 화이트홀 같은 것들이 보였다.

이쪽 차원 안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트랩이라 할 만한 장애물들이었다.

‘몸이 조금이라도 닿았다가는 난리가 날 거야.’

팡!

정확한 작동원리는 모르겠지만, 장애물들은 무언가가 스쳐 가기만 해도 엄청난 폭발력을 냈다.

‘던전 안에서 비슷한 것들을 경험해 봤지.’

‘그 원리를 이해해보겠다며 접근해서 괜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야 그냥 피해서 움직이는 게 나아.’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화연으로부터 상당한 거리에, 하늘이 있었다.

수많은 트랩을 그 사이에 두고서.

“하아, 하아.”

하늘은 흥분을 삭이기 위해 숨을 몰아쉬었다.

S급 에스퍼의 힘을 조금도 끌어낼 수 없었다.

‘왜.’

‘왜 안 돼!’

미칠 것 같았다.

S급 가이드인 것만도 대단하기는 했다.

그러나 가이드의 힘만을 쓸 수 있는 이런 몸은 과거보다 너무 쓸모가 없어진 것만 같았다.

‘다시 열등해질 수는 없어.’

‘그레이에게 버림받고 뒷전으로 물러날 수는 없어.’

‘다시 주인공의 자리를 양보할 수도 없어.’

하늘의 시선이 어둠 속에 선 화연에게로 향했다.

‘심지어, 저 조연 역할만 잘 어울리는 X에게 발목 잡혀서는 더욱!’

‘이 망할 X은 심영원도 아니잖아!’

아득.

하늘은 영원에 대한 분노를 여전히 떨치지 못하고 이를 씹었다.

‘심영원을 망가뜨려야 해.’

하늘은 그 문장만을 속으로 되뇌었다.

***

블라디보스토크로 박의총의 연락이 왔다.

그는 그레이가 SSSSS급 게이트를 연 다음에 이어서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려주었다.

―그레이는 추가로 돔을 만들 겁니다.

―SSSSS급 게이트로부터 안전할 돔이요.

―그 돔 외부에만 게이트가 빈발하게 만드는 구조를 무력화해야 해요. 저는…… 그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반드시.

―그런데, 저 SSSSS급 게이트를 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없앨 수는 없어요.

의총이 알려준 것은 SSSSS급 게이트를 없앨 방법은 아니었다.

그래서 영원의 결심은 더욱 강화됐다.

‘실패하면 다 같이 죽자는 거지.’

‘저쪽은 그래도 잃을 게 없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나는 아냐.’

‘다 죽는 건, 너무 많은 걸 잃게 해.’

영원은 여현을 안았던 팔을 풀었다.

그러자 여현이 말했다.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영원이 바로 답했다.

“여현아, 현실을 봐.”

“…….”

“무리하지 않고는 무엇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야.”

쿠우우우우.

게이트는 더 부풀고 있었다.

“말했잖아. 내가 할 수 있다고.”

“…….”

“…….”

“뭘 대가로요?”

여현이 질문했다.

영원은 그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영원 자신도 정확한 답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고, 추측으로라도 답한다면 여현이 자신을 놓아주려 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현은 생각보다 여리고, 자신이 그의 유일한 가이드임은 분명하기에.

영원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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