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유일함
다소 멀리, 백율의 꽃밭이 있던 곳에 정말로 듣도 보도 못한 등급을 붙여야 할 차원의 문이 열렸다.
SSSSS급 게이트.
누구도 이제껏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우우웅.
마치, 은하수나 보석처럼 생긴 모양.
그것은 타원으로 퍼져 반짝였다. 그 모습만 보면 아름답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누구도 순수하게 감탄할 기분이 아니었다.
낯선 게이트는 그를 마주한 모두에게 강렬한 경계심을 느끼게 했다.
경계심, 긴장감, 두려움 그리고 경외심.
S급 이상의 각성자들 모두가 엄청난 긴장 속에서 숨죽이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현재 적과 함께 서 있다는 것마저도 잊었다.
심지어는 저 게이트를 이 땅에 불러온 그레이와 조지나조차.
“…….”
게이트가 내는 묘한 소리가 정적을 파고들었다.
우웅.
쿠우우우우.
그것은 연기를 냈고, 에너지를 뿜었고, 움직임이 없었다.
우우우우우웅.
잠시 더, 모두가 동상처럼 굳은 채로 별들의 집합 혹은 진주 더미 같은 것을 주시했다.
그것은 입구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다른 차원과 연결된 입구였다.
영원 역시 말없이 그를 보았다.
표정 없이, 그저 차가운 눈길로.
“…….”
세상에는 원래 난해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또한,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갖췄다고 해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만은 불가능하다.
영원은 그를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태에 이르게 된 책임이 약간은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을 아꼈어야 했을까?’
‘경고를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었어야 했나.’
SSSSS급 게이트가 열렸고, 화연이 류하늘과 함께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요련과 윤 교수의 말을 모른 척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힘을 아낀 채로 하늘과 조지나를 더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었다면…… 중간에 그 계획을 눈치채고 훼방을 놓아, 모두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
그러나 그런 과거는 없었다.
그래서 이런 미래가 왔다.
전신을 덮은 근육통 때문에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고, 화연과 하늘은 보이지 않았으며, 저 멀리엔 SSSSS급 게이트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후회하지 말자.’
영원은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었다.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막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말했던 대로 해.’
자책에 깊이 잠겨만 있을 순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결과가 올 수도 있어.’
‘막자.’
‘내가, 막자.’
저것을 막기 위해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그레이의 공격이 금방 올 것도 같았다. 영원은 후회를 털었다.
쾅!
그리고 영원의 예상이 적중했다.
적막뿐인 경계 상황이 그레이의 빠른 접근으로 종료했다.
캉!
영원의 앞에서, 그레이와 여현의 힘이 맞닿았다.
카강!
콰직.
두 힘이 형체 없이 수차례 급히 충돌했다.
여현은 영원을 안고 보호하면서 뒤로 멀리 물러났다.
퍼벙.
“전 저쪽으로. 이창결 부장도.”
“응. 그래.”
백율은 순식간에 꽃밭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창결 부장도 함께였다. 센터 측 S급 각성자들을 이반 하이제렌뿐 아니라 SSSSS급 게이트로부터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극적으로 구조되어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휴식을 위해 잠시 뒤로 빠질 수 있을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뒤로 빠져요!”
꽃밭으로 돌아간 백율은 센터 각성자들에게 소리쳤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일단 저것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게 중요합니다!”
그레이 측 S급 가이드들보다 게이트가 더 큰 피해를 만들 게 분명했다.
당황에 빠져 있던 각국 센터의 S급 각성자들은 백율의 지도에 따라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에 장제권이 가세해 서포트를 해주기도 했다.
그레이 측 역시 반대편으로 물러났다.
쾅!
그레이 측 S급 각성자들과의 난전 속에서, 백율과 이창결은 점점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뒤로 빠졌다.
역삼 본부의 반응도 난리였다.
―정보, 관측 자료가 제대로 들어오고 있지 않습니다!
―이쪽, 여기 서울에서는 SSSSS급 게이트쯤 되는 것의 흔적 같은 파장이 오는데요! 무슨 일이에요! 지금 이게 진짜인가요?
―무슨 상황인지 말 좀 해주세요! 응답 좀!
센터에서 요련과 윤 교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다 살아는 있습니다. 저는 장제권 가이드님이랑 게이트에서 나왔습니다.”
이창결 부장이 그렇게만 답했다.
쿠우우우우.
그 이상, 저것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우우웅.
원래 백율의 꽃밭이 펼쳐져 있던 일대를 덮은 것은 계속 거대한 보석 같은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이아보다는, 진주에 가까운 질감과 형태 같다고,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잖아.’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묘사였다.
쾅!
다시 영원과 여현, 그레이가 있는 쪽.
그곳에서 여현이 그레이와 싸우며 점점 백율과 이창결 부장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떨어져 있는 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 영원을 품에 안고 있었다.
영원은 여전히 다소 멍한 기분이었지만, 열심히 생각했다.
‘연금술을 쓴다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거야.’
‘여현이가 에스퍼의 힘으로 처리할 수도, 여기 S급 에스퍼들이 힘을 모아 처리할 수도 없어.’
‘답은 대제의 힘밖에는 없어.’
영원은 결론을 얻었다.
빠르게.
그리고 그 결론을 공유하기로 정했다.
“여현아.”
“네.”
여현과 그레이의 공격이 잠시 잦아든 순간이었다.
“내가, 저거 없앨 거야.”
“…….”
“하나 남은 게이트.”
영원은 작게 말하고는 그녀를 품에 안아 들고 있는 여현을 더 꽉 안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
“이후의 상황을 수습하는 것만, 부탁할게.”
영원은 자연스럽고 덤덤하게 말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심영원이라는 개인에게는 끔찍한 결과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신파를 찍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쯤 모두를 그나마 안심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저, 일단 무사해요. 깜깜한 곳인데.
영원이 안도했다.
―류하늘 씨만 제외하면 저를 위협할 만한 건 없을 것 같아요.
백율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화연아. 정말 괜찮아?”
―네. 나가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일단 약간의 음료랑 초콜릿 같은 거 정복 안에 있으니까 일주일 넘게 버틸 수 있어요.
―안 죽고 나갈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밖에서도, 다치지 마세요.
―너무 제 말에만 집중하지도 마시고. 적을 신경 쓰세요.
콰콰쾅!
이반 하이제렌의 포탄 수백 개가 날아왔다.
화연의 말대로, 적은 그대로 앞에 있었고, 싸움은 그치지 않았다.
동시에, 게이트가 변화했다.
조금씩, 조금씩.
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우.
거대한 게이트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시작될 게 분명한데, 이다음에 올 일을 예측해낼 수 있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박의총 가이드님과도 의견 교환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그렇게 말하지만, 센터라고 해서 어떤 명확한 답을 주지는 못할 터였다.
끝내 찾아올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미래를 겪어 보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 순간 영원은 그녀 곁의 누구도 볼 수 없는 무엇을 보았다.
[심영원, SSS급 퀘스트 스테이지3 클리어 확인]
[세계수의 SSS급 퀘스트 스테이지4가 시작됩니다]
[스테이지4: SSSSS급 게이트 클리어]
[스테이지4 목표달성▶ SSSSS급 게이트 클리어 0개/1개]
[스테이지4 종료까지 잔여 시간 무한대]
영원은 막힘없이 전부 읽어내려갔다.
[필드의 관리자, 세계수가 SSS급 스테이지4의 보상에 대해 안내합니다]
[실패 시▷ 미정]
[제한시간 내 미시도 시▷ 미정]
[성공 시▷ 미정]
영원은 여전히 남아 있는 본퀘스트의 안내도 다시 읽어보았다.
[필드의 관리자, 세계수가 SSS급 퀘스트의 보상에 대해 안내합니다]
[실패 시▷ 세계멸망, 무한회귀 루트]
[성공 시▷ 특별한 보상은 없음]
[제한시간▷ 없음]
‘스테이지4를 클리어해봤자 아무것도 주지 않을 거고, SSS급 퀘스트를 어쨌거나 실패하면 무조건 무한회귀라는 거지. 세계멸망은 덤.’
뭔가 불공평하긴 했지만, 받아들였다.
‘알겠어.’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할 생각이었다.
저 게이트를 소멸시키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몫임을 조금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
괴이한 것은 블라디보스토크뿐 아니라 세계 모든 곳에서 관측되었다.
“아니, 던전들도 갑자기 전부 소멸 수순을 밟고 있는데, 대체 아시아 동쪽에서 방금 무슨 충격파가 발생한 건가요?”
가장 멀리 떨어진 지구의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물었다.
아무도 적절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모두가 멈추었다.
다른 문제 앞에서도 절규하던 행위가 일시에 멈추었다.
“…….”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속보: SSSSS급 게이트 오픈]
광화문에서 1보가 나왔다.
수많은 언론은 그를 바로 받아 적지 못했다.
사실관계 확인도 어려웠고, 그 사실을 크로스 체크한 기자들은 패닉에 빠져 기사를 써내지 못했다.
그러나 SNS에서는 불길이 번졌다.
방금까지, 유럽만 난리인 게 아니었다. 북미나 아프리카 대륙도 마찬가지였다.
비각성자와 각성자의 대치가 격화되니, 비각성자들이 총기를 들고 나와 각성자들을 향해 난사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그런 영상들이 맞불처럼 인터넷에 쏟아지면서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갈등은 점점 격화되기만 했다.
―우리도 피해자다!
―그동안 우월성을 억압받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생명까지 위협당하고 있어!
각성자들은 분노했다.
그들이 이제껏 한 짓은 생각도 하지 않으며,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는 비각성자들의 반격에 이성을 잃었다.
세상은 더, 더, 더 난장판이 되어갔다.
―죽이러 가!
―총기를 들고 있는 비각성자들에게 진짜 위계가 뭔지를 알려!
그런 대립의 와중에, 잠시 세계가 정적에 휩싸인 것이다.
모두가 멈췄다.
“…….”
고요한 순간이었다.
종말이 온 듯했다.
잠시, 세상의 모든 곳이 숨 막히는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