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가이드의 물리력의 강도를 높였다.
“악! 제발!”
하늘의 절규에도 멈추지 않았다.
영원은 자신의 고통에 무뎠고, 힘을 써야만 한다는 확신이 들었으니 멈출 이유가 없었다.
“제발, 제발…… 응?”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영원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아. 스카이.”
영원에게 엄청난 고통이 왔다.
영원은 그를 견디면서, 말을 천천히 이어갔다.
“그거 알아? 넌 그레이에게 농락당하고 있어.”
“…….”
“‘스카이’라고. 하. 그레이가 널 특별하게 여겨주는 것 같지?”
영원이 비웃었다.
“남이 명명해주는 이름에 너무 쉽게 휩쓸리면 안 돼. 특히나 네게 아무런 애정이 없는 이들이 해주는 이름의 수여는 온 힘을 다해 경계했어야지. 세계수도, 다른 관리자들도, 이름에 많은 의미를 담아.”
“…….”
“연금술사들도, 그런 식으로 노예를 만들어. 이름으로, 종속되게 만들어서.”
K.
포에버.
“난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기는 한데.”
“…….”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그 자식이 자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제멋대로 새 이름을 붙여주는 거.”
영원은, 여현이 그 ‘K’라는 이름에 조금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 그레이는 그를 K라고 불렀을 터였다.
여현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정신이 강하구나.’
그 순간에, 그에게 다시 한번 반했던 것도 같다.
‘반하고, 치인 순간이 너무 많지.’
‘셀 수가 없네, 셀 수가 없어.’
‘실제로는 베스트 드라이버면서 내 마음속에선 아주 초보운전자야. 여기저기 맨날 치이게 해…….’
이 짜증 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여현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여현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를 떠올리면 마음 안에 몽글몽글한 것이 자라나게 했다.
“생각해 봐. 여현이는 7년 동안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었고, 그 덕에 너는 안전해졌어.”
“…….”
“그런데 감사는커녕…….”
화가 났다.
“내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네 인생에 더 있기는 했겠지. 부모와의 문제나, 사건 사고 등등.”
“…….”
“너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포장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겠어? 그런 거 누구한테나 있어.”
“…….”
“그렇다고 해도 넌 내 에스퍼를 그딴 식으로 깎아내려선 안 돼.”
“…….”
“네가 저질러온 짓들, 그런 건 절대 용서가 안 돼.”
악행의 원인으로, 불행의 탓을 하게 둘 수는 없다.
복수도 아닌 악행이라면 더욱.
그런 사고방식에는 논리가 없다. 스스로에 대한 역겨운 자기연민만 있을 뿐이지.
“스카이. 하아.”
“으…….”
“네 능력은 끝났어.”
영원은 끝을 선언했다.
하늘의 그릇이 완전히 닫혔다.
분노에 머리가 차게 식은 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이제 너는 에스퍼가 아냐.”
“…….”
“평범한 S급 가이드인데. 넌 절대 그걸로는 만족 못 하겠지?”
“아…….”
정말이었다.
하늘은 더 이상 에스퍼의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순간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리란 것도 함께 깨달았다.
다시는, 가이드이면서 에스퍼인 존재로는 돌아갈 수 없다.
‘더 살아야 할까?’
죽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견디지?’
“스카이. 내가 널 왜 안 죽이는 줄 알아?”
사실은 죽이는 게 더 간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스퍼의 힘만을 빼앗았다.
영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 에스퍼가 널 구했으니.”
“…….”
“부디 그 목숨의 무게를 안고, 더 불행하라고.”
대부분의 불행 서사는 심영원을 설득하지 못한다.
확실히 영원은 타인의 불행에 잘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행을 안기는 방법은 꽤 잘 배웠다.
“스카이.”
쿵.
하늘의 몸은 금으로 포박됐다.
“넌 이대로 잡혀 있다가, 영원히 널 구속해 둘 감옥에 가게 될 거야.”
“…….”
“그 안에서는 절대로 쉽게 안 죽을 거고. 사실 넌 죽음을 택할 용기도 없는 애잖아.”
“…….”
“이제 오래오래 벌을 받을 시간이야.”
영원은 하늘이 속죄하기를 바랐다.
모든 죽음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기억해내면서, 그 기억을 전부 도려내고 싶을 만큼, 괴로워하기를 바랐다.
진짜 죄를 마주하고 그를 이해할 때, 인간은 진정으로 고통스러워지니까.
―가이딩. 가능할까요.
타이밍 좋게 들려온 여현의 목소리가, 영원의 분노를 조금은 잠재웠다.
“응.”
근육통에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여현의 힘이 영원을 안아 들었다.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영원은 순식간에 여현의 품에 안겼다가 빨리 가이딩을 마치고는 떨어졌다.
여현은 마스크도 안 쓴 얼굴로 걱정스레 영원을 살피며 속삭였다.
“안전하게 계세요.”
“응.”
영원은 다시 여현의 힘에 안겨 하늘의 앞으로 돌아왔다.
하늘은 불행을 가득 안은 표정으로 영원을 보고 있었다.
“흐으…….”
이제 시작이었다.
영원은 금의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회복이 필요해…….’
‘와, 아프다.’
‘장난 없네.’
그래도 아까보다는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았다.
***
그리고 어느새 하루의 해가 또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주에서는 에너지 대전, 꽃밭에서는 괴수마저 튀어나오는 난전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멎은 것은 금의 벌판에서의 싸움뿐이었다.
상공에서 여현이 그레이에게 우세한 공격을 퍼부어대는 시점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영원이 가이드의 물리력을 쓴 다음부터 여현이 영원 쪽으로 그레이의 힘이 조금이라도 가해지려고 하면 과잉방어를 하는 바람에 공격력이 다소 약해졌다. 덕분에 다시 팽팽한 대치상태가 되었다.
펑!
퍼퍼퍼퍼펑!
위편에서 폭발음은 계속 들렸다.
영원은 간간이 위를 보면서 근육통의 회복에 집중했다.
피가 묻은 가이드 정복을 깨끗하게 만들 여력도 없었다.
꽃밭에서의 싸움도 팽팽했다.
퍼펑!
콰직!
“화연아, 저쪽.”
“네!”
대치의 균형은 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반은 조지나를 속이면서 몇 번 틈을 내어줬고, 백율 역시 적절한 틈을 내어 공격을 몇 번 받아주었다.
딱 서로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그 와중에, 모두의 인이어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연구원님들이 해냈어요.
―SS급 게이트. 3억 광년 붙이는 거,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희망적이에요.
―이창결 부장님과 장제권 가이드님 구할 시나리오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이건 센터에서 센터 멤버들에게 전한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레이 님.
―전 게이트 융합,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게이트들 싹, 전부요.
―이론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있지만…….
―이론이야 어찌 되었든, 현상으로는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SSSSS급 게이트, 가능합니다.
그레이에게도 전해진 반가운 소식은 캘리포니아로부터 왔다.
이반 하이제렌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백율과 화연에게 최대한 사인을 보내려 했으나, 백율과 화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
여현에게도 센터는 예고했다.
SSSSS급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미친 등급이 붙은 게이트가 열릴 수도 있을 거라고.
쾅.
콰과광!
서로 에너지를 쏟아내는 싸움을 하면서, 여현은 그레이가 시간을 끄는 것 같은 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원에게도 힘을 비축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영원에게 그러고 싶지 않은 의지가 있는 것 같아 말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무언가 잘못된다면, 목숨을 걸고 자신이 막아내기로 결심했다.
―연구원님들이 해냈어요.
그 와중에 센터에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 것은 좋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간에 그레이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사태가 저쪽에게도 좋은 쪽으로 풀려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필요한가요.”
여현은 빠르게 물었다.
―필요한 걸 말씀드릴게요.
연구원, 이제환이 마이크를 넘겨받은 듯했다.
―S급 던전석들을 일대 곳곳에 정확한 좌표를 찾아 놓아야 합니다. 좌표는 대부분, 음, 영원 가이드님께서 지금 계신 일대인데요.
―가이드의 물리력이 재료로 좀 필요하고요.
여현이 아래편을 보았다.
―제가…… 지금은…….
영원이 힘겨운 목소리로 말하는 게 들렸다.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여현이 개입했다.
“제 가이드는 지금 당장 힘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무리 무리하려고 해도, 어려울 것 같았다.
―네, 네, 그럼.
―제가 갈게요.
―아, 네. 화연 가이드님이 가실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영원이 힘을 쓰려고 하면 그녀를 곁에서 보호하기 위해 내려가고 싶은데, 그레이를 곁에 붙인 채로 저 아래로 가는 짓을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반 하이제렌과 백율이 대치상태에 있는 꽃밭.
백율은 속으로 정말 진심을 다해 최환성에게 쌍욕을 부어대면서 화연과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 편이라는 자식이, 왜 이렇게 갑자기 또 전투에 진심이야!’
‘너무 진심이야.’
‘내가 혹시 예전에 뭐 잘못한 거 있나?’
그래도 덕분에 연기는 메소드급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백율은 무슨 일이냐며 환성을 노려보았고, 그의 입장에서는 그 나름대로 답답한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갔다 올게요.”
“그래. 빨리 끝내고 와.”
백율은 이반과 조지나의 방해를 막으며 화연을 꽃에 띄워 영원의 곁으로 보냈다.
사락.
화악.
화연을 감싼 꽃잎이 엄청난 속도로 영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다.
이상하게 이반이나 조지나의 방해 공작이나 추가 공격도 없었다.
―다음 좌표는…….
“네, 네.”
화연은 백율의 꽃잎이 추가로 보내주는 S급 던전석들을 여기저기에 뿌리고 다니며 설계도를 거의 완성해갔다.
그리고 작업을 끝마치는 순간.
“쌤!”
영원의 외침이 화연을 놀라게 했다.
“영워ㄴ…… 조지나……?”
화연의 동공이 커졌다.
퍽.
조지나가 갑자기 하늘에서 낙하해, 검은 구덩이 안으로 화연을 밀어 넣었다.
작업에만 집중하느라 조지나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ㅇ…….”
화연은 눈을 크게 뜬 다음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무엇이든 잡고 그 구덩이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악!”
그런데 저 멀리서 악을 쓰는 소리와 함께, 다른 가이드의 물리력이 느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격이었다.
류하늘이 쓰는, S급 가이드의 물리력.
―스카이.
―실망했어. 하지만 끝은 아닌 걸로 하지.
―증명해. 그 공간 안에서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강화연을 가두고 나와.
그레이가 명령을 끝마칠 때, 화연이 빠진 구덩이에 하늘 역시 들어갔다.
“화ㅇ……!”
순식간에 달려온 백율의 비명이 들렸다.
쿵.
검은 구덩이가 순식간에 닫혔다.
“……연아.”
누가 보아도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열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영원 역시 놀란 얼굴로 그 장면을 보았다.
보고 있었는데, 화연의 이동을 막을 순 없었다.
그 순간 바로 눈앞에, 그레이가 시전한 연금술이 내리꽂혔기에.
카강!
그 힘은 영원과 여현의 방어로 막혔다.
“하아.”
영원이 숨을 몰아쉬는 와중, 여현마저 순식간에 다가와 그녀를 뒤에서 안고 있었다.
“무슨, 무슨 일이야…….”
그리고 직전에 3억 광년이 마주 닿아, SS급 게이트에서 밖으로 뛰쳐나온 이창결과 장제권도 그 자리에 있었다.
둘은 모든 게 놀라운 표정이었다.
다소 피곤해 보이기는 해도, 특별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이거…….”
그러나 정말 놀랄 만한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시작이었다.
쿠구궁.
[개방]
인간의 소환으로, 절대 자연스럽게는 열릴 수 없을 등급의 게이트가 천천히 열렸다.
SSSSS급 게이트.
인류가 그 이전까지, 그런 게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조차 상상도 못 하던 무언가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