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96화 (96/142)

하늘은 여현을 만났던 여덟 살 이전부터 조숙했다.

말을 떼는 속도도 유달리 빨랐고, 읽고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섯 살 무렵부터 받아쓰기는 했다 하면 100점이었다.

그러나 그런 류하늘의 어머니였던 한하늘 가이드는, 같은 이름을 가진 딸의 능력에 대해 아무런 칭찬도 해주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딸의 각성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오로지 S급 각성자가 되는 각성만을 바랐다.

‘난 유부남인 S급 각성자의 아이를 임신했어! 몰래!’

‘A급 따위인 열등한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우월한 유전자를 얻으려고!’

한하늘은 S급 에스퍼의 아이가 S급으로 각성할 확률이 높다는 신흥 종교 단체의 꼬임에 넘어가 추종자가 되었다.

그 종교는 외국에서 유입된 것이었다.

S급 에스퍼로 각성했던 딸을 폭주로 잃은 억만장자가 음지에서 만들어 낸 정체불명의 신흥 종교. 추종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그냥 ‘신종교’ 정도로만 불렀다.

신종교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음지에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해갔다.

그러던 중 신종교의 사제 한 명이 한하늘에게 각성자들은 신의 사도이며, 그녀도 사도가 될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한하늘에게 우월한 아이를 낳을 미래가 보인다며.

알 수 없는 것에 세뇌된 한하늘은 외국으로 가서 호색한으로 유명한 S급 에스퍼를 유혹했다.

그다음엔 미혼의 몸으로 아이를 낳고, 그 종교 시설에 위탁해 아이를 기르며, 주말에만 하늘을 찾아왔다.

‘그러니까 내 아이는 우월한 S급 각성자로 각성해야만 해. 응? S급의 엄마가 되게 해 줘.’

‘하늘아. 세상을 구할 사람이 되는 거야.’

‘그래야 내가 진짜 너를 내 딸로 인정하고 집으로 데려가 주지. 그래야 우리가 가족이 되는 거야.’

하늘이 속한 시설 자체가 하늘에게 가혹한 짓을 일삼지는 않았다.

단지, 각성하여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실만을 주입할 뿐이었다.

그때 하늘은 김여현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었다.

‘김여현 알지? 아홉 살에 S급으로 각성했대.’

‘너도 그렇게 되는 거야. 응?’

‘아홉 살에 S급으로 각성한 다음에, 모두가 죽을 거라고 말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는 거야.’

‘김여현처럼.’

하늘의 꿈도 어머니와 같았다.

S급으로의 각성.

그 이후에 하고 싶은 일은 달랐지만, 아홉 살에 각성하고 싶다는 꿈만큼은 같았다.

그리고 하루하루 아홉 살이 되는 때가 다가왔다.

그러면서 하늘은 세상이 얼마나 역한 곳인지 하루하루 새로이 깨달아갔다.

‘왜, 내가 저 각성도 못 할 거지 나부랭이를 위해 장난감을 양보해야 해요?’

하늘은 진심으로 그런 질문을 던졌다.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은 S급이 될 나일 테니까, 그를 알아주지 않는 무가치한 비각성자들은 다 사라졌으면 했다.

하늘은 또 진심으로 의문을 품었다.

‘왜 쟤가 더 어른스럽다고 하지? 내가 더 어른스러운데.’

‘왜 쟤가 더 똑똑하다고 하지? 나는 그냥 실수로 수학 문제 하나 더 틀렸을 뿐인데.’

‘왜 쌤들은 쟤를 좋아하지? 내가 더 예쁘고 똑똑한데.’

‘나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각성자인데.’

‘심지어 아빠는 열등한 것들이랑은 비교가 안 되는, 가장 우월한 S급인데!’

어머니는 가끔 시설에 찾아와 맛있는 과자를 주면서, 아홉 살에는 꼭 S급으로 각성하자고 했다.

하늘은 자신 역시 ‘김여현처럼’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설 고위 관계자들이 엮인 비선별 각성자 인신매매 사건이 발각되었다.

신종교의 누군가가 비선별 각성자를 매수하여 국내로 들여오려고 한 것이다.

역삼 본부에서 현장검거를 위해 시설로 각성자들을 파견하였고, 그중에는 한하늘도 섞여 있었다.

‘엄마!’

‘저랑 전혀 관계없는 아이예요. 가끔 여기 봉사하러 올 때 보긴 했지만요.’

센터에서 종교 시설로 가장 먼저 파견 나온 엄마, 센터 소속 가이드인 한하늘은 그녀의 동료들 앞에서 류하늘을 모른 척했다.

‘센터 소속인 제가 왜 이런 곳에서 딸을 키우겠어요? 하늘이가 저랑 이름이 같아서, 제가 엄마라고 믿고 싶은가 봐요.’

하늘의 엄마가 하늘의 앞에서 자신이 하늘의 엄마임을 부정했다.

‘딸 이름을 자기랑 똑같이 짓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저를 엄마라고 믿는 아이가 가엾네요.’

엄마는 눈을 맞추지 않고 말했다.

‘이곳이 이런 저질 시설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투두둑.

하늘은 펑펑 울며 생각했다.

내가 아직 S급으로 각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가 날 모른 척한 거라고.

빨리 S급으로 각성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S급.

무조건 S급이어야 했다.

노력으로 등급을 올렸다는 각성자들의 이야기는 헛구역질만 나오게 했다.

‘그런 종류의 자수성가는 작위적이고, 괴상망측해.’

열등 종자들의 성공 신화 같은 건 싫었다.

처음부터 왕족으로 선택받는 게 좋았다.

하늘은 더 노력하고 싶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선택받고 싶었다.

엄마같이 예쁘기만 한 패배자 말고, 아버지 같은 멋지고 우월한 S급 각성자가 되고 싶었다.

인신매매의 꼬리를 잡은 뒤 신종교의 몸통으로 가는 수사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관련자들이 연달아 실종되어 수사 대상이 남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다들 어디에 숨은 거야. 살아있기는 한가?’

‘죽었다면 스스로 죽은 거야, 아니면 누가 죽여서 사라진 거야?’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이후로 계속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문제가 적당히 묻히나 했는데, 끝끝내 시설이 감추려 했던 치부가 완벽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터졌다.

해외에서 신종교에 잠입한 외신기자가 ‘신종교 관련자들의 실종과 센터 고위층이 연관되어 있다’는 특종을 내보낸 것이다.

[특종: S급 에스퍼가 도운 한국의 괴이한 “실종”]

커넥션이 있던 센터 관계자들이 어떻게든 사건을 묻으려고 관련자들의 실종을 조작한 게 최악의 결과를 냈다.

당연히 해외의 센터 지부는 지목된 S급 에스퍼를 검거하기 위해 다른 S급 에스퍼를 보냈고, 범죄자는 세계 각국을 돌며 도망치다 한국에까지 오게 되었다.

쾅!

콰광!

‘아악!’

하늘이 있던 시설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그릇이 거의 다 비워진 채였다. 사실상 폭주에 다다른 상태였다.

시설의 고위 관계자는 하늘의 아버지에게 연락해 여기에 네 숨겨둔 딸이 있다며, 가정파탄을 겪고 싶지 않으면 당장 튀어 오라고 윽박질렀다.

S급 에스퍼의 폭주를 은밀히 막아내기 위해, 신종교는 더 많은 S급 에스퍼들을 한반도에 불러들였다.

결국, 사건에 더욱 많은 이들이 말려들었다.

그 폭주 처리 과정에서 하늘의 생물학적 친부를 포함한 S급 에스퍼 둘과 A급 에스퍼 하나가 폭주 직전에 이르는 사태까지 일이 번졌다.

각성자들의 피를 뽑던 연구실이 그대로 노출되는 등, 싸움은 진창이 됐다.

결국엔 국제공조까지 이루어졌고, 끝내 그를 해결하기 위해 김여현이 왔다.

모든 게 엉망인 순간, 하늘은 에스퍼들의 무분별한 공격으로 무너져내리는 건물 근처에 다른 비각성자들과 함께 있었다.

그때 건물이 붕괴하여 위험해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김여현은 하늘의 기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외모야 완벽했는데, 태도가 문제였다.

‘어디가 가장 위험하죠? 어디 있는 사람부터 구해야 하는 건가요?’

그는 하늘이 이해할 수 없는 질문부터 다급하게 던졌다.

‘왜 그 완벽한 S급 물리계 김여현이, X신같이, 각성자도 아닌 비각성자들부터 걱정하는 거야?’

동동 떠오른 하늘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던지고 현장으로 달려간 김여현은, S급 에스퍼 둘과 A급 에스퍼 하나의 폭주를 견디며 수많은 비각성자 아이들을 구했다.

본인이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끌어내 비각성자들을 지키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처음에는 안전한 지대에 있는 줄만 알았던 하늘도, 크게 번진 재난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가 여현에게 구해졌다.

그 뒤에 그는 쓰러졌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그 사고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네 조카, 아픈 건 괜찮대?’

‘목숨은 괜찮은 것 같아.’

‘다른 건?’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죽은 것 같아서, 그게 힘든가 봐. 그래서 계속 기억을 잊어. 기억상실증에 계속해서 걸리는 것처럼. 아까도 내가 들어가니까, 어제도 오셨었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거야.’

‘폭주 때문이지 왜 자기 때문이야? 그리고 아이들 구하려다 그렇게 된 거고, 구할 사람은 다 구했잖아. 여현이 힘 때문에 죽은 범죄자들이야 뭐, 다 죽을 만한 놈들 아닌가?’

‘현이가 그렇게 생각할 애가 아니잖아.’

‘……그래, 뭐. 아직 어리기도 하지. 너 안 닮아서 여리고, 강하고.’

‘…….’

‘……공식적으로 이 사건 발표는 막는 쪽으로 할게. 청와대도 정치 종교 이슈 크게 띄우고 싶어 하지 않는 시즌이니까.’

하늘은 어른들이 속닥거리는 대화의 내용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비각성자들의 목숨을 앗아버린 것이, 완벽한 줄 알았던 김여현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 어이없게도.

하늘은 김여현의 병실 앞을 서성이다 그것만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비각성자들의 목숨 따위 뭐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간호사들이 한눈판 틈을 타, 그의 병실에 잠입했다. 어린아이라 경계를 받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그와 처음으로 말을 해봤다.

실망뿐인 답변이 돌아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화였다.

그 이후의 삶은 지옥이었다.

아홉 살.

열 살.

열한 살.

그리고 열다섯 살까지.

각성하지 못하는 지옥 같은 나날만 흘러갔다.

그러다 열다섯에 빛이 내렸다.

정말로 선택받은 것이다.

두 번이나.

S급 가이드로의 각성.

S급 에스퍼로의 재각성.

그냥 S급과는 비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안녕.’

세상 누구보다 화려한 사람이 손을 내밀었다.

‘널 찾고 있었어.’

그레이 딘하우스가 그렇게 말했다.

아름답게 웃으면서.

‘넌 그냥 S급 소모품들과 다르구나.’

‘네. 그래요. 맞아요.’

하늘은 속으로 수백 번 환호했다.

‘대단해. S급 에스퍼이면서 가이드라니.’

그는 자신을 완벽하게 알아주었다. 자신이 얼마나 우월한지 말해주었다.

‘스카이.’

그는 하늘이 아닌 이름으로 그녀를 불러주기도 했다.

열등한 A급 가이드였고, 딸을 끝까지 모른 척했던 한하늘에게도 복수해주고는, 그녀의 신분증을 건네주었다.

하늘은 이제야 정말로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꼈다.

‘스카이. 내게는 네가 필요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그렇게 말했고, 하늘은 그 아름다운 말에 완벽히 취해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원했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하늘은 그레이가 원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죽였고, 던전석을 훔쳤고, 아르케미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레이의 손을 잡고 김여현과 심영원의 앞으로 왔다.

정말로 세상에, 이 세상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줄 기회를 얻었다.

나는 너희보다도 우월하고, 이제 이렇게 특별하고 우월한 존재로 그레이의 곁에서 군림할 거라고.

그런데…… S급 에스퍼의 힘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는 김여현이 그런 사고를 겪은 이유를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늘은 영원을 설득하기 위해 말했다.

“김여현은 그날 처음으로 자신의 힘에 사람들이 죽는 걸 봤어.”

“…….”

“게이트나 다른 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한 건 처음이었대. 죄다 비각성자에다 범죄자들이라,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

“S급 두 명, A급 한 명 각성자는 폭주해서 죽었고.”

“…….”

“아무튼, 그게 K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고 해.”

“…….”

“그러니까, K의 화상은 S급 에스퍼들의 폭주에 무가치한 비각성자들이 다치는 걸 막기 위해 노력하다 바보같이 입은 거였어.”

하늘은 김여현이 얼마나 멍청이인지 알려주기 위해 영원에게 필사적으로 말했다.

그게 영원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포에버는 S급을 넘어서는 가이드니까.

각성자가 우월하다는 사상에 누구보다 공감할 거라 생각하면서.

“비각성자 몇 명만 포기하면, 그런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웃기지 않아? 게다가 그 상처를 입고, 기억마저 오락가락했고.”

“…….”

“…….”

잠시 조용했다.

영원은 하늘의 말에 집중하며, 하늘의 그릇을 조작하는 걸 거의 멈추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도 살았구나.”

경멸하는 눈빛을 띤 채 말했다.

“이제 그만해.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돼.”

“…….”

“넌 힘을 잃을 거야.”

단호한 말이, 하늘로서는 믿기 싫은 말이 들렸다.

“네…… 네 에스퍼는 어딘가 모자란 놈이라고! 옆에 있어 줄 가치가 없어! 네가 아니면 매칭률이 나오는 가이드가 없어서 가이딩도 못 받는…….”

“응. 알아.”

영원은 또박또박 말했다.

“모자라서 좋아.”

“…….”

“내가 아니면 안 되니까, 영원히 곁에 있어 줄 거야.”

영원은 류하늘이 아니라, 다시 김여현에게 설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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