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95화 (95/142)

“…….”

“하아.”

영원은 호흡을 한 번 정돈하고는, 흐트러지지 않는 말투로 물었다.

“정확하게는, 여현이가 너를 비롯한 사람들을 구할 때 화상을 입은 거지?”

“…….”

영원은 하늘의 표정을 보고 추측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대강은 알겠어.”

영원은 관찰력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김여현 덕질에도 매우 진심인 편이었다.

최근 바빠진 후에도 새벽이나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틈틈이 덕력을 소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덕에 과거에는 본인과 똑같은 최애의 생년월일조차 몰랐지만, 지금은 최애의 인생 타임라인을 9살 이후로는 분기 단위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여현에 관한 전문가가 됐다.

‘여현이가 알면 좀 소름 돋아 하려나?’

영원은, 여현 역시 그럴 수만 있다면 영원 자신에 대하여 더한 조사를 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현이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건 영원이 이쪽 세계에 존재했던 시간이 짧아서 애초에 그런 조사를 하여 찾아낼 정보가 없기 때문일 뿐이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

‘아무튼, 전담님에 관해서 뿌려진 정보가 많이 없어서 몇 달 동안 떡밥 사냥을 열심히 해야만 했지.’

‘그나마도 9살 무렵 각성 이전의 정보는 찾을 수 없었지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외롭게 자라나야 했다는 것밖엔…….’

그리고 영원이 수집한 모든 정보에 비추어 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여현이 ‘류하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 같고 얼굴도 익숙한데 기억이 안 난다’는 반응을 보인 건 이상했다.

‘여현이가, 류하늘을 만났다가 지금 그 이름과 얼굴을 어렴풋하게만 기억할 확률이 얼마나 되지?’

그럴 확률이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여현의 기억이 흐릿하려면 그 기억이 최근에 형성된 것은 아니어야 했다.

또한, 그 기억이 여현에게 지나치게 강렬한 것이어서도 안 됐다.

‘그렇다면 기억이 어렴풋할 리가 없으니까.’

‘강렬한 기억을 남겼으면, 그레이의 편에 S급 가이드로 류하늘이라는 15세 한국인이 갔다는 정보가 전해졌을 때부터 반응했어야 해.’

‘분명히 류하늘이 등장하는 다른 동영상도 봤을 텐데, 그때는 별말 없었어.’

여현이 류하늘이 익숙하다고 말한 건 CCTV를 본 다음에야 일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그때에도 그는 류하늘에 관해 구체적인 기억은 떠올리지 못했다.

자신 역시 어디에서 류하늘을 마주쳤는지 모르겠다고.

이상했다.

여현의 주의력과 기억력을 고려하면 평범하게 넘겨버리기 쉽지 않은 반응이었다.

‘여현이가 왜 기억 못 하는 거지?’

영원은 류하늘을 만나기 전에도, 만난 이후에도 그 답을 얻기 위해 여러 번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류하늘이 S급으로 각성하기 이전, 지금보다도 더 어릴 때 만난 거야.’

그런데 여현은 9살 이후로 비각성자와 접점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알고 지냈을 만한 비각성자는 전부 만 18세 이상의 센터 근무자들이거나 다른 부처 소속 공무원들뿐이었다.

‘살면서 스치듯 마주친 사람도 아닐 것 같아.’

그렇다면 이름이 익숙한 게 말이 안 됐다.

‘여기가 데X노트 세계관도 아니고……. 사신이랑 목숨 깎는 계약 맺어서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 머리 위로 이름 읽는 그런 짓은 누구도 못해.’

‘음. 그럼 혹시 명찰을 달고 있는 걸 봤다든가?’

‘아닐걸. 여현이가 누가 걸고 다니는 명찰 하나하나 주의 깊게 읽어볼 타입도 아니고.’

언뜻 본 서류에 의하면 류하늘은 서울 출신도 아니니, 활동반경부터가 여현과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여현이는 만으로 열여섯 됐을 때부터 특별 운전면허증 받고서 출퇴근길엔 늘 슈퍼카만 타고 다녔어.’

영원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출퇴근길 드라이빙은 여현의 거의 유일한 취미였다.

‘식당에도 안 가고, 쇼핑도 거의 안 하고.’

뚜벅이 시절이랄 게 없이 자차 출퇴근만 했다고 들었다.

오며 가며 길거리나 가게에서 마주쳤을 거라는 가설도 설득력이 없었다.

여현은 업무 시간이 끝나도 센터 밖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았으니까.

결국, 가능성 있는 가설은 한 갈래로 추려졌다.

‘류하늘은 여현이가 재난에서 구한 비각성자가 아닐까?’

사고 처리 과정에서 이름을 듣게 되었다면, 그 이름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류하늘이 바로 그 사고에서 극적으로 구해진 매우 적은 수의 아이들 중에 한 명일 확률은 낮을 것 같아.’

그런 특이점이 있었다면 여현이 류하늘을 정확하게 기억했을 테니까.

하다못해 센터의 누군가가 ‘아, 옛날 그 꼬마!’라며 류하늘을 기억하기라도 했을 터였다.

재난에서 구해진 극소수의 아이는 언제나 화제가 되는 법이니까.

특히나 그 구원자가 여현이었다면 뉴스에도 보도되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3년보다는 더 거슬러 올라간 때에, 나이 어린 비각성자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대형사건이어야 하고, 여현이가 고민을 해 보아도 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여현이의 기억부터가 흐릿해야 해.’

영원은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여현이 겪은 일생일대의 사건, 그러나 영원뿐 아니라 그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건이 하나 떠올랐다.

7년쯤 전.

여현이 마스크를 쓰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앞서 제시한 조건에도 정확하게 부합하고, 여현이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을 만한 사건.

‘윤 교수님. 그 김여현 에스퍼님이라는 분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물어보세요.’

영원은 별관 주차장에서 여현을 직접 만나기 전에 요련에게 그 사건 이야기를 간단히 들었다.

그러나 자세히는 모른다고 하여, 윤 교수에게도 물었다.

‘그…… 김여현 에스퍼님이 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어서 마스크를 쓰게 됐잖아요. 그게 정확히 어떤 사건이었어요?

‘…….’

‘듣기로는, 본인 폭주는 아니라던데요.’

‘음. 그게…….’

영원은 윤 교수에게서도 두루뭉술한 답변만을 받았고, 이후에도 그 이상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사람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힘에 휘말렸다고 알고 있어요.’

‘그 시기는 언제인가요?’

‘7년 조금 안 된 것 같아요.’

시간이 좀 더 지나 여현에게 얼핏 물었을 때도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여현아. 상처 남았을 때, 많이 아팠어?’

인간에게 화상만큼 강한 고통을 주는 것은 없다고 들었다.

여현의 상처는, 얼핏 듣기만 해도 남들이라면 사망에 이르렀을 상처였다.

피부가 다 타고, 소화기관마저 녹았다니.

그런데 여현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전후 상황이나 고통이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이 꽤 많아요.’

‘상처를 크게 입었던 바로 그 순간도 거의 기억나지 않아요.’

‘그러니까 고통에 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잘 살아남았고, 흉터가 주는 고통은 완전히 견딜 만하니까요.’

‘가이드님, 저는 괜찮아요.’

‘정말로.’

여현이 피하듯이 말하니, 여현에게도 더는 자세히 묻지 않게 됐다.

그리고 여현이 ‘류하늘이라는 이름도, 저 외모도 어렴풋하다’라고 하자, 다시 그 사건이 떠올랐다.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화상을 남긴 사건과 관련이 있을 수 있어.’

‘아니, 관련 있을 것 같아.’

‘류하늘은 여현이가 구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류하늘이 여현에게 보이는 엄청난 적대감.

그것도 영원이 생각한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과거에 분명히 어떤 접점이 있었어.’

영원은 류하늘이 영상에서 늘어놓던 말도 안 되는 각성자우월주의에 기반한 철학들이, 그녀가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때부터 품어온 생각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류하늘이 자기를 구해준 여현이한테 당신은 우월하다는 말을 했다가 반박당한 거지.’

영원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였다.

하지만 말이 안 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미끼처럼 던져본 말에 류하늘이 반응했다.

거의 확실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너는 각성자우월주의에 빠져 있었지. 유치원 갈 무렵부터 그랬다던데.”

“…….”

“그러다 S급 물리계인 여현이를 만났지. 네가 동경할 만한 각성자를. 하지만 여현이는 네 생각에 전혀 공감해주지 않았을 테고, 너로서는 실망이 컸겠지.”

“…….”

영원은 물리력을 쓰는 고통을 참아내며, 다시 하늘에게 물었다.

“아마 넌 당시 여덟 살쯤이었을 것 같은데. 그때의 기억이 너한테는 강렬해?”

“…….”

하늘은 또다시 분노 섞인 시선을 보냈다.

과거를 생각하는 듯했다.

정말로, 여현은 조금도 동조해주지 않았을 터였다.

김여현은 과거에도 김여현이었을 테니까.

“이상하기는 해도, 나도 내 여덟 살 무렵에 기억나는 사건들이 있기는 해.”

대제로 각성하기 이전.

영원에게도 연금술사로서 겪은 강렬한 기억은 있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자아의 많은 부분이 정해지지.”

“…….”

“너에게도 그때부터 네 나름대로 그 사상을 정당화할 이유나 근거는 있었을 거야.”

어떤 미친 생각에도 나름의 미친 논리는 있을 테니까.

“그건 별로 안 궁금해. 사상의 기초 같은 걸 설명할 필요는 없어.”

“…….”

“다만 내가 궁금한 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거야.”

여현은 그날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목격자를 만났다.

영원은 여현이 겪은 사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하늘과의 대화를 여기까지 끌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말해.”

“…….”

“네가 내 에스퍼님을 미워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면, 내가 네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잖아.”

“…….”

“힘, 완전히 잃기 싫다며?”

가이드의 물리력 덕에 격정적인 싸움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하늘이 이야기를 꺼내기 쉬운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영원은 하늘을 보며 기다렸다.

하늘의 그릇을 막아가는 속도도 조절했다.

여현이 겪어온 일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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