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직.
사락. 쾅!
꽃가루가 휘날리는 대지 위의 전장.
사력을 다해 맞붙는 백율과 이반, 화연, 조지나 및 양 진영의 S급 각성자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미쳤어. 공중에 뜬 쟤네 둘 다.’
가이드도 옆에 없는 S급 에스퍼 둘이, 아니 어쩌면 S급을 초월하는 등급의 에스퍼 둘이 정말 정신 나간 대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땅 위에 있는 S급 각성자들은 SS급 게이트를 옆에 열어둔 채로 필사적인 싸움을 하면서도, 그 안의 괴수나 상대편의 공격보다도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장 때문에 계속 깜짝깜짝 놀랐다.
‘진짜 미친 거 아냐?’
‘김여현 에스퍼가 디펜스 제대로 안 세우면 이대로 지구 폭파하고 모든 생명체 한 큐에 멸종하지 않을까?!’
‘지구 대멸망의 가능성 95%쯤이었던 순간이 방금 312번째로 스쳐 지나간 것 같은데!’
센터에서는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관측 장비로 관측할 수 있는 기준을 초과했는지, 백율이나 화연에게 그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물었다.
―여현 에스퍼님 지금 상황은 어때요?
―위에, 지금은요?
“제정신 아니에요.”
백율은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네? 계속? 아까부터?
“여전히 똑같이, 완전 미쳤어요.”
―구체적으로…….
“더 구체적일 수 없어요.”
백율은 진심이었다. 뭐라 묘사할 수가 없었다.
‘구체적? 무슨 핵분열이라고 할 거야, 아니면 우주 대폭발이라고 할 거야?’
‘힘이고, 정신이고 완전히 미친 것으로밖에 안 보임.’
쾅!
콰과과과광!
거리가 상당한데도, 땅에서 만드는 소음보다 위에서 들리는 굉음이 더 컸다.
큰 소리와 공격 사이에는 상당한 시차가 있어, 고막을 자극하는 파동과 현실의 괴리가 묘하기도 했다.
여현이 방어막을 계속 만들어 여파를 차단해주는 덕에 땅에는 그 힘의 영향력이 거의 닿지 않아 더욱 그랬다.
‘번개 같은 싸움이랄까.’
‘번개보다 수억 배는 강한 힘을 내는 것 같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둘의 싸움이 절제된 육탄전 같아 보이는 순간이 잠시 있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그 직후 폭발음과 굉음뿐인 난장판이 됐다.
놀라운 점은, 둘 다 지쳐 보이지 않는다는 것.
‘특히 김여현 쪽이.’
눈으로도, 무엇으로도 속도를 따라갈 수조차 없었다.
관찰은 실제 움직임보다 조금씩 느렸다.
그렇게 파악한 바에 따르면, 양측의 대범함도 완벽하게 정신 나간 수준이었다.
‘목을 내어주는 페이크를 왜 저렇게 남발하는 건데?’
눈앞에서 이반 하이제렌이 되어 공격을 부어대는 환성을 신경 쓰는 것도 어려운데,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 워낙 미쳐서 계속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인 건, 상대편 역시 비슷하게 위를 주시하고 있어서, 주기적으로 위를 살피는 행위가 특별한 약점이 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
―영원 가이드님이나, 여현 에스퍼님이 힘을 좀……. 자제하셔야 할 텐데요.
―말씀을 좀 전해주세요…….
―여현 에스퍼님이 저희 말은 들은 척도 안 하시네요. 영원 가이드님은 알아서 하겠다고만 하시고…….
“저희도 불가능합니다.”
화연이 끼어들어 단호히 답했다.
더 이상 힘을 자제할 만한 싸움이 아니었다.
저 멀리 서쪽에서 영원이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여현은 힘을 아끼려고 하는 그 순간 곧장 죽을지도 모르고, 영원 역시 알아서 무언가를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SSSSS급 게이트까지 나타날 수 있어요!
“네. 알겠어요.”
화연은 침착했다.
‘위험한 게 오고 있다는 건 분명해.’
‘말도 안 되는 게 인생에 어디 한두 개였나?’
‘그런데 이번엔 정말로 불안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화연은 프론트 가이딩을 하는 중간중간에 하늘 위편의 변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반짝였다, 오색 빛으로 휘황찬란한 것이 내렸다.
‘디스코?’
쾅!
그러다 엄청난 에너지에 화연의 몸까지 진동하는 순간이 오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둘 다 옆에 가이드가 없어도 되는 건가?’
어느 순간부터는 여현의 폭주가 걱정되기도 했다.
프론트 가이딩을 받으려고 하면 둘 다 영원이나 조지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위치였다.
그런데 각자의 가이드를 위험한 곳으로 끌어들이기 싫어서인지, 그냥 뇌 일부분을 마비시킬 정도로 격한 자존심 싸움에 머리 어딘가가 돌아버렸는지, 둘 다 그들의 전담 가이드를 찾지 않고 있었다.
―그냥 두면, 그레이가, 진짜로 그 엄청난 짓을 할 거예요.
―더 미친 게이트!
―대형 재난이 이어질 거라고요!
센터의 절박한 절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화연도 백율과 똑같이 센터보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가까운 편이었다.
‘아무래도 저분들 다 하나같이 내일 없는 노빠꾸 모드 장착하신 것 같습니다.’
“미래는, 미래에 가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역삼 본부에서도 그를 완전히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일단 여현 가이드님한테는 그게 관심사가 아닌 것 같네요. 영원이도.”
윤 교수와 요련은 더는 블라디보스토크 부근에 있는 각성자들에게 힘을 자제해서 사용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화연 가이드님도 다치지 마세요.
“네.”
―꼭.
“네.”
다치지 말라고만 하였을 뿐.
―이창결 부장님, 장제권 가이드님 구할 방법 찾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
금으로 둘러싸인 필드 위의 영원 역시 여현이 하는 중인 미친 짓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내 에스퍼님 힘 너무 많이 쓰는데.’
‘걱정도 되고.’
‘진짜 괜찮나?’
그러면서 여현에게 도움이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계속해서 했다.
여현이 한 차례 거절하기는 했지만, 언제까지나 여유가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필요하면, 갈게.”
―네.
다시 묻자, 여현은 또 괜찮다고 하기는 했다.
“하아.”
동시에 이쪽의 상황도 문제였다.
‘내가 지금 누구 걱정할 때가 아닌가?’
류하늘은 강했다.
예상보다도 더.
S급 에스퍼이자 가이드로서 강할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이 가이드의 물리력을 쓰는 S급 가이드로서 그 물리력을 사용해 영원을 밀어내려고도 하는 터라, 그릇을 막는 게 더 힘들었다.
‘최강 난도야.’
‘내 근육통이 다 회복도 안 된 상태였는데.’
영원은 숨이 찼고, 오한이 들었고, 속이 더부룩했다.
온몸에서 피까지 죽죽 뽑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전신에 가해지는 근육통이었고.
‘이건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게 아냐. 그 비유 적절치 않은 듯해.’
‘이건 마치 달이나 화성까지 등산하는 기분.’
구역질도 났다.
“욱.”
영원의 목구멍에 다시 피가 차올랐다. 그를 뱉어내자, 가이드 정복의 앞부분에 피가 묻었다.
‘베이징에서보다 더 심해.’
‘고통이나 반작용 같은 게 전부.’
그런데 그렇다고 물리력을 쓰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류하늘은 회복력도 다른 에스퍼들에 비해 엄청날 것 같아.’
‘아니, 분명히 엄청나.’
적당히 그릇을 막아놓기는 했으니, 지금 멈추어도 몇 달쯤 힘을 못 쓸 것 같기는 했다.
동시에, 이대로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여현이가 정말 가이딩이 급하다고 하면 연금술로 포박해서 가두어두고 위에 올라갔다 내려올 생각이었지.’
‘그런데 그마저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고.’
‘진짜 힘들어.’
엄살이 아니었다.
하늘의 그릇에 담긴 에스퍼의 힘이 계속해서 울렁거리며 영원을 자극했다.
그러면 더 많은 가이드의 힘을 짜내서 막아내야 했다.
‘잘못하면 나까지 더 다칠 것 같아.’
“포에버. 그만…… 그만해.”
물론 이 순간 고통을 느끼는 건 영원만은 아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몸부림치는 건 하늘이 더했다.
하늘도 무리해서 가이드의 물리력을 사용하다가 영원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 듯했다.
“으으.”
설령 영원보다 고통이 약하다 해도, 고통에 대한 내성이 한참 덜할 테니 체감하는 고통은 하늘이 더 극심할 수도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여현과 그레이의 화려한 싸움이 펼쳐지는 와중, 영원과 하늘은 거의 아무런 충격음도 내지 않는 싸움을 했다.
“윽.”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건 억눌린 둘의 신음이나 숨소리와 하늘의 애원뿐이었다.
“포에버. 응? 멈춰줘.”
“……하아.”
“제발……. 으.”
그러나 악어의 눈물 같은 애원에 넘어가 줄 심영원이 아니었다.
영원은 땅에 앉아 금으로 만든 등받이에 기대어, 하늘의 힘을 사실상 영구히 못 쓰게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하아. 하.”
영원은 엄청난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익숙해.’
‘연금술을 쓸 때도 한 번도 아르케미에 의존한 적 없었지.’
‘고통은 늘 별거 아니었어.’
하늘은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몸부림쳤지만,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영원에게 다시 뛰어들어 물리적으로 공격하려는 시도도 몇 번 했으나, 연금술로 만든 금의 방패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러다 영원은 언뜻 생각난 질문 하나를 던졌다.
“너 말이야.”
생각난 이상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 그 이름은 본명이야?”
여현은 자신이 류하늘을 아는 것 같다고 했었다. 그러나 어디에서 보았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고.
“내 에스퍼님이랑은, 어디서 만났어?”
“…….”
하늘은 이를 꽉 물었다.
영원은 그 반응만은 정확하게 관찰했다.
여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늘 쪽은 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말하기 싫어?”
“…….”
“뭔가, 안 좋은 기억인가 보네.”
하늘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류하늘의 눈에 심영원은 도둑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가버린 가짜.
각성자이면서도 스스로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저능한 종자.
하늘은 정말로 영원을 죽이고 싶었다.
그 분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늘은 광기가 인 눈으로 영원을 바라보았다.
“그냥 맞혀볼까? 네 철학에, 여현이가 공감을 안 해줬구나.”
“…….”
“너는 여현이에게 네가 옳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는데, 완벽하게 거절당했어.”
그리고 영원이 정확한 핵심을 지적했다. 대단한 추측이었다. 하늘이 여태껏 보인 단서만으로 짜 맞춘.
“그리고 아마…… 여현이가 전신에 화상을 입게 만든 사건이 그 무렵에 있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