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92화 (92/142)

영원은 연금술로 세상을 배웠다.

연금술은 영원에게 언어였고, 법칙이었으며, 한때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 믿기도 했다.

말과 글을 배우기도 전에 연금술부터 알았다. 기억의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연금술을 몰랐던 순간을 찾을 수 없다.

가족보다도 가까웠다.

어쩌면, 그 자체가 가족이었을 수도.

그래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흔적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

‘그레이도 이 힘이 내게 족쇄라는 사실을 아는 거지.’

‘그래서 겨우 10대 중반인 저 아이에게 어설픈 연금술을 가르친 거야.’

‘내가 그에 대응해 힘을 쓰게 만들려고. 나를 자극하는 것만 노리고.’

‘저 애의 삶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무책임하게.’

그레이의 모든 의도가 영원을 자극했다.

알면서도 당해주는 거였다.

그레이가 하늘을 미끼로 던져 영원의 힘을 소진하게 한 다음, 무엇을 하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레이의 목적이 뭐든, 그에 대비해 힘을 비축해야만 한다는 이유로 하늘이 계속하여 힘을 사용하도록 놔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꾸…… 거슬려.’

영원은 당황한 하늘을 차가운 표정으로 보았다.

“이, 이거…… 뭐야, 뭐야!”

영원의 힘이 자신의 그릇에 닿았음을 느낀 하늘은 당혹을 조금도 감추지 못했다.

“힘이, 이상하게 나오잖아!”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가이딩이!”

영원도 불쾌한 기분으로 속이 가득 차 있지만, 하늘의 동요에 비할 바는 아닌 듯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봐서는 그랬다.

“이거, 이러지 마.”

하늘은 급히 영원에게 애원하기도 했다. 완전히 평정을 잃은 듯한 행동이었다.

“어, 어?”

그러나 그 애원은 영원의 힘을 멈추지 못했다.

영원은 이미 무리해서라도 가이드의 물리력을 사용하기로 정했고, 계속 그 힘을 쓸 생각이었다.

하늘은 결국 에스퍼의 힘을 못 쓰게 될 터였다.

“여기서 그만할 거지?”

“…….”

“너도 그 힘 쓰는 거 힘들잖아.”

하늘은 여기서 영원이 가이드의 물리력을 쓰는 걸 멈추면, 자신의 에스퍼의 그릇이 자연히 회복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분명히, 아직은 회복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았다.

“어? 이건 아니잖아.”

동시에, 영원이 계속 이 짓을 이어가면, 제가 영원히 힘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알았다.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닫힌 에스퍼의 그릇은 자연회복 외에는 다시 열릴 수 없다. 따라서 자연회복의 한계를 넘으면 영구적으로 힘을 못 쓰게 될 터였다.

영원은 답이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힘을 쓸 뿐.

“하아.”

하늘의 눈에도 영원은 다소 힘겨워 보였다. 그래서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공격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에스퍼의 힘을 쓸 수 없으니 육탄전을 해야만 하는데, 상대의 전투 경험이 엄청나다고 들었기에 그것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하늘은 원래 몸으로 하는 싸움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늘은 급히 영원에게 달려들었다.

쾅!

그러나 공격이 막혔다.

너무나 쉽게.

다가가서 주먹이라도 날리려고 팔을 휘둘렀는데, 바닥에서 솟아난 철판이 방어막을 형성했다.

하늘은 애꿎은 철판만 주먹으로 강타해 얕은 자국을 남겼을 뿐이었다.

“으…… 윽.”

손등이 빨갛게 변해 아팠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으.”

“에스퍼의 힘은, 빼앗을 거야.”

영원이 말했다.

“영원히 못 쓰도록.”

“싫…… 싫어!”

하늘이 싫다고 소리친들 영원이 멈출 리가 없었다.

영원은 이마에 작게 고이는 땀을 훔쳐내며, 하늘에게 느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

“네가 아까 발동시키려고 했던 연성진은 궁극적으로는 이런 모습을 완성하는 거란다.”

스르륵.

우우우웅.

연성진이 미약하게 진동하며 빛을 뿜어냈다.

“아…….”

하늘은 사방을 둘러보며 하얗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스르릉.

반짝.

솨악.

사방이 금이었다.

촤라락.

땅에서 솟아난 금이 수백 미터까지 치솟아 벗어날 수 없는 높은 벽까지 만들었다.

“연금.”

연금술鍊金術.

금을 만들어내는 술법.

“무엇을 재료로든, 금을 만드는. 연금술의 기본 중의 기본.”

“…….”

하늘은 잠시 자신에게 가해지는 불행을 잊고, 화려한 장관에 놀라 양손으로 벌어진 입을 가렸다.

영원은 그를 지켜보며 속으로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결국, 연금술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나 봐. 이 상태에서도 이걸 해내는 걸 보면.’

하늘이 어설프게 연금술을 사용하는 걸 보자, 대제로서 진짜 연금술이 어떤 건지 보여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나도 확실히 관종인가?!’

왠지 그레이가 이것까지 예측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 위에 있는 자식은 확실히 관종이니까.’

‘이건…… 그레이에게 약간 졌어.’

사방을 느리게 둘러보는 건 하늘만이 아니었다.

영원 역시 그렇게 사방의 금을 바라보았다. 묘한 기시감과 향수를 가지고.

‘오랜만이네.’

그러면서도 영원은 하늘의 그릇을 공고히 막는 일을 이어갔다.

힘겹게라도, 천천히.

다시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닿는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는 기분이 됐다.

‘여기서 멈추지 않겠어.’

영원은, 지금 당장 가이드의 물리력 사용을 멈추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하늘을 제압할 수도 있기는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봐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힘을 못 쓰게 하는 게 나아.’

‘그러지 않고 단순히 싸움으로 대응하는 수준에서 그치면, 저 류하늘은 에스퍼의 힘으로 계속해서 다른 피해를 양산하고 다닐 거야. 나는 그걸 보면서 후회하겠지.’

‘그때 그냥 무리해서라도 에스퍼의 힘을 못 쓰게 만들어야만 했다고.’

‘이걸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면 하고 후회하기로.’

이후에 그레이가 노리는 게 무엇이든, 이후의 사건은 영원 자신이 막아내기로 방침을 정했다.

―영원아, 근데 힘은 나중에…….

―엄청난 게이트가…….

그래서 다시 걱정의 말을 뱉는 요련의 말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가 없었다.

“요련 언니. 내가 지금 뭔가를 잘못해서 일이 커지게 만들고 있는 거면.”

영원은 인이어 너머에 있는 요련에게 약속했다.

“내가 책임질게.”

―…….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해도, 그동안 인터넷으로 접한 하늘의 활동과 이야기들은, 영원이 묻어둔 기억을 자극한 면도 있었다.

일부는 10대 시절에 영원이 겪었던 일들을 연상하게도 만들었다.

그래서 절대로 계속 류하늘이 같은 방식으로 살게 놔둘 수 없었다.

“그만해…… 제발.”

하늘의 애원이 오히려 영원의 결심을 강화했다.

‘너를 망치는 게 아니야.’

‘그나마 여기서 멈출 수 있게 돕는 거지.’

‘네가 그걸 언젠가 깨닫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영원은 갑갑함을 느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은 정의가 있는 모양이지.’

‘아직 덜 성장한 아이가, 반드시 그만두게 하고 싶은 악행. 그런 게 있나 봐.’

‘그레이가 더는 자기 소유물처럼 휘두르고 이용하게 두고 싶지도 않아.’

윤희유 교수와 요련이 그레이가 이후에 벌일 짓을 걱정하는 건 이해했다. 그를 막기 위해 자신이 힘을 비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영원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

백율과 화연의 작전 진행은 상대적으로 순조로웠다.

둘은 백율의 꽃밭이 펼쳐진 일대에서 괴수를 함께 처리하고 있던 A급 이하 각성자들, 막사에서 SS급 게이트 연구를 이어가던 연구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거의 다 되었어요.

―북극 쪽 기지로 거의 다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레이 측 진영 SS급 게이트에서 괴수들이 튀어나와 주는 것도 작전 진행에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이반 하이제렌이 괴수들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이 최고의 기회였다.

백율과 화연의 판단은 빨랐고, 그 틈을 이용한 작전은 거의 성공했다.

적어도 둘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어디로, 더 빼내시려고?”

지직.

쾅!

살벌한 표정의 이반 하이제렌이 힘의 구현을 극대화하기 위한 탱크에 올라타 핵폭탄 같은 것을 꽃밭을 향해 발포하기 전까지는.

두두둑.

두두두두둑.

땅에 생겨난 수백 대의 탱크가 모두 백율과 화연을 조준했다.

“…….”

백율은 표정을 굳히며 긴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넘겼다.

“…….”

그레이나 조지나를 속이는 연기로 만들어 낸 기회는 이제 끝난 듯했다.

이반의 뒤에 선 조지나가 보였다.

“도우러 왔어. 그레이가, 공중에서는 어차피 K의 쉬운 표적이 될 뿐이라고 해서.”

저렇게 가까이에 감시의 눈이 왔으니, 더 요행을 부릴 수 없게 된 듯했다.

이제는 이반 하이제렌의 탈을 쓴 최환성과 정말로 싸워야 했다.

서로 진심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기야 할 테지만, 서로가 상대를 죽일 생각은 없을 터였다.

‘어쨌거나 다칠 수는 있어.’

‘오히려 애를 써서 어느 정도는 다쳐야 할 수도.’

‘안 다치면 이상한 싸움이야.’

이반과 백율 사이에 잠깐의 시선이 오갔다.

무언의 양해가 이루어졌다고, 이반과 백율이 똑같이 생각했다.

쾅.

콰과과과광!

이반 하이제렌이 예고 없이 수백 개의 포탄을 날렸다.

사락.

사라라라라락.

꽃밭에서 두둥실 떠오른 거대한 꽃들이 방어막처럼 포탄 하나하나와 부딪쳐 그를 막아냈다.

펑!

펑펑!

포탄과 만난 꽃잎들이 공중에서 종이 꽃가루처럼 변해 떨어졌다.

각자 S급 가이드의 프론트 가이딩을 받는 S급 환상계 에스퍼 vs. S급 환상계 에스퍼.

사력을 다한, 극도로 화려한 전투.

그렇게 보일 싸움이 시작됐다.

백율은 주먹을 꽉 쥐며 각오를 마쳤다.

‘성공하자.’

‘최환성 에스퍼가 가면을 들키지 않은 상태로, 저 SS급 게이트 안에 든 친구 녀석을 빼내야 해.’

연극이라고 해도 많은 목숨이 걸린 것만은 똑같았다.

그레이가 가면을 발견해도 끝장, SS급 게이트 구출 작전이 실패해도 끝장이었다.

―연구원님들, 전부 무사히 북극 연구실 도착했습니다.

―이창결 부장님을 꺼낼 방법을 찾아내면, 사인을 드릴게요.

―시한은, 이틀 정도로 생각하겠습니다.

윤희유 교수가 빠르게 피드백을 주었다.

“네.”

백율은 짧게 답했다. 화연을 보자, 화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이 그를 바라보다, 다시 엄청난 양의 포탄을 날렸다.

“죽어!”

조지나가 뒤에서 소리 질렀다.

콰과과과광!

다시 꽃잎들이 색종이 가루처럼 잘게 부수어져 사방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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