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총은 필사적이었다.
달칵. 달칵.
촤르륵.
그는 여러 대의 모니터 앞에서 설계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돌렸다.
며칠 전에는 A급 게이트에 S급 던전석을 부어 SS급 게이트를 생성하는 모형도 만들어냈다.
조지나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벌인 미친 짓을 프로그램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이었다.
S급 던전석 약 2만 5천 개가 제공되면, 의총 역시 똑같은 결과를 만들 자신이 생겼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
그러나 이후 프로그램을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번 돌려본 결과, 의총의 표정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설마…….’
오늘의 결과는 특히 문제였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SS급 게이트와 A급 게이트에 던전석을 더 첨가하면, SSS급, SSSS급, 심지어 SSSSS급이라고 할 만한 게이트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프로그램상으로는 가능해.’
이론상으로는 확실했다.
혹시 몰라 일부분을 떼어내어 수기 계산으로 해 보아도 똑같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다른 응용 프로그램을 열어 돌려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
던전석 이론의 영역을 넓힐 새로운 길을 찾아서 즐겁다는 생각은 그리 크게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불안에 압도됐다.
의총은 떨리는 손으로 윤 교수와 요련에게 통화를 연결했다.
“교수님, 요련 가이드님…….”
―네.
―네, 말씀하세요.
윤 교수와 요련의 답을 차례로 듣고, 의총은 마우스를 움직여 전송 버튼을 눌렀다.
“결과. 보이시죠?”
―…….
“그레이의 안전한 돔 설계 문제는 둘째 치고, 다른 중요한 문제도 있어요. 이미 거기에 열려 있는 게이트가 더…… 더, 악화되는.”
윤 교수와 요련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의총이 보낸 화면 속 이미지에 집중했다.
저게, 애당초 말이 되는 무엇인가? 저런 등급의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어질 의총의 설명을 기다렸다.
“지금 있는 게이트들과 S급 던전석을 재료로, 그레이는 더 끔찍한 게이트를 열 수 있어요.”
―…….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런 결과가 발생하는 상황은 막아야만 합니다.”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윤 교수가 조심히 물었다.
“그레이가 미친 짓을 하려고 할 때 여현 에스퍼님과 영원 가이드님이 S급 던전석의 힘에 균열을 내는 겁니다.”
―…….
“던전석을 쓰는 일은 그레이가 할 거예요. 그레이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조지나가 그렇게 게이트 소멸만 막으면서 대치를 이어간 모양입니다.”
의총이 빠르게 말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동안 윤희유 교수가 질문을 다시 던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그레이가 에스퍼의 힘을 써서 S급 던전석의 능력을 발동시키려고 할 때, 영원 가이드님이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 훼방을 놓는 거죠. 사용 방식이 미미하게 왜곡되도록. 그러면 이만큼 끔찍한 결과에 이르진 않을 거예요.”
빠르게 이어지는 설명은 대충 들어도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려면 특히 영원 가이드님의 컨디션이 진짜 좋아야 할 텐데요…….”
―…….
“베이징 이후에 많이 회복되셨나요? 다시 시도하시는 거, 괜찮으실까요?”
―…….
의총은 별관 센터 연구실에 홀로 박혀 설계도 연구에 매진하느라 영원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자세히 듣지 못했다.
윤 교수와 요련이 있는 별관의 모니터룸 쪽에서 들려오는 사운드가 한동안 조용했다.
그러다 요련이 답했다.
―모르겠네요. 일단 싸울 수는 있는 상태인데, 저희가 영원이한테 지금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인지…….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무조건 막아내야 해요. 안 그러면 무슨 재난이 닥칠지 몰라요. 무리하지 말고 힘을 아껴 달라고 말씀해주세요.”
의총은 힘주어 말했다.
―네…… 인이어로 말은 해볼게요.
요련이 걱정을 안고 답했다.
***
역삼 본부의 걱정과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영원은 일단은 작은 근육통만 제외하면 매우 쌩쌩한 상태였다.
센터에서 오간 심각한 통화를 들려준다면 ‘님들 분위기 왜 그럼?’ 같은 반응을 보이겠다 싶을 정도로.
그러나 눈앞에 있는 류하늘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보고 있으니 기분만은 매우 좋지 않았다.
겁 없고 개념도 없는 데다가 어설픈 연금술을 시도하는 바람에 영원은 연금술 만렙 대제로서 열이 뻗쳤다.
쿠궁.
하늘이 연금술을 쓰려고 했을 때, 영원은 한번 지켜보기나 하자는 생각에 연성진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
‘에스퍼 힘으로 연성진 그려서 발동하려는 거지?’
‘그냥 저 에스퍼 힘으로 나를 바로 공격하는 게 시간 낭비도 안 하고 효율도 높을 듯.’
‘공격 가성비 핵구림.’
연금술 대천재 심영원에게는 두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가 3살 때도 저것보단 잘했겠다.’
영원은 진실에 매우 부합하는 판단을 했다.
그러면서 잠시 전의마저 상실했다.
‘저 꼬꼬마랑 뭘 해야 하는 거지?’
‘현타…….’
그런데 하늘은 영원의 굳은 표정을 보고 그녀가 자신의 힘에 놀랐다고 생각했는지, 턱을 들고 영원을 다소 깔보기까지 했다.
“말했잖아. 연금술은 너나 그레이만 하는 게 아냐.”
“…….”
“게다가, 포에버. 말이 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영원 자신은 여태껏 말이 안 되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난 S급 가이드야. 내 힘을 네가 못 쓰게 만든다고? 그건 불가능해.”
“…….”
하늘은 아까 네가 한 말이 대체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었다.
영원이야말로 하늘에게 무슨 소리를 하느냐 묻고 싶었다.
‘내가 쟤 가이드의 힘 못 쓰게 만든다고 했나?’
‘아닌데. 에스퍼의 힘 못 쓰게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왜 저럼?’
영원이야말로 하늘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가이드의 물리력은 가이드의 그릇에는 통하지 않아. 그리고 내 몸 안의 에스퍼의 그릇은 사실상 가이드의 그릇인걸.”
앞부분은 참이었으나, 뒷부분은 거짓이었다.
하늘 안의 에스퍼의 그릇은 가이드의 그릇과 다른 그릇이었다.
그렇지 않고 두 그릇이 공고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면, 자동으로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이 일어나 저렇게 멀쩡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을 테니까.
영원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하늘에게 물었다.
“……그래?”
“응.”
“근데 너는 ‘가이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가이딩을 하잖아? 그때 네 에스퍼의 그릇이 채워지는 거고.”
“…….”
“두 그릇이 실제로 연결되어서 가이딩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너의 의지에 따라 가이딩을 시도하고 끝내기도 하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릇이 하나야?”
하늘은 영원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영원은 인상을 썼다.
“너. 네 몸 안에 있는 그릇에 관해서 누구한테 배웠어?”
“그레이.”
영원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 자식 연금술도, 각성자의 힘도 대충만 가르친 거야……?’
영원은 그레이의 의중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계자나 가장 측근 같은 것으로 진지하게 키우려는 게 아니었나?’
‘무슨 생각이지?’
영원의 시선이 잠시 높은 허공을 향했다가 돌아왔다.
‘확실히, 소모품이라 여기고 있나.’
‘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인간이 그렇게 쉽고 만만해?’
더 위에서는 여현의 존재도 느껴졌다.
아무리 효율이 좋게 싸우더라도 계속해서 힘을 많이 쓰고 있으니, 프론트 가이딩을 위해서라도 이쪽 상황을 빨리 정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포에버. 내 힘은 내 거야.”
하늘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애가 뭘 몰라도 너무 몰라.’
‘동시에 그 상태로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지.’
“내 힘은 네가 빼앗아 갈 수 있는 물건 같은 게 아니야.”
어리기 때문에, 그래서 그토록 잔인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 사실이 영원을 매우 거북하게 했다.
“못 뺏어가. 절대.”
쿠구궁.
하늘의 연금술이 연성진을 통해 다시 발동했다.
영원은 주저 없이 거대한 연성진의 끝부분을 밟아 그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래. 줬다 빼앗는 건 좀 못된 짓이기는 하지.”
그런데 살다 보면 종종 그런 일을 겪거나, 반대로 그런 짓을 하게 될 때도 있는 법이다.
“내가 당하면 기분 매우 나쁘고.”
하지만 영원은 자신이 기분 나쁘니 다른 사람에게 그런 짓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역지사지가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인생은 원래 좀 내로남불 같은 모먼트가 있는 거거든.’
인생이란 원래 남의 능력을 빼앗을 때는 별 죄책감이 없다가, 남한테 빼앗긴 내 던전석이 떠오를 때는 다시 열이 뻗치는 그런 거였다.
그래서 영원은 하늘이 에스퍼의 힘을 못 쓰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다만 조금 걸리는 건, 하늘이 정말로 그레이가 버리려는 카드 같아 보인다는 것.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 어떻게든 살려서 오래 끌고 가는 게 낫지 않나?’
‘어설프기는 해도, 연금술까지 할 수 있는데.’
‘멍청해서? 그래서 버린다고 하기엔 충성심이 상당한데? 조지나도 있잖아?’
그레이는 측근들의 두뇌 능력에 좀처럼 높은 기대를 걸지 않는 듯했다.
‘대체 왜?’
영원은 자신이 뭘 놓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버리는 카드라면, 대신에 무엇을 얻기 위해?’
영원이 떠올릴 수 있는 타당한 목적은 하나였다.
‘심영원의 힘을 이 순간에 최대한 낭비시키기 위해.’
‘그다음에 무언가를 하려는 거지.’
영원으로서는 이다음에 그레이가 정확히 뭘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넌 못해.”
그때 하늘의 부정이 또 들려왔다.
영원은 원래 못할 거라는 단언에 꽤 자극을 받는 편이었다.
‘같잖아.’
영원은 하늘의 저런 부정이 정말로 같잖았다.
게다가 그녀가 어설픈 연금술을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었다.
하아.
영원은 속으로 한숨을 깊게 쉬고는 입을 열었다.
“하늘아.”
“…….”
“나한테는 내 존재 자체가 법칙이던 시절이 있어.”
“…….”
“안 된다고? 내가 못할 거라고? 아니. 난 원하면 뭐든 해내. 그렇게 되더라.”
지직.
“……!”
즈즈즈즈즉.
영원의 발아래에 있던 연성진이 환하게 빛나며 수정됐다.
하늘이 그려놓은 연성진이, 순식간에 영원의 것이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그렇게 할 거야.”
콰과광!
하늘이 연금술을 준비하던 검은색 흙의 영역도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감히, 대제 앞에서.”
“…….”
“연금술로 비비려고?”
하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어…… 어.”
연금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몰랐을지도 모르나, 그 힘의 일부라도 알고 있었기에 하늘은 더욱 그 차이를 선명하게 느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쿠궁.
대제의 연금술이, 그들을 중심에 두고 높은 철의 벽을 세웠다.
“처음엔 연금술이 아닐 거라 믿어보려고까지 했잖아.”
“……으. 뭐, 뭐야, 힘이!”
하늘의 몸속 에스퍼의 그릇에도 영원의 힘이 닿았다. 영원은 가볍게 그 입구를 조이기 시작했다.
가이딩이 쉽게 일어날 수 없도록.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처음보다 능숙해질 수 있었다.
“참교육해달라고 비는 꼴이지, 아주.”
대제의 자존심이 있다.
연금술 꼬꼬마와 연금술로 겨룰 수는 없었다.
교육이면 모를까.
쿠구궁.
영원은 하늘이 시도하려던 기본적인 연금술의 장을 열었다.
변환.
“진짜는 이거니까, 잘 봐.”
하얗게 빛나는 필드가 쇠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 내부에 빈틈없이 깔렸다.
촤르륵.
세상 무엇보다 공고한, 대제의 영역이 선포되었다.
―영원아, 그레이가 네 힘 낭비……!
“알아.”
영원은 급히 들려오는 요련의 말을 끊고 답했다.
“아는데, 참을 수 없어졌어.”
―…….
“내가 감당할게.”
대제의 자존심이 없는 것처럼 굴 수는 없었다.
그게 그레이의 의도에 따라주는 것이라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