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83화 (83/142)

긍정의 답변이 바로 돌아왔다.

―당연히, 바로 가겠습니다.

그로부터 40여 분 후, 역삼 본부 별관에 있던 연구원 7명이 센터 소속 A급 에스퍼 두 명의 에스코트를 받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매우 빠르게 날아왔다.

영원의 바람대로, 그들은 열정을 가지고 주어진 과제를 받아들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던전석 덕후들이라는 캐릭터성을 잃지 않고, 영원이 품속 문어를 꺼내 추가로 건넨 S급 던전석 1만 개를 매우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저희가 해내 보겠습니다. 이창결 부장님께서 SS급 게이트 내에서 3억 광년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요.”

역삼 본부 던전석 연구소장인 강지섬은, 이창결과 장제권을 구하는 것은 분명히 어렵기는 할 테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렇게 충분한 양의 던전석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론상으로는 분명히 가능합니다.”

강 소장은 영원에게서 받은 던전석 더미를 꼭 안아 들었다.

그런 그에게 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장님. 일주일…… 시한은 일주일 정도일 겁니다.”

그 이상은 이창결과 장제권의 몸이 버틸 수 없을지도 몰랐다.

“네. 그때까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이후, 연구소장을 포함한 연구원 7명은 영원과 여현의 보호 아래 SS급 게이트에 들어가서 각종 관측을 마치고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연구와 실험을 위한 임시 설계실을 차리기 시작했다.

두둑.

쿵.

연구원들은 전투 인력이 아니었기에, SS급 게이트 근처이면서도 가장 안전한 위치를 제공해야 했다.

“혹시 필요한 게 생기면 담당자를 호출하세요. 바로 도와드릴 겁니다.”

다른 국가 센터 소속 각성자들도 그들의 작업을 돕겠다고 했다.

평화와 협력이 소멸한 세계에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호의를 건네는 이들이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모두의 협조 아래 일사천리로 연구공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새로운 막사가 빠르게 완공될 무렵, 영원과 여현의 곁에 있던 연구원 한 명이 말했다.

“석사를 마치고 센터에서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결국 해내고 마는 대단한 각성자분들을 종종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특히 여현을 한 번 힐끔거렸다.

당장 오늘만 해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S급 게이트를 혼자 끝냈다.

세상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새로운 사건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어서, 모두의 이목이 그에만 집중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명동 게이트에 이어서 시베리아 게이트까지 김여현 에스퍼가 홀로 정리한 것은 센터에서 몇 년이고 회자될 일이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짐작하시는 것보다 더요. 그리고 가려진 고통이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많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

“저는, 그리고 저희는 각성자가 아니고,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하는 연구원 신분이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겠다고 단언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는 영원과 여현이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더욱 말이 많아졌다.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으니 그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전부 다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창결 부장님과 장제권 가이드님이 SS급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오게 만드는 건, 저희가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낼 겁니다.”

그는 영원과 여현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저희의 일은 저희가 해내겠습니다.”

그러니, 이쪽 문제를 연구원들이 해결하는 동안, 두 사람은 마음 놓고 다른 싸움을 하러 가라는 뜻이었다.

“역사엔 기록되지 않아도 뒤에서 영웅들을 보조하는 사람들은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저희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만히 그를 보던 여현이 물음을 던졌다.

“연구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제환입니다.”

이재환 연구원이 답했다.

그리고 여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환 연구원님.”

“……네.”

“저 역시, 센터의 수많은 연구원님들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현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반드시 에스퍼님의 가족을 구하겠습니다. 에스퍼님께서 언제나 저희들에게 그렇게 해주셨듯이요.”

제환이 다시 다짐했다.

“네.”

여현이 답했고, 옆에 있던 영원도 한 마디를 더했다.

“제환 연구원님, 부탁드려요.”

제환의 생각보다, 이후에 그의 이름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이들은 정말로 많아질 터였다.

겸손한 제환의 말과는 달리, 그가 해내겠다고 단언한 일은 역사에 남지 않기에는 지나치게 엄청난 일이었으므로.

***

그리고 여현과 영원은 그들의 본업으로 복귀했다.

바로, 그레이와의 전면전 준비.

S급 던전석 1만 개로 SS급 게이트 내에 3억 광년을 뛰어넘는 터널을 설계하는 것보다야, 훨씬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일이었다.

‘비할 수 없이 자신 있어.’

영원은 어쩐지 익숙한 과제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래서 사람의 삶에는 가끔 난데없이 굉장한 시련이 주어져야 하는 것일까?’

‘번아웃이 올 것 같은 일이 오히려 나의 적성에 딱 맞는 일임을 깨달은 거지.’

현재 조지나와의 대치상황은 영원과 여현이 SS급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과 특별히 달라진 게 없었다.

“조지나는 여전히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이쪽에서 먼저 싸움을 거는 것도 적절치 않아요. 이창결 부장 문제도 있고.”

백율이 이창결 부장의 현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들은 뒤 말했다.

그녀는 화연의 가이딩을 받으며 다른 센터의 각성자들과 함께 꽃밭 위의 괴수들을 처리하는 일만 반복하는 중이었다.

사락.

콰직!

쾅!

가끔 굉장한 소리가 꽃밭에서 나기도 했다.

여현 역시 일단은 그 곁에서 괴수들을 처리했다.

저편의 다른 SS급 게이트는 조지나의 진영에 더 가까이 있어서, 정말 강한 괴수는 그들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쾅!

넷은 말없이 괴수들을 처리하면서, 그레이 측의 동향이나 세계정세를 주시하고 있는 역삼 본부 윤 교수와 인이어를 통해 소통하기도 했다.

―여전히 유럽은 난장이에요.

―아, 물론 다른 대륙이라고 멀쩡하다는 뜻은 아니고요.

희망적인 소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다소 결이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본부 별관 CCTV가 추가로 복구되었는데, 네 분 다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뭐 다른 게 나왔나요?”

갑자기 한층 심각해진 윤 교수의 목소리에 영원이 물었다.

아까 CCTV 등을 통해 범인을 파악했다는 말을 이미 들었기에 모든 영상이 다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영상 일부가 날아갔던 모양이다.

―음…… 송신할 테니, 보시고 의견을 말씀해주세요.

***

넷은 다시 홀로그램이 있는 막사로 왔다.

조지나 측과는 사소한 국지전도 없이 조용했고, 주위에 보호해야 할 민간인들도 없었다.

덕분에 다른 센터의 각성자들이 양해해주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네 사람은 프로젝터가 한쪽 벽에 영상을 비추게 두고는 각자 자리를 잡았다.

백율이 프로젝터가 놓인 테이블에 걸터앉자 영원과 화연도 근처 의자에 앉았다. 여현은 영원의 뒤에서 벽에 등을 기대었다.

“틀겠습니다.”

백율이 프로젝터에 연결된 영상을 재생시켰다.

소리 없는 4분할 영상이었다.

같은 시간 동안에 녹화된 네 곳의 각기 다른 장소가 보였다.

오른쪽 아래편에서 등장한 40대 여성이 출입증을 제시했다.

클로즈업.

―에이아이 콜.

―한하늘입니다.

입 모양으로 그녀가 그런 말을 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이 끝날 때쯤, 그녀의 이름이 적힌 출입증이 CCTV 화면에도 잡혔다.

한하늘.

“한하늘이 아냐. 류하늘이야.”

백율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뭘 보라고 하신 거죠?”

“그러게.”

화연의 물음과 백율의 답변에 잠시 모두의 주의가 흐트러졌다.

이반의 탈을 쓴 최환성이 하늘의 뒤로 등장한 다음, 별관의 다른 곳으로 이동해 의총을 창고에 넣었다.

이반이 최환성이라는 것도 이곳의 네 명은 전해 들어 알고 있었기에, 놀라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로 이상한 장면이 나왔다.

“……?”

점차 이상한 부분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

“…….”

“……?”

막사 안은 조용했다.

영상엔 원래 소리가 없었고, 막사 안의 넷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

영상이 끝까지 재생되었다.

뚝.

삑.

“…….”

막사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

“제가 본 게…….”

정적 끝에 백율부터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게 맞나요? CG 아니고?”

“아마도……요?”

화연이 답했다.

다시 막사 안이 조용해졌다.

“류하늘. S급 가이드……였죠. 확실하게 확인된 건가요?”

영원이 물었다.

“네. 분명히 확인된 겁니다. 힘을 쓰는 영상이 있고, 목격자도 분명해요. S급 가이드가 아닐 확률은 없어요.”

화연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리고 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건……”

“…….”

“에스퍼잖아요? 높은 확률로, S급.”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가는 대화를, 서울에 있는 윤 교수도 듣고 있었다.

―네 분도, 똑같이 보신 거죠?

“……네.”

―S급 가이드이자, S급 에스퍼.

“…….”

―각성이…… 두 번 일어난 겁니다.

윤 교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생각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류하늘은, 존재할 리가 없어야 하는 괴이한 각성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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