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이창결 부장을 구하러 가기에 앞서, 한 가지 확인을 했다.
확인하지 않고 넘어갔다가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윤 교수님.”
―네.
“던전석 관련해서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어떤 거죠?
던전석 도둑이 누구인지 파악해 잡으러 가는 일을 우선 뒤로 미뤘다.
그렇다 해도 재차 도난이 일어나지 않게 조치는 분명히 취해야 했다.
‘빈집털이나 뒤통수치기는 더는 안 돼.’
나머지 던전석까지 그레이가 훔쳐가 버리면, 문제가 더더욱 악화될 터였다.
“나머지는 안전한 곳에 보관되어 있나요?”
―네. 추가로 별관 일부도 폐쇄했습니다.
―CCTV 확보 등으로 그레이 측 주범도 일단 파악은 했고요.
그 말은 아직 검거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자세한 도난 경위와 잠입 루트도 다 재현해봤습니다. 어디에서 구멍이 뚫렸던 건지.
센터에서 급히 도난 대응반을 별도로 꾸려 한 작업이었다.
―틈은 다 막았습니다. 서시용 시장의 도움을 받아 보안도 더 강화했고요.
―당분간은 다시 시도하지 못할 거예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불안할 정도는 아니었다.
―남은 건 지킬 수 있을 겁니다.
윤 교수도 영원의 걱정에 공감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괜찮다고 영원을 안심시켰다.
영원은 일단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교수님. 도둑은 제가 나중에 반드시 잡으러 갑니다.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남은 것들 다 받아낼 겁니다.”
결의에 찬 말이었다.
문장을 끝마칠 때 영원의 안광이 빛났다.
‘감히 누구 걸 털어가?’
‘문어가 다시 먹을 수 없는 던전석을 2천만 개나 뱉어내게 할 때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는데……!’
아쉽게도 오색문어의 던전을 나온 뒤로 귀여운 미니 문어는 다시 던전석을 먹는 법을 잊었는지, 문어의 던전석을 다 먹어버리는 도난방지 기능이 사라졌다.
‘심영원의 모든 이타심을 쥐어 짜내서 피 같은 던전석을 2천만 개나 기부했는데.’
‘그중 반의반이나 털어가?’
절대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그 던전석을 다 소비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됐다.
‘무조건 응징하리라.’
영원은 그렇게 다짐하며 윤 교수와 대화를 마쳤다.
“서울 가서 뵐게요.”
―무사하세요.
“네.”
이제 정말 이창결 부장을 구하러 SS급 게이트에 진입해야 할 때였다.
“그럼, 여현아.”
영원이 곁에 있던 여현에게 말했다. 그는 영원과 윤 교수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입 인원으로 선정된 두 사람은 이미 SS급 게이트 입구 앞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백율과 화연은 게이트 밖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SS급 게이트의 거대한 입구는 어두운 블랙홀처럼 보였다.
그 어떠한 괴수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어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지는 검은 구체.
검은 차원의 문 앞은 고요했고, 그래서 더 묘했다.
‘저쪽 다른 SS급 게이트나 S급, A급 게이트에서는 주기적으로 괴수라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만 이렇게 고요해.’
그래도 망설임은 없었다.
안에 뭐가 있든, 이창결 부장을 데리고 나와야 했다.
“가자.”
“네.”
사상 초유의 SS급 게이트 안으로, SSS급 에스퍼와 가이드 조합이 진입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차원에 들어섰다.
***
영원은 명동 게이트 때의 경험에 비추어, 차원의 문을 넘어서는 순간 시야가 흐려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달라.’
눈에 보이는 게 거의 없기는 해도, 감각이 흐려진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아니야. 실제로 이 공간 전체가 빛 없이 어두울 뿐.’
앞에는 진공이 있었다.
공기는커녕 원자조차 존재한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넓디넓은 진공.
광대한 우주의 한복판 같았다.
이창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레이더로도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하게 파악되는 물질은 저 멀리서 흐릿하게 반짝이는 빛이 전부였다.
아주 작은 모래알만 한 그것은 꼭 항성 같았다.
이곳이 정말 우주 한복판이라면, 최소 몇억 광년은 떨어져 있을 듯했다.
불길한 예감이 일었다.
―지지직.
“부장님.”
여현이 이창결 부장을 불렀다.
“부장님. 저희 들어왔습니다.”
―여ㅎ…… 들어왔……다고?
―지직.
인이어에서 나오는 음성은 노이즈가 섞인 채로 들렸다.
―여기, 우…… 주 안에?
“아마도요?”
우주.
이창결이 택한 표현이 적절한 곳이기는 했다.
그런데 이곳은 영원과 여현이 익히 알아온 우주보다 느껴지는 에너지의 밀도는 낮고 크기는 넓었다.
가이딩 밴드에 뜨는 좌표만 봐도, 임의로 설정된 차원의 기준점과 그들이 있는 곳 사이에 원래의 우주를 몇 개는 넣을 수 있을 듯했다.
―아…….
멀리서 이창결이 탄식했다.
―지직.
―우리는 안 위험하니까…… 전혀 급하지 않다고 했는데.
어쩐지, 전혀 급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SS급 게이트에 들어선 지 3분도 되지 않아 알 것 같았다.
여기엔 생명을 위협하는 무엇은커녕 물질이라는 것 자체가 극히 희소했으니까.
“부장님. 여기.”
―…….
“뭔가요?”
여현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넓은 곳.
이창결 부장이 간단하게 답했다.
그의 답변대로 이곳은 넓었다.
지나치게.
정말로 지나치게 넓었다.
원래 있던 세계의 우주를 수 배 부풀린 것보다 더.
‘부장님을 구하러 어디까지 가야 하지? 안드로메다?’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100,000,000년이 넘게 걸리는 곳으로?’
여현도 영원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정확히 어디세요?”
좌우, 상하, 어느 곳에서도 이창결과 장제권의 흔적은커녕, 원소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재료가 필요한 연금술사에게는 최악인 공간이었다.
―글쎄.
―지직.
―처음엔 이 정도로…….
―지직.
―입구와 멀리 있지는 않았어. 땅과 괴수가 빽빽했고.
불길한 복선이 깔렸다.
―그런데 조지나가 게이트 세 개를 동시에 충돌시킨 다음…….
―지직.
―차원이 진동하더니, 세 개의 차원이 갑자기 합쳐졌고…….
―미친 듯이 팽창했어.
―중심에 말려들어 죽는 건 사력을 다해 피했는데.
―지직.
―정신을 차려 보니 팽창과 함께 너무 먼 곳까지 왔더라고.
“그래서, 얼마나 떨어져 계세요?”
여현은 평정을 잃지 않고 물었다.
―일단, 여기는…….
―우리가 사는 우주보다 최소 몇억 배는 커.
“…….”
우주의 몇억 배.
천문학적인 숫자에 천문학적인 수를 곱해도 계산이 안 될 크기라는 뜻이었다.
―여기는, 그나마 가까운…… 입구로부터 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
빛의 속도로 가면 3억 년에 걸쳐 도달할 수 있는 곳.
처음에는 가이딩 밴드로 계산해 낸 좌표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해 봐도 결과는 같았다.
무려, 300,000,000광년.
―그나마도 정신을 차린 다음부터는 최대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거야.
“…….”
―우리 우주의 빅뱅 같은 팽창이었어.
여현은 아무것도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콰직. 지나치게 강하게 주먹을 쥔 바람에 피가 배어 나왔다.
영원은 그런 여현을 말리지도 못하고, 한동안 입을 열지도 못했다.
잠시 후, 저편에서 다소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어.
―내가 아무리 사실상 물리계 S급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공간을 뛰어넘어 갈 순 없을 것 같아.
―현아.
―지직.
―네가 SS급, SSS급 이상으로 강해졌다고 해도…… 이건 어떻게 못 할 걸 알아.
―조금도, 네 탓이 아냐.
이창결의 말이 맞았다.
여현은 감추어 둔 SSS급의 모든 힘을 사용해 이창결을 앞으로 데려올 방법이 없을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이곳 우주는 지나치게 넓었다.
―굶어 죽을 때까지, 일주일쯤은 살아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정말 괜찮아.
―무엇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어.
―지직.
―나가서 더 세상에 도움이 될 일, 세상을 구하는 일을 해.
영원은 여현을 보았다.
어둠 속의 여현은 어둠보다도 더 고요했다.
시베리아를 떠날 때부터 다시 마스크를 쓴 터라, 표정을 조금도 읽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여현이 깊은 충격에 빠졌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
이창결 부장의 말이 맞았다.
설령 여현이 훨씬 성장하여 SSS급 에스퍼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수억 광년의 공간을 이어 붙일 수는 없을 터였다.
그것은 관리자에게도 어려울 일이었다.
에스퍼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이즈는…….
이창결 부장이 정적을 깨고 말했다.
―거리 때문일 거야.
―그걸 아는데, 말하기 그랬어.
―빨리 다시 나가.
그렇지만, 당연히 나가라고 한다고 곧이곧대로 게이트에서 나가줄 영원과 여현이 아니었다.
특히 이창결의 말이 영원을 자극했다.
영원은 천천히 반문했다.
“부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영원 가이드님…….
“후회할 일 좀 만들고 가야만 하는 게 인생 아닌가요?”
영원은 이창결 부장이 삶을 포기하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후회할 일이 없는 인생이라니, 그런 시점에 끝내셔서는 안 됩니다.”
―…….
“그리고, 무조건 방법은 있어요.”
아직 포기는 일렀다.
―지직.
―설령 있다고 해도, 지금 밖에서 그레이가 어떤 난리를 칠지 모르는데…….
―지직.
―영원 가이드님이나 여현이가 이 안에 있으면…….
영원이 생각하기에, 센터 멤버들은 다른 건 다 좋은데, 가끔 이럴 때가 문제였다.
이기적으로 굴어야 할 때도 이기적이지 못할 때.
“걱정하지 마세요.”
―…….
“살아서 나가는 것만 생각하세요.”
꽉.
영원은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여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영원의 손에 여현의 피가 묻었다.
“일단 저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을 좀 해볼 테니까.”
영원은 생각했다.
“…….”
어떤 소음도 없는 공간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능캐다운 면모를 발휘해.’
‘단언을 했으면 어떤 가능성이라도 찾아내.’
영원은 S급 던전석을 이용해 이 SS급 게이트를 다른 S급이나 SS급 게이트와 충돌시키는 것까지 생각해 봤다.
‘S급 던전석을 이용해……?’
그리고 떠올려냈다.
‘아……!’
영원은 여현의 손을 다시 꽉 잡았다.
“여현아.”
“……네.”
“우리, 부장님이랑 서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소통을 하는 중이잖아!”
차원을 가로질러, 사실상 빛의 속도 이상으로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S급 던전석의 힘을 이용해서.
지금 서로의 반응속도를 볼 때, 던전석의 힘은 서로가 떨어진 거리와 무관하게 실시간으로 소통을 이어주고 있었다.
정말로 힘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여 공간을 뛰어가는 중은 아닐 테니, 시공간을 한 번에 뛰어넘게 하는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을 터였다.
영원은 또 덧붙였다.
“누군가, 어떤 사람들은 할 수 있어.”
“…….”
“비록 나는 할 수 없지만.”
영원은 어떤 천재집단을 생각했다.
절망을 앞에 두고도 던전석 2천만 개가 쏟아진다고 하니 초롱초롱 반짝반짝 미친 듯이 빛나던 눈들도.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이 실험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수천만 개의 던전석들에 관하여도 생각했다.
‘연구실의 미친 덕후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답을 대신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몰라.’
빛의 속도를 뛰어넘어 공간을 가로질러가는 S급 던전석의 능력을 재료로.
“연구원들이 있어. 센터의 던전석 연구원들.”
박의총 가이드는 그레이의 다른 설계도를 연구하느라 이곳으로 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다른 연구원들이 또 있었다. 박의총의 연구 성과는, 그들의 서포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
영원은 여현과 눈을 마주했다. 그 역시 조금은 영원에게 설득된 것 같아 보였다.
영원은 원래 다른 사람들을 잘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조금 달랐다.
의총은 세계수의 예언을 들은 뒤부터 배신자를 곁에 두는 것을 극도로 주의했으므로, 연구원 중에 배신자가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요련 언니는 웬만한 사람들에게 덕후라는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
‘요련 언니는 웬만한 덕후들은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언니가 찐덕후라고 표현한 사람들이었지.’
영원은 곧장 게이트 밖과 인이어로 소통했다.
“센터 던전석 연구원들 이 게이트 앞으로 불러 모아 주세요. 그레이가 훼방 놓지 못하도록 최대한 빠르게.”
영원은 S급 던전석 찐덕후들을 자극할 엄청난 난제에 관하여도 빠르게 말했다.
“제발, 부탁드린다고. 필요한 만큼의 S급 던전석은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말씀도 전해주세요.”
영원이 다수의 타인을 믿기로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도.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여현 역시 잠시 경험했던 절망적인 기분이, 영원의 체온과 그녀가 제시한 답에 씻겨 내려가는 걸 느꼈다.
영원의 말대로, 그녀와 그가 믿을 수 있는 이들이 답을 찾아줄 것 같았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가끔은 타인에게서 답을 구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