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소식은 시베리아에 있는 영원과 여현에게도 금방 전해졌다.
“네?”
영원은 인이어 너머의 윤 교수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조지나가 훔친 던전석으로 이창결 부장님 있는 곳에 가서 뭘 하고 있다고요?”
회갈색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창결 부장과 연락이 잘 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포인트가 한둘이 아니었다.
‘실화?’
‘조지나 너님 진짜로 무지성?’
‘뇌 어디에?’
‘게다가 거기에 사용됐다는 S급 던전석들은 내…… 피 같은……!’
그레이나 조지나가 무언가 괴상한 짓을 벌일 거라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베이징을 미련 없이 떠난 데에는 다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 같기는 했다.
‘무언가 다른 반격의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을 줄은 알았지.’
‘근데 그 반격의 방식이…….’
‘진짜 이 동네 도른자들 뇌 구조 어메이징해…….’
윤 교수는 다시 설명을 반복해주었다.
―방금 들은 대로예요.
―조지나가 S급 던전석을 사용해서 게이트들의 불안정성을 더 악화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SS급 게이트 두 개의 발생은 못 막았지만, 그중 하나 안에 있는 이창결 부장님, 장제권 가이드랑 연락은 닿아 있고요.
―이제 백율 부장님이 조지나가 던전석으로 다른 짓은 못 하게 대치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일단 한 시간 내에만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합류해 주세요.
“이창결 부장님 상황은 심각하진 않은 건가요?”
영원은 이창결 부장의 목숨이 정말 위험하지 않은지 재차 확인했다.
―일단은, 그래 보여요.
―이창결 부장님은 밖의 상황부터 해결한 다음에 다들 잠시 휴식하라고, 자기는 장제권 가이드랑 안전지대에 있으니 바로 구하러 들어오지 않아도 정말 상관없다고 하기는 하는데…….
말끝이 흐려지는 걸 보면 윤 교수도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멀리 떨어진 서울에 있고, 블라디보스토크의 상황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불확실해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안 좋아…….’
영원은 근육통을 느끼면서, 이 상태로 힘을 어느 정도까지 쓸 수 있을지 한계를 가늠해봤다.
―조지나도 시간을 끌고 있어요,
―그레이를 기다리는 모양이에요. 당장은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아요.
―온 세상은 더욱 망가지고 있지만.
―아무튼, 일단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면서 천천히 그리로 가주세요.
“……네. 금방 합류할게요.”
영원과 윤 교수는 대화를 마무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레이와 그 일당들은 점령하는 과정에서 세계가 어떻게 초토화되어도 조금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자칫하다가는 다 같이 죽자는 수준을 넘어서 차원 자체가 붕괴하겠는데…….’
‘그래도 괜찮다는 건가?’
영원은 혹시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아는 건가 싶어서 여현에게 묻기도 해봤다.
“여현아. S급 이상의 게이트가 만든 차원의 균열은 그대로 두면 계속 확장될 확률이 매우매우 높지 않아?”
“맞아요.”
“게다가 그 균열에서 몬스터 같은 것들이 막 끊임없이 튀어나오잖아.”
영원은 명동 게이트 때 보았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수들을 떠올렸다.
게이트가 닫히지 않은 상태로 계속 열려 있으면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밖으로 튀어나와 인간들을 죽일 거고, 그대로 유지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태 수습은 더욱 어려워질 터였다.
“근데 또 딱 괴수만 나와? 그것도 아니잖아.”
“…….”
“지진 계속 나서 건물 다 무너지고, 에너지 방출로 그 주변이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잖아.”
“네.”
영원이 알고 있는 바가 맞았다.
그런데도 그레이와 조지나는 이런 재난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다.
영원은 그들의 의도를 이해했으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다.
“인간의 땅은 한정적이야. 대부분은 한번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고.”
자연은 원래 망가뜨리기는 쉽고, 원래대로 되돌리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설령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상당한 노력과 힘, 시간이 필요해.”
“…….”
“이후에 그레이가 모든 힘을 다해 지구를 사태 이전으로 되돌리려 노력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여현 역시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가, ‘평범한 자들의 땅은 지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딴 생각을 하는 게 정말이야?”
“네.”
“…….”
영원은 멀리 펼쳐진 눈밭을 봤다.
그레이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평범한 자들을 지옥으로 밀어버리는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
왜냐면 자신만이 특별하니까.
선택받았으니까.
“생각 없이 저지르는 미친 짓이 아니라, 계획에 따라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 하는 짓이에요.”
여현 역시, 영원과 같은 생각을 말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
“균열을 잘못 일으켰다가는, 차원 자체가 붕괴하잖아.”
“못 가지느니, 다 없애는 게 낫다고도 생각하겠죠.”
“……그래. 알겠어.”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당연히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이 세계에 조금이라도 연민을 품기를 기대했나?’
‘나에게도 아직 순진한 구석이 남아 있었나?’
어차피 게이트 웨이브 덕에 세상은 금방 난장판이 될 터였다.
‘그런데 친히 훔쳐간 던전석 수천 개를 낭비하면서까지 혼란을 더하려 하는 건…… 정말.’
‘아니, 죽으려면 혼자 죽지!’
영원은 인상을 썼다.
불쾌함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마스크를 쓴 여현에게 팔을 뻗어 그의 품에 안겼다. 여현은 대중에게 얼굴을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없는 듯했다.
그렇게 둘은 다시 상공으로 떠올랐다. 다음 싸움이 기다리는 곳으로 날아가기 위해서.
“여현아, 우리…… 이대로 아래로 가면, 앞으로 일주일 안에 한 번은 쉴 수 있을까?”
영원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발아래를 보았다.
순식간에 블라디보스토크의 상공이었다.
각국 센터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저 아래서 다급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조금 더 북쪽으로 시선을 올리면 그레이 쪽의 진영이 보였다. 조지나가 저쪽에 있을 터였다.
“제가 시간을 내서 쉴 수 있게 해드릴게요.”
여현이 잠시 시차를 두고 답했다.
“……아냐.”
그렇게까지 해서 특권을 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자. 그러고 나서, 쉬러 가자.”
“네.”
둘은 금방 백율과 화연의 곁으로 합류했다.
***
아직 전면전 없는 대치상태였다.
게이트가 곳곳에 열려 있는 지역의 절반은 백율이 펼친 꽃밭, 나머지 절반은 조지나가 가이딩하는 S급 에스퍼의 결계 안에 있었다.
임시로 설치한 막사 안에서 영원과 여현을 맞은 백율 부장도 윤희유 교수처럼 상황을 요약해주었다.
중앙 테이블 위에는 근처 지형도가 홀로그램으로 펼쳐져 있었다.
백율은 홀로그램의 곳곳을 가리키며 조지나의 위치나 전략 배치를 말해주었다.
“조지나는 여기서 그레이가 오는 걸 기다리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SS급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는 이창결 부장과 연락한 내용도 다시 들었다.
“소통은 잘 됩니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요.”
실제로 이창결 부장은 여현과 소통하기도 했다.
―지직.
―현아, 나는 괜찮아.
―지직.
이창결 부장의 상태는 정말 괜찮아 보이기는 했다.
이상할 정도로 연결이 희미하고, 음성에 노이즈가 상당히 낀다는 점만을 제외하면.
―지직.
엄청난 양의 S급 던전석으로 인이어를 강화하였으니 그 통신 자체가 교란될 확률은 극히 낮았다.
그래서 SS급 게이트 자체의 특성이 통신을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조지나가 지금 박의총 가이드님의 설계에 기반한 뭔가를 던전석으로 만들고 있다는 거죠?”
“네.”
영원과 여현은 이어지는 화연의 설명을 통해 이제껏 몰랐던 구체적인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레이는 훔쳐간 던전석을 박의총 가이드가 과거에 그려둔 설계도를 현실화하는 데에 사용하려는 것 같다고.
‘도둑질 상습범이야.’
그레이가 이전부터 도둑질을 해왔다는 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지금 의총 가이드님이 사력을 다해서 조지나가 벌인 일을 분석하고 있어요.”
“…….”
“조지나가 벌이는 짓이 설계도를 완벽히 따르는 것만은 아니어서, 분석에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얼마나요?”
영원이 물었다.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는 힘들다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영원과 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연의 말을 경청했다.
“의총 가이드님이 그린 설계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안전한 지대 밖에서만 게이트가 열리게 하고 안전한 지대 안에서는 게이트가 안 열리게 하는 거라고 합니다. 지옥과 안전지대로 세계를 양분하는 거죠.”
영원과 여현이 그레이의 목표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바도 같았다.
각성자들만이 우월한 사회.
그리고 그 정점에 선 그레이 딘하우스는 스스로를 황제 같은 존재로 만들어낼 터였다.
“그런데, 여기는 이미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응용 버전이랄까요.”
과학적 논리와 던전석 자체의 속성 등에 대해서는, 화연이 전문가가 아니라 더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미 열린 게이트에 S급 던전석을 특정한 방식으로 부어대면, 열린 차원끼리 서로 충돌하는……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해요.”
자세히는 몰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엄청난 재난이 발생하리라는 걸 이곳의 모두가 직감했다.
“…….”
잠시 정적이 찾아왔을 때, 백율이 한마디를 얹었다.
“비유하자면, 차원끼리 부딪치게 해서, 맞닿은 부분에 지진을 내는 겁니다.”
적절한 비유였다.
엄청난 진동의 여파로 게이트의 균열은 더 거세어질 터였다.
“사실 이미 반쯤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론에 근거한 가설로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 밖에는 A급 게이트들이 융합하여 탄생한 SS급 게이트 두 개가 이미 존재해 있었다.
처음 이곳에 열린 게이트는 24개였다.
그중 이창결이 소멸시킨 A급 게이트 3개를 제외하고, 남은 A급 게이트 21개를 재료로 조지나가 만들어낸 건 다음과 같았다.
SS급 게이트 2개.
S급 게이트 4개.
A급 게이트 3개.
그것들이 지금 막사 밖에서 장엄한 위엄을 과시하고 있었다.
“…….”
천막을 걷고 나가 왼편과 오른편을 한 번씩 봐주면 그 결과물을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블랙홀 같은 것이 바닥과 상공 곳곳에 뚫려 있는 기이한 풍경.
백율이 펼쳐놓은 꽃밭 위로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괴수들.
“지금은 파견인력들이 괴수들을 다 해치워주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괴수나 게이트는, 그래도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
“그레이 딘하우스랑 저쪽 편 S급 각성자들이 진짜 문제입니다.”
“…….”
“그리고 일단, 그레이가 오기 전에.”
“…….”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를 SS급 게이트에서 이창결 부장을 꺼내야 해요.”
네 사람은 일단 이창결과 장제권 구출을 첫 번째 목표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