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78화 (78/142)

영원은 백율과 화연이 맡은 생중계를 이용한 선전을 최대한 도와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S급 에스퍼들이 힘을 잃어가는 장면이, 그를 지켜보는 이들을 정말 경악하게 하겠지.’

‘그러니까 실패하지 마.’

‘중간에 힘을 놓쳐서는 안 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현재 이 상황을 생중계를 통해 주시하고 있는 이들의 수가 적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니 목표했던 바를 달성한다면, 그는 정말로 대단한 선전이 되기도 할 터였다.

“윽.”

다시 영원의 식도에서 솟아오른 피가 헛구역질을 일으켰다.

“읍.”

영원이 고개를 숙여 재차 각혈했다. 하얀 가이드 정복 곳곳에 붉은 피가 묻었다.

그러면서도 영원은 침착하게 피를 닦아내고는 계속 힘을 뽑아냈다.

‘괜찮아.’

영원은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어.’

이마를 타고 땀이 흘렀다. 손바닥에도 땀이 고였다.

‘원래 땀 안 나는 체질인데.’

‘정말 긴장했나.’

영원은 자신의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멀리 있을 여현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효과가 있었다.

‘여기서 몸에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여현이가 찬 밴드에 전담가이드 건강 이상 알림이 갈 거야.’

그것만은 원치 않았다.

‘여현이는 거기서 주어진 일을 하고 있어야 해. 내 걱정은 안 하는 채로.’

‘각자 알아서 자기 일을 잘 해내면 좋겠지.’

‘도와주러 가는 건 내가 하는 편이 더 좋고.’

마음을 가다듬은 영원은 더 천천히, 느리지만 꾸준하게 힘을 쓰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중간중간 S급 에스퍼들의 차라리 죽여달라는 애원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힘을 통해 그들의 그릇에 가까이 다가갔기에 그 의지가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S급 에스퍼들은 백율의 힘에 갇힌 채로 할 수 있는 한 사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폭주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힘을 밖으로 다 쏟아내려 하기도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그때 영원은 그들의 의지에 반해 그릇을 막아냈다.

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이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너희들은 살아 있을 거야.’

검열삭제 해야 하는 수위의 영상 내용을 잊을 수 없었다.

‘누구 좋으라고 여기서 끝내줘? 살아서, 더 느껴야지. 너희가 뭔 짓을 했는지.’

영원은 화연에게서 들었던, 중국에서 각성자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받게 되는 형벌의 수위를 떠올렸다.

‘앞으로 받을 벌은 엄청나게 단호하고 가혹할 거야.’

그렇게 한 명의 그릇이 또 막혔다.

“하아.”

잠시 거친 호흡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영원은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호흡을 최대한 늦췄다.

‘참아.’

‘참자.’

‘이제 호흡은 나중에 해.’

2,137명까지 완료했다.

이제 딱 한 명이 남았다.

영원은 피와 땀이 묻은 손으로 꽉 주먹을 쥔 채로 마무리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끝났다.

총 2,138명.

정말로, 끝.

“하.”

털썩.

영원이 바로 도로를 향해 앞으로 쓰러졌다.

다행히 그 밑에 꽃밭이 있어 가이드 정복은 어디도 긁히지 않았다.

“하아. 하아. 흐으…….”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은 금방 진정되지 않았다.

영원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내지 못하고 거칠게 숨만 쉬었다.

“하아, 하아.”

아무튼, 해냈다.

―영원…… 영원 가이드님!

화연의 감격한 외침이 인이어 너머에서 들렸다.

―괜찮으신가요!

“하아.”

영원은 숨만 몰아쉴 뿐, 알겠다고 바로 답하지 못했다.

“으…… 네. 근데…… 안전가옥에 제 발로 못 갈 것 같아요.”

겨우 힘을 짜내어 말했다.

―네, 제대로 다 되었으니, 저희가 금방 가겠습니다.

영원은 화연의 답에 안심했다.

‘정말, 해냈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임무 완료.

완벽하게.

과정도, 결과도 매우 깔끔했다.

사륵.

영원은 화연과 백율 부장을 기다리다, 꽃밭에서 몸을 뒤집어 하늘을 보았다.

“하아…….”

운이 좋았다.

심각한 방해도 없었다.

그래서 나타나지 않은 조지나 등등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당장 목표한 바를 깔끔히 이루어낸 것은 만족스러웠다.

‘역시 우주의 사랑을 받는 사기캐 심영원.’

‘심영원이 오늘도 심영원했습니다.’

도로롱.

스테이지3가 끝나기도 했다.

[스테이지3: 같은 일시에 에스퍼 2000명 이상의 무력화]

[스테이지3 목표달성▶ 에스퍼 무력화 2138명/2000명]

[목표달성]

호흡을 정리한 영원이 웃었다.

***

여현은 S급 게이트의 끝을 보고 있었다.

몸을 압박하는 에너지 속에서도, 시야 중 흐린 부분은 없었다.

“…….”

여현은 조금도 지치지 않은 채로, 폭주에 조금도 가까이 가지 않고서도 이 게이트를 완벽하게 끝낼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 있지 않을까.’

여현은 힘이 맺힌 손바닥을 가만히 보았다.

“…….”

김여현의 잠재력에 관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가설이 제시되어 왔다.

‘S급 물리계. 그냥 그 사실 자체만 해도 엄청난 거죠. 그런데, 김여현은…….’

‘그 잠재력은 정말로 미친 수준입니다.’

최초로 세계수가 김여현을 선별하였을 때, 당시의 힘부터가 이미 압도적이었다.

솔직히, 세계수가 단언한 ‘잠재력’을 굳이 추가하여 논의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모든 자원을 다 투입해 어린 여현을 강원도 저 깊은 땅속에 가두어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모든 가이드와 매칭률이 극악이라 가이딩을 받을 수 없는 S급 물리계 에스퍼가 밖에서 폭주를 일으키게 두었다가는 정말로 핵폭탄이 한반도 위에서 터지는 것과 다름없는 사고가 날 것 같았으니까.

바다에 수장했다가는 쓰나미가 일 거고, 강원도 땅에 묻어도 엄청난 지진이 일어날 테니 저 멀리 우주 진공으로 띄워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누군가도 있었다.

정말 그 우주 로켓 계획이 실현 가능했다면 정부는 그렇게 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로켓 계획은 현실성이 없다며 폐기되었고, 여현은 강원도 어딘가의 땅굴에 밀어 넣어졌다.

‘여현아.’

‘살아 나가면, 네게 정말 엄청난 성장의 가능성이 주어질 거야.’

‘우리, 살아서 나가자.’

살아서 나올 거라는 주장을 절대 굽히지 않았던 유일한 이는 이창결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비선별, 그것도 물리계 A급의 일관되고 단호한 주장에, 센터 관계자들은 질린 얼굴을 했다.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대체 그 옆에 붙어 있겠다니 제정신이야?’

지금은 이창결 부장에게 뭐라 꼰대질을 할 사람이 센터에 단 한 명도 없지만, 그에게도 젊기보다는 어리다는 말이 더 어울리던 때가 있었다.

이창결은 다른 각성자들, 연구진들, 정치가들에게 여현이 품고 있을 잠재력에 대해 필사적으로 역설했다.

살아서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발 다 같이 그런 미래를 위해 힘써보자고.

‘현아.’

‘너는 정말 엄청난 걸 해낼 수 있어.’

‘네게는 이 시련을 이겨낼 잠재력도 있어.’

‘분명히 있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여현 자신도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여러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된 것이.

그 머나먼 땅 아래, 좁은 공간에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을 때.

식도와 피부가 전부 복구할 수 없을 정도의 화상을 입은 사건을 겪었을 때.

여현은 삶에 강렬한 기억이 남았던 순간에, 다시 스스로의 잠재력에 대해 되묻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답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쿠구궁.

여현은 무너지는 빙하를 보며 그동안 들어온 말을 떠올렸다.

달을 지구에 떨어뜨릴 수 있다거나, 지구상 모든 대륙의 지층을 뒤집어 그 모두를 한꺼번에 마그마 속에 침몰시킬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

여현도 궁금했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이 순간 여현의 목표는 이 S급 게이트를 끝내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끄ㅅ]

여현은 가이딩 밴드로 영원이 남긴 메시지를 확인했다.

[무리하ㅈ 말ㄱㅗ있ㅇ]

[ㄱㅁ방 회복ㅎ고 ㄱㅏㅁ]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급하게 쳤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여현은 폭주 직전에 이를 때까지 사용 가능한 힘이 얼마나 될지 생각했다.

영원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여유가 있을지도 생각했다.

쩌적.

여현이 딛고 선 땅이 갈라졌다.

여현은 지층의 한참 밑으로 자진해서 떨어졌다.

그는, 게이트를 소멸시키는 것 이상으로 힘을 뽑아내 한계를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쩌저적.

여현은 마그마가 뿜어져 나오는 단층에 다가갔다.

순간, 달을 지구로 끌어당길 것 같은 거대한 힘이 게이트 내부의 지층 전체를 뒤흔들었다.

***

먼 곳의 세계, 법칙 너머의 존재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전부 그 자리에 있어】

청성의 음성이 울렸다.

【이렇게 이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세계수가 원한 그림은 그려졌다】

달콤한 세계수의 음성이 여럿의 이름을 천천히 호명했다.

【영원, 여현, 그레이, 환성, 하늘】

인간 중에서 법칙을 벗어난 듯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다.

관리자들은 감시자로서 유독 그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특히, 앞서 언급된 다섯 사람을.

【안내는 했고, 오색문어는 재료를 안겼군】

낯선 관리자들의 음성도 연이어 울렸다.

【던전을 만드는 건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나】

【결국, 정말로 시작되어버리는구나】

【재밌어】

잠시 정적이 왔다.

다시 공간을 채운 건 청성의 음성이었다.

【그래, 그대가 바라던 모습으로】

【나만이 바라던 것인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나의 영원은 그의 고통에 설득당해, 더 머무르고자 할까】

차가운 목소리의 담담한 물음으로 사위가 잠시 조용해졌다.

【첫 순간부터 반했고, 그때부터 영원을 찾아 다른 세계로 가겠다고 한 것인가】

【시련은 그리 가볍지 않을 것인데】

청성의 울림이 메아리쳤다.

세계수와 청성을 제외한 다른 관리자들, 감시자들은 모두 개입을 그치고 이야기도 멈추었다.

세계수와 청성마저도 한 걸음 크게 물러났다.

이제 벌어질 일을 지켜보기만 할 때였다.

【이제 던전 만들기는 더 없다】

세계수의 언어를 끝으로 울림이 멎었다.

인간들로서는 그 정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제 영원이 있는 차원에서는 더 이상 던전이 생겨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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