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77화 (77/142)

영원은 눈을 감고 있었다.

새로이 추가된 S급 두 명까지 더하여, 베이징에서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그릇을 막아야 하는 에스퍼는 총 2,138명이었다.

S급 2명.

A급 234명.

B급 802명.

C급 이하 1100명.

영원은 힘을 섬세하게 통제하면서, 2,138명 에스퍼들의 모든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러면서 그들을 따라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처음엔 S급이 영역 내에 있지도 않았으니 그들을 제외한 2,136명을 상대로만 힘을 썼다.

S급 에스퍼 2명을 대상에 추가해달라는 화연의 부탁을 받은 다음에도, 일단은 나머지 2,136명에 대한 작업부터 집중했다.

‘나머지 다 합친 거랑 S급 두 명이랑 난도가 비슷하지 않을까.’

‘일단 시작부터 만만찮은데…….’

인간들은 마네킹이 아니라서, 그릇을 변형시키는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항하고, 뛰어다녔다.

‘그래 봤자 평범한 인간 다리로 뛰는 거야. 절대 도망치지 못해.’

‘누구도 그냥 보내지 않아.’

정말로, 처음으로 힘을 쓰기 시작한 1분부터 쉽지 않았다.

‘음…….’

‘괜찮아.’

‘노력하면 할 수 있어.’

영원은 ‘하면 된다’던 과외 선생님(주: 센터에서 독보적인 꼰대 어록 보유자)의 말을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해내기로 했다.

현실의 에스퍼들이 마네킹과 다른 것은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다른 그릇을 보유했고, 다른 속성의 힘을 가졌으며, 각자의 그릇을 채우고 있는 힘으로 영원의 힘을 거부하기 위해 애썼다.

영원은 그 차이를 인식하면서 오 분, 십 분을 지나 삼십 분에 다다르도록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흘 내내 힘 쓴 기분이야.’

‘피곤…….’

가이드의 물리력은 단 수 초만 사용하려 해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했다.

영원은 S급 가이드들의 한계는 한참 전에 넘어선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가이딩을 위한 힘을 정제하여 가이딩 외의 방식으로 그를 짜내어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가이드의 신체에 상당한 부담을 주기도 했다.

다행히, 영원의 신체는 그런 부담은 나름 잘 견뎠다.

‘대제의 금광불괴 신체 덕이지.’

벅찬 느낌이야 없는 건 아니었지만, 물리력 자체를 컨트롤하는 것에 비하면 몸의 문제는 신경 쓰이는 정도도 아니었다.

영원은 힘을 쓰는 것에만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영원이 있는 곳 주변에까지 백율의 꽃밭이 가득 펼쳐져 있어, 그녀의 보호를 신뢰하고서 다른 방어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편했다.

‘힘에만 집중.’

‘사용은 천천히. 천천히.’

영원은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순간이 올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하드코어 등산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영원은 평범한 인간에게 해발고도 약 8,850m의 에베레스트 정상까지(그것도 진짜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그 높이만큼 위로 올라가야 하는 계단) 쉬지 않고 올라가게 하면 그 인간이 이런 갑갑함과 유사한 갑갑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느리게 가는 구간은 있어도 되지만, 절대 오르는 걸 멈출 수는 없는 에베레스트 계단을 오르게 하는 거지.’

‘아무튼, 해낼 수 있어.’

에스퍼의 그릇들 하나하나에 힘이 닿게 했다.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그 그릇을 조각하듯, 외력을 가했다.

가이드의 물리력의 세기를 키우려고 하면 반작용처럼 숨이 턱턱 막혀왔으므로, 영원은 미세한 힘만을 뽑아내 세밀하게 사용했다.

‘또 한 명 추가.’

‘한 명은 끝났고. 또 한 명.’

영원은 그렇게 2천 개가 넘는 그릇들을 느리게, 하지만 동시에 변형시켰다.

그릇의 입구가 좁은 이들부터 먼저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후에도 한 명, 또 한 명, 힘을 쓸 수 없는 이들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섬세하고, 차분한 작업이었다.

영원은 적당한 시점마다 호흡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사용 시 그것에만 집중해 있다가는 숨을 놓고 쓰러질 것이다. 가이드의 생명유지에는 도움이 안 되는 작업이었다.

‘정말로 난도 장난 없네.’

‘이제 후속 작업도 해야 해.’

그릇을 그렇게 막았다고 작업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다음에는 더욱 견고하게 막은 부분을 밀봉하는 후속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아니면 그릇 자체의 회복력에 의해 며칠, 몇 주 뒤면 다시 힘을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영원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 에스퍼의 힘을 쓸 수 없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니 작업엔 더 많은 힘과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숨 막혀.’

영원은 중간중간, 의식적으로 느리게 힘을 썼다.

과거에 들었던 화연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느낌은 에스퍼가 폭주에 점점 다가설 때 겪는 느낌과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죽음에 다다른 고통 같기도, 이 끝에 파멸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화연 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둘 다 가이드라서, 에스퍼의 폭주를 절대로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영원은 문득 여현은 이런 감각을 자주 경험했는지 궁금했다.

여현이 항상,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다는 걸 알았다. 폭주 직전까지 갔다가 돌아온 경험은 영원이 아는 것만도 거의 열 번 가까이였다.

‘말하지 않는 얘기도 많을 거야.’

여현은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므로.

가이드의 물리력을 쓰는 와중, 영원은 여태껏 알지 못한 이 힘의 속성에 대해 새로운 것도 알게 되었다.

‘뭔가…….’

‘던전석을 함께 사용해서, 에스퍼의 그릇에 이것과는 다른 짓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영원은 던전석을 사용해 여현을 치료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다른 힘이 침범할 수 없는, 영구히 공고할 그릇을 빚어낼 수 있을지도?’

‘그릇 자체의 크기를 더 키워내거나?’

‘그런데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다른 가이드가 가이딩을 못 하려나?’

‘흠…….’

‘그냥 내 뇌피셜 망상인 것 같기도 하고.’

영원은 당장 필요 없는 망상은 관두기로 했다. 특별히 영양가도 없게 느껴졌고.

대신 영원은 보다 이 힘과 관련된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자 여현과 화연, 이창결, 백율 부장 모두가 이 작업을 해내지 못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럼 더 해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처음 화연이 이 계획을 제시했을 때도 기억났다.

‘1년 정도만 수천 명의 에스퍼들이 모두 그릇에서 힘을 쓸 수 없게 만들어도 엄청나고 엄청나며 엄청난 성과일 겁니다.’

당시 목표치는 지금보다 꽤 낮았지만, 그래도 화연은 엄청나다는 수식어를 몇 번이고 붙였다.

거기에 영원이 더 파격적인 계획을 제안했다.

‘그레이를 지지하는 에스퍼들의 그릇, 모두 사실상 영구히 막아버릴 겁니다. 죽을 때까지 그 힘 함부로 못 쓰도록.’

‘…….’

‘그러려고 이 지하 돔 안에서 필사적으로 트레이닝 해온 거예요.’

영원은 할 수 있다는 걸 자신에게 증명할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할 수 있다.

영원은 그를 다시 되뇌며 고요함 속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2,138명.

그들의 그릇이 그들의 생애 동안 쓸모없어질 때까지.

사락.

종종 백율 부장이 펼쳐놓은 꽃밭이 바람에 흔들렸다.

영원이 스스로의 위치를 감출 여력을 잃자, 백율 부장이 영원의 위치를 완벽하게 가려 주었다.

‘누구도 오지 않고 있어.’

‘그레이가 여기에 없는 것은 다행이야.’

확실히 운이 좋았다.

조지나 역시 별다른 난동을 부리지 않고 있었고, 이반 하이제렌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원에게는 오직 그녀 자신의 힘에만 집중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결국 목표한 끝에 거의 다다랐다.

2,135명.

그리고 2,136명.

S급 두 명만이 남았다.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둘은 백율에게 완벽히 통제되어 있었다.

영원의 물리력이 서서히 그들의 그릇 가까이로 갔다.

‘…….’

“욱.”

영원이 한 번 각혈했다.

“읏.”

영원은 입 밖으로 튀어나온 피를 닦아내며,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동시에 비선별 에스퍼 두 명의 필사적인 저항이 느껴졌다.

멀리 있는 비선별 에스퍼들로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절망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중일 터였다.

그들에게는 순식간에 시력을 잃는 것보다도 더 고통스러울 터였다.

‘모든 특별함을 잃고, 바닥이 무너지는 기분이겠지.’

그러나 영원은 그들이 안타깝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영상을 만들어서 인터넷상에 뿌렸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검열삭제, 검열삭제, 청소년관람불가등급 붙여야 할 것 같던 영상들.’

‘상대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입에 담을 수 있던 말.’

그들은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예고 없는 불행은 누구에게나 오니까.’

‘특히 타인에게 끔찍한 불행을 안겨준 이들은, 그 사실에 더욱 주의하고 있어야 해.’

‘비슷한 일이 되돌아올 수 있다는 걸, 정말로 상상도 못 했다고 변명할 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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