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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73화 (73/142)

오전 열 시경, 베이징의 한적한 골목.

비선별 에스퍼인 30대 남자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한 여자에게 따라붙었다.

탁. 탁.

여자는 뒤에서 다가오는 남자를 다소 경계하며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혹시 미친 각성자면 어떡하지. 며칠 온 세계를 뒤덮었던 뉴스가 그녀의 긴장감을 키웠다.

확.

“ㅇ……!”

갑자기, 남자는 앞서 걷던 여자의 손목을 붙잡아 돌려세웠다.

여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었다.

남자는 그녀의 앞에 바짝 다가가 내려다봤다. 키 차이는 한 뼘 정도였다.

“한국인, 맞지?”

남자는 한국어로 물었고, 여자는 답하지 않았다.

“난 각성자인데, 너는?”

두려움이 여자의 손끝과 입술을 떨리게 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각성자는 아닌 것 같고. 그럼, 유학생? 해외 출장?”

“…….”

“대답 좀 하지?”

남자는 재차 물었다.

“벙어리야?”

“그…….”

여자는 눈을 내리깐 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오, 한국녀 적중. 벙어리도 아니고. 비각성자?”

여자는 고개를 서서히 들고는 주변을 살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남자는 여자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여자의 안색이 갈수록 하얘졌다.

“저, 그게…….”

“어.”

“저 좀, 죄송한데, 대학원 수업…… 지각이라.”

“아…….”

여자의 이마 가장자리에 땀이 맺혔다.

“그래서?”

“…….”

여자는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는 그러다 굳은 결심을 마치고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으…….”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해도, 완력 차이를 이기기부터 쉽지 않았다.

“어디, 그냥 도망치려고? 그게 될까?”

남자는 웃었다.

그가 아무런 말이나 행동을 거기서 더 하지 않아도, 여자는 절망 어린 표정이 되어 애원했다.

“제발…….”

각성자다.

죽을지도 모른다.

이대로면, 죽을 것이다.

여자는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도움을 구할 사람을 찾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리며 주변을 살폈으나, 주변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마저도 그녀를 구해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는 자들은 혹시 몰라 불똥이 튈까 봐 시선을 피하며 멀어지기 바빴다.

그러다가, 그녀는 멀리서 걸어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어…….’

유독 색이 옅어, 빽빽한 인파 속에서도 시선이 멈출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미인.

게다가…… 원래부터 알던 얼굴.

믿을 수 없게 찰떡인 새하얀 가이드 정복.

매일 일방적으로 덕질을 일삼는 대상.

아침마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해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비주얼.

하이에나처럼 떡밥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김여현의 비선별 가이드…….

‘여…… 영원 님!’

여자는 완전히 현실감각을 잃은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잖아.”

“…….”

“왜 겁 없이 나왔어. 비선별자들이 점령하러 올 거라고 했잖아.”

“…….”

“못 믿었어? 오늘도 어제처럼 마냥 평화로울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나? 그런데 어쩌지? 아니거든.”

김여현 덕질은 어언 만 7년.

심영원 덕질은 만 2개월 차.

어쩌다 불행 속에서 성덕이 된 영원덕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툭.

그 반응은, 남자의 협박 때문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하얘진 안색이 제 협박 때문이라 자신하는지, 더욱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그녀를 깔보았다.

“이게 정말 현실다운, 자연스러운 현실이야.”

“아…….”

“뭐, 내가 기분이 나쁜데 내 마음대로 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어?”

그가 말했다.

“약육강식, 알잖아.”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그레이의 영상에서 그레이가 하던 말을 남자는 따라 읊었다.

남자는, 여기는 현실이고, 인생은 실전이라고 다시 중얼거렸다.

그리고 같은 시간, 거의 같은 장소.

남자의 바로 뒤까지 다가온 영원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여기가 현실이고, 인생은 실전이라고.

“동감.”

“……억!”

“인생은 실전이지.”

영원이, 그녀의 접근에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른 남자에게 지금 해주고 싶은 말도 같았다.

“근데 왜 2회차 없을 실전에서 겁도 없이 이런 등신 같은 짓을 해.”

“누…….”

누구냐고, 남자는 그렇게 물으려 했다.

그러나 영원의 힘 덕에, 질문은 완성되지 못했다.

“으…… 악!”

남자는 손끝부터 팔을 덮쳐오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더러운 손 간수 잘하지 그랬어.”

고통은 더 넓게, 온몸으로 퍼졌다.

“으…….”

남자는 여자를 잡았던 손을 놓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고통에 헛구역질만을 했다.

“우욱.”

영원은 방금 남자가 여자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아주 작게 속삭여주었다.

“난 적어도 S급인데, 너는?”

“흐으…….”

“뭐, 답할 필요 없어. 네가 너무 안일하게 행동했단 것 정도만 알아 둬. 약육강식이라니.”

영원은 힘으로 알려주었다.

여기서 진짜 강자가 누구인지.

“악!”

힘으로 그의 발까지 짓밟고, 그를 바닥에 붙게 했다.

“대단한 철학을 읊는 척할 때는, 그 말의 진짜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을 해.”

남자는 몸을 둥글게 말고는 파랗게 질렸다.

“세계는 네 시선이 닿는 곳보다 더 넓게 펼쳐져 있다는 걸 좀 알아두고.”

“어으…… 어.”

성덕은 눈을 크게 뜨고 바닥에 앉은 채로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시선은 영원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여…… 진짜 영원 님……!’

‘뭐야, 깡패 같은 성격…… 대존멋……!’

영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저기로.”

“…….”

“피해 계세요.”

“네……?”

“안전하게. 건물에 들어가 계시는 게 어떨까요.”

“네…… 네!”

영원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자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밖으로 나온 건 잘못한 게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요.”

눈 모양이 요련을 닮았다. 그래서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고, 조금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이는 듯했다.

그 덕분에 영원이 낯선 이에게 지을 수 있는 가장 친절한 얼굴이 나왔다.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자는 영원에게 허리를 몇 번 숙여 인사한 뒤, 곧장 내달려 근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굳이, 뭐.’

‘감사까지야.’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뿐인데.’

영원은 다시 고통받고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으…… 윽.”

남자는 고개만 위로 들어 영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고는 더더욱 하얗게 질렸다.

엄청나게 유명한 누군가의 가이드로 얼굴이 퍼져나가고 있는 누구와 지나치게 닮은 듯했다.

게다가, 대한민국 센터의 하얀 가이드 정복.

절대 다른 사람일 것 같지 않았다.

“그, 그…….”

영원은, 최근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얼굴이 퍼질 대로 퍼져 있었다.

남자는 그녀의 뒤에서 김여현을 발견해내진 못했지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김여현이 가만히 있지 않으리란 것 정도는 확신했다.

“죄…… 죄…….”

남자는 조금 전의 여자보다 더더욱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영원은 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무미건조한 말을 던질 뿐이었다.

“나는 불의와 부도덕을 상당히 잘 견디는 편이긴 한데.”

―지직.

영원은 귀에 낀 인이어의 위치를 조금 조정했다.

“가끔 변덕처럼, 아닐 때가 찾아오고는 해.”

“으.”

“너한테는 좀 안 좋은 상황이 된 거지.”

“흐으…….”

“지금도 맘에 안 든다고 그냥 싹 다 죽이고 싶은 건 아닌데, 나름대로 정의를 구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거든.”

“으욱.”

고통을 바라보는 영원은 무표정했다.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훈을 하나쯤 안겨주는 건 괜찮을 것도 같았다.

툭.

“네가 그랬잖아. 세상은 약육강식이라며.”

“우윽. 아니, 아니.”

“아니긴.”

“그, 그으…….”

“잘 봐. 네가 원하는 세계의 모습이 어떤지.”

영원은 진정한 약육강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줄 풍경을 그의 의식 속에 환상으로 구현해주었다.

대제가 소유한 압제壓制의 권능으로.

그가 그에 어울리는 약자의 처지를 이해할 수밖에 없도록.

그러자 곧장 반응이 왔다.

툭.

순식간에, 남자가 공포에 정신을 놓고, 기절했다.

“뭐야.”

영원은 인상을 쓰고는 환상을 불어넣은 힘을 다시 빨아들였다.

‘급 기절?’

‘사이다 마시기도 전에 김부터 싹 빠진 거야……?’

‘……하기야.’

‘굳이 연약해 보이는 타깃을 찾아 공격하려는 찌질이들은 보통 이렇지.’

‘정신적인 공포조차 이겨낼 담도 없어.’

‘놀랍지도 않아.’

영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또 참교육을 멈출 수는 없지.’

그리고는 그가 의식을 차렸을 때 고통의 교육이 계속 이어지도록 조치했다.

‘내가 또 용서는 쉽게 안 해주는 캐릭이라서.’

그다음 영원은 정확히 이 자리로 와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하며, 화연이 지도 위에 표시해 주었던 위치로 향했다.

베이징의 중심부와 가까우면서도 꽤 한적하고, 백율 부장과 화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

또각. 또각.

탁.

영원은 화연과 율이 지정해준 정확한 자리 위에 섰다.

그 자리에 서서, 크게 심호흡했다.

이제 이 도시를 뒤덮을 힘을 쓰는 것에만 집중할 때였다.

삑.

영원은 인이어에 붙은 발신 버튼을 터치했다.

“도착했습니다.”

같은 모델의 주문 제작된 인이어를 찬 화연과 백율에게 음성이 바로 닿을 터였다.

“준비 마치고 대기할게요.”

이후에는 사방으로 레이더를 펼치고 힘을 사용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스탠바이.”

삐빅.

백율 부장이 승인만 하면 시작이었다. 인이어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금방이면 됩니다.

“네.”

영원은 잠시 기다렸다. 다시 백율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운트합니다.

저편에서도 세팅이 끝난 듯했다.

―3.

―2.

―1.

―개시.

레이더가 뻗어 나간 경로를 따라 그대로, 영원의 힘이 베이징 전역을 덮었다.

에스퍼들이 그릇에서 힘을 꺼내지도 못하게 막는 가이드의 힘.

별관 지하 강당에서 정말 생고생하면서 연습해 온 것.

300분의 타임어택을 이겨내며, C급 게이트 10개를 없애며 연습해 온 광역 컨트롤.

비선별 에스퍼와 비선별 가이드로 뭉친 이창결, 강화연 조합과 휴식시간도 없이(주: 아님) 해온 극기훈련.

이런저런 고생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 갔다.

‘얼마 만의 쌩 노가다였던지.’

‘오늘을 위한 거야.’

게다가 스테이지3가 걸려 있었다. 비록 아무 보상도 없겠지만, 실패 시의 페널티 때문에라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실패하면 안 되지.’

순식간이었다.

영원은 2천 명이 넘는 에스퍼를 포착했다.

그중에서 타깃이 될 이들을 순식간에 걸러냈다.

안전가옥에서 확인한 에스퍼 목록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레이 측에 동조하는 배지를 달고 있거나, 그들과 협력하고 있거나, 각국 센터 각성자들과 대립하고 있는 에스퍼들 모두가 표적이 됐다.

영원은 실수 없이 아군이 아닌 자들을 걸러냈다.

불순한 목적으로 이곳에 와, 그레이에게 동조하고 있는 정신 나간 각성자들.

그들만도 2천 명이 꽤 넘어서, 일시에 스테이지3의 미션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하난 다행이다.

참고로 저만치 기절해 있는 남자도 포함된 목록이었다.

‘참교육을 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면, 기꺼이 해주는 게 인지상정.’

그들이야말로,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이렇게 될 거라고 경고해줬는데.’

에스퍼들의 그릇을 막기 위해 직접 힘을 써보는 건 처음이었다.

연습 때도 한 번쯤 성공해보고 싶었지만, 여현, 백율, 이창결은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그들의 그릇을 막기엔 너무 강했다.

‘S급 중에서도 독보적인 월드클래스 S급들이니까.’

‘그래도 시도 자체가 유의미한 경험이기는 했어. 고등급 에스퍼들이 어떤 식으로 저항해 올지 파악했으니까.’

다른 에스퍼들 중에서 자원자를 구하는 일은 여의치 않았다.

S급이 아닌 자원자를 몇 명쯤 구한다고 해도, 연습에 그리 도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계획대로면 영원은 ‘동시에’ 수천 명에게 힘을 사용해야만 했으므로.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화연은 영원에게 너무 부담을 가지지는 말라고 다독였다.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어쩔 수 없어요.’

‘유혈전을 시작하는 수밖에.’

‘그레이가 없고, S급들도 많지 않으니까, 백업 플랜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영원은 그것이 불필요한 위로와 격려라고 생각하며 답했다.

‘글쎄요.’

‘그럴 일 없을 것 같은데요.’

‘믿어보세요.’

영원은 이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증명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마네킹들과 연습했는데, 해내지 못하는 건 대제의 체면을 심히 구기는 일이었다.

영원은 자신의 힘이 도시를 덮은 걸 느끼며 살짝 웃었다.

긴장에 심장이 다소 경직되어 뛰는 듯했다.

[스테이지3: 같은 일시에 에스퍼 2000명 이상의 무력화]

[스테이지3 목표달성▶ 에스퍼 무력화 0명/2000명]

2천 명.

그보다 많은 수의 에스퍼들을 향해 가이드의 물리력이 뻗어나갔다.

실패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니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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