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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70화 (70/142)

이창결 부장은 베이징 지도를 펴고 각자에게 구역을 할당해 주며 말했다.

“일단은 각성자들이 소규모로 일으키는 피해보다 그레이 딘하우스가 만들어 낼 대규모 공격을 막는 일이 중요하니, 우리는 그를 찾는 일에 집중합시다.”

“네.”

“저등급 각성자들이 벌이는 자잘한 사고는 다른 센터에서 파견된 팀들이 처리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이후, 센터 멤버들은 그레이 딘하우스가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사방을 탐색하고 다녔다.

영원은 여현과 한 조였다.

“저는, 파악되지 않아요.”

“응. 나도.”

꽤 시간이 흐름 다음 결과를 확인하니 영원과 여현도, 이창결과 장제권도 모두 허탕이었다.

수신 및 발신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인이어 너머로 이창결 부장이 무겁게 말했다.

―현아, 이쪽은 아닌 것 같아.

백율과 화연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도 없어요.

“…….”

다들 심각한 기분에 휩싸인 가운데, 영원만이 다른 생각을 했다.

‘어쩌면…….’

영원은 그레이가 힘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가설에 점점 더 힘을 싣다가, 이제는 점점 그를 확신해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힘을 찾는 중에 여현이나 내가 있는 베이징에 제 발로 오는 건 과한 모험이지.’

그렇다면, 그레이는 어쩌면 베이징에 도착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 이 사건이 일단락될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힘을 다시 얻어가는 과정이 나보다도 더 고통스러워 보였어.’

‘그 힘 자체가 품고 있는 악의 성질을 고려하면 동화에 더 많은 고통과 시간이 필요할 거야.’

도시를 뒤지면서도 그 생각은 점점 짙어졌다.

‘아마도, 내 생각엔.’

‘고통 때문에 밖으로 나설 수 없게 되어서, 당장은 나서지 않기로 한 것일 수도…….’

그레이가 마지막으로 업로드한 영상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여러분의 힘을 보여주세요.

―제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직접 증명하셔야만 합니다.

이 말만 들어봐도, 그레이는 분명 베이징에 오지 않을 생각이다.

그레이는 각성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시를 쓸어버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레이 친위대의 사기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S급 비선별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심각하게 과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역삼 본부에서 온 S급, SSS급 각성자들이 그들의 머리 꼭대기 정도가 아니라 저 멀리 성층권 너머, 거의 달의 궤도에서 그들을 내려다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멍청이처럼 굴고 있었다.

영원을 비롯한 센터 멤버들이 생각하기에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이들은 그렇게까지 심각한 위협은 아니었다.

갓 꼬꼬마로 각성해 능력에 대한 교육을 조금도 받지 못한 초보자일 뿐.

다만, 그레이가 그들을 통솔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영원을 비롯한 이들이 그레이의 위치를 필사적으로 찾으려 하는 것이다.

영원은 정말로 그레이가 나타나지 않을지, 확신해도 되는지 여러 번 생각했다.

혹시라도 잘못된 판단이라면 지금 돌이켜야 한다.

‘그레이가, 처음부터 올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었겠지.’

‘여기 오는 걸 포기하는 건 그레이로서도 내리기 어려운 결단 아니었을까.’

‘적어도 오색문어의 던전에서 나설 때까지는 올 계획이었을 거야.’

‘하지만…… ‘힘’과의 동화가 문제를 일으켰겠지.’

실제로, 아무리 애를 써도 베이징에서는 그레이의 미약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조지나 스피넬. 그녀가 이곳에 왔다는 건 분명했다. 그녀는 SNS에 베이징 도착을 업로드하고, 그에 대한 영상도 찍어 올렸다.

이후 센터 멤버들은 그녀가 머무르는 것 같은 호텔도 파악했다.

그런데 그레이는 그 옆을 한번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다.

조지나 스피넬의 주변은 그레이가 출몰할 확률이 높은 장소라 영원과 여현이 더 열심히 관찰했는데, 그레이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영원은 조용한 곳에서 몇 번이고 그레이의 영상을 돌려보며, 계속하여 관찰했다.

‘……처음엔 설마, 설마 했지.’

영원은 그레이의 미미한 고통을 읽어냈다.

아주 미세한 변화가 보였고, 그에 집중하자 그 현상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러면서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을 떠올렸다.

‘108시간 동안의 버퍼링.’

싱크로율을 높여 가던 108시간이 기억났다.

계속 숨통을 조여오던 고통도.

비슷한 흔적을 그레이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볼수록 더 확실해졌다.

‘정확히 같은 방식은 아니야. 완벽히 같은 종류의 힘도 아니고.’

‘그렇지만 분명히 비슷한 짓을 해 두었던 거야.’

‘저쪽에도 숨겨둔 게 있었던 거겠지.’

‘직접 만나봐야 알겠지만, 상당히 끔찍한 기운을 품은 힘인 듯하고.’

최근, 여현이 더욱 강해졌다. 또한 영원도 강해졌다.

그레이 딘하우스라고 해서 패를 숨겨두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레이는 그의 말처럼, 정말로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몰라요. 아니, 분명히 그럴 것 같아요.”

결국, 영원은 스스로 내린 결론을 공유했다.

그가 악한 힘을 되찾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앞으로 더 힘든 난관이 오긴 하겠지만, 당장은 그레이가 홀로 고통 받고 있는 덕에 이 사태를 해결하기가 수월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레이가, 힘을 찾기 위해,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나서지 못하고…… 일단 휴식을 취하고 있을 거란 말이죠?

화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레이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보다 더 악한 힘을 가지게 될 수 있단 점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네.”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센터 멤버들은 당장 베이징에서 벌어질 대량 살상을 막아야 하니, 기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소식이기는 했다.

이 사태를 막아내는 데에만 모든 초점을 맞춘다면.

하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절대로 좋은 소식이 아니기도 했다.

―……어렵네요.

영원은 그나마 찾아낼 수 있는 희망에 관한 얘기도 꺼내기는 했다.

“힘을 일부라도 봉인해둔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그 힘을 사용하게 될 때,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있을 겁니다.”

―…….

“그 반작용을 찾아내면 돼요. 찾아낼 수 있을 거고.”

영원은 약간은 알 것도 같았다.

‘분명히, 통제 불가능한 부분이 있었을 거야.’

모두가 영원의 말을 곁에서, 혹은 각자의 인이어를 통해 경청했다.

“그러니까, 당장 그레이가 무적이 되었다고 걱정할 건 아니에요.”

일단은, 모두가 지금 이 사태를 막기에 유리한 입장에 섰다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레이 딘하우스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점은 어쨌거나 당장은 매우 다행인 일이라고.

각자의 인이어를 사용한 6인의 대화는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딘하우스는 적어도 앞으로 사흘은 더 괴로워할 겁니다. 그 안에 끝내기로 해요.”

영원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 보수적으로 기간을 잡아 알려주었다.

연금술을 이용한 무엇에 관하여 심영원만큼 확신할 수 있는 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영원 자신도, 다른 이들도 영원의 단언을 신뢰했다.

―그럽시다.

―가능하면 그냥 오늘 안에 끝내요.

그렇게 베이징 사태 해결은 순항할 듯했다.

그러나.

또 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드륵.

드르륵.

핸드폰에 수많은 속보가 도착했다.

[속보: ‘게이트 웨이브’ 그레이의 경고대로]

[속보: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A급 게이트 24개 동시 오픈]

[속보: 시베리아 한복판, S급 게이트 오픈]

A급 게이트 24개.

무엇보다, S급 게이트 1개.

막아낼 각성자가 없을 땅에, 게이트 수십 개가 한꺼번에 열렸다.

누군가는 베이징을 뒤에 두고 재해를 막기 위해 떠나야 했다.

***

센터 멤버 여섯이 베이징의 안전가옥에 모였다.

이창결이 열심히 광화문 청사 대응실에 있는 고위공무원들, 센터 소속 교수들과 언성을 높여가며 통화를 했고, 나머지는 조용히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보낼 사람 없습니까? 러시아에는 S급 각성자가 없대요?”

시베리아는 기본적으로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상주하는 러시아 센터 인력이 없는 땅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 지역을 순찰하는 A급 센터 인력들이라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센터를 배신하고 그레이 측에 합류했다고 했다.

―러시아의 S급들은, 이 시국에 그레이를 찾아 떠났거나, 대통령이나 국민 경호를 위해 모스크바에서 외부로 차출될 수 없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장관님께서 죄송해하실 문제가 아니라…….”

―저도 죄송합니다…….

“아니, 수석님께서 죄송해하실 일도 아니고…….”

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고위공직자들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고등급 각성자들을 지금 추가로 국가 밖에 내보낼 수는 없는 상황인데, 러시아는 자국 내 해결은 절대 안 될 것 같다고, 협정에 따라 도와달라고 난리고…….

―대체 지네들은 언제 협정을 지켰다고…….

―그리고 인접국인 중국이나 몽골도 지금 베이징 사태며 기타 문제로 골치 아픈 상황이라고 합니다.

“유럽은요.”

―거기는 그냥 국내 시위만 해도…….

“다른 나라는 없습니까?”

―일본은 뭐, 아시다시피……. 동남아 국가들도 더 안 좋았으면 안 좋았지…….

사실상 모든 국가가 그레이가 벌여놓은 각종 소요 때문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상황이었다.

“…….”

―한국 쪽이 가장 여유가 있기는 합니다. 국내 통제도 잘 되고 있고.

열 받는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국가 및 각종 기관은 믿을 만한 각성자가 누구인지 조금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심과 불신만이 판을 쳤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나마 가장 나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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