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69화 (69/142)

S급 던전에서 나와, 영원이 고강도 훈련을 시작한 때로부터 정확히 52시간 뒤.

그레이가 영상 하나를 개인 SNS에 업로드했다.

새로이 각성한 비선별 S급들은 꼭 연락을 달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바로 그 계정이었다.

그레이는 이제 저등급의 비선별 각성자 및 선별 각성자들까지 포섭하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적극적인 노선을 타기로 정한 듯했다.

―우웅.

―각성자들이 군림할 것이다.

―앞으로 이 세상의 모든 곳은 각성들의 땅.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와 화려한 사진이 번갈아 등장하는, 게임 홍보영상 같은 구성이었다.

#그레이 #홍보영상 #무슨뜻?

수많은 태그를 달고서 각종 SNS를 통해 짧은 영상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유X브에는 그레이가 올린 영상을 해석하는 내용의 컨텐츠도 대거 올라왔다.

몇 시간 뒤, 그레이는 또 비슷한 영상을 추가로 업로드했다.

―쾅!

―시작은, 비선별자들의 혁명.

―아시아 제패.

―우리는 모두 베이징으로 모인다.

―힘을 보여.

―너를 알려.

그레이가 첫 영상을 업로드했을 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도 못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뭐라는 거야? 그냥 잘생긴 얼굴 셀카나 올려주지.

―이 미친 중2병 컨셉 뭐지?

―내 손발 오그라들다 갑자기 사라짐.

―안 본 눈 삽니다.

그러나, 그가 직접 자신의 채널에서 ‘각성자들의 지배’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시작하자, 판도가 서서히 바뀌어 갔다.

―안녕하세요. 그레이 딘하우스입니다.

―제가 앞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날 ‘중요한 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그레이는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선별 러쉬’에 대해서 설명했다.

―비선별 여러분.

―여러분은 우주에 의하여 선택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돼지처럼 살려고 하십니까.

그레이는 차분히 설명했다.

그는 그가 정의한 비선별 러쉬의 독자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세계수와 신이 ‘우리’ 각성자들을 택한 겁니다.

―우리는 특별하다고, 알려준 겁니다. 우리에게 그런 운명이, 주어졌어요.

―때가 왔습니다.

그는 각성자들의 교주라도 된 양 설교했다.

―우리, 각성자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입니다.

―언제까지 센터의 통제에 응할 겁니까?

―감히 우리에게 평등을 주장해왔던…….

―병X들.

―개, 돼지 새X들.

―가축은 가축답게 다루어야 해요.

그는 지배에 대한 야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비각성자들은 그의 말에 섬뜩함을 느꼈다.

그레이가 드디어 미쳤다고 비난하며, 그에게 실망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도배했다.

―도랏?

―제정신인가요?

―학살? 그런 미친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건 신식 인종주의냐, 자기가 무슨 히틀러인 줄 아냐,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건 그레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나를 히틀러에 비유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선택받았고, 그래서 다르고, 강하고, 위대하니까.

그레이의 ‘각성자들은 비각성자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설교는 점점 그 수위가 높아졌다.

―동종의 인류가 아닙니다.

―우월종과 열등종은 분명하게 달라요.

―생각해보세요.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일 때 인간은 어떤 가벼운 처벌을 받고, 반대로 동물이 인간을 해하면 어떤 처벌이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인 일인지.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인가요?

그는 웃는 얼굴로. 또한, 상당히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미친 소리를 늘어놓는 악마는 참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회 수는 끊임없이 올라갔다.

다른 비선별자들도 컨텐츠 제작에 합류했다.

어딘가에는 그레이의 생각에 조금도 동조하지 않는 비선별자들이 있기는 할 터였다.

이 비선별 러쉬 중에 각성한 이들 가운데 이창결, 강화연 같은 사람들이 한 명도 없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수많은 악인의 악행들에 가려졌다.

―아악!

역겨움을 불러일으키는 영상들이 매체를 뒤덮자, 이제 각성자들은 모두 그레이가 설파하는 각성자우월주의에 빠진 자들인 것처럼 보였다.

그레이는 계속 여론을 조작하고, 분열을 부추기고, 정신 나간 선동을 장려했다.

―더, 더 해도 괜찮습니다.

원래부터 우월감을 가지고 있던 각성자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헤엄치기 시작했고, 이후 속속 각성한 비선별자들은 그들의 논리가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조하는 세력은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졌다.

매번 새로운 얼굴이 추가되었다.

―안녕하세요, S급 가이드로 각성한 비선별자입니다.

모든 대륙에서.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도 베이징으로 갈 겁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새로 채널 개설했습니다. 일단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시구요!

정부는 그레이의 동영상을 각종 거대 사이트 및 SNS에서 내리게 하고, 그가 새로이 개설한 페이지까지도 유해 사이트라며 막아버렸다.

그러나 인터넷은 통제 가능한 곳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A급 에스퍼로 각성한 비선별자입니다.

―오늘 거리에서 비각성 미X년 참교육한 영상 소개합니다.

―감히 열등한 게 덤벼가지구. 헤. 낄낄.

―아악!

―살려…….

그레이의 모든 메시지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통해 전 세계에 퍼졌다.

그다음, 다른 비선별자들이 제작한 더 자극적인 영상들이 후속작으로 쏟아졌다.

[블락을 건다고요?]

[어디 한번 해 봐.]

유포를 막으려 하면 더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처형’, ‘정의’, ‘교육’ 등의 키워드를 단 끔찍한 내용의 영상은 그 수를 더해가기만 했다.

―비선별들 모두 모여라!

―선별들도!

―각성자라면 모두!

―베이징!

―밀입국이라도 얼마든지 해!

―어차피 우리의 땅이 될 테니까.

―다 죽이러 가자.

세상이 미쳐가는 데에는 열흘 정도면 충분했다.

이미 수습은 불가능했다.

그레이의 선전도, 그에 동조한 미친 녀석들의 미친 짓거리도 절대 알아서 멈추어질 일은 없어 보였다.

자정작용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만은 그랬다.

전 세계를 단일한 논란이 뒤덮었다.

정신 나간 녀석들이 그레이가 점찍은 장소 근처로 모여들었다.

베이징.

비행기와 배를 끊고 방벽을 세워도, 이능력을 쓰며 잠입하는 비선별들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그 도시에 험악한 기류가 콸콸 흐르기 시작했다.

***

모두가 그레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영원 역시도 핸드폰으로 그가 뿌려대는 선전을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SNS를 이용해서 각성자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하는 건 예상한 방식이었다.

수단을 짐작했지만 어차피 막을 수는 없었기에, 때가 언제인지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다만, 미친 정도가 예측보다 살짝 더한 느낌이기는 했다.

그리고 또 예측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확실히 뭔가…….’

‘묘하게 불편해 보이는데.’

영원은 그레이가 나오는 영상 여러 편을 모두 처음부터 돌려봤다.

―안녕. 오늘도, 그레이 딘하우스입니다.

굳이 계속 봐주고 싶지 않은 얼굴, 듣기 싫은 목소리기는 했지만, 이질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

‘무언가가 변화한 것 같아.’

‘매우 이상한 느낌. 불길한 예감.’

‘뭐, 항상 비호감 얼굴이기는 했지만…….’

단순히 기분 탓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다.

영원은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모두 좋지 않은 결과에 이를 가설이었다.

‘무언가를 했어.’

‘각성자로서? 아니면…… 연금술사로서?’

영원은 연금술 쪽에 무게를 실었다.

영원 자신도 경험해 본 시나리오가 있었으니까.

이전 세계에서 악의를 떨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악의가 입혀지지 않은 힘이라도 그를 먼 바다에 봉인해두었다가 되찾은 일도 있었다.

그레이에게서 읽을 수 있는 기운은 복합적이었다.

끔찍한 악의.

그리고 무언가와의 동화.

‘힘을 봉인해두었나?’

‘다시 소환하여 되찾는 중인가……?’

영상으로 전부를 알 수는 없었지만, 막연한 추측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관찰하면 할수록, 그 밖의 이유로는 그레이의 행동과 태도를 설명할 수 없을 듯했다.

‘퇴각하면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을까.’

‘여러모로 좋지 않아.’

그래도 영원은 깊은 걱정에 사로잡히진 않았다.

‘파악했으면, 대응을 하면 되지.’

영원은 또한 계속하여 각종 사이트에 들어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특별히 경계해야 할 반응이나 이미 일어난 사건이 있는지 확인했다.

‘디테일도 놓치면 안 돼.’

‘태풍을 불러올 날갯짓이 있을 수 있어.’

‘꼭 위에서부터 큰 변화가 시작되는 게 아니니까. 아래에서부터도 가능하지.’

깔아둔 정보망을 타고 들어오는 정보만큼이나, 알아서 발을 달고 세상에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정보도 중요했다.

그리고 그레이를 주시하고 있는 건 센터나 영원뿐만이 아니었다.

각국 수뇌부, 정보기관, 언론사.

또한, 각국 랭커 채팅.

[그레이는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어떤 면에서는 각성자들 모두가 기다려왔던 혁명이 아닌가?]

[혁명? 이걸 혁명이라고 할 수 있어?]

[대체 언제까지 힘도 없는 인간들을 위해 봉사를 해댈 건가요? 우리가 불만을 느끼고 있던 부분이 맞지 않나요?]

[제발 다들 좀 닥쳐]

[살인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걸 생각해]

[너야말로 개소리나 닥쳐]

[정의로운 척하기는]

[위선자]

공식적, 비공식적 채널 모든 곳에서 균열이 발생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모티콘이 잔뜩 섞여 발랄하던 내용이 순식간에 다 진지해졌다.

[백율(ES3): 휘둘리지 마세요]

[이창결(EA7): 네, 부디. 다들 자리를 지키세요]

[백율(ES3): 안 그러면 정말 대단한 대가를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강화연(GS3): 돌아선다면, 무엇을, 누구를 앞에 두고 돌아서는 것인지 잊지 마세요. 우리는 무력을 쥔 실체입니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급하게 연설 일정을 조정한 다음에 발언대에 섰다.

―그는 인류 역사를 역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등합니다.

―그는 베이징에서 우리 인류가 그동안 이룩해 온 사랑과 평화를 지우고, 그의 왕국의 초석을 다지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의 계획에 동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내게는 꿈이 있다는 킹 목사의 목소리를 기억하십시오.

―이곳이 꿈입니다.

―우리는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한 세계에 있습니다.

―끔찍한 역사로 걸어 들어가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아주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우리는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될 겁니다.

각성자가 아닌 한국의 대통령은 말을 아꼈고, 그 대신 백율이 베이징으로 떠나기 전에 발언대에 섰다.

그녀는 냉담한 표정으로 차가운 경고를 날렸다.

그녀는 인류애에 호소하지 않았다.

그저, ‘제정신 아닌 자식들은 직접 처형하러 가겠다’고 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담백한 몇 마디가 전부였다.

또 서시용도 생중계되는 화면 앞에서 말했다.

―베이징행? 하. 어디 한번, 나가 보세요.

―스스로 본인이 아주 특별하다 믿는 열등 종자들에게, 너보다 내가 더 특별하다는 걸 알려줄 테니까.

나이를 먹든 욕을 하든 뭘 하든, 누가 뭐래도 한반도 위에서 가장 미형인 인간 1위(주: 세계수피셜).

심각한 때에, 서시용은 그 발언의 내용보다 화면에 담긴 미친 비주얼이 큰 화제가 됐다.

―이 급박한 때에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서시용 얼굴 리뷰합니다. 비주얼 실화?

얼떨결에 서시용은 더 많은 팬을 보유하게 됐다.

***

그레이의 선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레이가 결전의 날이 며칠인지 매우 분명하게 강조해준 덕에, 작전 개시일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결국, 결전의 날이 코앞까지 왔다.

격동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일고 있고, 그 모든 흐름이 베이징에서 폭발하리란 것은 분명했다.

중국 정부는 처음에는 완벽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듯했지만, 미친 군중 모두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무렵, 센터 멤버들도 베이징에 도착했다.

여현은 당장 회복된 얼굴을 대중에게 드러내지 않길 원해서, 여전히 마스크는 쓴 채였다.

“여현아. 우리, 이거 다 끝내고 베이징덕 밀전병에 싸 먹으러 가자. 달콤한 소스 찍어서.”

“네.”

영원과 여현은 대륙을 구하는 것보다는, 그다음의 저녁 식사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한 대화를 나누며 베이징의 땅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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