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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67화 (67/142)

어느 순간 둘은 함께 바다의 수면에 떠 있었다. 육지는 사방 어디로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둘이 함께 있는 곳이 정말 바다인 것은 아니었다.

몸을 반쯤 덮고 찰랑거리는 것이 진짜 물이라면, 둘은 바로 물에 잠길 듯한 자세였을 테니까.

그러나 두 사람은 현실에서 영원이 여현을 안고 있던 자세 그대로였다.

현실의 진짜 몸은 같은 자세로 여전히 펜트하우스에 있을 터였다.

영원이 여현의 그릇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환상 속에서 수많은 수레바퀴를 지나 텅 빈 고요한 댐 안으로 들어서던 순간처럼.

이곳에는 실재하지만, 현실이라고 할 수는 없을 장면.

“…….”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하고, 광활했다.

하늘에서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거대한 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이 신비로웠다.

달은 약간의 붉은빛을 머금은 채로, 영원과 여현을 향해 보이지 않는 태양의 빛을 반사했다.

여전히 수평선은 끝이 없었다.

현실 같지 않은 장면을 여기저기서 워낙 많이 봐온 터라, 영원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여현의 반응 쪽이었다.

그는 얼굴이 드러나게 된 것이, 혹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면 속에 진입한 것이 당혹스러운 듯했다.

“가이드님. 저를 보지는…….”

여현은 영원을 더 꽉 끌어안고는, 영원에게 말했다.

“응.”

“…….”

“안심해.”

영원은 여현의 얼굴을 보지 않으며, 그를 더 꽉 안았다.

여현의 등을 영원의 손이 토닥였다.

“안 봐도 예쁜 거 알아.”

농담 같은 가벼운 어조에 여현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긴장이 느껴졌다.

영원은 그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토닥. 토닥.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도닥이기만 했다.

영원의 의지에 따라 힘이 구현되는 공간이기 때문일까. 영원은 의지만으로도 여현의 상처를 감싼 채 물 안으로 서서히 잠겨갈 수 있었다.

해는 점점 저물었고, 날은 더 어두워지고, 영원과 여현은 점점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둘은 금방 물속에 완전히 빠졌다.

주변을 감싼 것들은 조금도 차갑지 않았다.

딱 편안하고 아늑한 정도였다.

“여현아.”

바닷속에서도 목소리는 낼 수 있었다.

현실의 법칙이 뭉개지는 공간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계속 나한테 안겨 있으면 돼.”

영원은 화상이 번져있는 목에도 손을 감았다.

쿵, 쿵.

여현의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다 금방 괜찮아질 거니까.”

그렇게 영원은 여현을 품에 안고 밤바다의 깊은 곳을 계속 향해갔다.

사락. 사락.

물보다는 가벼운 바람이 계속하여 곁을 스쳐 가는 기분이었다.

사르륵.

묘한 환각에 빠지는 건, 에스퍼만이 겪는 고양감은 아닌 듯했다.

영원 역시도, 무언가에 취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바다네.’

영원은 바다를 싫어했다.

원래의 세계에서는 항상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늘 바다를 보고 서 있었기에.

몸에서 떨치고자 했던 힘을 봉인한 곳도 바다였다.

얼마 전 요동치는 크루즈 위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때도, 내내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괴로운 기억들이 조금도 영원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저 편안했다.

아주 사적이고, 진심 어린 감상이었다.

영원은 그런 기분을 여현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이 순간에 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았다.

깊은 대화를 나누라는 의총의 조언이 없었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았을까.

“여현아.”

포근한 세계에 잠겨 오직 편안함만을 느끼는 게 혼자만은 아니길 바랐다.

“여기는 밖이랑은 다르게, 완벽하게 평화롭네.”

“…….”

“좋다.”

영원은 눈을 감고, 모든 피로가 씻겨 나가는 아늑함에 취했다.

치료가 제대로 되고 있다고, 영원은 확신했다.

영원 자신도 무언가로 인하여 충만하게 회복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느낄 수 있는 평화는…….”

영원은 잠시 말을 쉬어갔다.

“나는 항상 그 평화가 위태롭다고 생각했어.”

“…….”

“영원할 리가 없으니, 평화야말로 가장 불안했지.”

약간은 붕 뜬 기분으로, 영원은 스스로도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말을 뱉었다.

“무엇도, 영원할 거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

“특히나 사람에 관한 거라면.”

“왜요……?”

여현의, 어딘가 억눌린 듯한 질문이 영원을 잠시 생각에 잠기게 했다.

“글쎄. 아마…….”

“…….”

“실망만 남아 버려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무언가가 변화했다. 지금은 약간은 달랐다.

“지금은 좀 이상해. 이제는 결국…….”

“…….”

“결국에는, 이 모든 싸움이 끝나면 다시 평화로운 이런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던전이나 게이트에서의 시간이 덜 괴로웠던 건, 결국 여현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와 쉴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이 자라나서였다.

비이성적이고, 근거도 딱히 없는 확신이 피어났다.

“다시 펜트하우스로 쉬러 올 수 있으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아.”

괴로운 일에는 결국 끝이 있을 것 같다.

그레이와의 싸움을 앞둔 지금도 그랬다.

그런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고, 그 확신이 떠나가질 않았다.

영원은 여전히 평화로운 기분으로, 바다 위로 부서지는 별빛을 봤다.

바다 위는 어느새 해가 뜨지 않은 밤바다의 하늘이 되었다.

“여현아.”

“…….”

“나는, 바다를 싫어해.”

어둠마저 아늑하고 포근했다.

잠에 편안히 빠져들 수 있을, 그런 아늑함만 더욱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보통, 내 세계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늘.”

“…….”

“바다를 보고 서 있었어.”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고백이었다.

가장 깊은 비밀을 말하는 순간에도, 마음은 평화로웠다.

영원은 잠시 말을 잇지 않았다.

고요함이 큰 위로가 됐다.

정말로 먹먹한 위로가 됐다.

“너는, 그 절망을 기억하지 않게 만들어.”

“…….”

“다시는, 같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

“나는 누군가가 나를 구해줄 거라는 운명 같은 건 믿지 않아. 세상은 내가 구하는 거지. 싫기는 하지만.”

싫지만 결심했다.

가만히 두면 죽을 사람들의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니라, 가까이 있는 김여현이라는 단 한 사람이 해 온 헌신이 심영원을 설득했다.

“여현아.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빠질 때 내 숨을 조여오는 압박감 같은 게 있었어.”

“…….”

“끊임없이 마감이 닥쳐오는 때에, 나는 내가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그 데드라인에 맞출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냥 계속해서 미친 듯이 달려야만 했으니까.”

“…….”

“기댈 수 있는 누구도 없었어.”

“…….”

“이번에는 함께겠지. 그래서 낯설고, 불안한 면도 있는 것 같아. 내게는 이런 불안이 익숙하지 않아.”

“…….”

“나는 운명이나 숙명 같은 건 믿지 않아. 하지만 너를 믿을게.”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여현아, 너를 믿을게. 하지만.”

영원은 여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각오해야 해.”

“…….”

“막대한 힘을 쓰게 되면,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하찮아지고, 자극적인 감각에 휩쓸려버리고, 그에 무뎌지니까.”

“…….”

“내가 어긋난다면, 기꺼이 매몰차게 그런 나를 버려.”

영원은 ‘정당함’이라 이름 붙인 선을 여현의 곁에 그어주었다.

결국에는 그 말을 여현에게 해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엔, 내 등에 칼을 꽂아. 진심으로 그래 주기를 바라.”

“…….”

“너는 강하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영원은 스스로를 선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자칫 정당함의 선을 넘어가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었던 순간이 그녀의 삶에 이미 많았다.

그때였다.

영원의 말이 잠시 멈추었고,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도로롱.

영원은 다시, 금방 또 울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알림을 봤다.

‘그래도 바닷속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심영원, SSS급 퀘스트 스테이지2 클리어 확인]

[세계수의 SSS급 퀘스트 스테이지3가 시작됩니다]

[스테이지3: 같은 일시에 에스퍼 2000명 이상의 무력화]

[스테이지3 목표달성▶ 에스퍼 무력화 0명/2000명]

[스테이지3 종료까지 잔여 시간 100일/100일]

이제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또 시간제한이 붙어 있었다.

‘이래서 처음이 중요하다고들 하지.’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계속이야.’

영원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필드의 관리자, 세계수가 SSS급 스테이지3의 보상에 대해 안내합니다]

[실패 시▷ 대제의 악의惡意의 소환]

[제한시간 내 미시도 시▷ 애의愛意의 절멸]

[성공 시▷ 특별한 보상 없음]

[제한시간▷ 없음]

끔찍한 의지의 소환과 애정 어린 마음의 완벽한 멸종이라.

영원에게는 다소 익숙한 형식의 시련이었다.

‘보상은 또 없어?’

그리고 저 너머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실패하면 악을 떠안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감정을 빼앗긴다】

【네게는 다시 그런 일들이 반복되겠지】

【영원】

【네가 이제 이끌려가기로 택한 거다】

그레이는 영원에게 말했었다. 너 역시 남아 있는 애정이랄 게 없지 않느냐고.

거의 확신에 찬 말이었다.

너는 분명히 타인을 향해 자라날 수 있는 감정 자체를 끊임없이 삭제하고 또 삭제해 왔을 거라고.

영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여현아.”

“…….”

“네게, 변해버릴 나를 죽일 힘이 있는 것에 감사해.”

“…….”

과거에, 스스로의 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약간 남아있어 힘을 봉인하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대제의 힘은 영원의 감정을 지우고 세상에 더 무뎌지도록 만들었다. 그 힘을 떠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러했다.

안 그래도 감정에 무디고 공감력이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에 악함이 조금이라도 더해졌다가는…….

영원 자신조차 미래를 짐작할 수 없었다.

어떤 단순한 욕구를 충족하고자 아무런 죄의식 없이 끔찍한 짓을 할까 봐.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어서.

그런 두려움이 있어, 여현이 자신보다 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 덤덤히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여현아. 가이딩이 만들어내는 감각은 환상이야.”

영원은 혹시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며, 여현에게 부탁했다.

“내가 주는 중독에 휘둘리지 말아야 해.”

“…….”

“감각으로 얻는 것보다 중요한 걸 지켜야 해.”

영원은 그것이 여현과 자신 모두를 위한 일이란 걸 알았다.

“너를 믿어.”

여현은 말이 없었다.

영원은 여현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도, 그가 긍정의 답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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