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65화 (65/142)

초롱초롱.

영원을 보는 모든 눈은 이 한 단어로 정확히 묘사할 수 있었다.

큼큼. 중간에 선 연구원 한 명이 목을 가다듬고는 말을 꺼냈다.

“심 가이드님, 그, 저희에게 세계를 구할 기회를…… 던전석 더미를 가져다주시려고 오신 것이죠…….”

어쩐지 목소리 끝이 미미하게 떨리는 듯도 했다.

영원은 그제야 이 분위기의 원인을 파악했다.

던전석을 통해 세계를 구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평생을 바쳐 온 이들은, 자신이 가져올 S급 던전석 더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에 ‘세계를 구할 기회’라는 이름을 붙이고서.

‘던전석 헌신자들……. 뭐, 그렇게 불린다나.’

‘요련 언니가 이 연구실에 대해 떠도는 얘기라며 해줬는데, 묘사가 어쩐지 꺼림칙했지.’

‘S급 던전석 찐찐(주: ‘진짜’라는 의미와 ‘X따’라는 의미를 더한 표현이라고 했다) 덕후 소굴…….’

이들은 전쟁의 공포와 동시에, 그들의 삶에 주어질 거대한 행운을 안아 들 준비를 마친 채였다.

절망이 왔다고 하여, 절망에 잠겨있기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엄청난 양의 던전석으로 앞으로 해나갈 실험은, 평생을 간절히 기다려 온 도전일 터였다.

“네. 이천만 개쯤 드릴게요.”

“…….”

“제가 취득한 삼천만 개 중에서요.”

쿵.

어떤 연구원의 발이 낮은 의자에 걸렸는지 큰 소리가 났다. 다행히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이, 이…… 이천만이나?”

“네.”

“존경합니다.”

뻔뻔한 영원도 머쓱하게 하는 경탄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존경까지야…….’

그들은 이제 어떤 던전에 들어가도 에너지 밀도로 연락이 안 되는 일은 없을 거라며 기뻐했다. 그 외에도 던전석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경이로운 일을 영원에게 알렸다.

모두가 계속 눈을 빛내며 말했다. 심장 소리까지 들리는 듯도 했다.

두근, 두근.

영원은 그들이 설레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고, 동시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희는 저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 보겠습니다.”

“조금도, 하나도 헛되이 쓸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영원은 연구원들의 빛나는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도 이들처럼 주어진 거대한 과제를 긍정적인 마음으로 해내면 되는 거라고.

‘더 강해지는 것. 안 된다고 하는 걸 완벽하게 해내는 것. 생각해보면 나도 과거부터 꽤 좋아해 온 일이니까.’

‘게다가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어.’

‘그래서 더 완벽하게 해내야 할 것만 같다는 책임감이 들어서 마음이 무겁긴 한데.’

‘암튼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걱정은 사서 하지 않는 쪽으로 노선 결정.’

영원은 미미한 거북함과 긴장까지도, 즐겨보기로 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힘을 세상에 구현할 때 느꼈던 희열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보면서.

실패하지 말아야 할 때 실패했던 적은 없었다.

“여기에 던전석들 쌓아 두면 되나요?”

“네? 네!”

“다 담아가려면 좀 큰 박스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영원의 진정한 플렉스 타임이 찾아왔다.

먼저 영원은 품에서 귀엽게 생긴 핫핑크 문어 미니미를 꺼냈다.

오색문어가 던전에서 나올 때 준 귀여운 던전석 보관 장치였다.

‘귀엽다고 연이어 두 번이나 생각하다니…….’

던전 안에서는 그토록 진절머리 나던 핫핑크 문어가 다시금 귀여워 보인다니, 약간은 진 기분이었다.

‘인간은 역시 직전의 개고생마저 잊는 망각의 동물…….’

톡.

영원은 던전석을 보관하고 있는 핫핑크 문어의 머리를 쳤다.

영원은 예민한 감각으로 문어의 입에서 정확히 몇 개의 던전석이 튀어나오는지를 주시했다.

문어의 이마 쪽에 보관된 던전석 수가 작은 숫자로 떠올랐다.

30,000,000

그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초롱초롱한 시선이 모두 한 점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영원은 일정 시점에 다시 문어의 머리를 두드려 던전석이 나오는 걸 중단시켰다.

밖으로 나온 던전석은 정확히 2천만 개.

“그, 가이드님…….”

떨리는 목소리가 영원을 불렀다.

“네.”

“이 서류에 내용을 작성해주시면 되는데, 기증은 얼마나…….”

“일단 여기, 2천만 개요.”

영원은 밖으로 꺼낸 2천만 개의 던전석을 센터에 모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양을 기증하는 대신 팔기로 하면, 여현의 펜트하우스보다 더 넓은 집을 수십 채나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장은…… 약간의 출혈을 감수하고서 무상 기부하도록 하지.’

‘일단 이른 시일 안에 가이딩 밴드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

1분1초가 중요한 시점에, 대가를 요구하면서 협상을 하다 보면 영원에게 필요한 업그레이드가 지체되기도 할 터였다.

‘가끔은 기부왕이 되는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물론 3천만 개 전부를 기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머지 1천만 개는 무조건 내 주머니 안에 킵해야지.’

‘나도 알아서 쓸 데가 있으니까.’

‘나중에 남은 1천만 개 들고 있는 거 팔아서 재벌처럼 벌 수도 있고.’

영원은 망설임 없이 서류에 2를 적고는 그 뒤에 연이어 0을 7개 덧붙였다.

[S급 던전석]

[기증각서]

[총 20,000,000(2천만)개]

[이상의 S급 던전석에 대한 소유권을 이하의 기관에 넘긴다]

[각성자 관리·연구·보호 및 신고센터 역삼 본부]

[심영원]

[서명]

영원은 두 손을 모아 쥔 연구원들의 아련한 눈빛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완벽한 로맨스에 빠져들기라도 한 표정이었다.

‘인간들은 이래서 FLEX를 하는 것인가.’

서명을 마침으로써, 막대한 재산을 매우 짧은 시간 내에 탕진해버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영원 가이드님…….”

연구원들의 애절한 찬양이 한동안 계속됐다.

“존경…….”

“그저 빛…….”

다만, 이 이상 연구실에서 던전석 획득 축하 파티를 할 시간은 없었다.

연구원들은 곧장 금고에 던전석을 쓸어 넣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쨌거나 이들은 모두 프로였다.

영원에게 주어진 여유 시간도 거의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영원은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 않고 의총에게 다른 물음을 던졌다.

“박 가이드님, 잠시.”

“네.”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있을까요?”

의총은 그 이유를 묻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개인실로 가시죠.”

영원은 의총을 따라 연구실에 붙은 의총의 개인 사무실로 향했다.

달칵.

영원은 문이 닫히자마자 서론 없이 핵심 용건을 꺼냈다.

“제 전담 에스퍼님에 대한 치료와 관련해서 질문을 드리려고요.”

최대한 빨리 답을 얻고 가야 했다.

“아, 네. 하시죠.”

“만약 S급 던전석을 사용해 여현이의 몸을 치료하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까요?”

“그건 아니겠지만, 치료 자체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겁니다.”

“며칠 안에 안 끝날까요?”

“정확히 며칠일지는 모르겠네요.”

의총은 영원의 물음에 바로바로 답을 주었다.

“몸이 회복되면, 여현이의 능력 자체의 자유도가 일부 회복되기도 하겠죠?”

“네. 약간이기는 하겠지만요.”

“당장 오늘도, 가능할까요?”

“네. 여유 시간만 있다면요.”

영원은 오늘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을 가늠해보았고, 그 와중에 의총은 영원이 궁금해할 만한 몇 가지 사항을 더 알려주었다.

“바다 같은 곳으로 가게 될 겁니다.”

“바다……요.”

“네. 둘이 함께.”

“…….”

“가이드님의 그릇 속으로 초대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치료 과정에서는 정신적인 교감이 중요합니다. 사적이면서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사적인 이야기요?”

“네. 마음이 닿아 있는 것 같다고 확신할 수 있게. 가이딩은 늘 교감의 문제니까요.”

“…….”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고, 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역시 영원으로서는 곧바로 감이 오지 않는 설명이었다.

대체 어떤 주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라는 건지.

그러나 ‘사적이면서 깊은 이야기’라는 구절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치료 도중이나 그 이후에 김여현 에스퍼님이 다소 혼란을 느끼실 수도 있어요.”

“정확히, 어떤 종류의……?”

“잘은 몰라도, 가이딩이 주는 고양감이 불어넣은 혼란이 아닐까요.”

의총은 던전석을 이용한 치료에 관해 많은 데이터가 있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의총이 아는 것도, 각국 연구논문의 치료 케이스를 모두 찾아 알아내었다고.

의총은 던전석 전문가이기에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던전석을 사용해 치료를 해본 경험은 없었다.

“가이드님께서, 혼란이 가실 때까지 에스퍼님 곁에 계속 있어 주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아…… 네.”

영원은 혹시 더 알아야 할 것은 없는지 확인한 다음 사무실을 나왔다. 의총은 더 말씀드릴 것은 없고, 특별한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영원은 이제 화연을 만나러 가야 했다.

달칵.

그렇게 영원이 떠나간 사무실 안에는 의총 혼자만이 남았다.

우웅.

슈퍼컴퓨터 속 팬이 돌아가는 소리만 울렸다.

의총은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여현과 영원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영원의 헌신자’와 ‘우연의 독재자’가 대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매칭률을 올릴 수 있다고.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지.’

하지만 그건 진짜였다.

‘그 결과 만들어진 건…… 정말로 S급끼리는 말도 안 되는 매칭률.’

의총은 손에 S급 던전석 몇 개를 꽉 쥐어봤다.

윤 교수의 낙관이 옮아 온 것인지, 이상하게도 심각한 걱정은 조금도 일지 않았다.

‘윤 교수님께서 열정적으로 설파하신 희망에 동화되었나.’

저들이 구할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단언했다.

‘그러니 나는 나의 일을 하자.’

열 살이 되기도 전부터, 항상 크리스마스 선물로 꿈꿔온 S급 던전석 무더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천만 개.

두근.

심장을 뛰게 하는 숫자였다.

촤르륵.

그리고 의총이 본가의 작업실에서 전부 쓸어온 설계도 더미를 펼쳤을 때, 그는 묘하게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뭐지.’

‘뭐가 없지?’

팔락.

팔락.

의총은 설계도를 하나하나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하나 이상 빠져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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