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여현이 매칭률을 높여달란 말을 한 이유를 알았다.
‘매칭률을 높여야만 시도해 볼 수 있는, 대단히 미친 짓이 있지.’
‘그건…….’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
영문으로는, NON-STOP Guiding-Espering.
“…….”
“…….”
영원은 잠시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이 무엇이었던가 생각했다.
‘에스퍼가 가이딩 받을 때, 가이드의 힘이 에스퍼의 그릇을 채우기도 전에 그 힘을 역류시켜 <멈춤 없이> 사용하는 것.’
마치, 가이드의 그릇과 자신의 그릇 두 개가 모두 자신의 그릇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은 에스퍼가 자신의 그릇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힘을 쓸 수 있어서, 폭발력의 크기만 생각하면 에스퍼가 쓸 수 있는 궁극의 미친 비기였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상대 가이드의 그릇의 크기에는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급 에스퍼와 가이드의 그릇의 크기 차이를 생각하면(보통 가이드 쪽이 압도적으로 크다), 어쨌거나 에스퍼가 평소에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크기의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것만은 분명했다.
‘SSS급 가이드와의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이라.’
‘무한맵 치트키지.’
콰광!
영원은 답이 정말로 없는 크루즈 갑판 위의 현재 상황을 인식했다.
‘정말로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을 한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몰라.’
‘청성과의 언약을 시도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효율적으로.’
‘물론, 더 끔찍한 결과를 낳는 미친 짓이 되어버릴 확률도 상당하고.’
‘망하면 더 제대로 망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비기는 완전히 제대로 정신이 나가버린 또라이 두 명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을 미친 짓이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정도.
하나, 폭주의 위험.
에스퍼들이 그릇을 채우는 자연스러운 가이딩에 역행해 들어오는 힘을 그대로 사용해버리면, 그 힘의 분출 속도를 통제할 수 없어진다.
그래서 가이딩하는 가이드의 역량이 충분치 않으면, 에스퍼가 스스로의 힘을 완전히 소진하게 되어, 폭주에 이를 수도 있었다.
‘아무리 신뢰하는 가이드라고 해도, 목숨줄을 맡기는 짓을 쉽게 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그런 점에서, 내 에스퍼 님은 조금 겁이 없는 편인 것 같기도?’
둘, 의도치 않은 끔찍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위험.
에스퍼가 힘을 미친 듯이 쏟아내면, 그릇에서 빠져나온 힘이 정확히 어떤 일을 벌일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왜냐면, 그런 짓을 한 에스퍼와 가이드가 거의 없었으니까.
무정지 에스퍼링이 단언할 수 있는 결과는 정말로 하나뿐이었다.
초토화.
오직, 초토화.
에스퍼와 그의 가이드를 뺀 나머지 공간에 대한 무차별적인 초토화.
S급 에스퍼와 S급 가이드의 무정지 에스퍼링은 애초에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랬으면 나라 하나가 싹 지워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6대륙 중 하나가 지워졌을 수도.
역사에 기록된 건 B급 에스퍼와 A급 가이드 사이의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뿐이었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다.
‘극지의 빙하들이 심히 녹아내려서 그 후유증에 전 세계가 수년을 고생했다는 내용을 읽었던 듯.’
셋, 요구되는 70% 이상의 매칭률.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이 가능하려면 일단 매칭률 70% 이상이라는 전제 조건부터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런 매칭률이 나오는 에스퍼-가이드 조합 자체가 매우 희귀했다.
‘권장 매칭률은 80% 가까이였던가……?’
‘에스퍼가 힘을 쓰는 것보다 빠르게, 더 미친 속도로 힘을 건네주는 데다가, 힘의 역류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지게 하는 미친 매칭률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상상마저 해볼 수 없는 일이지.’
아무튼, 여현은 저 거대 핫핑크 문어를 처리하기 위해서 그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을 시도해보자는 게 분명했다.
“…….”
“…….”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을 위해 둘 사이의 매칭률을 적어도 70%는 넘겨보자고.
“……여현아, 무정지.”
영원은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진 기나긴 생각을 마치고는 입을 열었다.
“그거 말하는 거지?”
“네.”
여현은 시차 없이 바로 긍정했다.
“지금 매칭률로는 안 돼요. 매칭률을 높이지 않으면.”
영원은 바로 그러자고 말하는 대신, 잠시 여현의 눈을 들여다봤다.
매칭률을 높이자는 제안은 이론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었다.
바로 태엽을 돌려 매칭률을 높이려고 하면, 당장 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무언가가 영원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방금 그레이와의 대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본능적인 거부를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뭐가 이리 거북한 거지.
거대한 무엇에 속절없이 휩쓸릴 것만 같아 이런 것인가.
“지금은 불가능한가요?”
여현의 질문이 영원의 상념을 다시 멈추게 했다.
“아니.”
쾅!
파지직.
쿵!
영원은 근처의 갑판이 무너지는 것을 잠깐 본 뒤 다시 답했다.
“바로 가능이야 하지.”
여현은 아무런 말이나 행동 없이 영원을 보았다.
그렇다면 왜 망설이냐는 무언의 질문을 하는 걸까.
쿵.
콰광!
주변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았다. 편안하게 마주 보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수많은 것들이 얼마 남지 않은 갑판 위로 추락하고 있었고, 그 하나하나가 모두 치명적이었다.
이걸 다 끝내야 살아 나갈 수 있었다. 그래야만 S급 던전석 수천만 개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 수단에 관한 여현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뿌우우우우우-
핫핑크 문어가 대규모 공격을 예고하듯 귀엽게 몸부림쳤다.
영원은 굳은 표정으로 상공을 보았다. 다시 맹독 투하가 시작될 터였다.
사락.
동시에 영원은 옅은 산들바람에 휩쓸리듯, 여현의 품에 가두어졌다.
보호를 위한 행동이었다.
쾅!
퍼버버벅!
여현이 친 보호막이 순식간에 퍼부어진 장난감들의 원거리 공격을 모두 튕겨냈다.
여현은 그 상태로 속삭였다.
“매칭률 높이는 거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 말하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여현의 말은 옳았다.
상처를 치료해주겠다는 일념으로 매칭률을 높이는 게 어떨지 먼저 물어본 것은 영원이었다.
계단 우림에서 얻어 온 S급 던전석이 있으니, 그를 재료로 하여 식도와 피부를 다 원래대로 돌려주겠다고.
여현은 괜찮다며, 몇 번 유하게 거절했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거절 번복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인데.’
‘매칭률 높인 다음에 밖에 나가면 여현이 치료도 해줄 수 있을 거 아냐.’
‘같이 맛집 투어도 할 수 있어.’
그러니 망설임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곧바로 알겠다고 말하지는 못하는 건.’
‘무게감을 지니고 해야 하는 결정이란 걸 알아서겠지.’
‘내가, 여현이가, 모두 바뀌게 될 거야.’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삶에 영향을 주는 거대한 것들이 뒤집히기는 할 거라고.’
여현은 급박한 위험이 끊임없이 닥치는 크루즈 위에서도, 영원을 조금도 다그치지 않고 기다렸다.
영원은 여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에 강하지 않은 힘이 실렸다.
동시에 관리자 오색문어가, 핫핑크 문어가 만들고 있는 대환장의 상황에 잠시 개입했다.
도로로로로롱!
[잠시 소강!]
[15분 타임! ✿♥‿♥✿]
[이후 후반전 개시합니다]
[작전타임을 드려요!]
나이스 타이밍인지, 아닌지.
핫핑크 문어, 각종 장난감이 얼음처럼 굳었다.
그러나 핫핑크 문어가 이미 뿜어댄 맹독으로 갑판이 바스러지는 건 멈추지 않았다.
파직.
쿵.
영원은 여전히 여현의 어깨 위에 손을 두고 있었다.
매칭률을 조정할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마치 이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관리자가 판을 깔아 주었다.
둘이 그렇게 마주 보고 서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오가던 대화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나머지 하트 팀 팀원들이 다소 지친 얼굴로 다가왔다.
“따라주셔야 할 게 있어요.”
영원이 다가오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여현에게 고정된 채였다.
“응? 네?”
“무슨 일 있어요?”
백율과 이창결이 물었다.
영원은 그제야 다른 팀원들을 보았다.
“아마도요.”
“…….”
“저랑 여현이, 둘만 여기 던전 안에 남으려고요.”
분위기가 진지했다. 다른 이들은 이어지는 설명을 기다렸다.
영원은 평온한 어조로 덧붙였다.
“무정지 가이딩-에스퍼링.”
“…….”
“저랑 여현이 외의 다른 모든 게 박살 날 테니까요. 안전지대라고는 하나도 없이.”
“…….”
설득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도 그러한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쿠구궁.
철썩.
크루즈 외벽의 거대한 조각 하나가 또 바다로 떨어졌다.
“여현아.”
“네.”
“그래, 하자.”
영원은 여현에게도 말했다.
이 결정으로, 앞으로 무언가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과한 집착과 의존. 그런 게 정말로 오게 될까.’
예기치 못한 진행에 완벽하게 휩쓸릴 걸 각오했다.
뭐 어쩌겠는가.
“가이드님.”
여현 역시도 영원이 내려야만 하는 결단의 무게를 이해했다.
제안은 여현에게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엄청난 매칭률에 휩쓸려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게 되는 건 보통 가이드보다는 에스퍼 쪽인 경우가 압도적이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
“걱정하지 마세요.”
“응.”
영원은 매칭률 조정에 들어가기 전에, 나머지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레이가 중국에서 뭘 벌인다고 했어요. 밖에 나가면, 일단 그걸 확인해주세요.”
“더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나요?”
“네. 그 이상은 모르겠어요.”
팀원들은 의견을 잠시 교환하더니, 나가자마자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금방 영원과 여현의 결정에 따라 나갈 준비를 마쳤다.
“현아. 살아서 돌아와. 가이드님도, 다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네.”
“멀쩡히 나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락.
미약한 공기의 진동만을 남기고, 팀원들은 퇴장했다.
이제 다른 선택지는 남지 않았다.
“할게.”
“네.”
영원은 여현의 가까이로 갔다. 그의 눈가에 손을 얹으며, 그의 눈을 보았다.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갈 시간이었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니고, 완벽하게 제 의지로 미친 짓을 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