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로롱.
관리자, ‘오색문어’의 알림이 살얼음판 같은 대치 사이로 개입했다.
[그래요 ✧(>o<)ノ✧]
[서로 상처 주지 않는 채로 대치만 하는 거, 좋습니다!]
[\\(۶•̀ᴗ•́)۶////]
[데스매치가 시작되어도, 여전히 사람의 몸에 상처를 내면 안 됩니다]
[평화, 평화, 피쓰♡]
콰과광!
그리고 핫핑크 문어가 다시 기지개를 켰다.
그나마 남아있던 카지노 건물의 모호한 형체마저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리고 문어의 다리 하나가 여현과 그레이 사이를 강타했다.
스륵.
쾅!
여현과 그레이는 모두 핫핑크색 다리가 갑판에 닿기 전에 뒤로 멀리 이동했다.
그레이는 홀로, 여현은 영원의 양쪽 다리오금에 팔을 넣어 안아 들고서.
이후에는, 인간끼리는 서로를 상처 입힐 수 없는데도 왜 마지막 게임의 이름이 ‘데스매치’인지 알 수밖에 없는 이벤트가 연이어 찾아왔다.
죽을 위기를 선물할 귀여운 것들이 이 크루즈 위에는 너무나 많았다.
와다다다다다!
카지노 지하 2층에 쌓여 있던 인형들이 공격적으로 튀어나왔다.
호두까기 인형과 공중에 뜬 파스텔톤 모빌이 사방으로 폭죽을 뿌렸다.
퍼버벙!
펑!
지하 1층의 탱크들도 사방으로 포를 날려대기 시작했다.
쾅!
콰광!
“미친!”
백율이 비명을 지르며 여현의 옆으로 왔다.
다른 하트 팀 팀원들 역시 영원과 여현의 가까이 왔다.
파바박.
여현이 바리케이드로 장난감들과 하트 팀 사이를 분리했다.
콰광!
쿵!
여현이 급히 세운 높은 바리케이드에는 금방 균열이 생겼다.
급조한 바리케이드가 버티는 건 3분이 한계일 듯했다.
철썩!
쿵!
그리고 엄청난 소리가 들린 뒤편을 보니, 유일한 거대 오리로 합쳐진 노랑 오리가 크루즈 옆면에 강렬히 몸통박치기를 하고 있었다.
“…….”
“돌겠네.”
이창결이 한숨 쉬듯 말했다.
[살아남아야 합니다]
[관리자, ‘오색문어’가 과거에 한 약속을 해지합니다]
[이제 적당히 다쳤다고 지구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그거 끝( ⁎ ᵕᴗᵕ ⁎ )]
[이제 그냥 여기서 죽을 수 있어요!]
[무셔라]
바리케이드 너머, 핫핑크 문어의 포효도 더욱 거세어졌다.
뿌우우우우우!
영원의 직감이 말했다.
‘찐은 쟤야.’
‘오리나 탱크나 호두까기 인형은 절대 찐이 아냐.’
‘누가 봐도 저 핫핑크야.’
‘일단 무엇보다, 이 동네 보스를 머리에 장식처럼 얹고 있잖아.’
그리고 모두가 놀라운 눈으로 그 핫핑크 문어를 보았다.
부웅.
슈우욱.
‘!’
핫핑크 문어는, 공중을 부유할 수도 있었다.
문어는 허공이 바다라도 되는 양, 다리를 휘적거리며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다.
게임 테이블을 헤어핀처럼 매끈한 머리 위에 올린 자태야 참 귀여웠다.
뿌우-!
내는 소리마저 귀여웠다.
퍼콱!
그러나 그다음에 순식간에 아래로 내리꽂힌 핵폭탄보다 강한 먹물은 조금도 귀여울 수가 없었다.
솨아악.
먹물은 산성의 독 같았다.
그냥 산성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 것도 분명해 보였고.
‘그냥 독일 리가 없지.’
‘진짜 맹독이야.’
‘찐 맹독.’
‘강강강강강산의 매우매우매우 끔찍한 독.’
핫핑크 문어가 찐이라는 영원의 직감은 옳았다.
푸우욱!
크루즈 중앙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카지노 게임장은 액체처럼 흐물거렸다. 그리고 연기를 내며 증발했다.
독은 옆으로 번지고 번져 크루즈 중앙부의 모든 형체를 망가뜨렸다.
사방이 더욱 난장판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문어가 장난감들을 한 팀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지, 문어의 독에 장난감들까지 녹아내리고 있다는 거였다.
“더 뒤로.”
여현의 작은 읊조림에 맞추어, 하트 팀은 노랑 오리의 코앞까지 갔다.
쿵!
갑판 위로 올라오려는 듯 박치기하는 노랑 오리는, 헬파이어를 뿜을지언정 문어처럼 독을 토하지는 않았으니까.
크루즈 사방에 무슨 괴물 같은 인형이 있든, 일단 저 거대 핫핑크 문어와 거리부터 확보해야 했다.
그레이도, 여현도, 누구도 같은 판단을 했다.
그래서 크루즈 중앙에 문어를 두고 한쪽 끝에는 스페이드 팀이, 다른 한쪽 끝에는 하트 팀이 모였다.
퍽!
그리고 뒤편의 오리는 어쨌거나 저 멀리 밀어버려 처리하는 방법이 있었다.
이창결의 힘으로 오리는 금방 저 먼 바다로 밀려 나갔다.
‘잘 가렴.’
그러나 공중의 문어에게는 비슷한 시도가 먹히지 않았다.
“안 움직여.”
“나도.”
백율과 이창결이 의사를 교환했다.
여현은 힘을 쓰지 않고 일단 문어의 행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콰쾅!
핫핑크 문어는 계속하여 귀여운 몸부림을 멈추지 않았다.
여현이 세운 바리케이드는 예상대로 무용지물이 됐다.
‘귀여울수록 이래도 되는 거야?’
퍼버벙!
귀여운 소리를 내며 문어가 입에서 뱉은 폭탄은 크루즈 전체를 동서로 가르는 균열을 만들었다.
쿠구궁.
작은 균열은 순식간에 확대되어, 크루즈의 갑판이 급격하게 위로 솟았다.
배는 당장이라도 두 동강이 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5분은 걸렸을까.
도로롱.
[이제 데스매치입니다]
[앞으로 10시간]
[살아남은 이들만 본인이 소유한 것의 3배의 던전석을 가지고 나갈 수 있어요]
[인생은 실전이고]
[반전의 연속인 점이 묘미이지요]
[ƪ( ˘ ⌣˘ )ʃ]
[너무 평화로운 것만 기대하진 마세요]
[삶은, 언제나 기대를 따르지만은 않는 법 ⊂((・▽・))⊃]
[그럼 ‘0’이 카운트되면 시작됩니다]
“뭐야, 아직 시작된 거 아니었어?!”
백율의 외침이 크루즈 위에 선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상처는 없이 잘 싸워보자고요]
[다시 한번 알리지만]
[이제는 죽는 거 안 막습니다]
[죽고 싶으면 죽어요!]
[장렬하게!]
‘야, 오색문어!’
‘너 상처 입히기 싫다며!’
‘평화를 추구한다며!’
‘너님 일관성 어디에?’
물론 영원이 속으로 소리쳐봤자 아무것도 바뀌지는 않을 터였다.
관리자가 꼭 일관성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였다.
“가이드님.”
그리고 여현의 부름이 들렸다.
영원은 그것만으로도 그가 바라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난장이 정말로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여현은 가이딩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영원은 여현의 품에 안긴 채로 여현의 한쪽 눈을 봤다.
자유로운 손으로 조금 드러난 그의 피부에 손을 대었다.
고민과 긴장이 무색하게, 많은 것들이 편안해졌다.
‘내 에스퍼의 한계를 알지 못해.’
그게 두렵진 않았다.
‘내가 필요하다는 건 알지.’
‘내가 그의 가이드니까.’
그건 의심하지 않았다.
스륵.
충족이 이루어진 순간은 찰나였다. 여현의 그릇은 금방 채워졌다.
애정과 공감의 힘으로.
[‘0’]
5, 4, 3, 2, 1 따위는 없었다.
오색문어는 바로 0을 외쳤다.
‘야, 문어!’
영원은 다시 속으로 소리 질렀다.
‘아니, 카운트다운 국룰도 모르는 게 말이 됨?’
갑자기 영원에게 비호감 비평화주의자가 된 오색문어가 진정한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
겨우, 1시간 경과.
“하아. 하아.”
갑판 위의 모두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스페이드 팀의 상당수는 사망했다.
저 멀리 있는 그레이마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쿵.
쩌저적.
영원과 그레이는 핫핑크 문어를 막기 위해 연금술도 사용했다.
여현은 그 누구보다 엄청난 힘을 쏟아내며, 중간에 조금이라도 짬이 날 때마다 영원에게 가이딩을 받았다.
그래도 핫핑크 문어는 조금도 상처 입지 않았다.
갈수록 더 진득한 독을 뱉을 뿐이었다.
자신에게 가해진 공격으로 더 농축된 독을 만들기라도 하는 듯이.
“현아, 이번엔 저쪽 장난감들을 저 안으로 밀어 넣자.”
“네.”
그 와중에 하트 팀과 스페이드 팀은 모두 핫핑크 문어가 독을 뱉을 때마다 그 독이 녹일 영역 안에 장난감들을 유인해 몰아넣는 방식으로 상당한 양의 몹들을 처리했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공격력 수치가 높은 건 공중에 떠서 미친 짓을 하는 저 문어였으니까.
“10억 개를 얻기는 무슨. 그냥 다 죽어 나가겠네.”
백율은 어이없는 얼굴로 여전히 귀여운 자태를 뽐내는 문어를 노려보았다.
영원 역시 비슷한 기분이었다.
‘오색문어는 정말로 10억 개의 S급 던전석을 줄 생각은 없던 게 아닐까?’
‘그냥 10억으로 꼬여내서 나름대로 오래 살아남은 애들 다 죽이려는 거 야냐?’
괜한 음모론까지 떠올랐다.
극악 난도의 보스는 긍정킹 심영원에게도 피해망상을 불어 넣었다.
“쌤. 원래 보스들 다 저러는 거 아니죠?”
영원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화연에게 묻기도 했다.
“저런 보스는 없었어요. 엄밀하게 말하면, 저 문어는 보스도 아니지만. 룰렛 테이블 같은 보스는, 더더욱 없었고요.”
셀 수 없이 많은 던전을 경험한 화연의 평가도 그랬다.
영원도 백율처럼 힘주어 문어를 노려보았다.
살을 내주고 뼈를 깎는 전술을 쓰라고 하면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정말 저 문어의 능력의 끝이 이 정도에서 그치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 문제였다.
‘지금 드러난 공격력이나 방어력은, 극단의 연금술로 밀어버릴 수 있어.’
‘청성과의 언약을 이끌어 내면 되니까.’
영원은 아직은, 괴롭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문어와 싸워 이길 자신은 있었다.
‘바다는 전부 독극물로 뒤덮였잖아.’
‘10시간이 지나기 전에 딛고 서 있을 갑판도 없어질 것 같고.’
‘10시간은 무슨. 주어진 건 고작 2시간 정도가 전부야.’
‘시간이 많지 않아.’
갑판이 사라져도 날아서 공중에 떠 있는 건, 핫핑크 문어의 머리 위의 테이블 때문에 할 수 없었다.
헤어핀처럼만 보이는 보스, ‘룰렛 테이블’은 공중에 떠오르는 모든 인간에게 엄청난 화력의 화살을 쏘았다.
스페이드 팀 몇 명의 슬픈 희생으로 각성자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 테이블은 보스가 맞았다.
‘핫핑크 문어는 찐이고.’
‘룰렛 테이블은 찐찐이야.’
영원은 저 테이블이 하는 짓을 보고, 핫핑크 문어에 대한 평가를 수정하지는 않고 룰렛 테이블에 대한 평가만을 수정했다.
“여현아.”
“네.”
영원은 결국 여현에게 제안을 하기로 했다.
“연금술을 써볼 수 있어.”
“…….”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아주 짧은 여유를 틈탄 말이었다.
더 대화가 이어지면 금방 또 문어가 난리를 칠 터였다.
그러니 영원이 하려는 건 설득이 아니라 결단을 알리는 일이었다.
“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여현의 생각은 달랐다.
“매칭률.”
“…….”
“높여주세요.”
“…….”
여현의 답은, 영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