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56화 (56/142)

쾅!

그레이가 3층 VIP룸의 문을 과격하게 열었다.

쿵. 쩌적.

근육의 힘만을 사용했는데도, 상당한 두께의 문이 내측 벽과 충돌하며 벽에 균열을 만들었다.

멀리서 공격적인 구둣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레이의 방문을 예견하고 있던 영원과 여현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레이의 등장을 보고 놀라서 뛰어온 이창결, 백율, 장제권, 강화연은 문밖에서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페이드 팀의 나머지 팀원들은 1층에서 대기하는 중인 듯했다.

쾅!

그레이는 VIP룸 안으로 들어와서는 본인이 열고 들어온 문을 또 거세게 닫았다.

‘괜찮아요.’

영원은 그레이의 행위 직전에 밖에 있는 팀원들에게 입 모양으로 계속 아래에서 쉬어도 된다는 뜻을 전했다.

철컥.

그레이가 뒤돌아, 문에 잠금장치까지 걸어버렸다.

여현은 그레이가 문을 열기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영원과 그레이 사이에 서 있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영원은 그레이에게 나름대로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왔어?”

“…….”

그레이는 여현을 마주 보다 영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바람 때문에 문이 큰 소리로 닫힌 거라고 변명하진 않을 표정이네.’

‘S급 던전석이 확실히 간절하기는 했나 봐?’

그녀를 보는 그레이의 눈빛은 차가웠으나 입가엔 미소가 있었다.

섬뜩한 웃음이었다.

아주 깊은 빡침을 뒤에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한 인위적인 웃음.

세계 랭킹 1위에게, 이런 농락당한 느낌은 아주 낯설 터였다.

그래서 영원은 한 번 더 밝게 그레이를 맞아주었다.

“어서 와. 늦었네.”

물론 속마음은 표정과는 다소 달랐다.

‘좀만 더 늦게 오지.’

‘1천만 골드까지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안타까워라.’

그러면서 영원은 자신의 연보라색 문어의 머리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톡.

샥.

문어가 순식간에 테이블 위 골드를 흡입했다.

영원이 게임을 하다 알게 된 문어의 기능 덕분이었다.

골드를 따서 골드의 산이 거대해질수록, 영원은 능력도 쓰지 않고 수백만 개의 금화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문어의 뒤통수를 톡 치면 문어가 골드를 먹습니다. 더블 터치를 하면 다시 골드를 뱉어냅니다!’

‘그 중간에 터치하면 문어가 골드를 뱉는 걸 멈추게 정지시킬 수도 있구요!’

그 타이밍에 문어가 알아서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한 번 때리면 영원이 딴 골드가 다시 문어의 삐죽 튀어나온 입으로 빨려 들어갔고, 두 번 연달아 때리면 다시 뱉어냈다.

‘무선 이어폰 싱글, 더블 터치 기능 같은 거지.’

문어가 골드를 뱉는 중에 다시 머리를 건드리면 문어가 골드를 그만 뱉었다.

거기서 또 한 번 치면 다시 골드를 먹고, 두 번 치면 다시 더 골드를 뱉었다.

그리고 다른 참여자의 문어를 볼 수는 있지만, 상대의 문어를 만질 수는 없었다.

여러 번 다시 시험해보아도 영원의 손은 여현의 문어를 통과하기만 할 뿐이었다.

‘나름대로 골드 절도 방지에 관해서는 괜찮은 시스템이야.’

‘덕분에 훔쳐갈 수가 없지.’

‘가져가도 내 문어로 다시 흡수해 오면 되니까.’

아무튼, 지금 새로이 나타난 그레이는 잔잔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게임 테이블 위를 훑었다.

표정은 꽤 다정해 보였으나, 그를 감싼 분위기가 말하는 바는 조금 달랐다.

“무슨…….”

목소리 톤 역시 특별하지 않았다.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러나 분명히 느리게 뱉는 문장에 분노가 꾹꾹 눌러 담겨 있을 터였다.

그러자 영원은 짐짓 놀란 듯한 표정을 옅게 지어주었다.

‘보면 모르겠니?’라는 듯.

영원이 테이블에 앉은 채로 꼬고 앉은 다리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야…… 여현이랑 게임?”

“…….”

“음. 블랙잭이라는 게임이 있어.”

영원은 테이블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부연했다.

그레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고는 더욱 짙게 웃으며 물었다.

“……너희, 트릭을 썼나?”

“아니. 우리가 지력이 꽤 높은 편이라.”

“…….”

“멍청한 너는 상상도 못 하는 걸 해내지.”

영원은 꽤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지하 투어로 골드를 얻는 것보다, 이게 좋은 루트라는 걸 빨리 알았고.”

“…….”

어디 한번 제대로 열 받아서 능력을 써 볼 테면 써 보라는 식이었다.

어차피 그러면 탈락하는 건 너니까.

뚜둑.

그레이의 손에서 무언가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고, 여현의 분위기가 더 차분해졌다.

“재밌네.”

그레이는 조금도 재밌어 보이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뚜벅. 뚜벅.

드륵.

그리고는 테이블을 둘러싼 의자 중 빈 자리 앞으로 갔다.

“나도 할게.”

웃는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서슬 퍼런 시선에도 영원은 여유를 잃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여현의 손목을 잡아 그를 다시 앉혔다.

여현은 그레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자리에 앉았다.

비슷한 순간에 그레이 역시 착석했다.

―게임은 블랙잭입니다.

구체관절인형이 새로운 게임 참여자를 발견하자 똑같은 안내를 시작했다.

―카드를 한 장씩 받아가며 21에 가까운 합이 이기고, 21을 넘기면 지는 게임입니다. 더 상세한 설명을 원하십니까?

“아니.”

그레이는 영원처럼 깔끔하게 거절했다.

―8개의 덱으로 진행합니다.

―한 번에 걸 수 있는 레이트의 상한은 1만 골드입니다.

―카운팅을 위한 메모는 하실 수 없습니다. 필기구 사용은 금지됩니다.

―얼마를 배팅하시겠습니까?

영원은 턱을 괴고 그레이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1만 골드.”

연보라색 문어가 골드를 쏟아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

그를 보는 그레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만.”

여현 역시 같은 양을 배팅했다.

“10골드.”

그레이는 그보다 한참 모자란 양을 걸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또한, 예상과 같이, 그레이는 처음엔 312개의 카드로 카운팅을 하는 것에 능하지 못했다.

뚜둑.

그레이는 심히 화사하게 웃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꺾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랭킹 1위가 1위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영원은 그레이가 승률을 높이는 계산 방식을 알아내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유한한 312개의 카드. 카드 숫자의 합이 21에 가까워질 확률. 사고의 재료는 딱 그 정도였으니까.

블랙잭은 꽤 직관적인 룰을 가진 게임이었고, 그레이가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할 만큼 멍청할 리도 없었다.

영원과 여현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레이는 빠른 속도로 골드를 쌓아갔다.

영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게임에 집중한 그레이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레이 역시 연성진 없이 연금술을 쓰는 연금술사였지.’

그레이가 결국은 적당한 방법을 찾아냈다는 게 놀랍지는 않았다.

‘야악간 안타까울 뿐.’

‘하지만 또 우위가 완벽하게 이쪽에 있다는 것도 분명하고.’

―얼마를 배팅하시겠습니까?

“1만 골드.”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얼마를 배팅하시겠습니까?

두두두두두두두두두.

“1만 골드.”

플레이는 조용하게 이어졌고, 문어가 골드를 쏟아내는 결과가 반복됐다.

그리고 영원은 1천만 골드의 고지를 정말로 목전에 두었다.

톡. 톡.

영원은 골드 하나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마지막 배팅에 앞서 여현을 보았다.

여현 역시 영원이 한 번만 더 게임을 하면 1천만 골드를 얻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레이 역시 영원과 여현의 반응으로 그를 알아챈 듯했다.

“…….”

관리자의 안내에 따르면 1천만 골드를 획득하면 문어와 올인 게임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영원은 대체 그 올인 게임이 무엇일지 가늠해보는 중이었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1만 골드.”

영원은 마지막 배팅을 했다.

승리했다.

그리고…….

도로로로로로롱.

그리고 상당한 기쁨으로 고조되었던 영원의 기분을 급격히 뒤집은 알림이 왔다.

[잠깐, 타임!]

[한쪽에만 너무 골드가 몰려서 밸런스 조정을 약간 해야 할 것 같아요]

“…….”

“…….”

[하트 팀은 맘속에 품은 예쁜 ♥로 이해해 주세요! (。•̀ᴗ-)✧]

[이미 딴 골드도 많아서 유리하잖아요♥]

‘뭘 이해해?’

‘관리자 도랏?’

‘미쳤?’

영원의 내적 외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관리자는 추가 알림만 연이어 보냈다.

도롱.

도로로로로롱.

[심영원, 1천만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메인 이벤트가 게시됩니다]

[보스, ‘룰렛 테이블’ 소환 개시]

[지상 3층의 게임룸을 영구히 폐쇄합니다]

[룰렛 테이블이 있는 지하 3층으로 고고씽]

[다만, (⑅´•⌔•`)*✲゚*。]

[헤헤♥]

[말했듯, 밸런스를 고려해 양 팀의 대표 한 명씩만 지하 3층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일대일로 숫자를 맞추는 게 공평공평하니까요!]

누구도 그게 왜 ‘공평공평’한 건지 몰랐지만, 아무튼 관리자만의 독단적인 논리에 따르면 그런 듯했다.

[팀 대표를 다음과 같이 선별해냅니다]

[하트♥ 심영원, ‘우연의 독재자’]

[스페이드♠ 그레이 딘하우스, ‘유일자’]

‘하아.’

그러나 영원은 어쩔 수 없는 긍정킹이었다.

‘그래, 뭐.’

영원은 마음을 다스린 뒤 눈을 감았다.

‘어느 정도는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자.’

‘보통 무언가가 꽤 잘 풀린다 싶을 때는 끝에 한 번씩 이렇게 되더라.’

영원은 그레이와 둘만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몹시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결국 잘 해내서 10억 골드를 벌어 가면 되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마지막 게임의 룰은 모르지만, 관리자가 ‘이미 딴 골드가 많아서 유리하다’고 했으니, 있는 골드를 바탕으로 하는 무엇일 확률이 높았다.

쿵.

영원과 그레이는 금방 지하 3층의 방에 떨어졌다.

방 중앙에 룰렛이 얹어진 테이블이 보였다.

저게 바로 보스, ‘룰렛 테이블’일 터였다.

***

윤희유 교수와 박의총 가이드는 당직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영원과 여현이 던전에 들어가기 전까지 함께 있던 곳이었다.

영원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윤 교수가, 여현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의총이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 근처의 컨퍼런스콜 용 스피커에서 요련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지나 스피넬과 이반 하이제렌은 S급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어요.

―중국 쪽에 무언가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기도 했고요.

―둘이 왜 중국에 갔는지, 정말 가기는 했는지 파악 중입니다.

―그리고 던전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이 던전에 대한 정보를 주고 있어요.

―다친 사람이 발생할 수가 없는 구조라고들 합니다.

윤 교수와 의총은 요련이 빠르게 전해주는 정보들을 집중해서 들었다.

―일단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이따 만날 그분과는 정말 오랜만의 접견인데, 만남이 성사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다시 연락드릴게요!

요련이 정보원과 접촉하기 위해 통화를 종료했다.

일단, 나쁜 소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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