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53화 (53/142)

클로버 팀은 장난감 탱크로 가득한 지하 1층은 어찌어찌 벗어났다.

펑!

“제가 먼저 지구로 돌아가겠습니다!”

콰콱!

“윽!”

200명 가까운 팀원들을 하나하나 먼저 지구로 돌려보내면서.

그리하여 지하 2층까지 15명 정도는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도달한 지하 2층.

클로버 팀은 그곳에서 장난감 탱크보다 더 굉장한 것들을 만났다.

귀엽고 귀여우며 귀여운 장난감들.

화사한 비주얼로 클로버 팀을 반갑게 맞이해준 귀요미들은 바다에서 밀려오는 오리 등등보다 수천 배는 강했다.

팡!

파방!

맨 앞의 호두까기 인형이 폭죽을 터트리자 남은 클로버 팀 전원은 3분 만에 끝장났다.

관리자 □□□□는 참여자들이 사망하는 걸 볼 생각이 없기에 일정 이상 상처를 입으면 참여자를 던전에서 퇴장시켜버렸는데, 그런 관리자의 지침이 클로버 팀의 더욱 빠른 패배를 돕기도 했다.

실제 이곳이 던전 밖이라면 당링링이 죽을 각오로 추가 공격을 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리자가 권능으로 창조한 공간에서는 얄짤없었다.

쾅!

“읍.”

당링링의 왼팔에 깊은 상흔이 생기려고 하자, 던전에서의 그녀의 존재 자체가 흐려졌다.

[팀 클로버 ♣, 213명 전원 탈락]

그렇게 당링링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클로버 팀 중에서는 가장 늦게 던전에서 퇴장했다.

영원을 포함한 하트 팀은 그 과정을 야외 테라스에서 내내 관찰하고 있었다.

‘회복 불가능한 상처가 남을 것 같으면 바로 이 던전에서 추방이야.’

‘그렇다면…….’

영원은 S급 던전에 떨어져 프라이빗 게임장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부터 하고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뱉었다.

“그냥 게임이나 해야겠네요.”

영원은 최대한 게임에 대한 본인의 애정과 사심을 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농땡이 치면서 놀고 싶어서 여기서 게임이나 하겠다는 거 아님.’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기…….’

‘아니, 절대 아님.’

‘아무튼 아님.’

영원은 목을 가다듬고 가볍게 말했다.

“테이블 게임으로 그냥 골드를 따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VIP룸에서 할 수 있는, 확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게임을 떠올렸다.

블랙잭.

두 카드의 합이 21에 가까우면 이기는 게임.

“블랙잭. 3층 VIP룸에서 8덱 블랙잭을 플레이할 수 있는 모양이던데요.”

블랙잭은 기본적으로 카운팅으로 승률을 높일 수 있는 게임이었다.

확률을 계산해서 승률을 50%보다 높이면 자금 회수율을 100%가 넘게 만들 수 있었다.

그건 시행횟수를 계속 늘리면 돈을 딸 수밖에 없게 된다는, ‘도박’이 아닌 도박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시간을 충분히 들이면, 좀 걸리기는 하겠지만, 10억 골드, 게임으로 못 벌 것도 없지 않나요.”

다들 잠시 침묵했다.

한동안 공간이 재즈풍의 음악으로만 채워졌다.

“네. 그렇게 하죠.”

여현이 영원의 제안에 힘을 실어주었다.

나머지 넷은 잠시 고민에 잠긴 표정을 했다.

그들은 그들이 그동안 정복해 온 던전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있었다.

이창결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더니 운을 뗐다.

“목숨을 던질 각오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S급 던전은 여태껏 없었지만, 일단 평화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는 게 좋겠네요.”

백율 역시 말을 더했다.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 가장 끔찍했던 기억이 많기는 하지만, 예외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보통 백율이 거쳐온 던전은 풍경이 귀엽고 예쁠수록 마지막에 더욱 잔혹해졌다.

“다만, 상황이 틀어질 때를 대비하기로 하죠. 마지막엔 결국 무력으로 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이곳에 떨어졌을 때도 자연스레 생각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그림이 이 동화 같은 배경 위에 덧칠될 수도 있겠다고.

다른 팀의 랭커나 비선별들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당링링도 처음부터 그냥 무력전을 택했을 테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평화로운 엔딩도 불가능할 건 없다.

세상 모든 일은 과거와 똑같이 반복되지만은 않는다.

두 명의 부장은 영원과 여현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겪은 과거의 경험이 통하지 않을 새 환경을 만났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센터의 두 부장은 부장의 직함을 단, 나름대로 기득권층이기는 했지만 상당히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들이었다.

화연과 장제권도 설득된 듯 보였다.

모두의 동의를 받은 영원이 여현을 보았다.

‘당직실에서도 여현이랑 카드게임을 하다가 왔지.’

52장의 카드 4벌에서 다음 카드가 무엇일지 확률을 정교하게 계산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고도의 두뇌게임이었다.

“여현아.”

여현이 아니고서는 영원이 설명하는 복잡한 게임 규칙을 이해하지도 못할 만큼 대단히 난해한 게임.

“다른 능력 조금도 안 쓰고 416장 정도야 카운팅 할 수 있지?”

8덱으로 하는 블랙잭.

그건 52장이 1벌로 들어있는 카드 8팩이 동시에 사용되어, 416장(주: 52장×8팩)을 테이블 위에 두고 해야만 하는 확률 계산 게임이었다.

‘그래도 불가능하지 않아.’

‘타고난 관찰력으로 카드 자체의 미세한 특이점을 기억해낼 수도 있고.’

기계가 매번 셔플을 돌려 카드를 완전히 섞어버리는 것만 아니라면 블랙잭의 승률을 높이는 계산(카운팅)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네.”

여현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당연히, 나도야.”

영원은 바로 다른 넷을 보았다.

미소를 옅게 띤 즐거운 표정이었다.

“정말 저 구체관절인형들이 골드 안 주려고 총 꺼내 든 다음에 핵폭탄 날리는 짓만 안 하면 저랑 여현이가 10억 골드 벌 수 있어요.”

돈 놓고 돈 먹으면 되는 곳에서는 돈을 놓고 돈을 먹어주면 되는 거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영원이 턱을 괴고 먼 밤하늘을 보았다.

“제가 여태까지 카지노에 가서 돈을 털어오지 않았던 건, 카지노까지 가기가 귀찮아서였던 것 같아요.”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그것도 근거가 아주 공고해 보이는 자신감.

***

다만, 영원이 10억 골드를 차질 없이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큰 문제가 있었다.

현재 크루즈 외곽에 있는 그레이 딘하우스.

그레이가 영원의 테이블 게임을 훼방 놓기로 작정하면, 계획대로 고고하게 10억을 챙겨서 떠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던전의 규칙에 따라 상처를 입히는 공격을 못 한다고는 해도…….’

‘상상력을 발휘해서 귀찮은 간섭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

‘아니면 똑같이 테이블 게임으로 골드를 따려고 할 수도 있겠고.’

그레이 딘하우스와 10억 골드를 나누어 가지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도 곤란했다.

영원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잠시 통화를 하며 들었던 박의총 가이드의 음성을 생각했다.

―던전석 10억 개는 꿈의 숫자라, 솔직히 던전석을 그만큼 얻을 수 있다는 게 상상도 안 돼요.

―1만 개만 있어도 시도해보고 싶은,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어마어마하게 설레고 두근거릴 만큼요.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S급 던전석 5억 개를 가지고 그레이가 나머지 5억 개를 가지는 상황이 되느니, 둘 다 단 하나도 따지 않는 게 나을 거예요.

영원 역시 그의 의견에 설득됐다.

‘그레이 쪽이 계속 던전석 부족난을 겪게 두는 게 나아.’

서로 5억 개씩을 챙겨 나가면 그레이에게 더 만족할 만한 성과가 될 터였다.

‘어마어마한 던전석으로 무궁무진한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게 박의총 가이드 한 명뿐인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레이 모르게 게임에서 골드를 털어가야만 했다.

‘반드시.’

테이블 게임으로 골드를 얻기로 정한 뒤, 하트 팀 팀원들은 어떻게 게임에서 승리할지 고민하진 않았다.

그야 영원과 여현이 알아서 잘 해낼 일이었다.

다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건 그레이를 따돌릴 방법이었다.

“일단 스캔이 안 되는 3층 VIP룸에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건 분명해요.”

화연의 말이 끝나고 모두가 VIP룸이 있는 위편을 보았다.

백율이 한마디를 얹었다.

“맞아. 특수한 힘을 못 쓰면 지금처럼 음성이나 영상 교란을 할 수도 없을 테니, 게임장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진 못할 거야.”

지금 하트 팀은 야외 테라스에서, 멀리 있는 그레이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모든 행동을 파악할 수는 없도록 음성과 영상을 교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게임장 내부에서 힘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레이는 ‘게임장 외부’인 지하에서 힘을 쓰며 하트 팀이 게임장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 낼 터였다.

“어떤 핑계를 대야 우리는 저 안에 들어가 있고, 그레이는 지하로 내려가게 만들 수 있을까요?”

하트 팀은 그레이를 지하로 내려보내고 그 사이에 영원과 여현이 VIP룸에서 게임을 진행해 골드를 따게 만들 계획이었다.

그레이가 어느 순간 이상하다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최소 몇 시간은 지하 공략에 집중할 터였다.

‘이쪽 계획을 눈치채고 열 받아 올라온다고 해도, 이미 이쪽은 최소 수만 골드를 따 두었겠지.’

‘문제는 일단 의심 없이 내려보내는 거야.’

여섯은 화연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민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될 것 같은데.”

백율이 이창결에게 말했다.

“너무 쉽게 지하 탐방을 체념한 것처럼 굴면 안 된다는 거지? 우리가 그리 쉽게 단념하고 늘어질 캐릭터처럼 보이진 않는 편이니까.”

이창결의 답에 백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다가 하트 팀 팀원들은 한순간에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침묵했다.

방금, 그레이 딘하우스가 크루즈 외곽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게임장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

알림이 연이어 왔다.

도로로로로롱.

도로롱,

[‘프라이빗 게임장’에 잔존한 모든 팀의 팀원이 일부라도 진입하였습니다]

[□□□□의 메인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메인 퀘스트 타이틀: 진짜 베팅은 1천만 골드부터!]

[1천만 골드를 누군가 획득하면 되어요]

[던전의 관리자, □□□□가 메인 퀘스트의 보상에 대해 안내합니다]

[성공 시▷ 귀요미 문어와의 올인 게임 도전 기회 제공!]

모두가 소지한 작은 문어 역시 스피커로 소리를 냈다.

―본격적인 게임 진입에 환영하여요!

―싸우지 마시고, 서로 친하게 즐겁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파뤼파뤼 뷰리플 나잇!

하트 팀은 계속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타박. 타박.

게임장 1층의 문으로 진입한 그레이가 계단을 올랐다.

그는 잠시 3층 VIP룸에 들렀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그레이를 제외한 스페이드 팀은 중간에 멈추어 섰고, 그레이는 계속하여 하트 팀이 있는 2층 테라스를 향해 왔다.

똑똑.

테라스로 진입하는 문은 원목으로 된 프레임이 절반, 투명한 유리가 절반인 디자인이었다.

그레이는 그 앞에서 노크했다. 그리고는 문을 열었다.

“오랜만.”

그레이는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영원과 여현만을 한 번씩 보고 인사했다.

테이블 앞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영원과 여현의 시선 역시 그레이에게 향했다.

아무 말 없는 대치상황이 유지되었다.

“아래에 재밌는 것들이 많아 보이던데.”

또각. 타박.

그레이는 테라스의 바닥을 구두로 밟으며 조금 더 가까이로 왔다.

“클로버 팀은 끝났고, 우리 K팀은 시작도 전에 단념한 건가?”

“아니.”

드륵.

백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그녀는 그레이가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섰다.

그레이가 백율에게 시선을 옮겼다.

쿵.

동시에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백율은 그레이 앞에서 사라졌다. 대신 그레이와 일직선상에는 여현만이 서 있었다.

여현의 힘에 떠밀려 옆으로 보내진 백율은 혈색 없는 표정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레이가 웃었다.

“관리자가 경고한 ‘상처’는, 신체에 관한 것이지.”

그는 느리게 말을 마쳤다.

“꽃밭의 마법사. 머릿속도 꽃밭인가? 겁도 없이, 가까이 와서는.”

“…….”

“K의 반응속도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딱딱하게 굳은 것은 영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금술과는 다른 속성의 힘.

랭킹 최정상의 S급 에스퍼들이 풀어놓는 힘은,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흥겨운 음악이 깔린 공간을 긴장감이 짓눌렀다.

영원은 생각했다.

그레이 딘하우스, 저 미친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김여현, 그의 힘까지도 낯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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