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더 환히 빛나는 밤.
핫핑크 문어가 3층 꼭대기에 얹어진 ‘프라이빗 게임장’이 낮과는 비할 수 없게 화려해졌다.
똘망똘망한 표정의 핫핑크 문어는 알록달록한 구형 조명을 잔뜩 휘감고 반짝였고, 건물 자체도 색색의 빛깔로 요란히 빛났다.
빠빠빠빠빠빠빰.
짠짠짠짠짠짜라짠짠.
밝은 빛의 전구들 사이사이에 달린 스피커는 상당한 음질로 공백 없는 사운드를 냈다.
19세기 카지노나 서커스장에 어울릴 법한 레트로풍 음악이었다.
하트 팀 여섯 명은 그러한 풍경 속에서 게임장 건물을 산책하듯 돌았다.
내부구조 파악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서.
근육의 힘 말고는 무엇도 쓸 수 없는 프라이빗 게임장 안에서는 힘을 사용해 게임장 내부를 파악할 수 없으니 밖에서 내부를 관찰해야만 했다.
에너지의 밀도가 높아서 멀리서는 파악할 수 없던 디테일까지 파악하려면 게임장 외벽에 붙어 한 바퀴를 도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안에서 힘을 쓰는 순간, 힘을 쓴 개인은 탈락이랬지. 그게 규칙3이라고.’
‘그런 실수로 탈락할 순 없지.’
크루즈 정중앙의 게임장 건물은 층고가 상당히 높은 지상 3층, 지하 3층 구조물이었다.
지하 3층 바닥과 크루즈 하부구조 사이에 10억 골드가 있으리란 게 영원의 감각이 알린 사실이었다.
누구도 금의 위치에 대한 영원의 직감을 의심하지 않았다.
크루즈 전체의 구조를 생각해도, 다른 스캔 가능한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지 않는 걸 보면 금이 보관되어 있을 곳도 그곳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하트 팀 외의 사람들 역시도 지하 3층 아래에 금이 있으리라는 걸 추측은 할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영원 외의 누구도 정확하게 그 사이에 골드가 놓여 있다는 걸 감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영원조차도, 그걸 감각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못했다.
“지하 3층 아래는 어떤 수단을 써도 보이지 않아요.”
화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S급 에스퍼들의 투시력, S급 가이드들의 공감각, 영원과 여현의 레이더, 각종 초음파 및 X선 등의 파동을 날려 보아도, 지하 3층 바닥이 크루즈 하부구조와 닿는 지점에서 모든 관찰수단이 차단됐다.
‘안 보여.’
‘관리자가 애초에 이 던전을 설계할 때부터 볼 수 없게 차단해놓은 것 같아.’
영원은 눈을 감고 레이더로 한 번 더 볼 수 있는지 시험해보았다. 역시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금은 그곳에 있었다.
“어차피 이 던전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은 지하 3층 아래랑 지상 3층에서 문어가 휘감고 있는 VIP룸 같은 곳뿐이에요.”
화연이 건물 위의 핫핑크 문어를 보며 말했다.
거대 문어는 건물의 3층을 휘감은 채 그 위에 앉아 있었는데, 3층의 방 중에서 정중앙에 있는 방만은 투시로 볼 수 없었다.
주변 방과 외관이 유사하니 내부구조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위치상, 게임 테이블이 안에 있는 VIP룸일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요.”
그 이후에는 다들 일단 밖에서 알아낸 정보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먼저 입을 뗀 건 백율이었다.
“지하 1층은 각종 무기, 특히 사각지대 없이 탱크가 배치된 게 분명하고요.”
지하 1층의 탱크들은 장난감 탱크처럼 생긴 외형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여태껏 이 던전 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면 핵융합이 저 장난감 탱크들 안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별로 놀라울 것 같진 않았다.
“지하 2층은 인형의 방인 걸로 보여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인형이 엄청나게 많은 방.”
지하 2층에는 인형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인형들이 움직이지는 않고 있는데, 사람이 일정 거리 이내로 들어오면 움직일 게 뻔했다.
어쩐지 바다에서 달려드는 것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약할 것 같지도 않았다.
“지하 3층은 금고처럼 생긴 빈 곳인데, 그 안에 골드는 없어 보이네요.”
백율이 말을 마치며 하트 팀의 팀원들과 눈을 하나하나 맞추었다.
다들 파악한 바가 같았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건물의 지상층 위는 다 카지노였다.
1층에는 슬롯머신 등의 게임 기계로 채워져 있었고, 2층은 식당, 공연 등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3층은 구체관절인형이 딜러로 대기하는 게임 테이블이 가득했다.
“일단 3층의 보이지 않는 방에 한번 가보죠.”
이창결의 제안에 따라 가장 앞서서 계단을 올라간 여현이 3층 꼭대기의 VIP룸을 열었다.
“…….”
밖에서 투시가 불가능했던 방 안에는 모두가 예상한 바와 같이 게임 테이블 하나가 있었다.
3층의 다른 게임 테이블처럼 구체관절인형인 딜러도 보였다.
VIP룸이라는 명칭과 달리 따로 입장 자격 같은 것이 필요하지도 않은 듯했고, 달리 특별해 보이는 건 없었다.
도로로로로로롱.
―언제든지 게임 참여가 가능합니다!
―8덱으로 플레이하는 블랙잭!
구체관절인형에 달린 스피커가 방문객들에 반응해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누구도 테이블에 바로 앉지 않았다.
대신, 하트 팀은 밥부터 먹으러 2층으로 내려갔다.
음식을 먹기 위해 S급 던전석과 교환 가능한 골드를 써야 하더라도, 다들 일단 배를 채우고 그다음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
영원은 2층으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역시, 우리는 밥에 진심인 K국 센터의 공무원들.’
‘갑자기 느껴지는 소속감 장난 아냐.’
다들 낮부터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거하게 운동을 한 터라 에너지 공급이 필요했다.
빠빠빠빠빠빠빰.
짠짠짠짠짠짜라짠짠.
음악은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어도, 흥겨움은 여전했다.
***
하트 팀 여섯 명이 조잡한 키오스크를 통해 피 같은 6골드를 치르고 주문한 음식을 받아 게임장 2층 야외 테라스에 앉을 무렵, 멀리서 클로버 팀이 다가왔다.
테라스는 게임장 외부 언덕과 연결되어 있어, 클로버 팀이 직진하여 경사길을 오르면 하트 팀 바로 앞으로 곧장 올 수도 있었다.
기분을 고조시키는 음악도, 화려한 조명도 여전했지만 심상치 않은 긴장 상태가 잠시 조성되었다.
“클로버 팀도 그레이한테 뒤를 맡기고 오는 모양인데요.”
이창결이 함박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식당보다는 다른 전투적인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지하로 가려나?”
백율은 치즈돈까스를 씹어 넘긴 뒤에 말을 얹었다.
다가오고 있는 클로버 팀의 가장 앞에서는 하트 팀 전원이 그녀가 누구인지 다 아는 S급 상위 랭커가 있었다.
S급 에스퍼 세계 랭킹 5위, 당링링, 타이틀은 ‘대륙의 성벽’.
영원 역시도 그녀가 누구인지 대강은 알았다.
‘중국 S급 에스퍼 랭킹 1위.’
‘아이가 셋인 40대 여성이랬나. 느낌은 서른 중반쯤으로 보이는데.’
당링링은 하트 팀이 있는 테라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고하게 걸어왔으나, 하트 팀을 견제하는 데에는 큰 뜻이 없었는지 방향을 틀어 팀원들을 이끌고 바로 지하로 향했다.
“일단은, 어떻게 하는지 기다려볼까요.”
금방 일이 터졌다.
쿵.
A급 하나가 힘을 써서 만든 소리였다.
“‘프라이빗 게임장’에서는 힘을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지하에도 ‘여기는 게임장 내부가 아닙니다’라는 안내가 있는 모양이네.”
백율이 외부 테라스에 붙은 안내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는 게임장 내부가 아닙니다]
“아니면 어차피 팀 탈락도 아니니까, 한 명한테 시험 삼아 힘을 써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창결의 추측에 백율이 수긍했다.
이후에도 여섯은 클로버 팀을 힘을 통해 멀리서 주시했다.
그들은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며 더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이거, 꽤 괜찮은데.”
영원은 허기를 반찬으로 하여, 생각보다 고급스러운 맛을 내는 바질페스토 오일파스타와 먹물 리조또를 맛있게 먹었다.
한 그릇은 여현이 자신의 골드로 구입해 준 것이었다.
한 입.
두 입 더.
그리고 두 그릇을 모두 끝낼 때쯤, 클로버 팀은 지하 1층에서 장난감 탱크와 미친 사투를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뭐야, 저 탱크들 진짜 핵융합 하잖아…….’
‘어…… 핵폭탄 장전?’
다음 순간 두 층 아래의 탱크가 정말로 핵폭탄을 쐈다.
쾅!
콰콱!
다행히 건물이 무너져내리진 않았다. 다만 미미한 진동이 2층의 바닥까지 흔들었다.
콰광!
거친 폭발음이 연이어 계속 들렸다.
빠빠빠빠빠빠빰.
짠짠짠짠짠짜라짠짠.
흥겨운 노래 역시 끊이지 않았다.
하트 팀은 지하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관찰하면서도, 카지노에 놀러 온 한량들처럼 각자의 메인 디시를 끝낸 다음에는 스낵을 깔아두고 조금씩 집어 먹었다.
짭짤한 아몬드가 맛있었다.
“여섯이서는 탱크를 절반 처리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아마도. 여섯으로는 전체 커버가 어려워 보이네.”
클로버 팀의 열성적인 희생으로, 지상 2층 야외에서 그들을 보고 있기만 했던 하트 팀은 많은 정보를 얻었다.
특히 던전 공략에 조예가 깊은 백율과 화연이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람을 보면 탱크들이 곧장 반응하는 것 같은데 사각지대도 없어요.”
“게임장은 벽도 어마어마하게 견고해. 밖에 지어진 기숙사 건물이랑은 차원이 달라.”
영원 역시도 계속 게임장 건물을 살폈다. 이곳은 곳곳에 연금술도 먹히지 않을 것 같았다.
‘관리자의 권능이 깃든 공간이야.’
‘망가질 수 없다고 정해져 있나.’
도로로로로로롱!
그 와중에 1층에서는 수천 개의 슬롯머신이 계속해서 화려한 효과음을 내며 존재를 알렸다.
“당링링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전략도 다 실천해주고 있는 것 같은데…… 거의 다 실패하네요.”
화연은 공책을 꺼내 여러 그림을 그려 백율에게 보여주며 전략을 공유했다.
“응. 탱크와의 전면전은 무리야.”
“역시, 그냥 희생을 각오하고 가는 거죠. 한 명씩 돌려보내면서.”
어쨌거나 2층에서는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바다를 마주하고 벌이는 사투는 스페이드 팀이. 지하에서 사투는 클로버 팀이.’
‘하트 팀의 일은 먹고 퍼지는 것인데, 이런 역할 분담 아주 좋아.’
영원은 음료까지 홀짝이며 편안한 의자에 기댔다.
뭔가, 이번 던전을 클리어하는 컨셉은 손 안 대고 코 풀기로 정해진 듯했다.
***
콰쾅!
도로롱.
클로버 팀도 탈락했다.
[팀 클로버 ♣, 213명 전원 탈락]
[던전 내 남은 인원 없음]
[관리자, □□□□가 그래도 죽은 이는 없다고 안도합니다]
[무모한 싸움은 말아요, 여러분!]
[평화평화 원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