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51화 (51/142)

거대 원형 크루즈의 동서남북 방향으로 각기 다른 귀여운 거대 인형이 헤엄쳐 다가왔다.

각 팀은 저마다 자신의 방향으로 오는 길이 500m 이상의 인형을 상대해야 했다.

클로버 팀은 잉어.

다이아몬드 팀은 테디베어.

그레이 딘하우스가 속한 스페이드 팀은 유니콘.

그리고 영원 및 센터 멤버들이 속한 하트 팀은 오리였다.

‘생긴 거는 목욕할 때 동동 띄워놓는 데만 쓰게 생겨서는…….’

콰콰광!

비주얼의 위험도와 공격력은 조금도 비례하지 않았다.

쾅!

내쉬는 숨이 바주카포였고, 행동 하나하나가 엄청난 에너지를 품은 지진을 일으켰다.

인형들이 바다 사방에서 끊임없이 에너지를 발산하니, 공격 자체와는 별개로 해일이 크루즈를 쉴 틈 없이 덮치기도 했다.

콰과과과광!

퍼벅!

테디베어가 다이아몬드 팀 쪽으로 복슬복슬한 털 뭉치 하나를 던졌다.

“크아악!”

그러자 다이아몬드가 정상에 얹어진 건물에 헬파이어가 내리꽂혔다.

다이아몬드 팀이 절규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S급이 다수인 팀인데도, 진열이 어그러지고 그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또 던진다!”

“피해!”

인형들이 강할 뿐 아니라 이곳의 에너지 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도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크루즈 외판을 이루는 재료나 구조가 각성자들이나 인형들의 공격을 잘 견딜 만큼 견고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영원은 차게 식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비주얼만 귀엽지 주변 상황은…… 음…….’

다른 팀의 S급 각성자들은 몸을 사리면서 서로 최전방을 양보하려 하는 듯 보였다.

굳이 목숨을 내놓아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도로로로로로롱!

―크리티컬!

―3골드 지급!

테디베어에게 상당한 타격을 가한 에스퍼 어깨 위의 문어가 슬롯머신 돌아가는 소리를 낸 다음 골드를 뱉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에는 공격에 자신 있는 에스퍼들이 전방에 나와 S급 던전석을 한 개라도 더 얻기 위한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비켜!”

서로 좋은 타격점을 잡으려는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에, 하트 팀의 S급 에스퍼들은 처음부터 아무런 의견충돌이나 일 떠밀기 없이 오리를 상대했다.

셋은 각자에게 주어진 영역에만 힘을 부었다.

도로로로로로롱!

―크리티컬!

그 덕에 이창결, 백율, 여현은 모두 착실하게 비슷한 양의 골드를 모았다.

콰광!

“꽥!”

옆 팀의 테디베어도 테디베어지만, 하트 팀이 막아내야 하는 오리도 만만찮았다.

영원은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순진한 표정의 거대 오리를 봤다.

‘사실 제일 공격 따위는 할 수 없게 생긴 게 오리 인형인데.’

‘아니, 생긴 걸 봐도 움직일 팔 하나 없잖아? 날개도 그냥 몸통에 붙어 있는데!’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초강력 오리가 하나뿐인 것도 아니었다.

“뒤에서 오리 떼가 또 오고 있어요.”

화연이 영원이 이미 파악한 사실을 알렸다.

오리뿐 아니라 다른 인형들도, 같은 종류의 인형이 작은 사이즈로 뒤에서 수백 개씩 밀려오고 있었다.

작은 사이즈라고 해도 그것들 하나하나도 다 수십 미터짜리였다.

이창결, 백율, 여현은 의사 교환을 하여 적당히 서로가 맡을 오리 인형의 영역을 구획했다.

“인형뿐 아니라, 안쪽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람들도 주의하자.”

“그래. 보통은 몹보다는 사람이 문제니까.”

“네.”

그레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팀원들을 이리로 보낼 수도 있었다.

여섯은 앞뿐만 아니라 뒤나 옆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그래도 머릿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 S급 던전에 ‘사람을 다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건 하트 팀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긴 했다.

특성 파악도 안 된 비선별 S급 각성자들 다수와 전면전을 치르는 건 당장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일단 인형 놀이에 집중하자.”

백율이 인형 극장처럼 생긴 환상을 바다 위에 넓게 깔았다.

S급 환상계, 백율의 능력을 극대화한 꽃밭이 쏟아지는 빗물 아래, 또한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한가득 펼쳐졌다.

‘저게, 봄의 정원의 절정.’

‘환상계 에스퍼들은 역시 화려하네.’

영원은 백율이 펼친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시기에 다소 맞지 않는 화연의 감상을 들으면서.

“화사한 꽃밭 위의 몽실몽실한 오리 떼 엄청나게 귀엽네요…….”

귀여운 걸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취향이 아닌 영원도, 저 오리 떼가 엄청 귀엽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화연뿐 아니라 모두가 다들 잠시 꽃밭 위의 오리들을 감상했다.

하늘에서 인형 뽑기 집게가 내려와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비주얼이었으나,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백율의 비명이 모두의 평화로운 감상을 종료시켰다.

“생긴 것만 귀여우면 뭐 해!”

백율은 비명을 지르며, 날갯짓으로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오리 인형 여섯 개를 싹 두 동강 냈다.

그러자 동강 난 오리들은 형체를 바꿔 더 작은 수퍼 오리가 되더니 몇 배는 강력한 토네이도를 수십 개 더 일으켰다.

“꽥!”

네 종류의 인형 중, 하트 팀의 6명을 덮치러 온 러X덕처럼 생긴 노란 오리들이 가장 강력했다.

아무리 싸움을 머릿수로 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관리자가 팀 간 밸런스를 그다지 심도 있게 고려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콰과광!

“꽤애액!”

거대 오리가 주황색 부리를 열고 브레스를 뿜었다.

사운드는 전혀 귀엽지 않았다.

헬파이어보다 몇 배는 강한 에너지가 쏘아졌다.

화악. 부글부글.

바다 표면이 끓으며 엄청난 증기가 피어올랐다.

***

도롱. 도로롱.

[팀 다이아몬드 ◆, 154명 전원 탈락]

[규칙1 위반]

[관리자, □□□□가 유감을 표시합니다]

[팀원이 같은 팀원에게 상처를 입혔답니다]

[싸우지 말아요, 여러분!]

[싸움 노노! (*^▽^)/]

테디베어 앞의 154명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싸움의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으나, 누군가가 타인의 몸에 상처를 낸 듯했다.

[154명으로부터 1423골드 회수]

[남은 S급 던전석, 1,000,000,000개]

[팀 패배는 팀원의 탈락!]

[탈락자는 던전석을 챙길 수 없어요. 흑흑 (*^▽^)/]

규칙1을 위반하면 그 팀은 패배하고, 자연히 팀원 전부가 탈락하는데, 그렇게 ‘탈락’하는 이들의 골드는 전부 회수되는 듯했다.

‘이상하게, 관리자가 슬퍼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어.’

[관리자, □□□□가 남은 참여자 모두에게 호소합니다]

[우리 모두 싸우지 말아요]

[저는 사람을 다치게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관리자, □□□□가 던전 게임 참여자들의 신체, 정신을 모두 아주 건강하게 돌려보낼 것을 약속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죽이지 않습니당]

[관리자, □□□□가 크루즈 전체가 전복되는 경우 던전 게임 전체가 강제로 종료될 것임을 알립니다]

던전 안에 남은 이들은 10억 개의 골드를 두고 싸우는 경쟁자 중 상당수가 탈락해서 나갔다는 이유로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테디베어를 대적할 적이 사라져서, 누군가가 그걸 대신 막아내야 하니까.

마치 팀플에서 한 축을 담당해야 했던 누군가가 강의를 드랍한 것과 같은 상황.

콰직!

“제가 일단.”

하드 캐리를 주저하지 않는 여현이 바다 위에 바리케이드를 세우며, 테디베어들을 전부 그 벽 밖으로 밀었다.

크루즈를 중심으로 1km 반경에는 테디베어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 밖에서 수백 개의 테디베어가 여현이 세운 벽에 부딪혀 끊임없이 튕겨 나갔다.

쾅!

쾅쾅!

그리고 여현은 지금, 오리 인형을 상대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리들은 계속 크루즈 쪽으로 밀려들었고, 없애려고 해봐야 웬만해서는 더 작아진 수퍼 오리가 되기만 할 뿐이었다.

오리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어느 순간 연기가 될 때까지 계속 쪼개고 쪼개는 것뿐이었는데, 그처럼 반복해서 작게 쪼개는 건 힘이 너무 많이 들어 효율적이지 않았다.

“결국엔 다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백날 인형과 사투를 벌여 봤자 수억 골드를 챙길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의외로, 인형들을 밖으로 멀리 밀어두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아요.”

인형들은, 크루즈에 근접한 거리에 이르러야만 공격을 시작했다.

그렇기에, 멀리 보내둔 뒤 헤엄쳐 오려는 몸짓만 막아내면 공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이창결과 백율도 여현이 이른 결론에 동의했다.

“현이 생각이 맞아. 이 이상 공격을 해서 얻을 게 많지 않아.”

“동의. 이 던전의 파훼법은, 함께 계속 싸우는 게 아니라 누군가 경계벽을 멀리에 쌓고 망을 보고 있는 거야.”

더는 다가올 수 없게 인형들을 멀리 밀어버린 다음, 그걸 그대로 둔 상태로 게임장 지하에서 골드를 꺼낼 방법을 찾아보는 게 맞았다.

옆을 보니 하트 팀의 전략을 파악한 클로버 팀 역시 비슷한 전략으로 선회한 듯했다.

“딘하우스 역시 그걸 파악하지 못하진 않았을 텐데.”

이창결은 말을 마치고는 스페이드 팀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유니콘 인형들과 전면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레이는 전혀 힘을 쓰지 않으면서, 같은 팀 에스퍼와 가이드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중인 듯했다.

최측근인 조지나 스피넬이나 이반 하이제렌 등은 보이지 않았다.

팀 명단에도 그들의 이름은 없었으니 다른 측근들은 던전석을 구하러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그레이는 지금 비선별자들의 힘을 시험하고 있어.”

“티 나지는 않게, 교묘히.”

몇몇이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빠졌다. 그래도 관리자의 약속에 따라, 죽기 전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지만.

하트 팀은 오리와는 더는 싸우지 않으며, 스페이드 팀의 전투를 멀리서 관찰했다.

상당한 시간 동안.

‘새로이 각성한 비선별들의 능력을 관찰할 수 있는 게 지금 그레이 딘하우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관찰은 기회야.’

‘그레이도 그걸 알면서도 내버려둔 채 지켜보며 시험하는 거고. 이만큼 에너지의 밀도가 높고, 게다가 죽을 위험도 없는 최상의 환경이 어디 있겠어.’

영원이나 다른 하트 팀 팀원들 역시 그레이만큼이나 주의 깊게 비선별들의 싸움을 보았다.

“그만 갈까요?”

더 시간이 흐른 후, 백율의 질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낸 듯했다.

이창결, 백율, 여현은 모두 오리를 더 이상 다가올 수 없게 막고 있었던 힘을 거두었다.

셋 중 한 사람만 계속 여기에 있으면 오리와 테디베어를 다가오지 못하게 계속 막아둘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하트 팀 에스퍼 전체 전력의 1/3이 사라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영원이 연금술을 사용하면 전력 손실 없이 다 함께 게임장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영원은 그렇게 힘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손 안 대고 코를 풀 더 좋은 너무 뻔한 방법이 있었으니까.

하트 팀 팀원들은 힘을 거두고 가는 것을 묘하게 망설였지만, 영원이 여현에게 건넨 두 문장이 모두의 발상을 뒤집었다.

“여현아.”

“네.”

“그레이 같은 녀석한테는 프리라이딩 해줘도 돼. 어차피 더 절박한 건 쟤잖아.”

생각해보면, 그냥 다 던져놓고 팀플 빌런인 척하면서 도망가도, 어차피 더 절박한 그레이가 막아줄 터였다.

크루즈가 전복되어 모두가 다 던전석을 얻을 수 없게 되면, 더 괴로울 것도 그레이였다.

“살면서, 그레이한테 프리라이딩을 다 해보네.”

“기분 묘하게 좋은데요.”

하트 팀 여섯 명은 몰려오는 오리와 테디베어를 뒤에 두고 산책하듯 크루즈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팟!

마침 크루즈 전체가 크게 한 번 반짝였다.

도착했을 때는 던전 속 시간이 한낮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완전히 저문 밤이었다.

―이제 반짝이는 예쁜 밤!

―게임 파뤼 나잇!

때가 딱 좋았다.

하트 팀의 퇴각을 보고는 F가 들어가는 욕설을 잔뜩 내뱉은 그레이가, 스페이드 팀의 S급 에스퍼 몇을 오리와 테디베어 앞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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