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디야. 침대?’
영원은 낯선 침대에서 깨어나자마자 여현이 곁에 없는 걸 확인했다.
레이더를 뻗쳐도 가까운 거리에서는 제 전담 에스퍼를 찾을 수 없었다.
같은 건물에서 양옆으로는 걸리는 인기척이 없었고, 상하로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장벽이 있어서 레이더가 가로막혔다.
톡. 톡톡.
그다음엔 가이딩 밴드를 체크했다.
‘…….’
불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먹통.’
빠르게 조작을 포기하고는, 곧바로 커튼을 걷은 뒤 창밖을 보았다.
촤악.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밖의 풍경이 참, 뭐랄까…… 귀여웠다.
‘뭐지.’
‘핫핑크 문어……?’
거대하고 귀엽게 생긴 문어가, 저 멀리 색색으로 칠해진 아기자기한 성 위에 똬리를 틀고 상콤하게 앉아 있었다.
동글동글, 인형 뽑기로 나온 양면문어인형처럼 생긴 비주얼이었다.
[게임 중엔 싸우지 마세요!]
[노 파잇! (ノ*>∀<)ノ♡]
[평화!! 헹헹 (୨୧ ❛ᴗ❛)✧]
문어의 아래에는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단언컨대 여기 들어온 누구도 따를 생각이 없을 것 같은 권유 사항이 적혀 있었다.
‘저 뽀짝 이모티콘 뭔데?’
‘그리고 게임? 문어 게임?’
‘무언가 문어 말고 다른 비슷한 해양 생명체 게임 짭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
‘오X어라거나…….’
‘으음. 침대가 강당 같은 곳에 높이 쌓여 있지 않으니까 베낀 건 아니겠지.’
영원은 빠르게 뒤돌아 방 내부도 살폈다. 일단은 가까운 곳부터 보는 게 나을 듯했다.
어린애들 놀이터 같은 디자인인 건 창문 밖만 그런 게 아니었다.
좁은 기숙사처럼 생긴 영원의 방 역시 분홍, 하늘, 연두 등 쨍하고 튀는 빛깔로만 채워져 있었다.
‘무채색이 없네.’
창살로 막힌 창문 하나에 출구는 하나밖에 없고, 침대, 책상, 의자가 각각 하나씩 있는 게 전부였다.
영원은 정육면체의 공간을 샅샅이 파악했다.
연금술이 여기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 이것들이 다 어떤 물질로 구성된 물체인지까지 전부.
철컥. 철컥.
마지막으로 방문을 열고 나가보려 하니, 잠겨있어 나갈 수 없었다.
‘열쇠 구멍 없는데.’
‘흠…….’
레이더로 건물 내부를 다시 살폈다. 여전히 상하로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장벽들이 있어, 레이더의 반경을 충분히 넓힐 수 없었다.
‘같은 층에는 아무도 없어.’
‘한 건물 안에 갇힌 거라면 다른 층이겠지.’
‘위아래로 다 부술까?’
‘그래도 관리자가 애써서 만든 건데. 그래도 되나?’
영원은 연금술이나 가이드의 물리력을 써볼까 잠시 고민했다.
삐이이익―!
그쯤 엄청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영원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게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영원은 소리가 나는 위치를 파악했다. 침대 헤드 모서리에 앉은 연보라색 문어가 범인이었다.
삐죽 튀어나온 입이 스피커인 듯했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두 차례 설명해 드리지 않으니 집중해서 들으시길 바랍니다.
폭.
‘눕자.’
영원은 규칙을 집중해서 듣기 위해 샛노란 침대에 잠시 드러누웠다.
보이는 천장은 오렌지색이었다.
‘여현이 지금쯤 걱정하겠네…….’
밴드는 다시 손목을 들어 조작해봐도 계속 먹통이었다.
‘좀 이따 위아래 부순 다음에 레이더로 더 뒤지고 다녀야겠다.’
에너지의 밀도도 밀도지만, 밴드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교란 장치가 있는 듯했다.
지구에서는 밴드가 혹시라도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랭커 채팅을 통해 연락할 방법 등등을 마련해두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차피 던전 안이니까 채팅은 쓸 수 없었다.
―규칙 하나.
영원은 멍한 표정을 싹 지우고 방송에 집중했다.
―팀원 중 누구라도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순간 팀 전체는 패배한다.
‘팀원?’
‘팀 게임인가?’
―규칙 둘, 팀은 바꿀 수 없다.
무슨 게임을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팀원 타령을 하니 바로 그 의미가 와 닿지 않았다.
―규칙 셋, 프라이빗 게임장 안에서는 인간 본연의 힘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힘도 사용할 수 없다.
―힘을 사용한 자는 탈락한다.
‘프라이빗 게임장? 그건 또 뭔데?’
들으면 들을수록 더 알 수 없었다.
‘에스퍼와 가이드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알겠네.’
―규칙 넷, 1골드는 던전 퇴장 시 S급 던전석 1개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
―규칙 다섯, 프라이빗 게임장에서는 골드를 걸고 게임을 한다.
―이상입니다.
―공격에서 살아남아 다들 게임을 하러 가보아요!
―팟팅팟팅팟팅입니당!
방송이 끝났다.
띠링.
띠리리리링.
두두두.
띠리리리링.
그러자 갑자기 연보라색 문어가, 카지노에서 슬롯머신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더니, 입에서 금화 다섯 개를 거칠게 뱉어냈다.
퓩!
퓨퓨퓩!
영원은 반사신경으로 포물선의 중앙에서 다섯 개의 금화를 전부 잡아챘다.
그 뒤에는 반짝이는 금화 다섯 개를 찬찬히 살폈다.
연금술사로 살아온 세월이, 다섯 금화가 전부 순금이라는 걸 직감하게 했다.
‘5골드.’
‘나만 받은 건 아닐 테고…….’
‘골드를 서로 빼앗는 데스매치?’
‘하지만 사람한테 상처를 내지 말라고 했잖아.’
‘그레이한테는 무리인데.’
영원으로서는 상처를 내지 않고서 그레이로부터 골드를 빼앗아 올 방법을 떠올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레이한테 사기를 쳐? 그게 먹힐까?’
게다가 인당 5골드라고 하면, 여기 들어온 사람을 넉넉잡아 1만 명이라고 해도 분배된 건 5만 골드가 전부일 터였다.
‘어…….’
영원은 순간적으로 그 어떠한 시도나 노력 없이도, 10억 골드 중 나머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영원은 핫핑크 문어가 있는 방향을 잠시 보았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방법이야 차차 알게 되겠지.’
영원은 5골드를 가이드 정복 내부 포켓에 넣고, 규칙을 다시 처음부터 정리해봤다.
1. 인간의 몸에 상처를 남기면 안 된다.
2. 이건 팀게임이다.
3. ‘프라이빗 게임장’이라는 장소에서는 어떤 힘도 쓰면 안 된다.
4. 던전에서 나갈 때 1골드는 S급 던전석 1개로 교환.
5. 게임장에서 골드를 걸고 게임을 해서 골드를 불릴 수 있다.
1, 4번 규칙은 그나마 의미를 잘 알겠는데, 2, 3, 5번과 관련한 의문점은 추가로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도로롱.
그리고 연속하여 알람이 또 왔다.
방송이 끝날 때도 느꼈지만 이곳 던전 관리자의 텐션이 남다른 것만은 분명한 듯했다.
[던전의 관리자, □□□□가 참가자들의 의사를 고려해 팀을 배정합니다]
[이의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의 노노! ( •⌄• ू )✧]
도롱. 도로롱.
영원의 눈앞에 참여자들이 누구인지, 팀이 어떻게 배정되었는지 알리는 알람이 떴다.
[참여자는 딱 500명!]
[여러분들은 럭키럭키걸♡]
[럭키럭키보이♥]
영원은 이제 관리자 □□□□의 텐션에 대한 생각은 그만 접기로 했다.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걸로.’
대신 팀 배정만 유심히 살폈다.
[심영원 배정▷ 팀 하트♥]
[팀 하트♥ 명단은 아래와 같음]
[김여현, 심영원, 백율, 장제권, 강화연, 이창결]
‘여현이랑 같은 팀. 나머지 멤버들도 다 같은 팀.’
인원 구성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팀들과의 밸런스였다.
‘근데…….’
‘이래도 돼?’
6대 127대 213대 154.
[팀하트♥ 6명]
[팀 스페이드♠ 127명]
[팀 클로버♣ 213명]
[팀 다이아몬드◆ 154명]
잘은 모르겠지만, 사파전의 비율이 좀 너무했다.
똑똑.
그리고 방문객이 나타났다.
“응.”
“…….”
“근데 문이 안…….”
쾅!
문이 잠겨있어 열어줄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데, 상대가 알아서 문을 날려버렸다.
영원은 딱히 놀라진 않았다.
“왔어?”
여현 역시 특별할 게 없는 분위기였다.
“네.”
그는 문을 부숴버린 사람치고는 태연하게 방에 들어왔다.
“규칙은 들었고?”
“네.”
여현은 손에 들린 연두색 문어를 보여주었다.
가만 보니 무선이라 챙겨 다닐 수도 있었다. 영원의 침대 헤드에 있는 연보라색 문어도 이동할 때 저렇게 챙겨 다니면 될 듯했다.
“근데 문이랑 바닥이랑 마음대로 막 부숴도 되는 걸까?”
영원은 다소 늦은 타이밍처럼 느껴지긴 해도 질문을 던져봤다.
“하지 말란 소리는 없었으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은 아니겠지.’
먼치킨들에게는, 문과 벽을 부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상식인 것도 아니니까.
‘갑자기 설득됐어.’
관리자도 참가자들이 얌전히 있길 기대하고 가둬둔 건 아닐 터였다.
또각. 또각.
타박. 타박.
그리고 금방 이쪽 팀원 네 명이 추가로 하나둘 영원의 방으로 왔다.
나름대로 조사한 정보를 하나씩 가지고서.
먼저 말을 뱉은 건 이창결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바다 위에 뜬 원형의 거대 크루즈 같은 구조물이고, 이 건물 꼭대기에는 하트가 있어요. 문어가 앉아 있는 중앙의 게임장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방향에 대칭적으로 스페이드, 하트, 클로버, 다이아몬드가 있는 건물이 위치한 걸 보면, 팀마다 건물 하나씩 숙소로 주어진 듯합니다.”
그다음엔 장제권.
“그레이도 들어왔습니다.”
그가 입을 여는 건 오랜만에 본다.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거짓일 것 같진 않았다.
이어서 화연이 말했다.
“이 하트 건물 지하에 식당, 헬스장, 수영장 같은 편의시설이 있어요. 그걸 운영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자판기를 작동시키면 나름대로 괜찮은 음식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체류해도, 의식주 문제는 없겠다 싶어요. 골드를 비용으로 내야 하는 것 같기는 해도.”
마지막으로는 백율이 왔다.
“아주 먼 바다에서 몹들이 잠수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네 무리로 나뉘어서, 동서남북으로 이 거대 크루즈선을 덮칠 듯한데, 상당히 강해 보이고요.”
그리고 여현이 입을 열었다.
“저는 중앙의 게임장 안에 뭐가 있는지 파악했습니다.”
여현은 가장 먼저 영원에게로 왔지만, 아무것도 살피지 않고 이곳으로 직행한 건 아닌 듯했다.
“1400개의 슬롯머신, 비슷한 대수의 각종 카지노 테이블, 공연장 등이 저 안에 있습니다.”
영원 역시 정보를 더했다.
“게임장 지하, 장벽으로 차단된 금고 안에 10억 골드 나머지가 있어요. 어떤 관측 방법으로도 볼 수 없어도 알 수 있어요.”
연금술사의 감이었다.
연금술은, 기본적으로 금을 갈망하는 술법이니까.
“금이 있는 곳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거든요.”
하늘색 문어의 다급한 외침은 그다음에야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성벽을 부술 시에 수리비를 골드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문도 부수지 마세요!
―여러분! 귀엽지만 심하게 센 몹들이 오고 있단 말입니다! 크루즈의 벽을 그대로 두세요!
―여긴 타이타닉이 아니어야 한다구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다른 참가자들이 뒤늦게 건물을 부수는 짓을 하는 모양이었다.
―다들 동작 그만!
―시간 되었으니 제가 문 열어드릴게요!
침대 구석의 하늘색 문어가 파드득거렸다.
흔적처럼 남아 있는 영원의 방 문은 끝의 힌지 부위만 스르륵 돌아갔다.
아무래도 이곳의 텐션 높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관리자는, S급 각성자들 및 비선별 각성자들의 공격력과 추진력, 결정력을 과소평가하고 던전을 설계한 듯했다.
일단 이쪽 다섯은 페널티를 받기 전에 사고를 친 덕에 아무런 손실 없이 세이브였다.
“자, 그러면 10억 골드를 어떻게 지하에서 캐낼까요.”
이창결이 물었고, 백율이 답했다.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털거나.”
여섯이 전략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려고 할 때, 크루즈가 파도에 밀려 기울어지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쿵.
쏴아아아아.
“얘기할 시간 없이, 일단 나가야 할 것 같은데요.”
화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성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음…….’
영원은 테디베어가 빼꼼 손을 내밀어 바다를 치자, 사실상 쓰나미가 몰려오는 장면을 봤다.
콰과광!
퍼벅!
멀리서는 클로버 팀이 이미 잉어인형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잉어 너무 장난 없이 강한데요.”
백율의 평가에 모두가 동의했다.
아무튼, 방금 모은 정보를 정리하자면, 골드를 모을 수 있는 ‘프라이빗 게임장’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크루즈 위의 카지노였고, 그를 품은 이 귀여운 동네는 폭풍 속의 크루즈였다.
그리고 지금 몰아치는 폭풍은 그냥 폭풍이 아니었다. 건물이고 사람이고 다 때려 부수러 달려드는 겁나 강한 인형들이 퐁퐁 솟아나기까지 하는 폭풍이었다.
‘귀엽게 생겨서, 위험성이랑 사행성 겁나 장난 아닌 던전.’
영원이 이 던전에 대해 내린 평가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