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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49화 (49/142)

백율과 이창결이 알림을 받은 것보다 약간 이른 시간.

영원은 당직실 모니터 앞에 앉아 멍한 표정이었다.

‘내가 당직, 당직이라니……!’

가이드의 물리력 훈련이 끝났다고 달콤한 휴가가 주어지기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퇴근도 못 하고 사무실에 붙어 있어야 하는 건 좀 비극적인 일이었다.

‘비선별 러쉬가 본격화됐으니, 이제 계속 재난 감지용 모니터를 보고 있을 사람이 필요해요.’

박의총 가이드는 (여차하면 바로 밖으로 튀어나갈 수 있는) 별관 지상에 엄청난 크기의 모니터를 설치하고는 말했다.

‘에스퍼 하나랑 가이드 하나, 페어를 이뤄서 하루씩 돌아가며 당직을 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화연이 깔끔한 안을 제시했고, 모두가 수긍했다.

‘S급 3쌍이 돌아가면서 대기하면 될 것 같아요.’

‘네, 그렇게 하죠.’

그리고 곧바로 당직 조가 짜였다. 첫 타자는 영원과 여현이었다.

‘오늘 일요일이더라. 점심 돼서야 알았어.’

영원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누군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첫 타자가 된 건 영원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그나마 여력이 있다고 느껴질 때 달려 둬야지.’

‘그래, 그래.’

(믿기지 않지만) 영원의 기준으로는, 오늘의 상태가 그래도 나름 성실·의욕·양심 모드가 나타나 있는 상태였다.

‘여현아. 나, 앞으로는 의욕 방전될 일만 남았어.’

‘그렇군요.’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당직을 당길까?’

‘오늘 저희가 할까요?’

‘그러자.’

그리고 직접 오늘로 찍은 당직이 온 것이다.

금, 토, 일 연속 출근. 마지막 일요일은, 당직.

‘사무실용 의자가 편한 건 위로가 안 돼.’

당직실은 꽤 아늑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래 봐야 회사였다.

영원은 속으로 폭 한숨을 쉬며 본인의 처지를 한탄했다.

‘내가 어리석었어.’

‘왜 갑자기 오늘따라 의욕 충전이 되었던 거지?’

영원에게 커다란 귀가 있었다면 아래로 축 처질 것 같은 장면이었다.

‘귀찮은 거 하겠다고 하기는 했지. 그런데 그런다고 넘나 귀찮은 게 이렇게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될 수 있는 건가?’

‘펜트하우스에서 경험했던 지상낙원의 나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급변할 수가.’

트레이닝으로 계속 세지는데도, 야근과 주말 출근은 어떻게 해결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님.”

“응.”

“게임 하실래요?”

그런 영원을 안타깝게 보고 있던 여현이 말을 걸었다.

“……응. 카드게임 하자.”

여현과 영원은 카드가 아니라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손이 아니라 힘을 사용해 카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게임을 했다.

팔락.

팔락.

룰을 설명하려면 수십 분이 걸릴 것 같은, 둘만 할 수 있는 고도의 논리 게임이었다.

‘어쨌든 여현이랑 둘이 노는 건 나름 잼.’

영원은 그래도 여현이 곁에 있는 당직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내일은 칼퇴를 하리라 다짐했다.

내일이랑 모레는 이창결-장제권, 백율-강화연 조합이 연이어 당직을 설 차례니까.

‘그다음 문제는 사흘 뒤에 고민하자.’

‘오늘 저녁은 일단 별일 없이 넘어갈 테니……까?’

‘그렇겠지?’

‘어쩐지 쎄한 건 기분 탓, 기분 탓.’

영원은 무언가 불길한 예감의 데자뷔가 오는 것 같자, 고개를 홱홱 저어 불안을 떨쳐냈다.

도롱.

도로로로로로롱.

하지만, 역시 관리자들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어.’

영원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대신 여현을 봤다.

“여현아.”

“네.”

“알림 받았어?”

“네.”

S급 던전석 10억 개.

영원에게도, 여현에게도 놀라운 보상이 적힌 알림이 도착했다.

***

영원과 여현이 알림을 받은 것보다 약간 이른 시간.

삑.

삑삑.

삐비빅.

연구실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하나가 별관 보안구역에서 정체불명의 기기를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삐빅.

삐삐삐삐삐삐.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계속하여 손안의 기기를 조작하려 했으나, 자꾸만 손이 어긋나서 무엇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제발, 제발 구해…….”

그리고 그의 애원이 끝나기도 전에.

퍽.

파직.

“흡!”

손안의 기기가 불현듯 박살 났고, 그의 온몸이 스스로의 의지에 반해 정지했다.

가이드에 의한 통제. 숨 막히는 두려움이 그를 덮쳤다.

“강화연 가이드입니다.”

“…….”

화연은 자신을 소개했고, 장제권은 말없이 근처에 서 있었다.

툭.

그는 기기를 손에서 놓친 뒤 망연자실한 표정이 됐다.

화연은 땅에 떨어진 기기를 대신 주워들었다.

“서론 없이 말하자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으으.”

“아주 괴로운 시간을 보낸 다음에 암호 코드를 알려준다.”

스륵.

“그냥 알려준다.”

화연은 배신자 에스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더 작게 속삭였다.

“인생은 실전인 거 아시죠?”

화연은 미소 지었으나, 눈가엔 웃음기가 조금도 없었다.

“제가 신사적으로 굴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시나요?”

에스퍼는 천천히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도롱.

도로로로로로롱.

그 무렵, 화연 역시 알림을 받았다. 장제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련 가이드님한테는 연락이 안 갔을 것 같은데요. 윤 교수님께도 연락할게요.”

화연은 급히 요련에게 배신자를 맡기고, 윤 교수에게도 가야 할 데가 생겼다는 연락을 취했다.

***

모두가 받은 알림은 다음과 같았다.

[S급 던전의 S급 던전석 파티에 S급 이상의 선별자들 및 그 이하의 비선별자들을 모조리 초대합니다!]

[관리자, □□□□의 통큰 FLEX!]

[보상▷ S급 던전석 총 1,000,000,000개]

[초대 승낙 제한 시간▷ 15분/15분]

[관리자, □□□□의 S급 던전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Y/N]

S급 던전석 10억 개라니.

‘아, 이건 못 참지.’

알림을 받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절대 안 참아지지.’

알림을 순서대로 받은 백율, 이창결, 영원, 여현, 화연, 장제권은 같은 내용의 알림을 받은 것을 빠르게 공유하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통 큰 배팅에 응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같이했다.

백율은 이창결에게 말했다.

“누구라도 다 달려들어. 그레이 역시 그럴 거야. 거긴 우리보다 더 던전석이 필요해. 던전석이 없으면 장비빨이 제로라고, 제로.”

“동의해. 그레이뿐 아니라 다들 달려들 거라고도.”

“문제는, 그레이와는 달리 이쪽은 서울 방어에 공백이 생기게 둘 수는 없다는 건데.”

“우리한테는 서시용이 있으니까.”

이창결은 백율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여현에게 연락을 넣었다.

여현 역시 이창결과 백율의 생각에 동의했다.

한반도는 서시용에게 맡겨두고, 다들 던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그레이는 어차피 던전 안으로 들어올 테니까.

―시흥IC 근처의 던전도 S급이라고 나타난 녀석인데 이걸 승낙 안 할 리가 없어.

“네.”

―서울엔 서시용이 있을 거잖아. S급 게이트가 열려도, 방어선 구축은 해두고 시간을 벌어줄 거야.

“그러겠죠.”

서시용을 믿을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기는 했지만, 당장 서울을 그가 지켜주리란 걸 의심하진 않았다.

마침 서시용도 알림을 받았는지 메시지를 보냈다.

[다녀오시죠]

[많이 따서 돌아오시면, 나눔도 해 주시면 좋고]

[제 딸들이 던전석을 특식으로 좋아합니다]

여현은 서시용의 메시지를 다 읽은 뒤에 이창결에게 답했다.

“일단, 서울의 재앙은 안전선 내에서 방어되겠죠.”

―서시용 시장에게는 연락이 갔나? 혹시 같이 들어가서 S급 던전석 구하자는 건 아니겠지?

전화기 너머로 백율의 질문이 들렸다. 여현은 그에 대한 답을 주었다.

“연락 왔습니다. 서시용 에스퍼는 안 들어갑니다.”

―환성이는 참여 안 할 거고. 나진이도 아닐 것 같고. 나머지는 어떨지 모르겠네.

―화연, 제권. 그쪽도 연락됐어.

―현아. 영원 가이드님이랑 같이 들어가는 거지?

여현이 전화기를 든 채로 영원을 봤다. 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현은 영원의 뜻까지 함께 이창결에게 전달했다.

‘의욕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빨리 사건을 맞이하는 게 낫지.’

‘그레이랑도 빨리 싸울수록 좋아.’

‘준비도 다 됐고.’

영원은 받아들였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영원은 Y를 택할 수밖에 없을 알림을 보았다.

[관리자, □□□□의 S급 던전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Y/N]

물론 아주 약간의 후회는 했다.

‘그냥 당직 당기지 말고 펜트하우스에서 쉬고 있을걸.’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내 사무실과 당직실에 붙어 있었는데, 이제 또 쉴 틈 없이 풀근무 확정이었다.

던전에 들어가면, 거기서 무언가가 며칠 내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어쩌겠어.’

‘어떻게든 되겠지.’

영원은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 사로잡혀있지는 않았다.

“들어가서, 싹 다 털어오자. 던전석 재벌 되는 거야.”

182개만 해도 많은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애들 장난이었다.

‘그걸로 내 에스퍼님 상처를 다 고칠 수도 있지.’

‘일단은 전담님이 빼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같이 맛있는 거 나눠 먹어야지. 그러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치료할 거야.’

영원은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여현을 보았다.

“준비됐어.”

“그럼, 가실까요.”

이미 여현은 준비와 각오를 마친 상태로 보였다.

“응. 가자.”

“만약, 제가 보이지 않는 곳에 떨어지시면.”

“가이딩 밴드, 바로 호출할게.”

이제는 당연했다.

“네.”

최신 가이딩 밴드 조작에도 완전히 익숙해졌다.

여러 번 합을 맞춰 프론트 가이딩을 연습해보기도 했다.

이제 화연 정도만 제외하면 프론트 가이딩으로 영원을 넘을 가이드는 없었다.

“여현아, 금방 만나.”

“네.”

영원은 □□□□라는 관리자의 초대에 응했다.

[관리자, □□□□의 S급 던전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Y/N]

강한 힘이 영원을 이끌었다.

[던전의 관리자, □□□□가 FLEX PARTY에 응한 것에 기뻐합니다!]

‘뭐야, 느낌표는 처음인데.’

‘여기 관리자 텐션 원래 이런가?’

영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던전 속으로 들어갔다.

이후 한 시간 만에, 지구 표면 위에서 S급 비선별자 99%가 사라졌다.

10억 개의 S급 던전석 파티가 열릴, 뽀짝한 던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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