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48화 (48/142)

제5장

일요일이 일하는 요일이라 일요일인 건 아닐 텐데

영원은 두 사람의 비선별 각성자와 함께였다.

강화연과 이창결.

한쪽은 비선별 가이드였고, 다른 한쪽은 비선별 에스퍼였다.

“하아. 하아.”

영원은 가쁘게 호흡을 내쉬면서도, 두 비선별자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둘은 지금 영원과 대치하는 중이었다.

이창결은 등 뒤에 테니스공만 한 풍선을 붙여 두었고, 영원은 30분 안에 그것을 터뜨려야 했다.

“하아.”

영원은 가이드의 물리력을 사용하고 둘은 에스퍼와 가이드로서 합을 맞추지만, A급 수준의 힘만 사용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확실히 비선별은 패턴이 독특해.’

‘이론이나 예측과 약간씩 차이가 나.’

‘이런 변수를 가진 인간들이 떼 지어 몰려올 수도 있다는 거지.’

‘비선별 러쉬로 왜 다들 이 난리인지 확실히 알겠네.’

센터뿐 아니라, 세계수 역시도 위협이라 판단하는 이유도 이해되었다.

여태까지 나온 각성자들은 대부분 세계수가 직접 선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제정신인 놈들이 예측 가능한 수만큼 선별되었을 터였다.

그런데 비선별자들이 대거 각성하면 어떤 미친 상또라이나 사이코패스가 떼 지어 각성자가 될지 모른다.

또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차원이 다른 미친놈일 수 있는 건 둘째 치고, 힘 자체를 예측하지 못할 수 있어.’

‘미묘하게. 미묘하게 예측과 어긋난다는 게 사람을 참 기분 나쁘게 해.’

‘그래도 어쨌거나 저 둘은 내 편이니까 좋은 점도 있고.’

영원은 눈앞에 선 두 사람의 약점을 유심히 살피며 다른 결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확실하게 우리 편인 저 두 사람은 비선별이잖아.’

저 둘은 세계수가 차원을 구할 자들로 선별해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그레이 딘하우스는 선별자야.’

상대 전력의 핵심 주축이자 수괴가 누구인가. 그레이 딘하우스. 그는 명백히 ‘선별된’ 존재였다.

심지어, 다른 차원에서 선별되어 소환되었다.

정작 세계수가 세계를 구하라며 선별한 각성자 중 ‘유일자’라는 자는 세계수의 의도를 무시하고, 세계수의 선별과 무관하게 선별된 저 둘이 누구보다 세상을 구하는 일에 더 열심이었다.

팟!

영원이 급작스럽게 이창결의 가까이로 가기 위해 튀어올랐다.

영원은 순간적으로 이창결의 옆에 붙어, 그의 뒤에 붙은 풍선에 힘을 뻗치려 했다.

“읏.”

팍. 퍽.

이창결이 영원의 힘을 에스퍼의 힘으로 강하게 쳐내고는, 물리계의 힘으로 영원을 밀어냈다.

쿠궁.

힘끼리 강하게 충돌하며 대강당에 약한 지진이 일었다.

영원이 충격파를 피하면서, 이창결과 영원의 거리가 다시 한참 멀어졌다.

“하아.”

영원이 멀리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이창결이 놀란 눈으로 그의 팔목에 남은 상흔을 봤다.

“…….”

피가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장난 아니네요.”

그를 뒤에서 보던 화연이 감탄의 말을 얹었다.

가이드의 물리력으로 A급 수준의 가이딩을 받는 (사실상) S급 에스퍼의 몸에 작게라도 생채기를 내다니.

“부장님. 영원 가이드님이 이길 수 있을까요?”

화연이 속삭이듯 물었다.

이창결은, 대강당에 불려오면서는 영원이 이걸 해낼 수 없을 거라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3분 만에 저물었다.

심영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장 속도로 자라나, 정수리가 이미 성층권을 뚫고 나가 달에 닿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르겠네요.”

이창결은 진심으로 영원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는 영원은, 다시 비선별자들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 채 그들의 약점을 살폈다.

‘아무리 전능하지 않다고 해도, 세계수는 초월자야.’

나름의 기준에 따라, 차원을 구하는 데에 도움의 될 것 같은 자들을 선별해 왔다는 의미다.

그러나 비선별자들이 각성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각성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비선별자들에 대한 포섭은, 절대적으로 그레이 딘하우스에게 유리하다.

인간은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믿음 아래, 평범한 인간들 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니까.

대체 누가 거기서 정의를 찾겠다고 센터로 올 것인가.

‘하지만 저 둘은 그랬을 거야.’

영원은 확신했다.

‘세계수는, 저 두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이창결.

강화연.

세상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기로 정한 그들은 비선별자다.

세계수는, 그들이 알아서 각성하지 않았다면 그들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청성은 언젠가 솔직히 고백한 적 있었다. 지난 세계의, 세상의 마지막 절망 앞에 서 있을 때였다.

【처음부터 너를 간택하려 하진 않았다】

【나의 영원】

【네가 이토록 강해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불멸자들 역시 인간의 의지를 알 수 없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

전부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사건은 그렇게도 굴러간다.

쿵.

촤악.

영원은 바닥을 진동시킨 뒤, 높이 튀어 오를 것처럼 하다가, 대강당 바닥을 완전히 슬라이딩해 이창결과 강화연의 곁으로 갔다.

“끝.”

펑!

이창결의 풍선이 터졌다.

영원은 이창결이 반사적으로 흘린 S급 수준의 힘은 옆으로 흘려보내듯 피했다.

‘딴생각하면서도 클리어.’

‘둘은 내가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한 줄 알겠지.’

‘같은 편이라도, 약간은 힘을 숨겨둬야 함.’

의심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영원은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영원은 화연이 부여한 마지막 과제를 끝내며, 상념 역시 함께 마쳤다.

“…….”

“…….”

이창결과 강화연은 말이 없었다.

“진짜, 끝이죠?”

가이드의 물리력에 대한 훈련도, 이제 정말 더 남은 게 없었다.

***

러쉬는 시작되었고, 세상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S급만, 일단 새롭게 각성한 것으로 파악된 사람 수만 173명이야. 에스퍼랑 가이드 합쳐서.”

백율은 영원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 풍선이 터진 뒤 멍한 상태가 된 이창결에게 말했다.

“한국에는 그중 몇 명?”

이창결은 혼이 빠진 표정으로 한 템포 느리게 반응했다.

“4명.”

“미쳤네.”

“그러니까. 여태껏 대한민국 S급 에스퍼 다 더한 게 딱 8명이었는데. 너까지 더한다고 쳐도 9명.”

“전지구적으로 확대해보면, 상황이 더 카오스가 될 테고.”

“그렇지.”

이창결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비선별자들의 랭킹 반영은 시차를 두고 이루어졌다.

그래서 백율에게 정확하게 전해 듣기 전에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173명이라니.

그것도, ‘파악된 것만?’

“그래도 S급 비선별들의 각성은 우선 일단락된 것 같기도 해.”

“A급, B급 선별은 계속 일어나고 있고?”

“그것도 눈에 띄게 수가 줄어들고 있어.”

“숫자는 물어보기도 겁난다.”

톡톡.

백율은 이창결이 묻지 않아도 펜을 들고 슥슥 숫자를 써서 보여주었다.

이창결의 얼굴에서 더 색이 빠졌다. 백율은 말을 더 이어갔다.

“아직은 다 잠잠해. 그레이의 SNS 계정 때문이겠지.”

둘은 얼마 전 새로 생긴 그레이의 SNS 계정을 떠올렸다.

그레이는 짧은 영상들을 여러 편 업로드했고, 약간의 도용 논란 끝에 그는 수억 명의 팔로워를 가지게 됐다.

―새로이 선별된 비선별은 연락을 바랍니다!

―사고 치지 말고 저한테 연락부터 하세요!

―돈과 권력, 매력적인 이성, 저는 여러분이 많은 걸 얻을 수 있게 도와드립니다!

그레이는 대대적인 광고를 많은 곳에 뿌렸고, SNS뿐만 아니라 유X브 구독 채널도 열었다.

무슨 의도인지 뻔했다.

그런데 막을 수 없었다.

“미국 시민권자인 세계 랭킹 1위인데, 저 녀석이 SNS로 하는 짓이 테러리스트 동료 모으기라고 계정 블록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레이로서는 최고의 수단을 쓰고 있는 거지.”

그레이는 수백 명의 콜센터 직원들을 깔아놓고, 비선별자들의 제보를 받으며 그들을 검증해내고 있다고 했다.

비상하다면 비상한 발상이었다.

대단한 인간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미 협조를 피하려다가 죽은 S급도 있어. 뉴스에 떴지. 파리 시내에서 벌어진 일.”

“그레이가 한 거지?”

“심증은 다들 있어.”

명백한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S급으로 각성했다는 인증을 SNS에 올린 프랑스 사회활동가의 최후를 그렇게 만들 자가 그레이 말고 있을 리가 없었다.

“힘을 쓴 게 그레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 배후에 그레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잔인하고 참혹했다.

그리고 그 덕에 그레이는, 비선별자들에게 더한 압력을 넣을 수 있게 됐다.

―여러분, 그레이 딘하우스에게 오세요.

―파리에서 벌어진 일,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참혹하지 않았습니까.

그레이는 본인의 계정으로 ‘파리 참극’에 대한 영상을 여러 편 연달아 올렸다.

“갑자기 비선별자로 각성한 자가 두뇌가 좀 돌아가는 타입이라면, 그 역시 파리에서 사람을 죽인 게 그레이라는 걸 알 거야.”

“누군가가 비선별자로 각성하게 되면, 요즘 시대에, 다들 검색 엔진에 자신의 각성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겠지.”

“맞아.”

“상단에 뜨는 그레이의 SNS와, 뭔가 비선별자가 관련된 듯한 꺼림칙한 뉴스를 연이어 보게 될 거고.”

“그래. 그리고 그레이가 올려 둔 계정이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게 되는 거지.”

그렇게 그레이는 비선별자들을 쓸어 모아가고 있을 터였다.

랭킹 1위의 명성을 이용해서.

그건 대한민국 서울 역삼 본부에서는 흉내 내기도 어려운 전략이었다.

“한국인 각성자들에게 장제권 가이드가 접근을 해보기는 했어.”

“성과는?”

“이미 그레이 쪽에서 센터 쪽 스파이가 되라는 지령을 받은 것 같다는 게 장제권 가이드의 생각이고.”

난제였다.

“모두와 싸우게 될까?”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지.”

이창결과 백율은 모두 굳은 표정을 했다.

도롱.

도로로로로로롱.

그때쯤, 두 명의 부장들 앞으로, 엄청난 내용의 알림이 도착했다.

“…….”

“…….”

둘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알림을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10……억?”

백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었고, 이창결이 긍정했다.

“나도 왔어.”

“…….”

“S급 던전석 10억 개.”

둘은 관리자의 알림과 서로의 눈을 번갈아 쳐다봤다.

갑자기 대화 주제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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