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영원에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요련과 저녁을 먹은 뒤, 여현의 사무실에 내려와 여현의 복귀를 기다리던 중에 작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화연이 본 장면을 본 다른 인간은 없으나, 그렇다고 그 장면을 인식한 게 화연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그 깨달음이 영원에게 시차를 두고 찾아왔다.
도로롱.
어쩐지 오랜만에 듣는 것만 같은 알림음.
문제를 안긴 것은 세계수였다.
‘그래, 관리자님. 관리자님의 다른 속성은 감시자였지.’
‘잊지 말았어야 했는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쪽 세계에는 심영원에게 대단히 관심이 많으면서 끊임없이 자잘한 일거리를 안겨 주려는 빌런(주: 영원의 생각 한정)도 있었다.
‘어…….’
‘또 일인 거야? 그래?’
도롱. 도로롱.
[필드의 감시자, 세계수가 심영원 가이드의 성과에 감명받습니다]
[필드의 관리자, 세계수가 그러한 김에 다음 스테이지에 제한시간을 부여하기로 정합니다]
‘제한시간? 도랏?’
‘님은 감명 같은 거 받지 마요.’
‘너님 감명받으라고 한 게 아니란 말이에요.’
[심영원, SSS급 퀘스트 스테이지1 클리어 확인]
[세계수의 타임리밋 SSS급 퀘스트 스테이지2가 시작됩니다]
영원은 표정을 굳히고 스테이지2의 내용을 기다렸다.
[스테이지2: C급 게이트 10개 직접 클리어]
[스테이지2 목표달성▶ C급 게이트 직접 클리어 0개/10개]
[스테이지2 종료까지 잔여 시간 300분/300분]
‘어…… 300분이면 5시간? 10개?’
‘시간 이렇게 짧아도 돼?’
‘타임 어택 미친 거 아님?’
[필드의 관리자, 세계수가 SSS급 퀘스트의 보상에 대해 안내합니다]
[실패 시▷ 세계멸망, 무한회귀 루트]
[성공 시▷ 특별한 보상은 없음]
[제한시간▷ 없음]
‘전체 퀘스트에 제한시간이 없다고는 해도, 스테이지2에는 제한시간이 걸려 있지 않나?’
세계수 역시 영원이 당연히 그런 의문을 품을 거라 생각했던지, 친절하게도 설명을 덧붙여줬다.
[필드의 관리자, 세계수가 스테이지2의 실패는 SSS급 퀘스트 전체의 실패임을 알립니다]
영원은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밤 11시였다. 5시간을 더하면 새벽 4시.
‘오늘 잠 못 잠?’
영원의 얼굴에 절망 어린 표정이 나타났다.
달칵.
그리고 그때 여현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현아…….”
힘없는 부름에 여현이 무슨 일이냐는 눈빛으로 다가왔다.
“나 오늘 밤샘 레이드 확정이야.”
레벨업한 먼치킨이 슬픈 얼굴을 하자, 다른 먼치킨이 그녀를 자신의 버스에 탑승시켰다.
***
영원은 센터 관측팀이 바로 쏘아주는 게이트의 좌표를 다 체크한 후, 최단루트를 파악했다.
“이렇게, 이 순서대로 따라 돌면 될 것 같아.”
동시에 여현은 센터 통제실에 연락해 ‘어떤 게이트도 허락 없이 클리어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전했다.
김여현발 부탁이라니, 사실상 거역 불가의 명령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게이트 앞만 통제하고 있으면 알아서 김여현이 등판해 10개의 게이트를 전부 치워주겠다는데, 당직자들 입장에서는 감사한 제안이었다.
여현이 아니었으면 자정 가까운 시간에 퇴근해서 집에서 자고 있을 A급, B급 에스퍼들을 깨워 야근을 시켜야 하는데, 대부분의 A급, B급 에스퍼들이 당직자들보다 상급자였다.
―늦은 시간 노고에, 정말 언제나 그렇듯 깊이 감사드립니다!
영원과 여현은 센터 당직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감사 아래 자정을 전후해 서울 게이트 10연속 투어를 하게 됐다.
세계 제일의 야경(주: 국뽕을 약간 먹었습니다)이라고, 하늘을 휙휙 날아다니며 감상하는 서울의 밤이 예쁘기는 했다.
영원은 여현의 품에 안겨 화려한 도시를 감상했다.
‘물론 예쁜 건 둘째 치고 퇴근 좀……. 나 집에 좀…….’
아무튼, 그렇게 강남구부터 시작해서 서초구, 관악구 등을 시계방향으로 차근차근 돌았다.
콰과광.
10개의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전략은 모두 같았다.
하나, 여현이 주요 부분을 싹 쓸어버린다.
둘, 영원이 끝에만 톡톡 정리한다.
‘세단 운전만 아늑하게 하는 줄 알았더니, 우리 에스퍼님은 버스 운전에 더 재능 있으시네.’
‘알고 보니 내 에스퍼님 부업은 버스 기사님?’
그렇지만 아무리 다 정리된 C급 게이트를 마무리만 하는 일이라고 해도, 영원이 ‘직접’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건 가이드의 물리력뿐이었으므로, 영원에게 주어진 퀘스트의 난도가 낮은 것만은 아니었다.
S급의 물리력을 쓴다고 해도, C급 게이트들의 크기가 지나치게 거대한 게 문제였다.
“하아, 하아.”
영원은 하나를 끝낼 때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에스퍼들이 S급이 아닌 하위등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러나 영원은 에스퍼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떤 게이트라도 힘의 대결로 차원의 문을 닫아버려야 하는데, 가이드의 힘은 그러라고 만들어진 힘이 아니었다.
‘돌겠네…….’
연금술을 쓰기에는, 차원의 힘의 속성이 달라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리고 영원은, 게이트를 3개쯤 클리어했을 때 확실히 어떤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이거, 장난 아니게 광역 컨트롤에 도움 되는 훈련 방법이야.’
C급 게이트의 처리는 영원이 지난 몇 주간 연마한 ‘가이드의 물리력’을 단련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세계수가, 나를 노가다 시켜서 굴리는 데 적합한 최고의 장소와 방법을 찾아냈네.’
‘S급 게이트의 발생은 발생하기 직전까지 관리자도 예측하지 못한다면서.’
‘등급 낮은 건 그래도 조금은 더 전에 파악은 되는 모양.’
‘그러자마자 심영원을 굴려야겠다는 판단을 한 세계수도 참…….’
‘차원 구하기에 진심이라고 해야 할까.’
‘당하는 입장에선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데.’
영원은 최대한 세계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거나 파트너 관계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했다.
‘야밤에 운동은 싫지만, 트레이닝에 좋은 기회지.’
‘이름하여: 속성 가이드 물리력 컨트롤 만렙 되기 프로그램?’
영원은 세계수에게 우호적인 생각 회로를 열심히 돌리며, 센터 지하 대강당에서 갈고 닦은 힘을 실전에서 사용해보았다.
‘이 야밤에, 세계수 이 X…….’
‘안 돼, 안 돼. 욕 안 돼. 긍정회로, 긍정회로.’
어쨌거나 영원은 10개의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가이드의 물리력을 한계까지 끌어냈다.
“……괜찮으신가요.”
여현이 걱정 어린 얼굴을 할 정도로.
“응. 헉. 흐아. 괜찮, 괜찮.”
아무튼, 자정을 전후한 짧은 시간, 그때 서울의 강남에만 10개의 C급 던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모든 게이트가 다 영원의 손에 끝났다.
[속보: 서울 시내 게이트 10개 연달아… 센터 ‘심영원이 처리한다’]
계속 속보를 알리는 핸드폰을 보면서 영원은 깨닫게 되기도 했다.
온 것은 비선별 러쉬만이 아닌 것 같다고.
[속보: 약 45개의 대도시에 C급 게이트 우후죽순, 총 1143개]
게이트가 비처럼 세계 주요지에 쏟아지고 있었다.
여현에게 물어보아도, 이런 식으로 게이트가 열린 적은 거의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초강력 게이트 웨이브의 예고편이 전 세계로 뿌려진 것이다.
“큰 인명피해가 생기는 곳은 없을 겁니다.”
“응. 다 대도시고, 게이트도 다 C급 아니면 D급이라니까.”
여현은 게이트를 돌면서, 게이트 웨이브만이 가지는 독특한 발생 패턴이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윤희유 교수에게 중간에 연락이 닿아, 관측 가능했던 특이사항은 거의 실시간으로 알리기도 했다.
에스퍼들의 자정 출근은 막았으나, 연구원들의 자정 출근은 벌어지고 말았다.
―세계가 멸망하는 것보다야 자다 깨서 새벽 한 시에 출근하는 게 낫죠.
영원은 여현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윤 교수의 말에, 반박의 예시를 상상해냈다.
그러나 특별히 말을 얹진 않았다.
도로롱.
결국, 시간 만료까지 상당한 여유를 두고 10개의 게이트는 전부 사라졌다.
[스테이지2: C급 게이트 10개 클리어]
[스테이지2 목표달성▶ C급 게이트 클리어 10개/10개]
[스테이지2 종료까지 잔여 시간 123분/300분]
“하아. 고생했다.”
영원은 마지막으로 한숨을 쉬고는 터벅터벅 여현의 앞으로 갔다.
“수고 많았어. 고마워.”
생각해보면, 하루 내내 일하고 돌아와 이제 퇴근하나 했는데, 갑자기 자기 일도 아닌 일로 밤샘 레이드를 뛰어야 했던 여현은 또 얼마나 고단할까.
‘날벼락 아닌가. 게다가 나 버스까지 태우느라 더 고생.’
‘뭐야, 나. 내 에스퍼님 앞에선 상당히 양심적으로 변해가고 있어.’
‘최애를 향한 덕력의 힘인가…….’
물론 여현은 전혀 별 게 아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돌아갈까요.”
“응.”
영원이 여현에게 손을 뻗었다.
“데려다줘.”
정말로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었다.
여현이 영원의 몸을 또 한 번 안아 들었다.
사실상 공간을 접붙이듯, 순간이동을 하듯 한강변의 펜트하우스까지 날아갔다.
중력에 반하여 날아가는 하늘 아래 풍경은 역시나 예뻤다.
‘드라이브도 좋지만, 비행도 좋아.’
‘진짜 퇴근길이라 더 예뻐 보이네.’
펜트하우스 옥상 헬기착륙장에 가볍게 착지하는 데까지는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자야겠다. 잘 자.”
“네. 푹 주무세요.”
“응.”
영원은 곧장 욕실로 가 물을 틀었다.
C급 게이트 10개 들락거리는 것으로 얻은 정보를 싹 정리하면서.
여현이나 윤 교수뿐 아니라 영원 역시도 그 짧은 경험으로 많은 것을 새로이 알게 됐다.
‘재미있는 힘이야.’
‘가능성은 더 있어.’
‘어찌 됐든 일단 자자.’
‘피곤해.’
털썩.
(여현 버스를 타기는 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게이트를 10연속 클리어하고 온 영원은,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새근, 새근.
금방 꿀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