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40화 (40/142)

1차 폭탄.

“나 A급 아냐. S급도. 그 이상이야. S 세…… 개.”

여현은 딱히 놀라지 않은 듯 보였다.

2차 폭탄.

“비선별이 아니라, 세계수한테 조용히 선별된 거야. 그래서 랭커 채팅에도 접근할 수 있어. 익명으로 들어간 적도 여러 번 있고.”

이건 1차 폭탄보다도 약한 듯했다. 여현은 1차 폭탄을 맞자마자 여기까지 짐작해낸 모양이었다.

연이어 3차 폭탄.

“우리 사이 매칭률 50% 말이야, 그거 더 높일 수 있어.”

3차는 1, 2차와 달리 약간의 타격을 준 것처럼 보였다.

“90% 정도. 정확하게는 매칭률 최대 90.01%.”

“…….”

영원은 미미하게 흔들리는 여현의 시선을 읽어냈다.

여현 역시 본인이 동요를 드러냈다는 것과, 그 변화를 영원이 즉각 눈치챘다는 걸 순식간에 인지한 듯했다.

“…….”

“…….”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여현은 영원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테이블 방향으로 내렸다.

그러나 무엇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테이블 위 물건 어디에도 초점이 맞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서 방금 들은 정보를 정리하는 데에 온 신경이 집중된 듯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매칭률을 높인 다음에 던전석이랑 어찌어찌해서, 몸의 상처도 내가 다 치료해줄 수 있어.”

영원은 여현이 쉬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충격은 한 번에 주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괜히 뜸을 들여봤자, 충격에 휩싸여 있는 시간만 길어질 것 같았다.

“식도, 위, 기타 소화기관, 화상 등등.”

그러면서 영원은 손을 뻗어 여현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옷소매 아래로 조금 드러난 화상에 손끝을 댔다.

긴장이 전해졌다.

이 정도의 스킨십에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관계는 아니었는데.

“내가 일부러 50%까지 내린 거야.”

“…….”

“일단은 내 가이딩이 내 에스퍼님한테 편안했으면 좋겠어서.”

“…….”

“피하지 말고 잠시만 나 봐봐. 여현아.”

김여현은 복잡한 사람이다.

그래서 영원은 여현이 그녀의 말을 듣고 좋아하기보다는, 벽을 치고 깊은 생각에 잠겨들려 할 거라 예상했다.

그는 쾌락을 좇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랬으면 그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이토록 청렴하게 헌신하여 왔을 리 없다.

그는 타인이 자신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걸 편안하게 생각하는 타입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 역시 그랬으면 영원을 만나기 전까지 가이드들과의 관계가 그토록 진창이었을 리 없다.

그에게는 잃고 싶지 않은 그만의 신념과, 타인이 쉽게 발을 들이밀 수 없는 그만의 영역이 있다.

영원은 자신이 그런 점을 존중한다는 걸 그에게 알리고 싶었다.

어느 정도는, 그를 이해할 수도 있었다.

‘나도 사람을 좀 가리지.’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정신세계에 따른 기이한 기준이 있단 얘기도 많이 들었고.’

‘갑자기 뭔가 내 삶에 끼어드는 거, 당연히 싫어.’

‘여현이가 인간 가이딩 그렇게 싫어했던 거 생각하면, 치료도 그냥 싫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싫다고 하면, 뭐 어쩌겠어. 일단 기다려보는 수밖에.’

그래서 준비한 몇 문장을 덧붙였다.

“싫다고 하면 당연히 안 해. 통제를 벗어나는 감각을 경험하는 게 거북한 거, 이해해. 나라도 그럴 것 같아.”

“…….”

“고쳐주고는 싶어. 하지만 미루는 것도 좋아. 내가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니까, 여유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 봐.”

여현은 느리게 호흡하다 숨을 참았다.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잠시 호흡기 근처의 공기 흐름을 끊었다.

감았던 눈을 뜨고, 영원을 다시 바라본 건 잠시 후였다.

“……그게 낫겠어요.”

“알겠어.”

영원은 빠르게 수긍했다.

“그런데 가이드님. 정말로…… 이 이상, 특별히.”

“응.”

“제게 무언가를 더 해주려고 하실 필요 없어요.”

여현이 가벼운 힘으로 손목에 닿아 있던 영원의 손을 떼어냈다.

영원은 그에게서 어떤 벽을 느꼈다. 여현이 벽 밖으로 자신을 밀어내는 것만 같은 느낌.

영원은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싫은 건가?’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싫은 거야?”

서로의 시선이 서로의 눈을 향한 채 오래 머물렀다.

답이 없자, 영원은 구체적으로 물었다.

“허락 없이 만지는 쪽? 아니면 괜히 나서서 치료해주겠다고 선 넘는 쪽?”

영원은 여현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아내어 실수를 피하고 싶었고, 여현은 영원이 어떤 마음으로 저런 물음을, 저런 표정으로 던지는 건지 알고 싶지 않았다.

“싫은 게 아니라.”

“…….”

여현은 다시 시선을 피했다.

“부담이 돼요.”

“…….”

“양쪽 다.”

그는 많은 설명을 생략했다.

“그래, 뭐.”

영원은 그의 거부를 무겁게 받아들이진 않기로 했다.

사람이 무언가가 내키지 않는 데에 특별히 이유가 필요한가.

“그러면 안 해.”

“아니, 그렇지만, 저는…… 오해하지는 않으셨으면…….”

여현이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처럼 덧붙이는 말에 영원이 작게 웃었다.

영원은 영원 나름의 방식으로 그의 당황을 이해했다.

“안 해. 오해 당연히 안 해.”

“…….”

“여현아. 상처, 내가 치유해줄 수 있어. 원하면, 원한다고 그때 말하면 돼.”

영원의 표정과 말투가 유독 다정했다. 그녀가 평소에 품고 있는 차가움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 얼굴에서 여현의 시선이 떨어지질 않았다.

“혹시…….”

“응.”

“가이드님한테 제 상처가 보이는 게 거북해서 제게 제안하신 건가요.”

“응? 내가 왜 거북해?”

영원은 여현의 말에 깔린 생각을 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화상 흉터요. 괴물 같아서 징그럽다고 흔히 욕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셔도…….”

“뭐? 여현아, 잠깐.”

그러고 보면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부분이 한쪽 눈밖에 없는 건 여전했다.

그게 유별나다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현아. 뭐야, 너 예뻐.”

영원은 여현이 생전 들어보지 못한 말을 가볍게 뱉었다.

“특히 눈이랑 손이.”

“…….”

“항상 곧은 자세가.”

“…….”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다 보기 좋아. 거북하기는, 무슨.”

피지컬이 딱 본인 취향에 부합하는 쪽으로 어나더 클래스라 반했다는 말은 과하게 주접인 것 같아서 자제력을 발휘해서 삼켜냈다.

체통을 잃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괴물이란 말은 나한텐 별로 욕으로 들리진 않아.”

“…….”

“강한 느낌이 들잖아. 좋은 거 아냐? 실제로 넌 그렇고.”

영원은 강한 사람들이 좋았다.

스스로 강하다는 것에 도취되지 않고,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여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괴물, 자랑스러운 별명이라고 생각해. 부정적인 평가라고 생각하면서 휘둘리지 마. 네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

“괜히 치료하겠다고 나서서 오해하게 했으면 미안. 나는 흉터가 문제라는 건 아니었고, 네가 맛있는 거 먹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어. 화상은 뭐, 덤이지.”

“…….”

“근데 진짜 밥 안 먹고 싶어? 파니니 진짜 맛있었는데.”

영원은 빈 접시를 다소 아쉬움을 담은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

“응?”

“당장은…… 당장은, 아니요.”

여현은 다시 거절했다.

“알았어, 그럼. 다음.”

영원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이게 어쩌면 가장 뱉기 어려운 고백이었다.

‘차원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했지.’

‘그래도 선을 지켜서, 조금이라도 말할게.’

속으로 숫자를 세어봤다.

1, 2, 3.

“나는, 연금술사야.”

“…….”

“다른 세계에서 왔어.”

“…….”

“이 차원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곳이었어. 딘하우스가 있던 곳의 미래야.”

“…….”

“그래서 그와 접점은 없었고, 그가 나와 비슷한 힘을 사용한다는 것도 저번에 마주쳤을 때에야 알게 됐지.”

가볍게 말하지만, 가벼운 진실은 아니었다.

“궁금하다면 더 말할 수 있겠지만, 굳이 애써서 내가 겪어온 일을 자세히 지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

“…….”

“혹시 궁금한 거 있어?”

“……네.”

여현은 천천히 질문 하나를 뱉었다. 신중하게.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길 바라시나요.”

여현에게도 영원에게 묻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한 질문이 있었다.

여현은 묵묵히 그 답을 기다리려고 했다.

“아니.”

시간 차 없이, 틈 없이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영원은 여현의 자그마한 불안을 보았고, 그에 그렇게 답해주었다.

“네 세계가 무너지게 두고 돌아가지 않아.”

그건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다.

김여현의 세계를 구해주기 전까지는 어디에도 가지 말자고.

‘그래. 이렇게 보증 서게 될 것 같았어.’

인생은 정말로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는 편이었다.

항상 아늑하고 할 일 없는 한량으로 살길 꿈꾸었으나, 평화가 오래 유지된 적이 있었던가.

“약속해. 이 차원의 위태로움이 멎는 순간까지 너를 도울 거야.”

얼마나 또 개고생을 해야 하려나.

영원은 갑자기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가 손을 뗐다. 실제로 통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기분이 그랬다.

‘끝없는 고생길은 아닐 거야.’

‘시한부겠지. 딱 몇 달, 길어봐야 몇 년.’

영원은 열심히 긍정회로를 돌렸다.

“내가 그때까지 우리 김여현 에스퍼님 심영원 버스 제대로 타게 해줄게. 무한대로.”

“…….”

“막연한 짐작보다 나는 훨씬 강할 거야.”

영원은 여현의 깊고 검은 눈동자에 그녀의 의지가 전해지길 바랐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백업일걸.”

영원은 진심으로 각오를 다졌다.

이제껏, 그녀가 간절히 원했는데 파괴하지 못한 것이 있었나 생각하면서.

하나도 없었다.

“원하는 대로, 세상을 구해.”

“…….”

“내가 말하면 안 되는 비밀 하나까지 우리 에스퍼님한테 알려주자면.”

【영원】

【경고를 듣지 않았던가】

청성이 개입했다.

영원은 개의치 않았다.

관리자들이 그렇게 협박해도, 어차피 관리자들 역시 이쪽에 아쉬울 게 많지 않던가.

‘이 정도는 말해도 되잖아.’

‘이거 말한다고 차원이 무너지지 않겠지. 나 그 정도 감은 있어.’

영원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난 이미 구해 봤어.”

‘딱 여기까지. 차원에 더 타격을 주지 않을 만큼만.’

“이미 한 번 해봤으니까, 어려워 보여도 하면 돼. 할 수 있는 일이야.”

“…….”

“그러니까, 나를 믿어.”

영원은 앞에 앉은 그녀의 에스퍼를 믿었다.

구구절절한 부연 없이도 그의 존재 자체가 품은 가능성에 설득됐다.

그에게도 같은 느낌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너도, 너의 가이드를 믿게 되기를.’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 역시 내가 너와 함께 세상을 구할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런 말을 속으로 속삭였다.

이유가 붙을 필요 없는, 그런 믿음을 함께 나누어 가지길.

영원은 밝게 웃으며 바로 분위기를 바꾸었다.

“우리…… 이제 대충 정리된 거지?”

“……네.”

“그럼, 점심에 치킨 시켜도 돼?”

영원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던전 안에서부터 치킨 먹고 싶었어.”

아침 방금 먹었는데, 벌써 점심 생각이었다.

여현이 해주는 요리도 좋았지만, 치킨은 배달의 맛이 있지 않던가.

마침 여현은 자신이 던진 폭탄을 여러 개 맞은 터라 생각을 차근차근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보이기도 했고, 집에 당장 튀길 닭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네. 그러세요.”

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은 기뻐하며 뭘 시킬지 먼저 결정해두기 위해 폰을 들어 배달앱에 접속했다.

브랜드, 치킨 종류, 추가 메뉴 등 점심까지 고민할 게 많았다.

그러면서 뻔뻔하게 말했다.

“여현아. 근데 결제하려면 카드 좀 받아야 할 것 같아.”

여현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힘을 사용해 서재에 있던 지갑을 날아오게 하더니 카드 한 장을 뽑아냈다.

그 이름도 빛나는 무한도 블랙카드.

“고마워. 잘 먹을게.”

“이거,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세요.”

“어?”

영원은 얼떨결에 블랙카드를 양손으로 받아버렸다.

‘영원히 달라고 노리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앞으로도 쭉 필요하신 거 다 구입하세요.”

“…….”

“아니, 딱히 필요 없는 것까지도 다 구입하셔도 돼요.”

영원은 당연히, 거절은 않기로 했다.

“응.”

영원은 점심에 치킨을 맛있게 먹고 여현과 별 거 아닌 수다를 이어가다가, 2층 침대로 와 누웠다.

팡.

매트리스가 오늘따라 더 훌륭하게 느껴졌다.

‘역시 여긴 천국…….’

열대우림에서 아무리 포근한 담요를 두른다 해도, 펜트하우스 침대에 파묻히는 것보다 아늑한 기분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침대는 어제보다 더 포근하게 느껴졌다.

영원은 잠시 모든 고민과 걱정을 잊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