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이 던전을 설계한 관리자에게 제정신인지 묻고 싶었다.
부글부글.
부우웅-
‘뭐냐.’
‘보스라는 건 거대한 몬스터 같은 거여야 하는 거 아냐?’
‘분명 보스 빼고는 여기 몹들 전부 다 악어나 시조새 같은 것들이었잖아?’
‘관리자님, 도대체 님 일관성 어디에?’
‘보스가 왜 땅 아래에서 끓고 있는 화산인데?!’
현재 위치, 지층 속 맨틀 근처 어딘가.
하부로 내려갈수록 에너지 밀도가 상승하는 던전 구조답게, 여기 에너지 밀도 매우 노답.
영원의 기분은, 더 노답.
‘나까지 편히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라니…….’
영원은 오늘따라 어이가 매우 많이 상실된다고 생각하면서 펄펄 끓는 마그마를 바라보았다.
[보스 클리어: 제물 헌정]
[클리어 조건▶ 가이드 1인을 분화구 꼭대기를 통해 보스에게 제물로 바침]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관리자가 바라는 건 자발적인 셀프 헌정인 듯했다.
‘분명히 희생 없이 끝내준다고 했으니까, 나를 죽일 것 같지는 않고.’
‘분화구 안으로 셀프로 들어가라는 거지?’
‘……아무래도 그렇지?’
영원은 끓는 마그마를 보고 작게 한숨을 폭 쉬었으나, 원래 내돈내산이 마음은 제일 편한 법이었으므로 그냥 맘 편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관리자님.’
‘나랑 친히 할 얘기가 있으시군요.’
‘직장 상사(주: 아님)한테 가련하게 끌려가는(주: 아님) 연약한(주: 절대 아님) 신입사원(주: ??) 같은 나의 가련한 운명이여…….’
영원은 미미하게 찡그린 표정으로 높이 있는 분화구를 봤다.
‘이 미친 에너지 밀도에서, 땅 속에 갑자기 비탈길 만들어 놓고 등산이라니 말이 되냐고.’
그래도 하라면 하는 수밖에.
정신마저 압박하는 듯한 에너지의 밀도를 뚫고 영원은 다리를 움직였다.
톡.
톡톡.
에너지의 밀도가 가이딩 밴드의 기능마저 막는 건지, 액정을 두드려보아도 밴드는 반응이 없었다.
‘또 걱정할 텐데.’
하아.
‘망.’
속으로 한숨을 연이어 쉬었다.
‘빨리 끝내야지.’
‘긍정, 긍정.’
영원은 불평불만을 속으로 삼키고 열심히 등산을 하려 했으나…….
맘먹은 대로 쉽지는 않았다.
‘반지의 제왕이세요?’
분화구로 올라가는 길 땅에서 어둠의 군대 같은 것이 솟아났다.
분화구 정상에 제물로 바쳐질 것 같은 가이드가 등장하자 S급 던전답게 난도를 높이기 위해서인지, 몬스터들이 소환되는 모양이었다.
영원에게 달려들기 위해 혈안이 된 미친 언데드 같은 것들.
‘만약 정말 반지의 제왕 같은 설정이라면 말이지.’
‘여기서 절대반지 = 나.’
영원은 절망 어린 표정으로 단발을 쓸어 넘겼다.
‘그래. S급이지.’
‘S급 던전이었지.’
‘제갈량 지도라도 받았냐? 군대 대형으로 짜는 전략 전술 왜 이렇게 어메이징해?’
자세한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말하자면, 영원은 오랜만에 제대로 몸을 풀었다.
오랜만에 극한의 상황에서 힘을 운용해보았다는 점에서, 유익한 경험이기는 했다.
누구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이, 파괴적인 힘에 휩쓸려 다칠 사람도 걱정할 필요 없이, 제대로 놀아볼 수 있었다.
“하아, 하.”
그렇게 숨이 차오를 만큼 열심히 몸을 굴려 남김없이 청소한 뒤, 영원은 분화구의 정상에 섰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관리자가 바라던 대로.
도롱.
[심영원, 타이틀 ‘우연의 독재자’, 관리자 □□의 시련의 끝에 진입합니다]
[던전의 관리자, □□가 이름을 해방합니다]
[‘안내’]
[던전의 관리자, 안내가 대화를 시도합니다]
예상대로, 뛰어드는 게 정답이었다.
***
【영원】
목소리를 들었다.
낯설고, 기괴한 느낌. 생명력을 조금도 입지 않은 기계음 같았다.
세계수나 청성보다 한참이나 멀리 있는 게 아닐까.
【초대에 응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단어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듣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관리자는 전능하지 않다】
【자격 없는 자들에게는】
【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어】
영원에게는 청성과 세계수의 목소리를 들어온 경험이 있었다.
청성과 세계수는 보통 문장 한두 개만을 뱉고 떠나가고는 했다.
그러나 이곳의 안내는 달랐다. 그녀 혹은 그는, 영원에게 상당히 긴 이야기를 하려는 듯했다.
청성이 영원에게 수년간 말한 모든 문장을 합친 것보다 긴 이야기를.
【차원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흔들리게 돼】
【이런 ‘계획공간’은 관리자의 존재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진정한 차원의 붕괴는 그 당시 그 차원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존재까지 소멸하게 하지】
【세계수는 소멸을 유예하고자 해】
【당연하게도 인간과 같은 삶에 대한 집착이나 의식의 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저물지 않는】
【사랑】
이렇게 갑자기 차원과 관리자의 적나라한 속내를 듣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랑?’
‘뭐야, 관리자의 러브라인이야?’
영원은 무엇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몇 번 크게 눈을 깜빡였다.
【네가 있던 차원은 오래전 이미 대제 이전의 술사에게도 구해진 적 있다】
【그레이】
【내가 그 차원의 관리자일 때였지】
청성에게 그녀가 원래 있던 차원의 관리자 자리를 물려준 건 이 던전을 만들어 낸 ‘안내’라고.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았다.
그레이 딘하우스가 자신과 같은 연금술사일 거란 막연한 짐작도, 충격을 주는 일은 아니었다.
【이곳 차원에 부여된 시련은 어느 때보다 어느 곳보다 거대해】
【세계수가 도움을 바란 건 처음엔 나였지】
【나와 연결된 그레이를 달라】
【회색빛의 아이를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내가 누누이 말했는데】
어째서 그레이의 힘이 그토록 낯선지, 그가 겪은 시간이 오래된 것 같은지도 알 것 같았다.
그레이 딘하우스는 상당히 오랜 기간을 거슬러 가야만 찾을 수 있는 과거의 사람이다.
영원이 원래 있던 세계의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기만 하던 인물.
어떻게 시간을 뛰어넘어 여기에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세계수는 무리했다】
【이 차원이 품고 있던 미래에 관하여도 누군가에게 알려주려 했지】
【세계수는 미련해】
【네가 거의 마지막이다】
【마지막의 개입】
【이제 세계수의 목소리는 직접 듣기 힘들 거야】
【예지든 무엇이든】
영원은 불안을 느꼈다.
어쩐지 난도가 너무 상승하고 있다는 불안.
【너는 법칙 외에 있어】
【세계를 더 흔들어서는 안 돼】
【관리자는 전능하지 않다】
【알리지 마】
【너의 과거를, 네 세계를】
【그 말을 전해주려 나 역시 무리하고 있다】
【세계를 구하고자 법칙을 흔들 때, 더 많은 인간이 법칙이 부서졌음을 알 때, 차원은 더 위태로워져】
【이 대화 역시도】
【네가 나의 가장 가까이로 왔을 때, 여기서 이야기를 마칠 수 있을 뿐】
【다만 의심하지 마】
【청성의 약속은 사실일 것……】
문장의 중간에서 목소리가 사그라졌다.
무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한계에 달해 연결이 끊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참을 더 기다려도, 더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힌트를 더 들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괜히 이전 세계에 대해서 함부로 입 놀리다가는 차원의 균열이 심화된다는 거지.’
‘나의 존재 자체가 불안정을 조장한다고.’
영원은 안내의 말을 대강 이해하게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알겠어.”
목소리를 낼 수 없을 뿐, 들을 수는 있을 테니까.
‘그래. 맘먹은 대로 풀리면 그게 인생이 아니지.’
‘내 인생 고구마라고 내가 하차할 수도 없고.’
‘착잡…….’
“전지전능한 척하지만, 겁나 제약 많은 힘을 쓰는 관리자님들.”
영원은 차게 식은 시선으로 암흑을 보았다.
“더 이상은 능력이 달려서 말도 못 한다는 거 알겠으니까 집으로 보내 줘.”
관리자들은 엄청난 힘을 쓰는 듯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가끔 엄청난 행운을 주거나, 목소리를 내어 운명에 개입하는 것뿐이다.
목소리는 그것만으로는 절대 실체를 가질 수 없다.
나약한 인간들이 나중에 어떤 못된 마음을 품을지도 실은 예측하지 못하여서, 세계수는 이미 여러 번의 실패를 겪었다.
대강은 알겠다.
영원은 이미 한 번 청성의 세계를 구해냈다.
그때에도, 청성이 전능하지 않다는 거야 알고 있었다.
청성은 어떠한 임무를 줄 때에, 그 이유를 덧붙이지 않았다.
처음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게 악취미라고 생각했으나, 언젠가 알게 됐다. 이유를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세계수가 주는 퀘스트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고.’
그리고 그런 청성을 어깨 너머로 보던 세계수는 자기 차원에 있는 인간들만으로는 뭐가 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청성에게 ‘네 세계를 구해낸 영원을 잠시만 빌려줘’라며 애원한 모양이지.
‘내가 읽던 소설은, 그냥 세계수의 초대장이었나.’
그리고 그때 미약한 안내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청성이 도움을 필요로 했던 순간이 있어】
【네가 대제가 되기 전】
【각성자 하나를 보내달라고】
【세계수는 아이들의 꿈에 찾아가 물었다】
【너의 세계의 절망을 열어 보이며】
【갈 수 있겠는지】
【영원】
【네가 보게 되었을 모든 절망을】
【어떤 아이가 긍정했다】
【절망이 두렵지 않다】
【구하겠다】
【설령 존재가 저문다 해도】
【네가 대제가 되기 하루 전에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네가 대제가 되어 협상은 더는 필요치 않아졌고】
【세계수는 그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 네 이름을 주었다】
【네 세계에 그가 갈 수도 있었어】
【그러니 네 이름을 받은 그를 외면하지 마】
외면해달라고 애원해도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지 오래였다.
【이후로 여현은 변한 적이 없어】
【심각하게 여전하지】
더는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레이를 막고, 게이트를 막고, 차원을 구해내야겠다는 결심은 저런 말 따위가 없어도 굳건했다.
아홉 살 심영원은 귀찮은 말 좀 그만하고 잠 좀 자게 입 좀 다물라고만 했을 것이다.
아홉 살 김여현과는 달리.
“내보내 줘.”
영원은 이제 다시 여현을 만나러 가고 싶었다.
“갑자기 또 이렇게 사라져서 많이 놀랐을 거야.”
【그래】
【내가 줄 수 있는 건 다 주겠다】
【부디】
【영원】
【살아남아】
【구원해】
S급 던전의 보스는 소멸했다.
[스테이지1: S급 던전석 5개 취득]
[스테이지1 목표달성▶ S급 던전석 182개/5개]
[목표달성]
영원의 시선은 ‘182개’ 부분에 한참을 머물렀다.
생각보다 심히 관대하신 ‘안내’느님의 친절에 따라, 세계수가 부여한 스테이지1까지 광속 클리어.
던전석 무려 182개 취득.
‘모든 원망을 철회한다.’
영원은 ‘안내’에게 쏟아부었던 불평불만도 기억에서 일괄삭제했다.
앞으로는 영원히 만날 수 없고 그 목소리도 들을 수 없어,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을 상대라,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