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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34화 (34/142)

이 시각, S급 던전 ‘계단 우림’ 최하층 지상에서 지하에 갇힌 조지나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르륵.

“으.”

A급 몹인 뱀이 온도가 시시각각 변하며 조지나를 가둔 쇠줄을 따라 움직였다.

그 감각이 조지나를 불쾌하게 했지만, 그건 견딜 만했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건 벌레들 쪽이었다.

“악!”

조지나는 사슬로 고정된 손목과 발목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사슬을 따라 힘을 흘려 넣었다.

그러자 그를 통제하던 여현의 힘이 역으로 터져 나왔다.

파직!

쩍.

가이딩 밴드의 액정에 금이 갔다.

“…….”

몸부림치던 조지나의 모든 행동이 멎었다.

“뭐…….”

‘가이딩 밴드 액정에 금……?’

원래 이론상으로는 미세한 흠집조차 나지 않아야 했다.

왜냐면, 이건 S급 던전석으로 강화된 것이니까.

“…….”

잠재력으로는 S급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K.

그런 생각이 들자 신체의 불쾌한 감각과 고통이 싹 잊혔다.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조지나를 흔들었다.

‘아냐.’

‘S급 위 랭킹은 없어.’

얼마 전, K의 랭킹이 상승했다. S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면 그의 랭킹 상승은 멈추어야만 했다.

‘세계수가 보기에 어떤 각성자가 등급을 올려야 될 정도로 강해지면, 세계수는 기존 등급의 랭킹 상승을 멈추어버리니까.’

조지나는 모르지만, 이창결의 A급 랭킹 상승이 어느 순간 멈추어버린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러니까 S급을 넘어섰을 리가 없잖아.’

‘K는 물리계니까. 물리계는 원래 환상계보다 무식한 파워를 낼 때가 있어.’

물리계는 그 능력이 환상계만큼 화려하거나 섬세하지 않은 대신, 운용하는 에너지의 크기 자체가 거대한 편이었다.

‘환상계의 힘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할 뿐이야.’

조지나는 공포를 물리쳤다.

그때쯤 금이 간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깜빡. 깜빡.

그녀는 벌레도, 뱀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밴드의 빛나는 액정만을 주시했다.

[어디]

[뭘 하고 있어]

[S 에스퍼 둘 에스코트하라고 보냈어]

전담 에스퍼, 그레이가 보낸 문자였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너…… 너희!”

조지나는 다시 발악을 시작했다.

“이러고서 그레이한테 무사할 줄 알아!”

어그로를 끌어보려는 비명은 지하감옥 안에서만 메아리쳤다. 그 외에는 조금의 파급력도 만들지 못했다.

같은 시간, 땅 위.

여현은 아래쪽은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영원도 그랬다.

센터 에이스 4인은 더욱 그랬다.

그들은 모두 입도 다물지 못하고 초현실적인 장면 앞에서 넋을 놓고 있었다.

“그레이가 너희들을 다 처형할 거라고!”

조지나의 외침은 속삭이듯 닿을 뿐이었다.

모두의 관심은 영원과 여현에게 쏠려 있었다.

정확히는 영원과 여현의 기묘한 구도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일어날 생각이 없는 김여현 에스퍼.

그를 자연스럽게 내려다보며, 아주 작은 멍이 든 손목을 내민 심영원 가이드.

“그래도, 조금이라도 불편한 곳 있으시면…….”

“없어. 진짜 괜찮아.”

여현의 집요한 시선이 맥박이 옅게 뛰는 하얀 손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손톱 절반만 한 크기의 멍이 상당히 신경 쓰이는 듯했다.

“진짜야.”

영원은 민망한 기분이었다.

‘조지나가 수갑을 채워서 든 멍이 아닌데.’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그냥 힘 조절 잘못 했지.’

그런데 또 직접 만든 멍이라고 고백하기도 그랬다.

영원은 괜히 헤헤 웃어 보이며 그냥 좀 피곤할 뿐이라는 말만 덧붙였다.

“잠시만 더 앉아서 쉴게.”

안심시키려는 노력의 반복에도, 여현의 표정이 풀리진 않았다.

“여현아. 너는 괜찮아?”

“…….”

영원은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가이딩 해줄까.”

“피곤하시다면서요.”

“가이딩이야 할 수 있어.”

“잠시만 더 쉬세요. 저도 당장은 괜찮아요.”

그리고 그런 둘을 보는 센터의 4인은 더욱 희게 질려 갔다.

“…….”

“…….”

여현은 존대를 했다. 그에 반해 영원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에 높임을 조금도 섞지 않았다.

‘……? ……?? ……???’

‘이, 이 구성 뭔데……?’

‘저, 저 배치 뭔데……?’

‘왜 한쪽만, 그것도 가이드님 쪽만 반말하는데요……?’

그들 모두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심지어 던전에 들어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장제권마저 그랬다.

그때쯤 영원이 고개를 들어 그들의 표정을 봤다.

‘왜 다들 이렇게 안색이 허예?’

‘내가 그렇게 걱정시켰나.’

영원은 정확한 이유를 짚어내지 못했다.

“금방 S급 백업 인력이 올 거라고……!”

저 아래 멀리서, 조지나는 십여 차례 실패한 어그로를 다시 시전했다.

“일, 일단은 금방! 그레이가 오기 전에! 좀 꺼내!”

지상에서 그녀의 외침에 처음으로 반응해주기로 한 건 영원이었다.

“저 아래, 스피넬.”

조지나가 예고한 바와 같이, 두 에스퍼가 접근하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말인데…….”

영원은 에둘러 해주려던 경고를 멈추었다. 어느새 여현이 일어나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계세요.”

“응?”

“보기에 좋은 일은 아닐 거라서요.”

그 역시도 곧장 알아챈 게 분명했다.

“나 그런 거 잘 ㅂ…….”

문장을 끝맺기 전에 적들이 왔다.

파파박.

수풀에서 S급 에스퍼 둘이 튀어 올랐다.

팽!

철컥, 캉!

그들이 구현해낸 거대한 활과 총이 화살과 총탄을 날렸다.

구현하는 힘의 화려한 이펙트로 보건대 아마도, 근접전에 약한 환상계.

환상계는 육탄전이 아니라 멀리서 원거리 공격부터 시도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럼에도 S급 던전 최하부의 에너지 밀도와 각종 교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근접전을 택한 듯했다.

물리계라고는 해도, 김여현의 공격 가능 거리를 생각하면 거리를 좁히는 게 더 승산이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퍽.

그들이 최초로 시도한 공격은 여현에게 닿기 전에 저 멀리 치워졌다.

뚜둑.

여현은 적들과 마주한 상태로 손을 느리게 풀었다.

S급 에스퍼 둘 중 활을 든 쪽은 저주, 총을 든 쪽은 테이밍에 능한 타입이라는 걸 천천히 파악해가면서.

둘 다 S급인 것 같았지만, 이름이 바로 떠오를 만한 유명인사들은 아니었다.

상대의 약점을 잡아내기 위한 대치상태가 잠시 이어졌다.

철컥.

총을 든 에스퍼가 먼저 움직였지만, 여현의 힘이 그에게 더 빨리 도달했다.

와그작.

무형의 환상으로 창조된 총이 부서졌다.

“어…….”

쾅!

총을 든 에스퍼는 여현이 이어 보낸 충격파에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콰직.

퍽.

활을 든 에스퍼는 여현에게 공격을 가할 반경까지 가까이 왔다가, 여현의 힘에 머리를 강타당했다.

모두 대치상황이 깨진 지 5초 내에 벌어진 일이었다.

영원은 끔찍한 장면을 보지 말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그를 지켜보았다.

“화이팅.”

영원은 응원의 말을 한마디 작게 얹었다.

먼치킨느님이 부디 아무런 가책 없이 먼치킨의 진면모를 보여주길 바라며.

콰광!

멀리 날아갔던 총을 든 에스퍼가 길이 100m쯤 되는 두꺼운 대도를 휘둘렀다.

우수수.

열대 우림 위의 나무, 돌, 기타 모든 것이 전부 환상의 힘에 두 동강 났다. 그리고 잘린 부분은 의지를 가진 듯이 여현에게 달려들었다.

식물, 무생물, 할 것 없이 모든 게.

S급 에스퍼의 테이밍, 생명을 설득하는 힘.

퍼벅.

여현은 그 모든 공격을 가루로 부수어버리고는 S급 에스퍼 둘이 딛고 선 땅을 뒤집었다.

콰르륵. 지직!

양탄자처럼 지층이 뒤집어졌다.

“악!”

콰쾅!

파도처럼 요동치며 하늘로 솟은 흙이 단단하게 뭉쳐져 다시 내리꽂혔다.

후두두둑.

일부는 총알처럼 뭉쳐져 총알보다 빠르게 땅으로 떨어졌다.

퍼버버버버버벅.

S급 에스퍼들은 방패 같은 것을 만들어내 총알 세례를 막아내기는 했지만, 안색이 파래졌다.

콰과곽!

이제는 더 깊은 지층까지 공중으로 치솟았다.

처음의 흙 총알 세례가 다 멎기도 전이었다.

이제는 양탄자가 아니라, 거대한 흙 큐빅이 공중에 뜬 모양새였다.

여기가 지구였으면 맨틀까지 들어 올렸을 듯한 느낌.

예고된 결말은 뻔했다.

‘환상계 둘까지는 물리계 하나한테 이렇게 발리는 게 정상인가?’

쾅!!

마지막 일격은 사운드도 남달랐다.

‘내 에스퍼님 진짜…… 장난 없으시다.’

상황 종료.

여현은 기대를 조금도 배반하지 않았다.

‘멋있…….’

영원은 꽉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이곳을 나가면 일단 첫 끼 메뉴는 치킨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무조건 양 많은 순살 치킨.

먼치킨과 치킨.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홀한 라임이었다.

‘먼치킨 남친님을 둔 로판 여주의 짜릿함이란 이런 것인지도.’

쾅!

여현의 마무리가 이어졌다.

S급 에스퍼 둘이 다시 한번 충격파를 받아내며 땅에 엎어졌다.

그들은 함께 의식을 잃었다.

퍽.

동시에 지하감옥의 문이 열렸다.

쿵.

“억! 뭐야!”

둘은 조지나의 옆으로 떨어졌다.

쾅.

조지나의 욕설과 함께 감옥의 문이 닫혔다.

“…….”

대치상태 붕괴 후 2분 30초 정도.

상황이 완벽하게 종료됐다.

툭툭.

여현은 옷의 손목 부분을 정리하며 영원을 보기 위해 다시 돌아섰다.

몸이 느리게 돌아서는 턴까지 완벽했다.

영원은 잠시 성덕이 된 기분에 취했다.

‘그야말로 그림 같다…….’

그러면서 반성했다.

‘이래서 납치 클리셰가 있나 봐.’

‘그동안 로판 볼 때 악역에게 휙휙 끌려다니는 납치 여주들 극고답이(주: 극혐 고구마 답답이)라고 한심하게 생각했던 거 반성한다.’

‘분노해서 차가운 얼굴로 정의구현해주는 남주와 깊어지는 감정선 좋고요.’

납치 클리셰가 필요한 이유를 단번에 이해하게 됐다.

“가이딩을, 좀.”

바로 이어진 조용한 부탁에, 영원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

가까이 온 여현이 다시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센터의 에이스 4인은 다시금 현실 붕괴를 마주했다.

‘……? ……?? ……???’

‘뭐지?’

‘방금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요?’

김여현의 참교육은 놀라울 게 없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김여현 에스퍼의 눈가에 심영원 가이드의 한쪽 손끝이 닿아 있었다.

‘……?’

‘……??’

‘……???’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끝이 닿은 건 시작에 불과했다.

스윽, 스윽.

다른 한 손은 여현의 머리칼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가이딩이 안 된다는 걸 다른 이들은 모를 테지만, 영원도 여현도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센터의 에이스 4인은 눈동자가 아니라 흰자로 열심히 그들을 훔쳐봤다.

어쩐지 똑바로 관람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

‘……??’

‘……???’

그들은 일단 이 던전을 나가기 전까지 저 알 수 없는 관계성에 관해 더 이상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여현이 영원을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었을 때에는, 어떤 동요도 드러내지 않……지는 못했다.

“억.”

누군가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탄사를 뱉고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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