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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33화 (33/142)

탁.

굴러간 수갑 조각이 조지나의 하이힐 앞코와 부딪혀 멈추었다.

깔끔히 절단된 단면이 보였다.

그럼에도 조지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영원은 수갑이 채워져 있던 자신의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조지나가 힘을 가했는데도 붉게 변한 부분이 없었다.

힘을 과하게 실어 만지다가 아주 흐릿한 멍 자국을 스스로 하나 남겼을 뿐.

“이…… 이거 뭐야.”

조지나가 제대로 반응한 건 시간이 조금 흐른 다음이었다.

그제야 잘려나간 수갑의 형상을 인식한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A급 에스퍼 둘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아무런 힘을 쓰지 않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S야?”

조지나의 상상력의 한계는 거기까지인 모양이었다.

“A급 가이드는…… 이런 거 못해.”

심영원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A급 가이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A급 가이드는 가이딩 상대인 에스퍼 없이 자신의 그릇에서 힘을 꺼내지 못한다.

S급 가이드는 에스퍼 없이도 약간의 힘을 꺼내, 마치 등급이 낮은 물리계 에스퍼처럼 물체를 움직이기도 한다.

힘의 소모가 극심하고 엄청난 훈련을 필요로 하기는 하겠지만, 수갑을 절단하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했다.

그러니 영원이 S급 가이드라고 가정하면, 쇠사슬과 수갑이 끊어진 건 어찌어찌 발생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하. 어이는 없는데.”

촤륵.

조지나는 쇠사슬을 다시 움직였다.

그녀 자신이 쇠사슬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도, S급 가이드의 힘을 끌어내어 하는 일이었다.

“S급이라고 해도, 내 쪽은 A급 에스퍼도 둘이야. 그러니까, 네가 그래봤자지.”

조지나는 그렇게 현 상황을 나름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글쎄. 그럴까?”

여유를 잃지 않은 영원의 표정이 조지나에게 약간의 불안을 안겼다.

“세상 일이 그렇게 바람대로만 흘러간다면…….”

영원은 중2병을 한 스푼 얹은 대사를 뱉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리려다가, 먼 곳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벌써.’

중2병을 가볍게 앓아보려 했는데, 의도치 않게 급히 완치되었다.

영원은 어깨에 힘을 빼고 입술을 굳게 닫았다.

“흘러가면?”

“아냐.”

“계속해.”

“싫어. 피곤해.”

던전석 찾기로 누적된 피로가 몰려왔다. 영원은 그래서 그냥 어딘가에 널브러지기로 했다.

타박. 타박.

털썩.

쉬고 싶을 때에 특히 행동력 갑이 되는 심영원.

영원은 거대한 이파리가 쌓여 적당히 소파처럼 보이는 자리로 걸어가 편히 앉았다.

“…….”

“…….”

조지나가 예상할 수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극강의 무신경함이었다.

멀리 있는 A급 에스퍼 둘은 입을 벙긋거리기만 했다.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촤륵.

조지나는 사슬을 휘두르며 소리 질렀다.

그러나 다시 공격이 쉽게 막혀 민망해질까 봐 영원을 향해 휘두르지는 못했다.

상대 S급 가이드의 힘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상태로, S급 가이드의 힘이 사용된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

조지나는 긴장한 상태였다.

정말 K의 가이드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면, 그래서 힘을 느낄 수 없었던 거라면, 그녀는 S급 가이드의 힘을 이용해 뒤에 있는 A급 에스퍼 둘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S급 가이드 상위 랭커들은, 일반적으로는 이능을 사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에스퍼를 대상으로’는 S급 에스퍼에 준하는 능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해도, 조지나는 당황을 떨치지 못했다.

조지나의 기분에 관심이 없는 영원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등받이에 기대어 다리를 꼬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너, 너……!”

“스피넬. 근데.”

영원은 좀 전에,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조지나의 말 몇 마디를 떠올려냈다.

“44시간? 40시간? 그건 뭐였어?”

그 시간의 의미가 짐작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거슬렸다.

“내가 떨어진 순간부터, 특별히 이틀의 시간제한을 둘 이유가 있나?”

“아…….”

“…….”

“너는 모르는 퀘스트겠지.”

‘퀘스트?’

조지나는 갑자기 자신감에 찼다.

그러고는 멍청한 악당이 된 것처럼 자신이 아는 모든 정황과 정보에 관하여 나불댔다.

이 S급 던전에 들어온 이들에게 어떤 퀘스트가 부여되었는지.

영원이 스스로 뛰어내린 뒤 모두가 48시간 안에 심영원의 반경 5m 안에 들어가야만 던전의 보스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래서 44시간이 남았어.”

영원은 인상을 쓰고 조지나의 말을 경청했다.

‘나랑 스피넬, A급 에스퍼 둘은 최하층 최북단에, 그레이 딘하우스는 스피넬이 적당히 둘러댄 핑계 덕에 몇 층 위의 최북단에 있고, 한국 센터 각성자들은 최남단 상부의 입구를 통해 던전에 들어왔다는 거지.’

며칠간 함께 지낸 시간을 통틀어 조지나의 말을 이렇게 열심히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40시간 이후에, 넌 그레이를 만날 거야.”

“…….”

“내가 그때 보자고 했거든. 그레이는 알겠다고 답신했고.”

뚜둑.

조지나는 손을 풀었다. 이제는 확실히 자신감을 모두 되찾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네가 S급 가이드더라도, 너는 네가 제 발로 여기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그레이든, 누구에게든 말하지 못하게 될 거야.”

“왜?”

“내가 네가 말을 못하게 만들 거거든.”

촤라락.

조지나는 또 쇠사슬을 펼쳐들었다. 그러면서 A급 에스퍼 둘에게 눈짓했다.

영원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밴드를 찬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걸로 그레이를 부르기 전까지.”

영원의 시선이, 자신의 가이딩 밴드에서 떨어져 조지나의 밴드로 향했다.

조지나가 찬 것은 구형 모델이었다.

아마도, 그레이와 나누어 찬 밴드.

“포에버.”

그래도 달라질 건 없었다.

“넌 고문당하면서 네 에스퍼가 나타나주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

“내 에스퍼가 오는 게 먼저야.”

조지나가 가까이로 왔다.

“알겠지만, 내 에스퍼가 네 에스퍼보다 강하잖아.”

그녀는 허리를 숙여, 앉아 있는 영원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뭐, 망상이야 자유지.”

영원은 약간의 웃음을 담아 말했다.

“스피넬, 봐.”

톡. 톡.

영원은 가이딩 밴드의 액정을 두드린 뒤, 불이 들어온 화면을 조지나에게 보여주었다.

“무ㅅ…….”

“…….”

“그…….”

여현의 GPS 좌표가 중앙에 떴다.

매우 가까운, 좌표.

“가…… 가이딩 밴드 중 그런 모델은 없어.”

가이딩 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어떻게든 잠금을 해제해서 빼내보려는 시도라도 했을 터였다.

“그거 애X워치라고 생각했는데!”

‘뭐야……. 얘, 애X워치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갤XX 유저였어?’

뜻밖에 국산 스마트폰 애용자인 외국인을 만났지만, 반가운 마음을 느낄 타이밍은 아니었다.

“그래, 뭐. 가이딩 밴드 정발 모델 중에 이런 거 없지. 그건 맞아.”

영원은 일단 약간의 긍정은 해 줬다.

“내가 알기로는…… 이거 최근에 나온 신형이야. 정발 전 모델.”

박의총 CEO님의 정(식)발(매) 전 센터 역삼 본부 초고속 협찬.

자본의 힘도, 신기술의 힘도 위대하다.

“그래서, 네가 방금 한 말들 뒤집어주자면.”

“아……. 어…….”

“너야말로 진짜 큰일 나신 것 같은데.”

너한테 큰일 만들어 주실 S급 물리계 에스퍼님, 분명히 5분 안에 등판하십니다.

[와줘]

그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갈게]

회신은 바로 왔다.

급히 보내느라 존댓말도 쓰지 못한, 두 글자.

그가 가까이에 온 게 느껴졌다.

콰과광!

여기서 더 심영원을 기다리게 할 김여현이 아니었다.

***

그리고 정확히 4초.

왔노라.

싸웠노라.

벌써 순살 됐니……?

자세한 설명을 생략할 것도 없었다. 자세한 설명을 할 무슨 상황이랄 게 없어서.

퍽.

쾅!

시작됐나 했더니 상황종료.

그래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첫 1초에서 2초 사이.

“ㅇ……!”

“ㄱ…….”

여현은 하늘에서 떨어져 A급 에스퍼 두 명의 의식을 거두어갔다.

그 다음 3초에서 4초 사이.

촥.

조지나가 자신의 사슬에 완전히 결박됐다.

그리고는 그대로 흙으로 사방이 막힌, 지하 500m쯤의 감옥에 갇혔다. 여현이 순식간에 창조해낸 것이었다.

퍽.

휘청.

콰직.

“욱!”

에너지의 밀도가 끔찍하게 높은 지하에서는 숨 쉬는 것부터가 고통일 터였다.

“악!”

살아 있기는 한 듯, 괴성이 들렸다.

“아악!”

더 이상 그녀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생생한 장면은 흙더미로 가려져 목격할 수 없었다.

아마, 영원에게 폭력적인 걸 보여주는 건 피하고자 하는 여현의 의도가 조금은 반영된 게 아닐까 싶었다.

영원이 볼 수 있는 건 눈앞의 여현밖에 없었다.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낮춘 김여현.

툭.

그렇게, 여현이 영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 것으로, 상황은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도롱.

[번외 퀘스트 타이틀: 포에버 술래잡기]

[목표달성▶ 48시간 내 심영원 5m 근처로 접근]

[제4 목표 달성자, 김여현, 타이틀 ‘영원의 헌신자’]

여현에게 알림이 간 것도, 지하감옥에 조지나가 떨어진 이후였다.

등장부터 종료까지 걸린 시간을 다 합쳐도 10초 정도.

‘아……?’

‘이거 진짜 소설이었으면 분량 확보 넘나 안 될 것 같은데…….’

‘나름 그래도 하나의 에피잖아. 근데 10초 컷?’

영원은 속으로 탄식했다.

‘S급 에스퍼 vs S급 가이드+A급 에스퍼 2명이었는데 진행 이러기야?’

S급 가이드는 S급 에스퍼들을 상대로도 약간의 통제력은 행사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S급 가이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A급 에스퍼 둘이 그렇게 긴장한 표정을 지었던 것일 텐데.

‘밸런스 고려 조금도 안 되고 심히 불공정한 느낌이었어.’

한 명뿐인 여현 쪽이 매우 우세한 쪽으로.

“…….”

영원은 어쩐지 조지나의 당혹스러웠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상식을 파괴하는 힘을 보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괜찮으신가요.”

여현이 다정히 건넨 질문의 의미를 곱씹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계속 영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였다.

“…….”

그의 손끝이 영원의 손목에 닿았다.

조심히 닿아, 영원도 눈치채지 못한 손목의 아주 작은 멍을 섬세하게 감쌌다.

섬섬옥수가 늘 그렇듯 예뻤다.

“……응. 괜찮아.”

영원은 고개까지 끄덕였다.

“괜찮아.”

다시 말했다.

그럼에도 여현의 분노는 조금도 잠재워진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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