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32화 (32/142)

다시 2시간이 경과한 뒤, 던전 최하부 최북단.

던전의 관리자가 부여한 ‘포에버 술래잡기’ 퀘스트의 잔여 시간이 계속 줄어들어갔다.

[목표달성▶ 48시간 내 심영원 5m 근처로 접근]

[퀘스트 종료까지 잔여 시간 44시간/48시간]

그리하여 남은 시간은 48시간 중 44시간.

물론 퀘스트의 존재를 꿈에도 모르는 영원은, 태평하면서도 질린 듯한 묘한 표정으로 쏟아지는 산성비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쏴아아-

열대우림이 줄줄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뙤약볕 밑의 아이스크림?’

대제의 강인한 육체와 뛰어난 능력을 믿고 저 산성 스콜을 헤치고 전진해갈 수도 있겠으나, 어쩐지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영원은 추가 탐색의 의지를 접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지난 2시간 동안, 영원은 S급 던전석을 더 구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은 세 개의 돌멩이 중 무엇이 S급 던전석인지도 파악해내지 못했다.

[스테이지1: S급 던전석 5개 취득]

[스테이지1 목표달성▶ S급 던전석 1개/5개]

‘던전석 하나 얻은 건 초심자의 일회성 행운이었던 듯.’

어쨌거나 운 좋게 하나를 얻기는 했으니 기분은 여전히 나쁘지 않았다.

수확은 확실한 거고, 여현을 치료해 낼 희망도 여전했다.

‘설마 진짜 치료 중에 깨지겠어?’

영원은 열심히 긍정회로를 가동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108시간을 다 채워 대제의 몸을 얻었다는 건, 펜트하우스에서 납치된 이후 최소 70시간이 지났다는 뜻이었다.

‘우리 에스퍼님 너무 걱정시키면 안 되지.’

여현은 한참 전에 출장을 마치고 퇴근했을 터였다.

전담 가이드가 사라졌다는 걸 즉시 알지 않았을까.

영원은 박의총 가이드가 영원에게 전한 사실을 여현 역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여현의 반응이나 생각이 어떨지 단정하진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일이 벌어진 게 납치 때문이고, 그 범인이 세계랭킹 1위 그레이 딘하우스라는 것을 여현이 짐작했다면…….

제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무던하고 태평하지는 않지.’

‘여현이는 당연히 나보단 예민할 듯한데…….’

‘너무 생각 없이 혼자 쏘다녔나?’

자신은 김여현이라는 에스퍼에게 완벽하게 유일한 가이드였다.

‘김여현이 심영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진 알 수 없지만.’

‘내 가이딩이 여현이에게 특별하다는 걸 의심하진 않아.’

영원은 더 이상 여현을 걱정시킬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오른손이 왼쪽 손목에 찬 가이딩 밴드 위로 움직였다.

톡톡.

손끝이 액정을 가볍게 두드렸다.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음…….”

‘아닌가?’

‘전담 에스퍼가 전담 가이드를 엄청나게 걱정하고 있을 거라는 건, 최애를 재료로 하는 내 어긋난 뇌내망상인가?’

영원은 진지한 얼굴로 고민에 잠겼다.

‘흠. 중증의 로판 중독증?’

그래도 손가락은 계속 움직였다.

톡. 톡톡.

그리고 그쯤이었다.

“포에버!”

며칠간 익숙해진 외침이 고막을 때렸다.

조지나 스피넬.

드디어 곁을 빙빙 누비며 자신을 찾아다니던 그녀가 S급 에너지의 압박과 교란을 뚫고 영원을 발견해낸 모양이었다.

영원은 주변을 헤매던 조지나의 접근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톡. 톡.

액정을 두드리는 작업이 끝났다.

영원은 느릿하게 조지나가 다가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척을 숨기지도 않고 있었는데, 자신이 어디 있는지 조금도 감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아 어이가 상당히 많이 사라져가던 참이었다.

‘S급 던전답게 에너지 밀도가 워낙 높아서, S급 가이드에게도 힘든 환경인 것 같긴 하지만.’

조지나는 다소 흐트러진 모습으로 영원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런 힘든 환경에서도 힐을 벗지 않는 게 대단해 보이기는 했다.

영원은 도망치지 않고 조지나를 마주했다.

“포에버.”

조지나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분노가 넘실거리는 조지나의 녹색 눈과 달리, 그를 마주한 영원의 갈색 눈은 차분했다.

‘그동안 되찾은 몸의 상태도 파악하고, S급 던전석까지 하나 얻으며 유익한 시간을 보냈지.’

“응. 어서 와.”

영원은 나름대로 준비한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마침 S급 던전석을 추가로 찾으려던 마음도 접고 심심하던 차라, 조지나의 재등장이 약간은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느라 수고했어.”

영원은 속으로 덧붙였다.

‘제물 되려고 제 발로 뛰어와 주느라.’

***

게이트는 보통 발생지의 지명이 게이트 이름이 된다.

던전의 경우, 최초발견자가 짓거나 해당 필드의 센터 본부에서 적절한 이름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다.

이곳 던전은 후자의 케이스였다.

던전의 최초 발견자인 조지나 스피넬은 던전의 발생을 랭커 알림 등을 통해 공지하지 않았고, 그래서 던전에 이름을 붙일 기회를 상실했다.

대신에, 던전 생성지인 필드 대한민국에 위치한 센터 역삼 본부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IC 인근에 만들어진 S급 던전에 ‘계단 우림’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계단처럼 겹겹이 쌓인 열대우림의 영상을 전달받은 대(對)던전 수석 연구원이 직관적으로 제안한 이름이었다.

연구원은 몰랐지만, 하부로 갈수록 에너지의 밀도가 급격하게 치솟고, 출몰하는 몹들이 강력해진다는 점에서 ‘계단 우림’은 이 던전에 더욱 적합한 이름이었다.

“하.”

그리고 그러한 특성에 따라 던전 최하부로 떨어진 조지나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던전 상부는 매우 편안했는데, S급도 아니고 A급 에스퍼만 대동한 채 최하부로 내려와 몇 시간 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영원을 여러 번 비껴간 산성비 스콜은 조지나의 머리 위에서는 잘도 내렸고, 조지나는 어쩌다가 땅에서 분출되는 마그마를 정통으로 맞기까지 했다.

퐈악!

열 받는 기억이었다.

심영원을 찾아냈다고 하여 바로 기분이 풀릴 리가 없었다.

“수고했어?”

조지나는 영원의 말을 되물었다.

“그렇게 말한 거 맞니.”

질문을 담은 문장은 끝까지 단조로웠다. 그에 그녀의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응.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도 모르고 헤매면서 개고생하느라.”

“…….”

“엄청.”

물론 영원은 조지나의 분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수고 많았어.”

고생과 고생의 끝에 만난 김여현 전담 가이드의 정신 나간 반응을 보자, 조지나의 분노 게이지가 더욱 치솟았다.

도롱.

[번외 퀘스트 타이틀: 포에버 술래잡기]

[목표달성▶ 48시간 내 심영원 5m 근처로 접근]

[제1 목표 달성자, 조지나 스피넬, 타이틀 ‘믿음의 희망’]

관리자가 부여한 퀘스트를 완수했다는 건 조지나를 조금도 기쁘게 만들지 못했다.

도롱.

[퀘스트 종료까지 잔여 시간 44시간/48시간]

도롱. 도롱.

도롱. 도롱.

조지나와 함께 영원을 쫓아온 A급 에스퍼 둘 역시 괴로운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S급 던전 최하부의 환경부터가 두려웠다.

그런데 그들을 끌고 내려온 조지나 스피넬은 더욱 두려운 상대였고, 이 자리에 결국은 나타나게 될 그레이 딘하우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자였다.

촤락.

긴장한 A급 에스퍼 둘을 뒤에 둔 조지나는 품에서 쇠사슬을 꺼내들었다.

“포에버.”

촤라락.

위협적인 쇠사슬이 요동쳤다.

“네가 누구한테 앙탈을 부리고 있는지 주제 파악이 안 된 모양인데.”

험악한 기류가 거세어졌다.

“그 덕에 앞으로 아주 즐거울 거야.”

“…….”

“어떻게 사지 멀쩡히 여기에 떨어졌어도.”

타박.

쇠사슬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상태가 오래 유지는 안 될 거라고.”

“…….”

“앞으로 44시간, 기대해. 적어도 그중 40시간은 정말 재밌을 거야.”

“…….”

“학살, 그래. 그런 걸 저지른 내가 인간 하나 고문하는 일은 또 얼마나 잘할까.”

영원은 각을 잡고 협박을 쏟아붓는 조지나의 말을 딱히 귀담아듣지 않았다.

‘별로 영양가 있는 말을 하는 친구는 아니더라구.’

‘굳이 열심히 안 들어주기로 함.’

대신, 조지나의 주변으로 열심히 레이더를 날린 뒤, 세계랭킹 1위가 그녀와 함께 오지는 않은 것 같단 사실만을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는, 조지나가 그레이를 달고 자신을 쫓아오지는 않으리라는 예상이 적중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는 건 성취감을 주는 일이니까.

‘나를 한 번 놓친 걸 그레이에게 들키길 원치 않았겠지.’

영원은 뻥 뚫린 땅으로 뛰어내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조지나 스피넬은 그레이 딘하우스에게 능력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걸 극도로 무서워하니, 심영원의 도망을 바로 그에게 알리지는 못할 거라고.

함께 있었던 시간 동안, 영원은 조지나 스피넬의 내면 바닥에 깔린 욕망과 두려움을 파악해냈다.

‘스피넬은 딘하우스에게 인정받는 것을 삶의 목표로 여긴다.’

‘그녀는 절대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해.’

그러니 조지나는 잠시 패닉에 빠져 있다가, 영원이 떨어졌던 구멍으로 곧장 뛰어내렸을 터였다.

‘어떤 면에서는 알려진 것보다 멍청하고, 순수한 타입.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들고.’

영원은 조지나의 독설을 계속해서 흘려들었다.

영양가 없는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에너지가 아까웠다.

“야!”

결국 쇳소리 섞인 듯한 비명이 고막을 때렸다.

“집중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철컥.

동시에 영원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조지나의 쇠사슬 끝에 달린 것이었다.

촤르륵.

조지나가 사슬을 팽팽하게 당겼다.

영원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예상했던 공격이었다.

“…….”

영원은 그저 무미건조한 눈으로 조지나를 마주 보았다.

철컹. 촤륵.

“지금 고막이 없는 것처럼 구는 거, 주제 파악 못 한 표정인 거.”

“…….”

“그런 걸 보면, 떨어지면서 뇌 어디가 망가진 모양인데.”

영원은 사슬을 당기는 힘에 끌려가지 않았다.

대제의 힘을 찾은 영원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구속이었고, 아무런 위협이 안 되는 힘이었다.

조지나 스피넬만 모를 뿐.

“포에버. 너는 이제 고통이 뭔지 배우게 될 거야.”

영원은 흘려버릴 뻔한 조지나의 말의 의미를 뒤늦게 곱씹어봤다.

“음…… 내가.”

지직.

“뭘 배워?”

쩍.

영원의 시선이 닿았다 떨어진 쇠사슬이, 찢어지듯 갈라졌다.

“그건 나만 한 영재가 없는 분야인데.”

영원은 가차 없이 수갑을 던져버렸다.

챙.

두부처럼 썰린 쇳덩이가 땅에 떨어졌다.

“게다가 난 노력하는 천재였다고. 더 배울 거 없어.”

영원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조지나 스피넬 앞에서는 S급 가이드의 힘, 그리고 대제의 능력을 감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왜냐면 그레이 딘하우스와 그 측근들에게는 김여현 에스퍼에게 S급 가이드가 붙었다는 걸 비공식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고, 그들은 연금술의 본질을 바로 짐작해내지 못할 테니까.

‘내가 S급 가이드라는 판단이 들더라도, 그레이 딘하우스는 그 정보를 떠벌리지 않을걸.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S급 던전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거고.’

‘센터의 연구원들이나 교수님들처럼 나를 밖으로 끌어내 괴롭힐 수 있는 포지션도 아니지.’

‘오히려 능력 있는 가이드가 김여현의 전담인 걸 알려주면 예고된 유혈사태를 몇 개는 막을 수 있을 것도 같아.’

‘그들이 내 미지의 힘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게, 꽤 괜찮은 전략으로 보여.’

게다가, 더 이상 조지나 스피넬이 목구멍에 쑤셔 넣는 고구마를 캑캑대며 견디고 싶지도 않았다.

오류가 난 것 같은 싱크로율을 보고 있는 동안 이미 인내심은 다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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