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30화 (30/142)

푹. 퍽. 뎅강.

사뿐.

영원은 두 발로 열대우림의 바닥에 착지했다.

위에도 그랬듯, 아래도 푸르고 거대한 것들이 매우 많았다. 야자와, 고사리와, 활엽수들.

아래쪽의 기온은 더 후덥지근했다.

‘약간 과학 법칙에 반하는 느낌이네.’

‘그게 중요한 문제겠냐만.’

영원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몸을 풀었다.

손목을 포박하고 있던 수갑도 깔끔하게 잘라 저 멀리 던져버렸다.

챙!

바닥의 돌과 부딪힌 수갑이 경쾌한 소리를 냈다.

쏴아. 스르륵.

영원은 멀리서 강물이 철철 흐르는 소리를 듣기 좋은 OST쯤으로 느끼며 미소 지었다.

“드디어 살 것 같네.”

보통의 가이드라면 갑자기 홀로 던전의 보스몹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영원은 마냥 무사태평했다.

2.5km짜리 자유낙하 놀이가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아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게, 현재 영원이 하는 부정적인 생각의 전부였다.

‘이제 무적.’

‘보스 그냥 빨리 만나도 좋을 것 같은데.’

영원은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는, 에너지가 더 응집되어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던전에는 제각기 보스몹이 있고, 그 근처에 던전석이 있다고 했었지.’

‘게이트 클리어는 못 해도, 던전석을 몰래 몇 개 킵하는 거야 가능한 구조인 것 같아.’

실제 던전의 구조나 난도와 무관하게, 파워 긍정모드에 돌입한 영원의 머릿속에서는 희망회로가 팽팽 돌아갔다.

[스테이지1: S급 던전석 5개 취득]

[스테이지1 목표달성▶ S급 던전석 0개/5개]

세계수의 SSS급 퀘스트도 그렇고, 여현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던전석은 필요했다.

‘다들 여기에 던전석 구하려고 달려들 모양이던데.’

‘미리 몇 개 킵해두는 게 이득 아닐까.’

‘혹시라도 나중에 몰래 어떻게 해보려다가 힘을 들키기라도 하면 꽤 곤란해지고.’

힘을 마음껏 쓰기에는, 영원을 제외하고는 A급 에스퍼 둘과 S급 가이드 한 명밖에 없는 지금이 적기였다.

영원은 여현을 향한 구조 요청을 잠시 미루어두고, 제1목표를 던전석 구하기로 정했다.

끼룩, 끼룩.

멀리서 새가 우는 것 같은 소리가 작게 났다.

영원은 스트레칭을 마치고는, 레이더로 주변 상황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던전석이 있는 곳도 찾아내야 했고, 불시에 닥칠 위협에도 대비해야 하니까.

끼익. 끼루룩.

우는 소리를 내는 건 하늘을 나는 생명체일 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시조새처럼 생긴 매우 거대한 파충류가 멀리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꾸욱! 꿉!”

돼지인지 새인지 모르겠는 소리는 훨씬 가까이에서 들렸다.

거대한 닭 같은 것들이 저런 소리를 내며 푸른 땅 위를 뛰어다녔다.

‘적절한 비유인가 싶긴 하지만, 흡사 닭-캥거루?’

‘사운드는 돼지 같고. 괴이해.’

그것들은 거대한 강줄기를 따라 서식하는 악어도 생으로 한입에 잡아먹는 듯했다.

‘도무지 상식적인 생태계가 아님.’

이곳은 완결성을 가진 독립된 차원이라기보다는, 설계자가 특정 컨셉에 맞춰 창조한 가상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차원의 무엇의 설정 놀이에 휩쓸린 느낌?’

‘아마 실제로도 그럴 거야.’

도롱.

[던전의 관리자, □□가 가이드 심영원을 인지합니다]

[□□가 심영원에게 부여할 퀘스트를 고심합니다]

‘어……. 뭐야.’

영원은 예상치 못한 알람을 보고는, 이런 공간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현판의 일부 장르도 떠올려냈다.

‘마치…… 가상현실게임.’

몹들이 덤벼들고, 나름의 퀘스트도 있는 것 같고, 그런 점이 비슷하다 느껴졌다.

‘아마 세계수 같은 다른 관리자인 모양이지.’

‘둘이 있는데 셋, 넷이 뭐 어렵겠어.’

이름이 □□라고 알아보지 못하게 처리되는 것도 익숙한 설정이었다. 관리자, 대제 등 일정한 권위를 지닌 존재는 흔한 이름에 대한 접근마저도 경계하고는 하니까.

영원 자신부터가 얼마 전까지 대제의 이름을 봉인해두었다.

어쨌거나 당장 이곳의 관리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던전석을 구하고, 이 던전을 결국 클리어해내는 게 가장 중요할 뿐.

펄럭, 펄럭. 질끈.

영원은 입고 있던 후드를 벗어 허리춤에 묶어버렸다.

“좀 낫네.”

지금 영원의 유일한 걱정은 앞으로 몸을 움직이기가 참 피곤하겠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금강불괴를 얻었으니, 실제 신체에 피로가 누적될 일은 없었다.

‘많이 움직이다 보면 피곤한 기분이 들 뿐이지.’

영원은 마지막으로 싱크로율을 눈에 담아 보았다.

[100.0%/100.0%]

세 자리 숫자가 주는 안정감과 충족감이 있었다.

“아무튼.”

툭툭. 영원은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정말 오랜만이네.”

진짜 몸은 익숙하고, 편안했다.

“쌩쌩하고.”

그래서 그냥 그 상태를 즐겨주기로 했다.

“완-벽.”

레이더도 윙윙 잘 돌아가고, 대제의 힘을 마음껏 끌어다 쓸 수도 있으니 겁나는 건 없었다.

“좋아. 가보실까.”

영원은 힘차게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날은 더워도 컨디션은 최상. 몸과 기분의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

“어떡해.”

조지나는 하얗게 질렸다.

“어떡하냐고!”

덜덜덜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구멍 앞에 선 조지나 스피넬은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그녀의 몸이 미친 듯이 떨렸다.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듣고 패닉에 빠진 건 A급 에스퍼 한 명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겁에 질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레이 딘하우스의 ‘포에버와 함께 기다리고 있으라’는 명령이 그들의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뭐라도, 뭐든 좋으니까…… 말 좀 해 봐!”

특히 가장 흥분한 건 조지나였다.

“그…….”

“포에버가…….”

“그게…….”

“죽었어? 벌써? 그랬을 것 같아? 악!”

그리고 그때였다.

도롱.

[던전의 관리자, □□가 응답합니다]

“어……?”

[□□의 번외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번외 퀘스트 타이틀: 포에버 술래잡기]

[목표달성▶ 48시간 내 심영원 5m 근처로 접근]

“뭐야, 안 죽었어?”

조지나의 떨림이 서서히 멎어갔다.

[던전의 관리자, □□가 번외 퀘스트의 보상에 대해 안내합니다]

[실패 시▷ 던전 추방]

[성공 시▷ 보스 소환, 던전 클리어 조건 개시]

조지나는 멍한 표정을 서서히 수습해갔다. 평정이 돌아왔다.

“48시간?”

어려울 듯도, 그렇지 않을 듯도 했다. 조지나는 바닥이 없는 구멍 아래를 보았다.

삐빅. 삐삑.

그때 그곳의 두 사람과 함께 던전에 들어왔던 다른 A급 에스퍼가 가이딩 밴드를 찬 손목을 위로 높게 들고 달려왔다.

“조지나! 그레이가 금방 올 거라고 합니다.”

“…….”

“김여현은 미쳤고, 밖에는 난리가 났다고 해요!”

에스퍼는 조지나 앞까지 달려와 헉헉거리며 말을 빠르게 이었다.

“아마 K고 누구고 금방 다 이 안으로 차례로 들어오고 있다고 하는데…….”

“…….”

그는 누군가 보여야 할 사람이 한 명 안 보인다는 걸 그제야 눈치챘다.

“근데…… 그 가이드는 어디에 있죠?”

“밑에.”

조지나는 구멍 아래를 가리켰다.

“…….”

“…….”

도롱.

[□□가 번외 퀘스트를 던전 내 모두에게 부여합니다]

[단, 유일한 예외: 술래잡기의 대상, 심영원, ‘우연의 독재자’]

[□□가 설명합니다]

【그녀를 찾아내야, S급 본게임이 시작 돼】

도롱.

도롱.

도로롱.

S급 던전에 진입하는 모두에게 퀘스트 알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현도, 그레이 딘하우스에게도, 같은 퀘스트가 금방 부여될 터였다.

도롱.

[□□가 번외 퀘스트를 던전에 진입한 김여현, 타이틀 ‘영원의 헌신자’에게 부여합니다]

도롱.

[□□가 번외 퀘스트를 던전에 진입한 그레이 딘하우스, 타이틀 ‘유일자’에게 부여합니다]

도롱.

[□□가 번외 퀘스트를 던전에 진입한……]

***

쏴아아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폭포가 배경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영원은 열심히 기본 연금술 몇 가지를 오랜만에 차근차근 시도해보았다.

하나, 형태변환.

“쾌엑!”

퍼버벅.

둘, 성질변환.

“꾸악!”

퍼버벅.

셋, 복합변환.

“키아악!”

퍼버벅.

영원은 악어와 시조새, 그리고 닭-캥거루 같은 것들을 모두 사실상 1초도 걸리지 않고 작살을 냈다. 특별한 과정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면 특이 생명체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스으윽.

영원은 비주얼이 끔찍하지 않은 것들에는 직접 주먹질을 해보기도 했다.

퍽! 퍼억.

타격감이 나쁘지 않았다.

퍼벅.

쿵.

영원은 육체파는 아니었지만, 몸을 사용할 줄 몰라서 안 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1식. 2식. 3식.

퍽, 퍽.

“좋아.”

그렇게 모든 기본기를 마치고 나니 정말로 과거의 몸을 다시 얻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녀는 제자리에서 두어 번 위로 뛰어보기도 하면서, 기본적인 근력 등도 세심하게 확인했다.

그다음, 영원은 제대로 제1목표 및 제2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본게임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영원의 현재 제1목표: S급 던전석 몰래 킵해두기

영원의 현재 제2목표: S급 보스랑 제일 먼저 안면 트기

‘어디 있니, 보스야? 던전석아?’

에너지가 응집되어 있는 곳들이야 여러 곳을 파악했지만, 정말로 보스가 있거나 S급 던전석이 있을 것 같다 싶은 장소가 딱 느껴지진 않았다.

‘흠. 왜 보스나 던전석은 레이더에 안 걸리는 걸까.’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봐.’

‘뭐, 그럼 직접 하나하나 가 봐야겠지.’

‘노가다는 취향 아닌데.’

영원은 S급 던전은 확실히 쉬운 곳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폭포를 등지고 더 깊은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어려울 수도.’

‘너무 자만하진 말자.’

‘겸손이 중요해. 겸손하자.’

영원은 가슴을 가볍게 토닥이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이미 던전 최하부의 보스를 제외한 몹 절반쯤을 다 작살내두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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