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영원은 헬기가 내는 소음에 눈을 떴다.
레이더를 펼치니 헬리콥터가 펜트하우스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헬기가 저런 루트로 다가올 이유가 딱히 없을 텐데. 마치 여기가 목적지인 것처럼.’
여현이 헬기를 타고 퇴근할 리 없고, 센터의 누군가가 헬기를 타고 펜트하우스에 올 리도 없었다.
비몽사몽이던 정신이 확 맑아졌다. 영원은 눈을 번쩍 떴다.
‘혹시 납치범인가.’
박의총이 가고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영원은 눈을 깜빡이며 수마를 싹 물리치고는, 손목의 가이딩 밴드로 여현부터 호출하려고 했다.
챙그랑!
그런데 각성자의 힘으로 펜트하우스의 유리창이 와장창 박살 나는 게 먼저였다.
“읏.”
픽.
영원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쓰러졌다.
[심영원, ‘연금술사 대제’]
[현재 싱크로율 0.50%]
[목표 싱크로율 100.0% … 31시간/108시간]
“읍!”
영원은 속이 울렁여 입을 막았다.
‘장난?’
‘5%도 아니고, 0.5%? 장난?’
영원의 기대와는 달리, 싱크로율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근차근 높아지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역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108시간을 채우면 100%에 이를 테지만, 그 길은 멀고도 험했다.
퍽.
‘억.’
영원의 머리가 타격당했다. 손목도 곧장 포박되었다.
서서히 의식이 멀어졌다.
영원은 멍한 기분으로 서서히 닫히는 시야 위 천장을 보았다.
아무래도 펜트하우스에 진입한 것은 A급 에스퍼 둘 정도.
풀썩.
‘나 SSS급이라며. 이렇게 쉽게 맨날 정신줄 놓고 의식 잃어도 됨?’
생각해보면 이쪽 몸에 들어온 첫날부터 SSS급이었는데도 픽픽 쓰러지지 않았었나.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것이 익숙하게 느껴져 문제였다.
‘집주인느님이 알아서 구하러 오겠지? 아마도?’
‘암튼, SSS급 노어이.’
정말로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끝으로 영원의 생각이 끊겼다.
***
똑. 또독.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 아파.’
“으으…….”
영원은 인상을 쓰고 신음했다. 머리의 곳곳이 좌우, 양옆을 가리지 않고 지끈거렸다.
똑. 또옥.
영원은 눈꺼풀을 힘겹게 떼어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창고 같은, 전형적인 납치 현장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눈에 보인 건, 초록초록한 열대우림과 화창한 하늘이었다.
놀랍도록 청명한, 뭉게구름 하나만 구석에 품은 높은 하늘.
아무래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야자수? 거대 고사리?’
‘여기 어디?’
물론 손과 팔다리가 모두 포박되고 입까지 입마개로 막혀 있는 걸 보면 납치를 당해 이곳으로 끌려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게다가 몸은 패대기쳐진 듯, 돗자리 깔린 흙바닥에 모로 누워 있었다.
‘펜트하우스에 감금당하는 진행을 바라긴 했지만, 진짜 찐 납치+감금물은 계획에 없었는데…….’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었다.
“일어났구나.”
한 여자의 목소리가 영원의 상념에 개입했다. 시야가 닿지 않던 곳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톡. 또각.
영원의 시야에 반짝이는 하이힐이 들어왔다. 고개를 돌린 다음 위로 꺾으면 구두를 신은 이의 얼굴이 보일 듯도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안녕.”
아무래도 구두의 주인인 것 같은 여자가 말을 계속 걸었다.
“포에버, 안녕.”
“…….”
그녀가 먼저 허리를 숙여 영원의 시야에 그녀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녹색 눈과 붉은 머리, 서양인이었다.
“너 거의 20시간 동안 잤어.”
“…….”
“아무튼, 안녕. K의 가이드, 반가워.”
그녀는 외모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유창한 한국어로 영원에게 인사했다.
“…….”
“내 얼굴 보고 놀랐어? 실물이 더 예쁘지?”
“…….”
“분장이나 사칭 아냐.”
영원은 박의총에 이어, (영원이 그때까지 전혀 모르던) 유명인 누군가와 만나게 된 듯했다.
‘누구 분장? 누구 사칭이라는 거지? 혹시 연예인인가?’
지금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볼 수도 없었다. 영원은 그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근데 20시간? 그렇게 오래 잤다고?’
툭. 뎅강.
붉은 머리의 여성은 놀라지 않는 영원의 반응이 답답했던지, 영원의 입을 막고 있던 입마개의 끈을 잘라냈다. 그리고는 영원의 몸을 일으켰다.
“포에버.”
영원은 허리를 세워 앉게 된 다음, 기침을 몇 번 하고는 여자를 올려다봤다.
정신이 꽤 멍했고, 두통은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심영원, ‘연금술사 대제’]
[현재 싱크로율 0.30%]
[목표 싱크로율 100.0% … 53시간/108시간]
싱크로율이 너무나 노답이라 불평을 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뭐야…… 저거…….’
‘그래도 결국 어느 시점엔 파바박 올라 100% 가까이 되긴 하겠지……?’
영원은 긍정회로를 열심히 정비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물론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붉은 머리의 서양인, 조지나 스피넬은 영원의 고통에는 관심 없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영원의 놀란 반응만을 기대했다.
조지나 스피넬, 타이틀 ‘믿음의 희망’.
세계 S급 가이드 랭킹 4위.
은퇴 전까지는 할리우드의 독보적 미녀로 불리던 배우. 전무후무한 흥행기록을 가진 영화에 히로인으로 출연한 세계적인 유명인사.
“…….”
“많이 놀랐나 보네. 진짜 내가 맞아.”
다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영원은 그녀가 출연한 영화도, 광고도, 무엇도 몰랐다.
영원은 여현이 활약하는 비디오 클립을 보고 각종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데 열심이었지, 할리우드 영화까지 찾아보진 않았다.
“S급 던전 안에서, 나, 조지나랑 만날 줄은 몰랐지?”
“…….”
“아무튼, 반가워.”
눈앞의 ‘조지나’라는 이름의 가이드가 얼마나 유명한지는 영원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영원은 자신의 관심을 끄는 사항만을 정리했다.
펜트하우스에서 의식을 잃은 지 20시간이 흘렀고, 여기는 S급 던전 내부.
싱크로율은 0.3%.
끼긱.
손목을 움직여보니, 이렇게 포박된 상태로는 가이딩 밴드로 여현을 호출할 수 없을 듯했다.
‘하아, 인생…….’
영원은 속으로 포옥 한숨을 쉬었다.
***
납치 개시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영원은 상황을 대강 파악했다. 납치범들은 A급 에스퍼 둘과 S급 가이드 한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그레이 딘하우스의 동료였다.
그리고 그들이 유창한 한국어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이 던전의 통역 기능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세히 보다 보면 입 모양과 목소리가 미묘하게 어긋날 때도 있었다.
‘K나 포에버 따위가 번역되지 않은 건, 그 단어를 고유명사처럼 쓰려는 의지에 따른 거고.’
‘나를 당장 죽이려 하지 않는 건, 그레이 딘하우스가 살아 있는 나를 만나고 싶어 해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조지나의 말을 통해 추측한 바로는 그랬다.
‘그리고 이 S급 던전의 클리어 조건 때문인 듯도 하고.’
얼핏 듣기로 이 S급 던전을 끝내려면 ‘가이드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희생은 뭐, 대충 끔살 예정이라는 거지.’
‘암튼 그런 이유들 덕에 당장 목숨이 간당간당한 위기상황은 아님.’
열대우림 같은 던전에서 영원의 시간은 가까이서 보면 더디게, 그러나 멀리서 보면 빠르게 흘러갔다.
끔찍하게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은데 멍하니 잠들고 깨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 있는 식이었다.
[심영원, ‘연금술사 대제’]
[현재 싱크로율 3.00%]
[목표 싱크로율 100.0%]
싱크로율은 한 자리 수에서 위아래로 요동치며 영원에게 끝까지 고통을 가했다.
영원은 불평은 접어두기로 했다.
‘긍정, 긍정.’
어차피 시간만 흐르면 100%에 닿을 테니까.
“오늘도 안녕, 포에버.”
어쨌거나 귀에 들리기로는 한국어를 놀랍도록 잘하는 조지나 스피넬은 영원을 계속 포에버(forever)라고 부르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영원은 조지나의 말에 대부분 반응하지 않았다.
그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주된 이유는 조지나가 여현에 대하여 보이는 반응 때문이었다.
“그레이도 고민 중이기는 한데, 우리는 사실 너를 계속 생포해서 데리고 있을까도 생각 중이야.”
“…….”
“뭐, 희생시킬 가이드 하나 더 잡아오는 건 일도 아니고.”
“…….”
“정말 네가 K에게 소중해졌다면, 어쩌면 너를 미끼로 K를 우리 노예로 만들어 볼 수도 있을 테니까.”
“…….”
“S급 물리계 꼭두각시라니. 얼마나 완벽해.”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영원은 그냥 저쪽 바닥에 뚫려 있는 구멍까지 굴러가 그 아래로 떨어져 주고 싶었다.
‘제발 입 좀 다물어.’
‘불쾌해. 불쾌해.’
S급 던전, 영원이 들어와 있는 열대우림은 몇 개의 층으로 구성된 구조였다.
영원이 며칠을 보낸 곳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열대우림이었다.
열대우림은 몇백 미터 아래쯤에 하나, 또 그로부터 몇백 미터 아래쯤에 또 하나가 있었다.
“응? 왜 또 아무 반응이 없어.”
‘그야 그러기 싫으니까.’
“너, 내가 실수인 척 저기 구멍에 밀어버리는 수가 있어.”
‘그러든가.’
“응? 포에버!”
조지나가 손끝으로 가리킨 구멍은, S급 던전의 보스가 서식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곧장 떨어지는, 약 2.5km를 자유 낙하할 수 있는 구멍을 말했다.
영원은 조지나의 외침은 그냥 흘려버리며, 싱크로율의 움직임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심영원, ‘연금술사 대제’]
[현재 싱크로율 4.00%]
[목표 싱크로율 100.0%]
‘0.5%나 1.5%만 보고 있다 보니까, 4%도 높아 보이네.’
영원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손목은 여전히 묶인 채였으나, 조지나가 발목을 묶고 있던 끈은 또 끊어내서, 이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는 있었다.
“어디 가?”
영원은 다리를 움직여, 조지나가 말한 그 구멍 앞으로 갔다. 그 상태로, 바닥이 없는 구멍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스피넬.”
영원은 조지나의 이름을 처음 듣고 그녀가 박의총이 ‘스피넬’이라고 부르던 가이드라는 것을 바로 깨닫지는 못했다.
박의총 가이드가 말했던 과거의 예언자이자 학살자, 스피넬.
하지만 조지나와 A급 에스퍼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또한 그들이 그녀를 부르는 호칭을 통해 퍼즐이 서서히 완성되었다.
“네가 저지른 학살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었어. 얼마 전에, 대강.”
세계를 구할 희망이던 그녀가 학살자가 되어 버린 동기는 어찌 보면 아주 사소했다.
‘희망’은 같은 던전 안에 함께 들어갔던 에스퍼 전원을 폭주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실수 하나를 덮기 위해.
그 다음엔 누군가의 제안에 따라 게이트 안에서 똑같은 짓을 했다. 막대한 금원을 그 대가로 약속받고서.
한번 시작된 악행의 수위는 절대로 낮아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쭉, 희망이라 불리던 예언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한 선택만을 하게 됐다.
“후회는 안 해?”
영원은 막연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조지나는 인상을 쓰고, 위태로운 자리에 선 영원을 보았다.
“글쎄. 왜? 카르마라는 개소리라도 믿는 거야?”
“아니. 딱히.”
영원은 구멍 가까이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세상은 원래 정의롭지 않아. 나는 우주가 알아서 누군가를 벌해주길 바라기보다는…….”
“…….”
“겁 없이 나대는 인간한테 직접 그렇게 살다 엄벌 당한다는 게 뭔지 알려주려고 하는 편이지.”
조지나는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네가 전범인 거야 뭐, 어쩌면 내가 그리 신경 쓸 요소는 아닐 수도 있었는데.”
이 세상엔 원래 미친 놈, 나쁜 놈, 제정신 아닌 놈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게 끝이 아니라, 너.”
“…….”
“말을 너무 함부로 하더라.”
내 에스퍼에 대해.
조지나 스피넬은 심영원이 뒤끝이 좀 긴 스타일이라는 걸 알고 입을 놀렸어야 했다.
특히 어떤 부분에 예민한지도.
톡.
영원은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야, 너 그러다가 떨어…….”
“이 아래에 있다는 거지.”
“어……?”
“S급 던전석.”
영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영원은 한 발을 허공에 내딛고, 나머지 한 발도 땅에서 떼어냈다.
“다시 한번 확인만 할게. 이 던전 끝내려면, 가이드 하나가 제물로 필요하다고 했지?”
“맞…….”
“누구일까, 그 가이드.”
영원은 웃으며 질문을 던진 뒤, S급 가이드와 똑바로 눈을 맞춘 채로, 허공 위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자유낙하했다. 영원은 몸을 훑으며 지나가는 기류를 즐겁게 만끽했다.
스릴 넘치는 공기 샤워를 하는 기분이었다.
[심영원, ‘연금술사 대제’]
[현재 싱크로율 100.0%]
[목표 싱크로율 100.0% … 108시간/108시간]
[싱크]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