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26화 (26/142)

본업 재개 후 만 하루하고도 두 시간 경과.

[심영원, ‘연금술사 대제’]

[현재 싱크로율 35.00%]

[목표 싱크로율 100.0% … 26시간/108시간]

26시간 전에도 싱크로율은 35.00%였는데 아직도 35.00%였다. 0.00% 증가.

‘무슨 윈도우 업데이트 버퍼링이야……?’

아무래도 싱크로율이 올라가는 기울기가 완만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계단식이거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형태처럼 예측 불가능하거나.

아무렴 상관은 없었다. 82시간만 더 버티면 어쨌거나 100%에 이를 테니까.

“뭐, 알아서 되겠지.”

드륵. 드륵.

영원은 움직이지 않는 싱크로율에서 시선을 뗐다.

그다음, 무슨 일이 있어도 망가지지 않게끔 만들어낸 수첩에 여태껏 알아낸 정보를 꼼꼼히 적었다.

꿈속 수업에서 배운 것들과 게이트 내에서 알게 된 것, 센터에서 보고 들은 것 모두.

그러면서 반성했다.

명동 게이트 전에, 확실히 자신은 안일했다고.

일산 게이트를 치워버린 김여현의 힘, 인천에서 보았던 이창결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원래 자신이 연금술사 대제로 행사할 수 있던 힘에 비하면 대단치 않다는 오만함에 빠져 있었다.

‘명동에만 잘 찾아가면 이래저래 수습될 거라고 생각했지.’

‘결국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과정이 순탄치 않았어.’

‘내가 잘못했다. 인정.’

앞으로 다가올 사건의 난도는 더 높을 터였다. 그러니 더 꼼꼼한 대비가 필요했다.

사건뿐 아니라, 사람도 경계해야 하고.

가장 신뢰감을 주는 인상을 가진 사람이 풀스윙으로 뒤통수를 후려치기도 하는 법이니까.

‘누구든 쉽게 믿지 마.’

영원은 신뢰감이 생길 때 경계심도 함께 치솟는 타입이었다. 요련, 윤희유 교수, 이창결 부장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여현에 대해서까지도.

‘정말로, 나랑 김여현은 계속해서 유지될 운명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나?’

복잡한 사건에 끼어들기 전에는 무조건 그 계획 밖으로 도망칠 엑싯 플랜을 들고 있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강원도 산골 어디쯤에 위치 하나는 찍어 두어야겠어.’

영원은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 시 여현으로부터도 도망쳐 숨어버릴 계획 역시 백업플랜으로 하나쯤 만들어두었다.

‘그리고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센터에 대적하려는 흑막이 어디엔가 있을 거야.’

‘세계 1위라는 그레이 딘하우스. 어쩐지 쎄한 건 그냥 내 촉인가?’

‘내 최애가 아닌 놈이 1위니까 괜히 짜증 나는 그냥 그런 기분 탓?’

아무튼, 지금 이쪽 세계에는 아프리카 대륙 일부의 내전만을 제외하면 거의 전쟁이나 테러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무력은 과거에 비해 한없이 넘치는데도 유지되는 기묘한 평화.

‘이런 평화는 금방 끝나.’

센터를 엿 먹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한탕 해 먹으려는 녀석들이 없을 수가 없을 터다.

‘원래 세계에서는, 적어도 누가 능력자인지야 뻔했지. 능력자로 각성할 인력풀도 좁았고.’

‘여기가 더 어려워.’

‘게다가 비선별 러쉬라는 게 온다잖아.’

힘의 지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정말로 알 수 없었다. 국가가 몇 개 사라진다 해도 놀라울 게 아니었다.

‘경계하자.’

깊은 곳에서의 경계를 거두어서는 안 된다.

이곳도 두려워해야 할 것이 많은 세계다.

영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한강을 내려다봤다.

늘 그랬듯, 여전히, 영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측정되는 심적인 거리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가깝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은 경계고 뭐고 좀 쉬어야 함.’

‘당장 무슨 일 나겠어?’

영원은 지끈거리는 머리와 저 아래로 완전히 꺼진 몸의 텐션에 짓눌려 축 늘어졌다.

‘사흘하고 열 시간만 버티면 끝.’

‘……기운 없어.’

‘아침에 너무 달렸나.’

오전에 윤 교수와의 통화를 마친 후, 쭉 비선별 러쉬와 게이트 웨이브에 대해 고민하면서 에너지를 과하게 소모했다.

‘덕분에, 큰 계획은 확실하게 세웠지만.’

톡톡.

영원은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까지 덧붙여진 계획이 담긴 노트를 촤르륵 넘겼다.

끝내 설정된 계획의 방향은 명확했다.

일명: 김여현 전담 가이드로 펜트하우스 붙박이 되기.

‘그 이전과 계획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은 건 기분 탓……?’

‘응. 기분 탓.’

아무튼, 영원은 전담 에스퍼의 백업은 확실히 하기로 정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그것만은 정말로 확실히 하기로.

‘그릇이 비는 일 없게. 기계 가이딩 받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게.’

이 세계엔 불확실한 것이 넘쳐났다. 다만 김여현이 강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영원은 여현보다 더 가까운 그녀의 편을 만들 방법 비슷한 것도 떠올려내지 못했다. 여현보다 더 견고한 방패를 찾아낼 방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절하고 예쁜 최애 앞에 두고 계산적으로 구는 거 나도 싫지만.’

‘안 그랬다가 처참한 지경에 이르러서 뒤늦게 후회하느니 적당히 계량은 해보는 게 낫지.’

김여현 에스퍼가 만들어준 드넓은 그늘에서 벗어나 아늑하게 생활할 방법 역시 쉽지 않아 보였다.

‘정말 산골짜기 들어가서 숨은 뒤에 사냥하면서 살 거 아니면.’

A급이라 선언된 비선별 가이드를 센터가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그에 더해 SSS급이라거나, 이세계에서 왔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정말로 끝장이었다.

‘각성자들이 이렇게 넘쳐나는 세계인데, 연금술로 바다에 싹 다 묻어버리는 건 어렵겠지.’

‘그러니까 현 상황은 명확해.’

‘여기 서울에서는 김여현 외에 누구도 이렇듯 나를 편안하게 살게 만들지 못한다는 거.’

‘만족할 만한 차선책 하나도 없음.’

의식주가 자동으로 제공되는 삶을 원하는 심영원에게 김여현은 유일한 최선이었다.

김여현이라는 사람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건, 없건, 그에 대해 지금 충분히 알고 있든, 아니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따져 보아도 그랬다.

‘가던 길만 확실하게 갑시다.’

영원은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전담 가이드와 에스퍼의 관계가 깨지면 모든 게 파국에 도달하리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잘 지내야 해.’

물론 그렇다고 당장 모든 비밀을 털어놓을 생각은 아니었다.

‘S급 이상인 건 확실히 전달하는 편이 낫긴 하겠어.’

‘이미 대강은 알고 있을 것 같기는 해도.’

‘원래 있던 세상 얘기는 보류. 말한다고 바로 믿기도 힘들 거고, 그쪽으로는 나도 조심스럽게 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여현이 곧바로 모든 걸 털어놓기를 강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건 다행이었다.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기다려달라고 하면, 알겠다고 할 것 같아.’

‘역시 갓벽하신 분…….’

어쩌면, 이미 약간은 숨기려고 했던 것들을 눈치채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여현은 똑똑하고, 섬세하며, 감이 좋은 편인 것 같았기 때문에.

‘상대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도 나 혼자는 아니겠지.’

망설이고 있는 건 여현 역시 마찬가지일 확률이 컸다.

뭐가 됐든 일단은 희망적이었다.

신뢰관계가 더 두터워지면, 대제의 힘을 사용해 여현을 은밀히 도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바람이 만든 착각인지는 몰라도.’

‘김여현이 정말로 다른 이들과 다를지, 아닌지. 시간이 흐르다 보면 알게 되겠지.’

영원은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는 걸 경계하여,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김여현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 봤다.

요련, 윤 교수, 이창결. 영원이 그들의 두뇌와 능력을 인정하는 셋 모두, 여현을 의심 없이 신뢰했다.

‘김여현의 능력을 믿을 뿐 아니라, 김여현이라는 그 사람 자체를.’

영원은 고민을 끝냈다.

팡.

그 후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루분의 고민을 다 해치웠으니 낮잠이나 자볼까 했다.

깜빡깜빡.

딱 그런 타이밍에 스마트폰이 빛을 냈다.

깜빡깜빡.

[02-****-****]

등록되지 않은 상대였다.

급한 전화가 올 만한 목록은 전부 저장해두었다. 센터에서 오는 긴급전화는 지역번호가 완전히 다르게 뜨니 센터도 아니었다.

‘누구지.’

영원은 일단 가이딩 밴드부터 체크했다. 여현과 관련한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고. 특별한 이상 징후는 없었다. 그래서 긴장을 풀고 다시 스마트폰을 봤다.

반짝반짝.

발신자가 명확하지 않은 전화는 원래 받지 않는 편이었다.

더 고민하는 와중, 발신이 끊어졌다.

드륵.

그리고 문자가 도착했다.

[심 가이드님, 펜트하우스 경호실입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시면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경호실?’

깜빡깜빡.

다시 전화가 왔다.

영원은 살짝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귀 근처로 가져갔다.

“네.”

―안……녀엉하……세요, 가아……이드님.

‘뭐지.’

‘쎄한데.’

‘받지 말았어야 했나.’

‘아무래도 그런 촉이 와.’

“……네.”

―방문객이…… 오셨습니다.

“방문객이요?”

영원은 역시 받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네. 물론, 죄송하게도…… 약속은 잡지 않으셨다고는 하시나…….

직원들이 정해진 시간에 오가는 거야 펜트하우스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예고 없이 외부인이 집에 들이닥치는 건 조금도 유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에스퍼님 안 계시는데요.”

―그…… 지금 오신 분께서…… 가이드님을 찾으셔서요.

연락 없이 영원을 찾아올 지인은 아무도 없었다.

사생 사절. 기자도 사절. 누구라도 사절이었다.

집에 있는 것 외에, 앞으로도 쭉 여현과 관련된 일에만 에너지를 쓰기로 결심한 영원은 적당한 거절의 말을 골라냈다.

“제가 누굴 막 집에 초대하고 그럴 처지가 아니고, 지금 컨디션도 안 좋아서요.”

―예, 예. 저희도 압니다. 아까 에스퍼님께서도 가이드님이 편히 계속 쉴 수 있게 신경 쓰라고 전화도 주셨고, 근데…… 그게…….

“네.”

싸한 느낌이 사실이 될 확률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아까 생각했던 ‘무슨 일 나겠어’에 해당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지금,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신 분이…….

“…….”

―박의총 가이드님……이십니다.

“누구……시라고요?”

―박의총 가이드님께서, 지금 로비에 와 계십니다.

“…….”

―‘그’, 박의총 가이드님…… 맞습니다.

“…….”

―…….

‘뭐지. 엄청 유명한 사람인 것 같은데 누구인지 1도 모르겠음.’

“…….”

―그…… S그룹 3대 독자…… 회장님 손자분이신, 박 가이드님이요.

경호원이 소곤거렸다. 아무래도 그 박 가이드라는 사람이 경호원의 가까이로 온 듯했다. 영원은 열심히 머리를 회전시켜 봤다.

‘음……. 아무래도 분위기상 우리 동네 S그룹이랑 이 동네 S그룹이랑 비슷한 것 같지?’

자본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아.”

영원은 퍼뜩 박의총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때는 바야흐로 일산 게이트 이후. 모두가 (비록 명동 게이트 이후만큼은 아니지만) 김여현을 찬양하고 있을 때 그를 비판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비슷한 이름이었다.

[박의총…“김여현의 힘을 경계해야”]

[박의총曰, “물리계 에스퍼는 환상계 에스퍼에 비할 게 못 돼”]

[박의총(GA11), 강도 높게 김여현(ES3) 경계]

‘내 최애 안티?’

영원은 가차 없이 거절했다.

“돌아가시라고 하세요.”

―그게, 그게…….

결국 끝에는 돈보다 무력이다. 세상의 법칙이라는 게 그렇다.

‘저기는 S그룹이라도, 내 뒤에 있는 빽은 S급 물리계 에스퍼.’

‘안 무서움.’

영원은 깔끔하게 전화를 끊고 저녁때까지 잠을 자기로 정했다.

“끊겠습니다. 들어가ㅅ…….”

【만나 보는 게 낫지 않겠나】

깜짝.

영원은 난데없이 참견하는 청성의 말에 작게 반문했다.

“……왜.”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고 싶다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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