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25화 (25/142)

영원은 죽을 천천히 꼭꼭 씹었다. 잘게 찢어 넣은 닭고기는 부드럽게 넘어갔고, 적당히 나는 마늘 향도 좋았다.

간을 보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비결은 절대적인 레시피 준수라는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거라 믿게 되는 천상의 맛이었다.

“좀 더 떠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그럼 아이스크림?”

“으응. 조금만. 약간만.”

뭘 먹든 속을 게워낼 거라는 우려가 무색했다. 느리지만 꾸준한 숟가락질 덕에 그릇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여현이 아이스크림을 챙겨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 영원은 조심스레 한 마디를 얹었다.

“……고마워.”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데 인색한 편은 아니었으나, 오늘은 어쩐지 운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열이 가이딩 때문은 아냐.”

“……네.”

여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이스크림을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영원은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쇼핑백에 관해 물었다.

“근데…… 의자 옆에 그건 뭐야?”

“아, 가이딩 밴드요.”

“가이딩…… 밴드?”

들어본 적은 있는 용어였다. 용도가 다소 좋지 않은 듯해 관심 가지고 싶지 않았는데.

“프론트 가이딩용으로 쓰는 건데, 인이어가 전담끼리 일시적으로 소통하는 장치라면 밴드는 계속적인 정보공유 장치예요. 생체 정보 같은 게 계속 업데이트되죠.”

여현은 한 스쿱 떠온 녹차 아이스크림을 영원의 앞으로 밀어주고, 쇼핑백에서 상자를 꺼냈다.

검은 보석함 같은 것을 열자 메탈 소재의 시계처럼 생긴 물건이 나왔다. 애X워치가 연상되는 비주얼.

“제가 가이드님 아프실 때 내내 집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또 오면 곤란하니까요.”

“어…… 굳이……?”

“특히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오늘 밤에 출장을 갔다가 내일 저녁쯤에 돌아올 거라서요. 그 중간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알고 뛰어와야 하니까.”

찰칵. 불시에 착용당했다.

영원은 얼떨결에 차버린 왼쪽 손목 위의 가이딩 밴드를 멍하니 보았다.

생각해보면 시계 같은 걸 채워준 게 두 번째인데, 온도 차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난번엔 잘못하다가는 죽겠다 싶을 만큼 차가웠고, 이번엔…… 행동과 시선이 따뜻했다.

“가이드님 체온이나 심박 수가 제가 설정해둔 범위에서 이탈하면 제가 바로 알 수 있어요.”

“아…… 응.”

“알림이 오면, 바로 달려올게요.”

“그으래…….”

뭔가 아주 대단히 오해당하고 있다.

여현이 퇴근하기 전까지, 영원은 자신의 열이 절대로 가이딩 때문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메시지를 몇 개 더 보냈다.

[나: 원래 가끔 이래(이모티콘)]

[나: 넘 걱정마ㅎㅅㅎ]

원래 가끔 세계의 절대율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극강의 비기를 선보이고 나면 아플 때가 있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몸을 거의 금강불괴에 이르게 만든다든가.

날아간 도시 하나를 복구한다든가.

사막에 비를 내린다든가.

말 그대로 그런 기상천외한 짓거리를 저질렀을 경우에 한해서.

[나: 익숙해]

[나: 크게 걱정할 거 전혀 아니구!!!!]

[나: 가이딩 때문은 절대절대 아냐 가이딩할 때 하나도 안 아픔!!!!]

혹시라도 여현이 가이딩의 후유증이라고 오해하는 일이 없게 하고 싶었다. 가이딩을 싫어했던 것은 그저 과거의 일로만 영원히 남았으면 해서.

그런데 부작용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퇴근 무렵 여현의 머릿속에 ‘내 가이드 → 열이 있다는데 감기는 아닌 듯함 → 종종 이유 없이 열남(본인이 강력 주장) → 게다가 얼마 전에는 48시간을 내리 잤음 → 매우 연약 → 상시 보호와 케어, 보살핌, 예의주시 필요’라는 도식이 완성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뒤였다.

‘몸이 약해서 프론트 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주면 나야 좋기는 한데.’

‘약간 의도치 않게 사기 쳐버린 느낌?’

찰칵. 여현은 본인의 손목에는 에스퍼용 가이딩 밴드를 찼다.

“GPS 등등 다른 기능도 있기는 한데, 감시당하는 느낌 싫으실 테니 제가 그런 정보까지 확인하지는 않을게요.”

어차피 집에 있을 건데, GPS를 보든 안 보든 그게 특별한 사생활침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응.”

영원은 뭐 별 일 있겠냐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로 올라갈까 하다가, 저녁을 차려준 뒤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사람을 두고 총총 사라져버리긴 미안해서 식당에 남았다. 그릇을 함께 정리해 식기세척기에 넣고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갔다.

“지금 가이딩 필요해?”

“……아뇨.”

“출장 가는 곳에서는 힘 많이 써?”

“딱히……. 반의반 이상 비울 일도 없을 것 같아요.”

“그럼, 다녀와.”

영원은 엘리베이터 앞 널찍한 홀에서 손을 슥슥 흔들었다.

“야근은 특히, 쉬엄쉬엄 하는 거래. 날 새우지 말고 적당한 때 잘 자도록 해.”

“…….”

“내일도 늦지 말고 제 시간에 퇴근해서 저녁 때 맞춰서 집에 오고.”

“……네.”

이른 귀가가 필요한 이유는 전담 가이드의 저녁식사 준비라는 나쁘고 못된 본심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다녀……올게요.”

“응. 기다리고 있을게.”

여현은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결국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이 서서히 닫힐 때까지, 영원은 돌아서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이 장면……?’

영원은 고개를 저으며 되뇌었다.

‘현판이다. 현판이다. 이 세계는 현판이다.’

‘사고회로 로판패치 경계하라. 경계하라.’

타박. 타박.

상념을 떨치고 몸을 돌렸다.

‘별일 없겠지.’

영원은 밴드를 톡톡 두들겨서 GPS좌표와 자신의 체온을 확인해봤다. 자신의 위치뿐 아니라, 여현의 위치도 알 수 있었다.

여현이 이동하는 경로의 좌표가 계속하여 업데이트되었다.

‘S급 에스퍼의 정확한 현재 위치 24시간 생중계, 이거 국가기밀 아닌가?’

영원은 생각보다 여현이 너무 허술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잠겼다.

‘아무튼 우리 진짜 찐친 된 듯.’

‘이거 대통령도 못 받아볼 정보 같은데.’

영원은 살짝 웃고는 2층으로 향했다. 속이 채워지니 고통이 더 옅어진 기분이었다.

***

다음 날 아침에도 윤희유 교수와의 통화 시간이 돌아왔다. 그런데 대화 주제가 이전과 조금 달랐다.

―이창결 부장님이랑 함께 가서 사정사정을 해도 안 들어줬거든요. GPS 좌표 내내 뜨는 거 누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아, 네…….”

―손목에 차는 것도 걸리적거려서 싫다, 갑갑해서 싫다……. 아니, 맨날 복면 쓰고 다니는데 그건 안 답답한가?

윤 교수는 약간 흥분에 차 과거의 여현에 행적에 대한 울분을 영원에게 토했다.

―알람 뜨는 거 거슬린다, 신경 쓰여서 불편하다. 그 외에도 비슷한 취지로 기타 등등등등등등등. 핑계는 어찌나 많은지. 아니, 밴드 나눠서 차고 있는 전담 가이드 아니면 아무도 맘대로 못 보는데 왜 그렇게 예민하냐고요.

화풀이가 쉬이 끝나지 않아, 영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다른 생각을 했다. 최애 욕을 집중해서 듣고 싶진 않았다.

‘나랑 교수님 어제까지만 해도 핑계 대결 중 아니었나?’

‘알고 보니 만렙 다음에 2차 전직이 있었던 건가?’

‘내 최애는 못하는 게 뭐임? 핑계까지 잘 대고 왜 혼자 다 하는데?’

―아무튼, 센터 연구원들이랑 교수진은 기뻐하고 있어요.

여현이 가이딩 밴드를 착용하고 출장지에 나타나 여러 조작법을 물어본 게 센터 관계자들 사이에서 하룻밤에 걸쳐 엄청난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프론트 제대로 뛰려면 인이어랑 밴드는 무조건 익숙해져야 하니까요. 여태까지 김여현 에스퍼님은 어떤 가이드든 프론트 생각 없다고, 가이딩 밴드 쓰는 일 절대 없을 거라고 싸늘하게 거절했거든요.

“…….”

―근데 전담 가이드가 미열만 생기면 모든 짜증과 귀찮음이 한 큐에 해결되는 거였군요!

프론트 가이딩.

윤 교수가 이토록 기뻐하는 이유는 그게 실현될 가능성을 찾아내서였다.

‘싫. 습. 니. 다.’

영원은 힘주어 생각했다.

‘절대로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최후의 보루야, 최후의 보루.’

‘상시 프론트 가이딩은 절. 대. 거. 절.’

물론 윤 교수는 영원의 생각 따위 고려하지 않고 본인만의 희망 회로를 팽팽 돌렸다.

―두 분 다 배우는 속도가 매우매우 빠른 편이니까 굳이 전투상황 아니어도 금방 익숙해질 거예요.

영원은 경계 어린 눈길로 밴드를 바라보았다.

―역시 에스퍼는 가이드를 잘 만나야 한다더니…….

영원은 끔찍한 그림을 슥슥 지워내고는 오늘 물으려고 했던 화제를 꺼냈다.

미래에 닥칠 불행에 더 확실하게 대비하기 위해서. 윤 교수가 판단하는 여현의 잠재력을 더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제 전담 에스퍼님의 잠재력에 관해서요.”

―네. 말씀하세요.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시나요.”

―…….

“물리적인 측량 기준에 따른 힘의 크기, 혹은 다른 대량살상무기와의 비교, 어떤 것이든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요. 교수님은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보셨으니까요.”

―……다른 무기와 비교한다면, 핵무기 같은 거요?

“네. 에스퍼님이 걸어 다니는 핵무기라거나.”

보다 구체적인 수치가 좋겠지만, 대략적인 비교라도 듣지 않는 것보다야 나았다.

영원은 답을 기다렸다. 윤 교수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음, 김여현 에스퍼님의 그릇이 다 차고, 프론트가 붙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다 조성된다면…….

“네.”

―달이 지구로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농담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진지한 가정이었다.

―혹은 태양이 지구에 닿은 것처럼, 대륙 절반이 수천 도의 온도에 어그러지고 지져질 수도 있겠죠.

“…….”

―무기에 비유하는 건 좀 어려운 게…… 보통 이동식 바주카포에 바퀴 달린 BB탄 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진 않잖아요?

“…….”

―김여현 에스퍼님을 걸어 다니는 핵폭탄이라고 표현하는 건 딱 그런 느낌이에요. 바주카포를 어떻게 BB탄 총의 화력으로 표현할까요.

핵폭탄을 허구한 날 날려 봐야, 달을 지구에 끌어들일 수는 없다. 대륙 절반을 지져버릴 수도 없다.

―김여현은 그냥 김여현이죠. 걸어 다니는 김여현.

“그렇군요.”

이전 세계의 심영원 역시, 핵에 비유될 수 없는 고유한 심영원이었다.

영원은 어렵지 않게 납득하고는, 몇 가지를 더 확인해나갔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인사말을 건넸다.

―그래요. 쉬어요.

“네, 교…….”

―아, 그리고 추가적으로!

“네.”

―가이딩 밴드,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신형이라 그 모델 상용은 거의 처음이에요. 혹시 오류나 버그나 기타 등등 피드백 줄 거 있으면 사용하면서 알려줘요.

“네. 들어가세요.”

윤 교수는 오늘은 영원에게 센터로 출근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가이딩 밴드를 채워 여현이 게이트에 진입할 때마다 프론트를 뛸 가능성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오늘은 일단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럴 일 절대 없음.’

각기 서로 다른 바람을 품은 채로 오늘도 통화가 끝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