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21화 (21/142)

태평양 건너편.

“K한테 비선별이 붙었다던데.”

기계변조를 거친 여러 목소리가 잡탕으로 섞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게 말이 안 되지.”

“원래 시나리오대로였으면 여기서 데드엔딩이었어.”

변조되지 않은 목소리가 나왔다.

“재밌지 않아?”

익명의 모임을 조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

“…….”

잠시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설마…… 비선별이 매칭률 50%가 넘는 거야?”

우려인지 웃음인지 모를 감정이 섞인 문장이 조용히 튀어나왔다.

“비디오 판독에 의하면 그렇다던데.”

“맙소사.”

다시 목소리들이 빠르게 덧붙여졌다.

“그래서, 내가 바로 아홉 살 때 끝냈어야 한다고 말했잖아.”

“드래곤파파는? 뭐래?”

“드래곤의 안전을 원해.”

“알잖아. 그는 저울에 그 생각만 달아볼 뿐이야. 나머지는 신경 안 써.”

“하. 드래곤파파는 원래 그 자식새끼들 생각뿐이지. 맞아. 그 외의 다른 무엇은 안중에도 없을걸.”

“더 빨리 접선해.”

“그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삑. 삑.

지지지지직.

변조된 음성이 모두 함께 지직거렸다.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외국어가 들렸다가 멈추었다.

“안 그러면 K를 제물로 태워버리는 일이 위험해질지도 몰라.”

“항상 가장 큰 위협은 그 K였어.”

“선한 듯 굴면서도 아주 무자비하지.”

“자기 가이드 앞에서만 순한 척 아양을 떨다가 우리 같은 녀석들한테는 재앙을 내리꽂아줄 모습이 그려지는데.”

“매칭률 높은 가이드가 나타난 에스퍼들이야 뻔하지. 브레이크 박살 난 불도저, 미친 새끼들.”

쿡쿡. 지켜보는 남자의 웃음이 섞였다.

“뻔해, 뻔해. 지 가이드를 겁도 없이 운전석에 앉혀 버리고 핸들까지 넘겨주지.”

“잃으면 미칠 거야.”

“완전히 돌아버릴 거야.”

삑. 삑.

남자는 버튼을 눌러 모든 목소리를 지워버렸다. 모든 잡음까지 한꺼번에 사라졌다.

결국 남자 하나가 만드는 소리만이 남았다.

팍.

불이 켜지고 공간이 환해졌다.

“뭐…… 그래도 난 재밌는데.”

세계 랭킹 1위의 에스퍼, 그레이 딘하우스.

“희망은 원래 주었다가 빼앗는 재미지.”

그가 노래를 불렀다.

완벽한 K. 반드시 죽어주어야만 하는 K. 가이드가 없어야 하는 K. 항상 꺼림칙했던 K.

형체도 실체도 알 수 없는 미래의 무엇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쳐 필사적으로 헌신하는, K.

노래가 끝날 때쯤, 그의 옆에 살며시 다가온 여자가 물었다.

“그런데 그 K가, 그 나라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그 나라의 에스퍼를 말하는 거야?”

“음, 글쎄.”

그레이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 구분이 의미가 있나? 그 K가 그 K인데.”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전부 없어질 거라고 속삭였다.

***

김여현 에스퍼 팬페이지

- 다소 다크했다가 갑자기 꽤 밝아진 중소규모 익명 사이트

- 반말사용

- 인터넷 커뮤 고인물이 많았는데 갑자기 뉴비가 많이 들어와 잡탕이 되었음

[제목: 속보)))) 비선별님 레알 전담 가이드되신 듯(언오피셜, 금방 펑예정)

속보

속보

속보!!!!!!!!!!!!!!!!!!1

센터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들었는데

내가 엄청 달라붙어서 아아메랑 홀케이크랑 이것저것 바치니까 이름 자음이 ㅇㅇ이라구두 알려주었다!!!!!!!

비선별인데 부산에 기기가 가있었어서 정확한 등급은 몰겠구 암튼 A급일거라구 ㅇㅇ님!!!!!

여차저차 내 친구도 잘 모르는 사정으로 그냥 센터에서는 A급으로 전산처리했다는거 가틈

(S급이라는 소수파 있다고?? 루머일수도있지만)

암튼 ㅇㅇ 하면 우리는 영원으로 대동단결이지!!!!!!!!!!!!!!!!!!!

일단은 우리 여현좌 타이틀과 어울리는 영원님으로 모시겠따

영원님으로 하잣

영원님♡

영원님께 영원히 헌신하실 분인거 알아주세요♡♡

갓영원♡♡

댓글(23) 추천(23)

1 개나소나 다 지 친구 센터에서 일한대ㅡㅡ 그러나 위 사실이 사실이길 기원합니다 여-멘

2 본명 뭐 이원, 연아, 우연 기타등등에 해당하면 어쩌시려고

└그래도 우리의 애칭은 영원♡

└여현좌의 헌신을 알아주세요♡

└여현좌의 헌신을 알아주세요♡222

3 비선별 전담 S급썰로 설레게 하지 마라

4 비선별뽑기 가챠에서 승리한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설렘사 맨날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50% 근처 왔다구요ㅜㅜㅜㅜㅜㅜㅜ오늘도 설렘사로 또쥬금 ........ㅠㅠㅠㅠ

└으앙 하루하루 믿기지가 아나요22 오늘도 또나쥬금ㅠㅠㅠ

└주거도 햄복.............333333333333333

(이하 댓글 생략)]

[제목: 여현의_움직이는_게이트.swf

(움짤)

여현좌 품에 안겨서 게이트 진입하는 한참 찾은 가이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매일 본다

가이딩하는 영상도 있었으면 좋겠디만 그건 게이트 내부에서 한 거라니까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가이딩 장면은 상상으로 채운다ㅜㅜㅜㅜㅜㅜㅜ

이 움짤은 2324325432543543번 볼 때까지 볼 거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으앙 나 진짜 요즘 하루하루 미칠 것 같아nnnnnnnnnnnnnnnn

나만 이런 거니 다들 이런 거니

보통 이런 거지?

엄마아빠 낳아주셔서 감샇애요

삶의 행복이 여ㅛ기ㅔᅟᅦᆼ;있습니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영원히 덕질하고 시퍼요ㅠㅠㅠㅠㅠㅠㅠㅠ

댓글(21) 추천(32)

1 쥬금............ 털썩

2 OTL 하루 순삭.............

3 내일 마가미야........... 앗... 어제 마감이었구나!!!! ㅇㅁㅇ !!!! ㄷㄷㄷㄷㄷ ........ 그래도 ㄱㅐㄴ찬... 나느 괜춘........

(댓글 이하 생략)]

[제목: 비선별님 핵관종이셨으면 좋겠다ღ˘⌣˘ღ

SNS 계정파서 매일 10장씩 일상사진 업로드해주시면 좋겠다(10장중에 1장은 여현좌의 손가락이나, 뒷모습이나, 그런 거 담긴 걸로)

여현좌 블랙카드로 돈 펑펑 쓰는 거 FLEX~ UNBOXING~ 유튜브로 라이브해주면 돟겠다(여현좌가 가끔 카메라 들어주거나 옆에서 한마디씩 하는 거 나왔으면 좋겠다)

관종력 충전하실 수 있게 맨날 좋아요 봇이 될게여

맨날맨날 후원할게여

제 통장은 비선별님 거시에여

젭라젭라 -////-

여-멘

댓글(32) 추천(40)

1 이분 많이 배우신 분 그래서 슨상님 가방끈 어디서 늘이셨다고요?

2 여-멘2222

3 상상만해도 둑흔둑흔 (๑˃̵ᴗ˂̵)و ♡

(이하 댓글 생략)]

[제목: 미친ㅋㅋㅋㅋㅋㅋ 진짜 영원님이셔!!!!!!!!!!!!!

(기사링크)

<<비선별 가이드 심영원>>☜ 대박사건ㄸㄷ

요약:

(1) 등급 및 매칭률은 공식적으로 고지하지 않으나 (비선별 등급)A급-(매칭률)약50% 추측

(2) 지금 안정을 찾느라 센터 출근은 안하신다고 함

(3) 마스크 벗은 사진 뿌릴 생각 없음

진짜 여-멘이 응답한 것인가!!!!!!!!!!!!!1

댓글(213) 추천(300)

1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2 !!!!!!!!!!!!!!!!!!!!!!!!!!!!!!

3 근데 등급판정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알 수 있는 거???

└기사 보면 앞으로도 계속 예정 없대ㅇㅇ 센터 입장에서도 등급 높게 나오든 낮게 나오든 어차피 여현좌 전담인 거면 빨리 등급 측정할 필요성 못느끼는 모양!

└관계자발 떠도는 썰에 의하면 여현좌가 가이드 센터 출근 깠다고도 함

└솔직히 그동네 공무원들 너무 갈아 넣는 거 있음

4 등급측정 기계에도 내 가이드의 가이딩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여현좌의 의지인가? 의외로 여현좌 #집착남#독점욕남#무생물도질투남#세기말집착광공재질??? 둑흔둑흔 (๑˃̵ᴗ˂̵)و ♡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하 댓글 생략)]

***

게이트 종결 후 34시간 뒤.

여현이 센터에 들러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펜트하우스로 돌아왔을 때에도, 영원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영원이 잠든 첫 24시간 동안, 여현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온도가 낮아 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녀의 기나긴 잠을 말없이 보고 있기만 했다.

의사들은 특별히 큰 문제가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그 어떠한 훈련도 없이 S급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온 걸 고려하면, 놀라울 만큼 안정적인 상태입니다.’

‘훈련을 마치면, 이렇게 오래 잠드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잠에만 빠져 계신 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며칠 내로 깨어나실 겁니다.’

네다섯의 의사들이 모두 똑같이 진단했다.

여현은 지난 30여 시간 동안, 속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으로, 그들의 반복된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기만 했다.

타박. 타박.

여현은 영원이 머무는 2층으로 올라가, 그녀가 잠들어 있는 방 문 앞에 멈추었다. 레이더를 통해, 방문을 열지 않고도 여전히 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결국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서재로 갔다.

삐빅.

여현은 가이딩 기계를 작동시키고, 그 앞에 섰다.

지잉. 삐빅.

그는 자신의 몸에 링거를 연결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한참을, 빙빙 돌아가는 가이딩 기계를 지켜보기만 했다.

드륵.

쿵.

그는 기계를 전부 밀어버렸다.

“…….”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어떤 바람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의 생각을 가늠해 보고 싶지 않았다.

털썩.

여현은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눈을 감았다.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영원히 여기에 갇혀 있어도 된다는, 본심을 알기 어려운 말을 하던 그녀를 끊임없이 돌이켰다.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도, 그녀의 생각도 알 수 없다.

다만…….

깨어나.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선, 눈을 떠 줘.

다시 한번, 소리 내지 않고 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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