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가이딩이 안 될 거라 예고하는 영원의 말에는 상당한 무게가 실렸다. 그런데 여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는 일단 두고 보자는 듯이, 알겠다고 중얼거리고는 말았다.
이후에는 괴수들을 쓸어버리느라, 마땅히 대화를 이어갈 틈이 찾아오지 않았다.
퍽.
쾅!
파직.
여현의 활약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영원은 그냥 일단은 여현에게 안겨 그가 알아서 잘하고 있을 거라 믿고 있기로 했다.
‘필요해지면 하겠다고 했지. 괜히 힘쓰고 있는데 그 흐름 끊는 건 좋지 않을 듯.’
그릇이 계속 비어가고 있을 테니 당장 가이딩을 해보자고 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매칭률을 몰라 서로 겪을 고통의 크기를 모르는 게 문제였다.
혹시라도 게이트 내에서 여현의 섬세하고 예리한 힘의 통제가 어긋날까 봐, 영원은 여현이 원하는 타이밍을 기다리기로 했다.
저번에 사무실에서 기계 가이딩을 할 때에도 기계를 다 빼내고 나서 힘을 제대로 쓰기 시작했었다. 그걸 돌이켜 보면, 고통을 느낌과 동시에 힘을 쓰는 건 여현에게도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었다.
콰과과과광!
‘뭔진 모르겠지만 원 샷 헌드레드 킬쯤 되는 것 같은 소리인데.’
‘암튼 여현 나이스!’
***
시간이 꽤 흐른 듯했다.
그런데 그 감각이 과연 정확한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상황 판단이 흐려질 줄이야…….’
영원은 자신의 무력함이 진심으로 어이없었다.
‘답답해…….’
다시는 이런 고구마 상황을 만들지 않으리라 결심도 했건만.
‘윽…….’
아무튼 지금은 괴로웠다.
갈수록 갑갑함이 배가 됐다. 폐가 줄어들어 가는 기분. 반으로, 반의반으로, 또 그 반으로.
원래도 신체 자체가 강철 같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람 불면 바로 눕는 갈대 같진 않았지…….’
몸이 달라졌다는 게 매초, 매분마다 느껴졌다. 이쪽의 심영원은 확실히, 초현실적인 힘 앞에서 심각하게 연약했다.
‘처음 도착한 날 픽 쓰러졌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SSS급만 너무 믿었네.’
‘오늘 반성할 거 왜 이렇게 많아.’
‘반성 안 하고 산 거 반성하라는 건가.’
쾅.
와장창-
모르겠는 건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레이더를 쓰는데도, 곁에 있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극한의 상황이다 보니 레이더 능력마저 신체가 받아내지 못하는 듯했다.
‘다음엔 절대 몸이 이 지경이면 안 돼.’
꿈속에 빠져 있는 듯, 정신이 몽롱하고 해롱거렸다.
여현 역시도 점차 한계에 다가서고 있는 걸까.
‘빨리 가이딩 했으면 좋겠는데.’
가이딩을 원할 때가 되었을 때, 그걸 말했는데도 내가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콰과광!
그런 생각을 겨우 하고 있을 무렵, 몇 번째인지 모르겠는, 레이더로 인식하는 정보와 어긋나는 폭발음이 들렸고, 영원은 순간적으로 레이더에 걸리는 게 단 하나도 없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뭐야.’
왈칵.
그리고 피가 쏟아졌다.
‘내…….’
처음엔 따뜻한 액체가 자신의 피인 줄 알았다.
‘아냐.’
금방 그것이 여현의 피라는 걸 알게 됐다.
***
얼마 전 센터 연구진들은 여현에게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늘어난다는 것 외에, 갈수록 게이트에 대하여 예측할 수 있는 게 사라져가고 있다고.
발생하는 위치, 등급, 형태, 모든 게.
‘그 뻔한 걸 말씀해주시려고 부르신 건가요.’
여현은 그렇게 되물었다.
‘제가 가장 잘 압니다.’
여현은 정말로, 자신이 이 게이트가 기존의 게이트와 얼마나 다른 힘의 파장을 낼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의……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품에 가이드를 안고 뛰어든 건, 정말로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더욱 많은 것이 어긋났다.
S급 게이트는 원래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인식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정말 과했다.
‘전체적인 구조 자체가 인식이 안 돼.’
아무리 예상과 달라진다고 해도, 이렇게 달라질 수는 없었다.
쿵.
쿵.
S급 게이트는 순간적으로, 기존의 어떤 S급 게이트도 낼 수 없던 힘의 파동을 흘렸다.
경계 없이 섞인 공간은 익숙했다. 그러나 차원이 칼에 베인 듯 단절된 것만 같은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쿵.
뚜껑이 닫히는 것처럼, 공간이 더는 나아가지 않고 미지의 힘에 가로막혔다.
힘을 흘려 검은 경계를 타격해보아도, 반작용도 돌아오지 않았다.
【세계의 끝이다】
관리자의 목소리가 개입했다.
순간 여현은 블랙홀로 말려들듯, 통제력을 놓치고 힘이 뽑혀나가는 걸 느꼈다.
폭주의 전조였다.
‘이렇게 갑자기.’
왈칵.
피를 뱉어냈다.
의식이 점멸해갔다.
쿵.
급히 손으로 무엇을 잡아보려 해도,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무엇에도 닿을 수 없었다.
달콤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영원을 붙잡아】
【유일한 기회가 될 테니까】
추락이 시작되었다.
***
“여현아, 김여현!”
급작스러운 자유낙하. 영원은 그저 몸이 여현과 함께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만을 느꼈다.
차랑. 끼익!
텅, 텅.
“읏!”
뭔지도 모르겠는 것들이 함께 추락하며 괴이한 소리를 냈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레이더 인식도 쉽지 않았다.
“여…… ㅎ.”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영원은 여현의 반응을 기다리며, 힘이 완전히 빠진 그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퉁, 텅.
콰직!
‘뭐가 이렇게 같이 떨어지면서 터져대는 거야!’
챙그랑!
“여현아, 너, 아무 말이나 좀!”
과정은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폭주가 가까이 왔다는 건 알았다.
“여현아, 어?”
영원은 의식이 없는 듯한 여현을 어떻게든 가이딩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디든 맨살을 마주 대야 했다.
‘손…… 손.’
동시에 레이더를 통해 알았다. 이상한 바닥이 근처에 왔다는 걸.
영원은 여현의 몸을 최대한 감싸 안고, 자신의 등으로 그 물컹한 것과 조우했다.
팡.
“윽!”
몸이 높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같은 움직임이 통통거리며 몇 번 반복됐다.
퉁, 퉁.
“으…….”
바닥이 요동치는 덕에, 함께 구르기까지 했다.
‘끈적해.’
물컹이고 질척이는데 기묘하게 탄성이 있는 괴이한 늪에 던져진 기분.
“하아…… 하아.”
그래도 다이내믹한 고공질주는 끝난 듯했다.
다행히, 그즈음 품에 안긴 여현의 몸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ㅇ…….”
“여현아, 정신 들어?”
“으…….”
“손, 손…….”
덥석.
꽉.
손은 곧장 잡을 수 있었다.
뜸을 들여온 시간이 우스울 정도로 손을 꽉 쥐는 건 쉬웠다.
“…….”
“……뭐야.”
하지만 가이딩은 일어나지 않았다.
꽉.
손을 더 거세게 잡아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원은 당황했다. 그러나 여현에게는 예견된 일인 듯했다.
“제가…….”
“여현아, 그게.”
“역…….”
목소리는 힘겹게 나왔다.
“……할 테니 가만히 계세요.”
“아니, 그게 안…….”
스륵.
여현이 잡힌 영원의 손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
“…….”
그러나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그제야 여현의 당혹 역시 느껴졌다.
“여현아.”
쿵.
다시 멀리서 힘의 파동이 오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끝장이었다.
긴장이 영원의 등을 타고 흘렀다.
‘손을 잡는 걸로는 교감이 안 되는 모양이지.’
‘내 몸이 아직 내가 내 에스퍼님과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설득되지 않은 거야.’
아마도…… 그동안 그녀의 손을 잡았던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장벽을 세웠을 터였다.
‘어떠한 공감도, 애정도 없었던 관계들.’
‘나는 손을 잡는 행위가, 타인과 교감하는 행위라고 생각한 적이 없던 것 같기는 해.’
게다가 오늘 하루, 과거가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었다.
그 과거 속의 악인들과 너무나 많은 악수를 나눴다.
‘손을 잡는 걸로는 안 돼.’
‘그럼.’
그래서 그 대신.
“여현아.”
영원은 안개로 가려져 맞출 수 없는 두 눈을 맞추고 말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상상해냈다.
교감 없이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신체접촉.
모든 상상력을 발휘해서, 여현과 그녀가 함께 들어 있는 애정 어린 그림을 그려봤다.
쾅!
느린 파동이 정말로 근처까지 왔다.
물러설 곳은 없다. 지체할 시간도 없다.
“눈을 감아.”
“…….”
“감아 줘.”
보이지 않아도, 검은 동공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어서.”
여현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쾅!
파직.
파열음이 났다.
이번에는 그 무엇도 아닌, 여현의 힘에 의해서였다. 폭주의 전조였다.
사락.
영원이 여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살짝.
닿았다.
영원은 완전히 감긴 여현의 눈 위에 입을 맞추었다.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와 키스할 여유도 없었고, 그런 애정을 품을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영원의 생각은 옳았다.
【차단】
【조금 전 찰나에 느꼈을 수도 있으나】
【일단은 감각에 내릴 충격이 과하고도 과하니까】
영원은 어딘가로 이끌려갔다.
***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는 수많은 수레바퀴. 맞물린 톱니들. 느리게 돌아가는 세계의 법칙.
복잡하고 이상한 시계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가 된 기분.
영원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감각되는 모든 것이 그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매우 자연스럽게.
그리고 동시에 알게 되었다. 고통을 각오하고 있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말도 안 되는 숫자.
[매칭률 90.01%]
저 매칭률은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태엽이 알아서 굴러갔다.
[가이드 심영원, 에스퍼 김여현과 매칭률 조정]
[매칭률 40.01% 감소]
[매칭률 50.00% 고정]
40% 이상의 매칭률이 나오는 가이드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에스퍼.
그 에스퍼와의 사이에서 40%가 넘는 매칭률을 덜어내고도 매칭률이 50%에 이르는 가이드.
김여현과 심영원은 그런 말도 안 되는 관계인가.
매칭률을 약간만 높이고 싶다고 생각하자 다시 태엽이 조정되었다.
[매칭률 00.10% 증가]
[매칭률 50.10% 고정]
영원은 텅 빈, 그의 안의 허공에 발을 들였다.
‘내 에스퍼님의 그릇…… 크네. 엄청.’
그의 그릇은 댐과 같다.
그 댐은 광활하지만, 한없이 텅 비어 있다.
수돗물, 고작해야 시냇물 같은 물길로는 그 고요의 공간을 절대 채울 수 없다.
그 위로 영원은 폭우를 내렸다.
자칫하다가는 끓어 넘쳐, 주변의 모든 게 박살 날까 두려울 만큼 거세고 뜨겁게.
의지에 반하여 밀려드는 본능적인 충족감이 여현을 안식의 깊은 늪으로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