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만 23세가 된 생일.
영원은 지난 365일, 무려 525,600분 동안 조금도 어른스러워지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은 멀리 던져버리기로 하고, 같은 날 태어난 여현과 같이 미역국을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올랐다.
말을 놓았다고는 해도, 전담 에스퍼와의 관계는 가까워지는 일 없이 답보상태였다.
힘의 그릇이 적절히 차 있어서 가이딩이 필요 없다는 지속적인 거절에, 가이딩은 시도조차 못 해보고 있었다.
인간 가이딩이야 끔찍하게 싫다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여태껏 밥 한번 같이 먹어본 적 없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한 끼 같이 먹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평소엔 혼밥에 완전 불만 없지만, 그래도 전담끼리 적어도 한 끼는 같이 먹어 줘야지.’
‘여기도 어쨌거나 밥의 나라 K-국 아닙니까.’
생일은 서로 처음 같이 밥을 먹기에 적절한 날이었다.
위잉. 윙.
영원은 진동하는 폰을 든 채로 부엌을 돌아다녔다.
[요련님: 영원 ㅊㅋㅊㅋㅊ 미역국은 먹었어??]
[나: 그럼그럼]
[나: (사진)]
[나: 아침에 있더라 소고기미역국 캐마싯ㅜㅜ 감동ㅠㅠ]
[나: 그래도 세 숟갈 뜨고 닫았어!!]
[나: 저녁까지 킵해두었다가 전담님 오심 같이 먹을 것(이모티콘)]
[요련님: 영원 전담님??]
[나: 응응]
[요련님: 진짜 어케 전담으로 간 건지 몰겠다니까(이모티콘)]
[나: 그냥 어찌어찌?ㅎㅎ]
영원은 두루뭉술하게만 설명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대로 말하는 건 더욱 피하고 싶었다.
요련도 그런 영원의 의중을 파악했는지 센터에서 영원을 보낼 때부터 이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요련님: 그럼 내가 퇴근시간 무러봐줄까??]
[나: 8ㅅ8 부탁드립니다(이모티콘)]
[요련님: (큰 이모티콘)]
영원은 요련과 노란 톡을 이용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냄비 뚜껑을 닫았다.
[요련님: 부장님 통해서 김여현 에스퍼님한테 말씀은 전달할 수 있을 듯!!]
[나: 감사감사(이모티콘)]
[요련님: 진짜 생일 추카추카]
[요련님: 태어나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이모티콘)]
[나: 별말씀을요ㅎ_ㅎ]
[나: 언니도 칼퇴기원!]
[나: (이모티콘)]
영원은 톡을 대강 끝내고 냉장고로 갔다.
탁.
그리고는 냉장실에서 숙성 중이던 연어를 꺼내 고슬고슬한 밥 위에 소복이 올렸다.
생일이라고 특별히 준비된 듯한 미니케이크는 저녁을 위해 킵해주기로 했다.
‘맛있겠다…….’
원래도 펜트하우스를 관리해주는 직원분들이 끼니때마다 근처 맛집 베스트 메뉴들을 포장해 배달해 주었었다.
그런데 여현이 집으로 온 뒤에는 대체 이런 음식을 어디에서 구할까 싶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음식이 테이블에 매 끼니마다 차려졌다. 원할 때마다 먹을 수 있는 간식도 냉장실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럼 영원은 2층 침대나 소파와 혼연일체되는 스킬을 가진 집순이답게 그것들을 쟁반 위에 챙겨 2층으로 가져와 먹었다.
‘간장연어도 핵맛…….’
새로운 메뉴는 늘 새로운 감동을 줬다.
도롱. 도롱.
폰이 또 울렸다. 영원은 커다란 한 숟갈을 꼭꼭 씹어 넘긴 다음에 폰을 들었다.
[요련님: 근데 영원ㅜㅜ]
[나: ??뭔일??]
[요련님: 에스퍼님 지금 별관에 없으시다는데]
[나: 출장??]
[요련님: 집에 들르셨다가 을지로입구역 쪽? 글로 가신다고 나가셨다는 듯?]
영원은 잠시 생각했다.
‘프롤로그 명동 폭주.’
을지로입구는 명동과 붙어 있는 곳 아닌가. 사실상 명동이랑 다를 바 없지 않나 싶은데.
굳은 얼굴로 수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드륵. 드륵. 드륵.
그리고 속보가 쏟아졌다.
주륵주륵.
미친 듯이.
일산 게이트가 바로 연상될 정도로. 아니, 속보가 퍼부어지는 속도와 양 모두 그때와 비교가 불가능했다.
게이트 주변의 인구밀도도, 게이트의 수준도 달랐다.
[속보: 명동 통제, 접근 불가]
[속보: 게이트… AA 이상은 확실]
[속보: 을지로 통제. S급 게이트 확률↑]
[속보: 남산1, 2, 3호 터널 전부 폐쇄]
[속보: 강북 접근 불가]
[속보: 한강 전역 대교 접근 통제]
소설의 도입부가, 이제야 시작되나.
‘이래서 가이딩을 한번은 해 보려고 했었는데…….’
‘물론 후회는 3초컷.’
영원은 도움 안 되는 후회는 싹 치워버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했다.
하나. 여현의 위치를 파악한다.
둘. 달려간다.
셋. 가이딩에 대해 전담 에스퍼의 동의를 구한다.
넷. 가이딩을 한다.
침착하게, 최대한 차분하게.
예고 없이 닥쳤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은 아니었다.
인생의 거대한 사건들이 보통 얼마나 불친절하게 찾아왔던가를 떠올려보면, 이 사건의 시작은 꽤 친절한 편인 것도 같았다.
***
삐빅. 삐빅.
도롱.
디링. 디링.
드륵. 드르륵.
속보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영원은 급히 여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연결되진 않았다.
[속보: 을지로 S급 게이트 오픈]
[속보: 을지로입구 게이트 균열 확장]
내용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 집에 들른다고 했다고?’
쿵. 쿵쿵쿵.
영원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벌컥.
노크 없이 서재의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집에 들르려고 했던 계획은 틀어진 듯했다.
여러모로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삑.
급히 서재의 TV를 켰다.
생중계가 되는 장면이 있을까 싶어서. 어떻게든 더 많은 정보를 흡수하려고.
―여기는 광화문, 광화문입니다…….
‘광화문? 명동이랑 멀어.’
채널을 넘겼다.
―종각 부근…….
‘명동이랑 좀 더 가깝지만, 보이는 장면 없음.’
채널을 넘기고 넘겨도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김여현 에스퍼, 김여현 에스퍼, 그가 그곳에 있다고 떠드는 이들은 많았으나 정작 그가 화면에 잡히지는 않았다.
그러다 10초, 20초…….
쿠쿵.
쾅.
콰과광!
원거리 촬영 장면에서, 김여현이 아니고는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바리케이드가 시내에 세워지는 게 보였다.
영원은 스스로를 진정시킨 뒤, 센터에 외출 신청을 하고 다시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가이드 정복, 정복 어디…….’
흰색 가이드 정복으로 급하게 갈아입으며 틈틈이 문자를 확인했다.
[속보: 1차 바리케이드 완성]
[속보: 긴급대피 시작]
센터의 답변을 기다리면서는 여현에게 메시지를 추가로 남겼다.
[나: 어디야]
[나: 을지로 어디야]
[나: 나 센터에서 승인하면 나가서 그리로 갈 거야]
[나: 무리하지 말고 기다려]
여현은 계속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통화도 계속 시도했다. 아직 통신망이 붕괴하지는 않았는지, 연결음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십수 번의 시도 끝에, 결국 통화가 연결되었다.
―네. 김여ㅎ…….
“어디야.”
취향의 집약체인 목소리고 뭐고, 지금은 주접 떨 시간이 없었다.
“너 지금 정확히 어디야.”
―…….
“여현아. 내가 어디냐고 묻잖아.”
영원은 급박한 상황에서 흥분에 차 소리를 지르는 타입은 아니었다.
역으로 차가워지고, 차분해지고, 점점 가라앉았다.
“김여현.”
―……을지로입구 2번, 3번 출입구 사이 도로 청계천 방향에 천막 쳤습니다.
삑.
통화 중에 센터에서 외출을 긴급 승인한다는 회신이 왔다.
[헬기 띄울 수 있습니다.]
[옥상에서 대기하십시오.]
영원은 메시지를 읽은 뒤 여현과 통화를 계속했다.
“아직은 괜찮지?”
―……네.
“금방 갈게.”
―…….
“무리하지 말고 있어. 내가 내 자리 찾아갈 때까지.”
생일축하 계획은 틀어졌다.
밥은 나중에 먹기로 하자. 식사 때야 며칠 뒤에도 올 테니까.
다다다다다다다.
옥상으로 헬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가이드님! 탑승하시면 됩니다!”
하얀색 정복을 입은 영원을 태운 헬기가, 펜트하우스 상공을 벗어났다.
***
콰광!
두둑.
대로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의 외벽이 웨하스처럼 쩍쩍 갈라져 떨어지고, 가루처럼 바스러졌다.
그 외에도 사방이 재난영화 트레일러에 딱 걸맞은 풍경이었다. 아수라장. 엉망진창. 혼란의 도가니.
위잉. 위잉. 삐뽀삐뽀-
탁탁, 탁.
“하아, 하…….”
영원은 그 현장에 망설임 없이 들어가, 달리고 달렸다.
탁, 탁.
‘뭐가 이렇게 주먹구구식이야……!’
“하아, 하.”
게이트 균열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게이트 바로 앞 헬기착륙장에서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현에게 가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달려야만 했다.
위잉. 위잉. 삐뽀삐뽀-
김여현의 바리케이드 생성으로 1차 쇼크가 지나갔다지만, 전열이 제대로 정비된 건 절대로 아니었다. 소방차와 앰뷸런스, 경찰차마저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도로고 인도고 다 난리였다.
“비켜요! 거기 아저씨! 소방차 가잖아!”
“시민 여러분! 협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공무집행 중입니다!”
그래도 가이드 정복을 입은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가이드! 센터 소속 가이드입니다. 지나갈게요!”
정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었고, 몇 개의 통제선 역시 막힘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쓴 것 역시 잘한 선택이었다.
다짜고짜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인파 속에서 초상권을 보호하려면 물리적으로 얼굴을 가려두는 게 최고였다.
수백만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도, 동영상만은 반드시 찍어야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젊은이들이 이 도시엔 너무 많았다.
“가이드님! 거기 단발 가이드님!”
게이트의 균열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곳까지 가자, 센터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달려 나왔다.
“저쪽 A급 에스퍼님들 모인 쪽으로 가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매칭률 데이터베이스 확인 가능하게 등록번호를 말씀해주시면…….”
“가이드님! 저쪽…….”
영원은 모두에게 거절의 말을 뱉었다.
“등록번호 없어요.”
“……네?”
“김여현.”
“…….”
거기까지만 했는데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전담 가이드가 올 거라는 정보가 이미 센터 명령체계를 타고 흐른 듯했다.
“김여현 전담입니다.”
질문은 더 이어지지 않고, 그들은 조용히 방향을 가리켜 주었다.
가이드 등록번호를 불러주지 않고도 프리패스 딱지가 붙은 영원은, 국무총리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보안단계를 거쳐 게이트 근방 천막까지 갔다.
문을 열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이드님 오셨습니다.”
영원은 다행히, 특별한 고구마 상황 없이 여현을 만날 수 있었다.
삐. 삐삐. 드륵.
무려 50대가 넘는 기기와 연결된 김여현을.
“…….”
그는 수십 대의 기계를 몸에 연결한 채로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팔에는 더 이상 바늘을 꽂을 곳도 없었는지, 목에 꽂힌 바늘만 해도 십수 개였다.
“…….”
동시에, 영원은 천막 입구 부근에서 영원을 막아서며 심각하게 난감한 표정을 한 성명불상의 A급 에스퍼도 만나게 됐다.
“……직접 가이딩은 원치 않으신답니다.”
개소리.
영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엑스트라를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