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동갑의 동거인
똑. 또독. 똑. 토독.
“으으…….”
으슥한 창고. 요양병원에서 영원의 보호자이길 자처했던 실장이 바닥에서 신음했다.
“으읏…….”
달라붙었던 눈꺼풀이 힘겹게 떨어졌다. 동시에 그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진동했다.
영하로 떨어진 기온은 주요한 이유가 아니었다. 저 멀리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남자가 진짜 원흉이었다.
부산 S급 던전에 발이 묶여 일산 게이트에는 나타날 수 없었다는데, 어떻게 지금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귀신인가.
분신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더 두려웠다.
“흐으…….”
공포가 짐승 같은 신음을 내게 했다. 바닥을 기어서라도 도망치고자 하는 본능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몸은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뚜벅. 뚜벅.
꼬았던 다리를 푼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실장은 완벽하게 공포에 저몄다.
위압감만으로도 질식해 죽어가는 기분이었다.
“제 소개는 안 할게요.”
“으우으으…….”
“아실 테니까.”
실장의 머리에 그에 관한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에스퍼 서시용, 타이틀 ‘추의 저울’
대한민국 에스퍼 랭킹 S급 1위/8인.
세계 에스퍼 랭킹 S급 2위/94인.
세계수가 ‘이 필드에서 가장 미형인 인물 1명을 S급으로 선발하겠다’고 예고하고 선별해낸 대한민국 최초의 S급 에스퍼.
역삼 게이트 종료의 1등 공신.
센터 역삼 본부의 제1설립자.
비록 소량이기는 해도, 여의도 던전을 쓸어 대한민국을 석유가 나는 산유국으로 만들어 낸 남자.
현 직업은 정당 무소속의 서울특별시장.
대중이 그를 부르는 애칭은, 주로 서울특별시장드래곤파파. 줄여서 서시드래곤. 그 외에도 윤동주드래곤, 용파더, 용마미…… 기타 등등등등등…….
물론 음지에서 더 자주 불리는 애칭은 서씨X(주: ‘X’부분은 보통 묵음 처리한다)드래곤이기는 했다.
만년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적은 없다.
직전 선거에 출마하지 않은 이유는, ‘대통령까지 겸직하기엔 바빠서.’
그 전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이유는, ‘나이 제한에 걸려서.’
현재 나이 마흔셋. 액면가는 서른. 연인은 2개월 정도를 주기로 수없이 변하는 편. 그들 중 일부와는 동거도 했으나, 결혼 경험은 한 번도 없는 미혼(다만 자식 같은 드래곤 셋 처돌이인, 사실상 미혼부인 걸 모르는 사람 없음).
얼굴과 체격에 대해서는 설명을 이을 게 없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무결점의 정석 미남.
세계 랭킹 2위라는 게 그나마 이 남자의 가장 인간적인 면이라 할 수 있었다.
“이창결한테 잡혀가는 게 나았겠죠.”
톡톡.
“그렇지 않나요.”
“흐아으…….”
“센터는 그래도 준법정신 투철한 선비들이 많잖아.”
툭.
구두 끝이 실장의 볼을 건드렸다.
“김여현도 피는 못 속인다고, 빌어먹게 올바른 놈이지. 무한도 보증 서주고 싶을 만큼.”
“우으으흑…….”
서시용이 등장한 이후로 대중은 그를 향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했다. 수많은 이유로, 그들은 이 완벽한 에스퍼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어쩌지. 나한테 잡혀버렸네. 이런, 참 안됐다.”
강해서, 그 힘으로 서울을 구해서, 대한민국을 보다 부유하게 만들어내서, 아름다워서, 다정해서, 성실해서, 똑똑해서, 모든 면이 완벽해서.
“아시잖아요.”
특히 이 나라의 국민들은, 정의를 구현하는 그의 잔혹한 면모를 무엇보다 사랑해왔다.
“난 네 인권엔 관심이 없거든.”
추의 저울은, 늘 잔혹한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그러니까, 내 저울질을 도와줘 봐요. 그날 반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스릉.
“생각나는 대로 말해. 그게 내가 내 도시와 내 나라를 버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일지, 어디 한번 보게.”
***
‘천국…….’
영원은 극락에 도달했다.
200평 한강뷰 주상복합 펜트하우스는 모든 기대를 뛰어넘었다.
‘사실 몰랐는데, 교통사고 이후에 사후세계에 떨어진 건가? 지금까지 앞부분은 천국 입성 인트로?’
‘아무래도 선한 일은 많이 해서 그런 듯.’
‘과거의 나님 넘나 수고했다. 그동안 왜 그 개고생을 사서 했냐고 욕한 거 미안해. 고맙다.’
‘과거의 나에게, 치어쓰!’
팡.
홀로 샴페인도 땄다.
호록.
‘캬, 짱맛…….’
영원은 넘칠락 말락 하는 거품을 마시며 한강이 보이는 소파에 앉았다.
포옥.
석양이 하늘을 덮은 시간이었다.
전망은 전망대로, 안락함은 안락함대로, 최고였다.
한강 곳곳에서 위로 솟았다 사라지는 물기둥도 이 높이에서 보니 상당히 운치 있었다.
‘역시, 굽어보는 고층이 좋아, 고층이.’
영원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오디오 플레이어까지 재생시켰다. 명품 플레이어가 엄청난 음질로 배경음악을 깔아 주었다.
김여현 에스퍼의 펜트하우스는 거의가 무채색으로 채워져 있었으나, 원목 가구가 포인트처럼 곳곳에 배치된 덕에 못 견디겠다 싶을 정도로 삭막하진 않았다.
요란하지 않게 고급스러운 도시형 주거공간의 진수랄까.
아무 곳이나 찍은 뒤 인화해서 리빙 매거진에 끼워 넣으면 관련 업계 종사자들마저도 위화감 없이 명품 가구 홍보용 카탈로그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공기도 좋아. 게다가 외부로 나갈 수도 있다니.’
고층 주상복합은 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던 유일한 우려도 알고 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2층 유리벽을 움직이는 버튼을 눌러 벽을 열면 직접 바깥 공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옥상 밖에는 무려 작은 정원까지 있었다.
영원이 쓰도록 지정된 방이 바로 붙어 있어서, 옥상 정원은 마치 영원을 위한 마당 같기도 했다.
‘……대체 어디가 어떻게 감금인 거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보아도 원작 현판에 쓰인 묘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저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는 이유로 이것을 감금이라고 한다면, 전 지구인들은 현재 전원 지구감금생활 중이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듯했다.
‘그래, 극락에 가는 건 천국감금과 같지.’
‘좋은 인생이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행복…….’
아삭. 바삭.
영원은 샴페인의 안주로 치즈와 아보카도가 올라간 카나페를 먹었다.
‘으아……. 미쳤다.’
맛있어서 죽은 귀신이 되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
SSS급 가이드는 제게 SSSSS급의 시간 탕진 스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봤다. 그러다 깨달음을 얻었다. 이건 스킬이 아니라 장비빨이라는 걸.
‘스마트폰은 킬링타임용 SSSSS급 템. 반박불가.’
영원은 폰을 쥔 채 그 장비빨로 넓디넓은 침대를 굴러다니며 시간을 무자비하게 탕진하기 시작했다.
‘해 떴다. 아침이네. 아침밥 뭐지.’
‘엇, 해 완전 졌네. 깜깜. 오늘도 벌써 잘 시간이야?’
체감상 위 두 혼잣말 사이의 간격은 5분.
과제를 미루고 그 사이에 하는 폰질만큼 긴장되는 맛은 없었지만, 떠나간 타임 어택은 조금도 그립지 않았다.
‘잘 가라, 나의 센터 기숙사 시절.’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가이딩에 대한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으니 힘에 대한 흥미도 더 생겼다. 그래서 보다 편한 마음으로 정보의 바다에서 흥미로운 정보만 쏙쏙 뽑아내기도 했다.
[각성자위키]
쓸데없이 자세한 랭커들에 대한 TMI도 매일 유쾌하게 읽었다.
[각성자북]
[에스퍼채널]
[에스퍼스타]
이런저런 페이지들 덕분에 랭커들에 대한 내적 친밀감은 나날이 깊어졌다.
이쪽 세계에서 랭커란 어떤 존재인지도 확실히 체감하게 되었다.
그들은 ‘아이돌 + 스포츠스타 + (전쟁, 재난이 닥쳤을 때 조국을 구한)영웅’과도 같아, 엄청난 빠와 까 부대를 우르르 몰고 다녔다.
특히 S급 랭커 4인은, 대통령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자랑했다.
1위, 서시용. 환상계 에스퍼.
[타이틀, ‘추의 저울’]
‘볼 때마다 뭔가 숙연해지는 타이틀. 혼자만 독특하게 타이틀 두 번째 단어가 무생물이어서 그런가.’
2위, 백율. 환상계 에스퍼.
[타이틀, ‘꽃밭의 마술사’]
‘무쌍, 긴 생머리, 국민보물의 대외적인 이미지랑 고인물 챗방에서의 술주정이 잘 매치되지 않으시는 편. 이쪽 동네의 연느님급 인물.’
3위, 집주인느님은 말해 뭐 해, 일단 패스.
‘공격력으로는 독보적 1위일 물리계 에스퍼라는 것만 분명히 하고 넘어감.’
4위, 최환성. 환상계와 물리계가 섞인 특이 에스퍼.
[타이틀, ‘선량한 악마왕’]
‘아마도 현판 주인공. 독자 안 헷갈리게 선량하든 악하든, 물리계든 환상계든 하나만 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이중에서 김여현 에스퍼를 최애로 꼽는 건 상당히 마이너한 취향에 속했다.
떡밥이 기근을 넘어서 0으로 무한히 수렴해가는 극한 상황이 시간의 축을 따라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니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었다(라고 본인 최애가 남들 최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는, 덕질로는 갓 한 살 먹은 꼬꼬마 아기 덕1이 열심히 머리를 굴려 그 이유를 찾아내 보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스타성은 대단해도 3년에 한 번씩 앨범 내면서 음방 및 예능 활동 일절 안 하는 아이돌이나, 4년 내내 비시즌이다가 올림픽에만 출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선수, 또는 건물 붕괴현장에서 혼자 수백 명의 민간인을 구하고 사라진 익명의 영웅을 덕질해야만 하는 상황이랄까?
극악 조건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더 부연하자면, 저 앨범도 3년 주기로 화보 한 장 안 끼워서 발매하는데 미니앨범이라 부르기도 민망하게 트랙마저 4개 이하여야 적절한 비유가 된다. 또, 금메달리스트긴 하지만 메달 따고 인터뷰도 안 하는 건 물론 CF 하나 찍어주는 일도 없고, 소속사나 관종 지인마저 없어서 어떤 허무맹랑한 루머가 돌아도 반박해주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위 영웅적 서사가 담긴 유일한 동영상은 편의점 CCTV 화질.
물론, 그래도 빠져들어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독보적이니까.
김여현은 유일하니까.
그래서 영원은 확신했다. 이곳에서 그를 직접 마주할 일이 없는 삶을 살았더라도, 결국 랭커 중 그녀의 원픽은 김여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그의 활약을 담은 클립을 보고, 돌려보고, 다시 또 보고, 반복해서 보았다.
놓치는 순간 없이 하나하나 초 단위로 쪼개어 눈에 담으면서, 옆에서 그를 도울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물론 상상만, 상상만…….’
‘아무리 최애 때문이어도 고생을 사서 하려 들면 심영원 캐붕이지.’
수 초간 지속되던 생각은 캐릭터성을 꿋꿋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영원의 굳은 신념 앞에서 금방 휘발해버리긴 했지만.
***
그러다 마침내.
며칠 만에 이 펜트하우스의 소유주가 귀가하는 흔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심영원 가이드님.”
똑똑.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요.”
순삭된 시간의 끝에, 비로소 집주인이 퇴근했다.
그간 주고받은 연락은 단 한 건도 없었지만, 상대를 의식해오지 않은 쪽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