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에스퍼님, 나를 감금해도 돼 13화 (13/142)

“…….”

“…….”

첫 줄은 다시 읽어도 똑같은 내용이었다.

[1위, 에스퍼 김여현(S), 90.01%(possible)]

김여현X심영원 매칭률 90.01%. 전 지구와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듣도 보도 못한 수치.

‘뭐야, 이거…… 무서워…….’

수석 연구원이 겁에 질린 얼굴을 했다. 그는 결과지와 요련을 번갈아 보더니 과장되게 몸을 벌벌 떠는 액션을 선보였다.

그때 랩의 문이 열리고 다른 연구원들이 이어 들어왔다.

“오, 요련 가이드님! 또 짬 내서 오신 건가요! 이브닝 커피라도 하고 가시죠.”

“여기 저희 밤샘용 커피, 더 계실 거면 남는 거 드릴까요?”

“아뇨, 아뇨. 전 아침에 많이 마셔서 괜찮아요. 오늘은 일찍 자려고요.”

“오, 그 계획만큼 실현 불가능한 게 없는데.”

“내 커피나 빨리 줘. 그리고 니들, 이거 좀 봐라.”

수석이 충격과 공포의 결과지를 흔들었다. 연구원들이 모두 결과지 근처로 모여들었다.

“뭐……야.”

“진짜 뭐야…….”

“허.”

“이거…… 무서워.”

그러다가 끝에는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그날의 신박한 유머라고 생각하면서.

“장난 아니다. 10위도 70%대예요. 백율 부장님. S급.”

“매칭을 돌려본 게 이 10명밖에 없는 거죠? 이런 경향성이면 세상 모든 S급 랭커 에스퍼들이랑 70% 이상인 거 아니에요?”

“숫자로만 봐도 대박인데. 진짜 이런 가이드가 있다고 생각하면…….”

팔랑팔랑. 종이가 손에서 손으로 넘어 다녔다.

“세계대전 날까?”

“그럴 리가. 김여현 에스퍼님이 그냥 원탑으로 평정하지.”

“저는 김여현 에스퍼님이랑 세계 랭킹 1위 그레이랑 캐삭빵 뜬다는 데에 겁니다.”

“근데 그중에서 90%? 이건 진짜…….”

브레인스토밍에 누구보다 진심인 연구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여러 가설을 세우며 커피를 마셨다.

“근데 무슨 오류가 나도 이렇게 소름 돋게 나냐.”

“가이드님, 이 기기 소프트웨어 점검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안 그래도 그러려고 해요.”

“천천히 하다 가세요. 오늘도 잠 일찍 자기는 그르셨네.”

요련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여기요. 돌려드릴게요.”

모든 연구원들의 손을 돈 결과지가 다시 요련의 손에 안착했다.

“원래 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아가는 거야. 발명이 다 그렇지, 뭐. 힘내요.”

토닥토닥. 수석 연구원이 요련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근데……. 요련 가이드님.”

“네?”

“거기 매칭률 옆에 적힌 ‘possible’은 무슨 의미인가요?”

“아, 그거요. 제 생각에는 그 알고리즘을 넣은 게 오류를 일으켰나 싶기도 한데…….”

요련은 몇 주 전 윤희유 교수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 대화를 매칭률 측정에 어설프게 반영해보려고 한 게 문제였을까.

“윤 교수님께서 독특한 가설을 말씀해주셨거든요.”

“어떤?”

“능력이 고도로 발달한 가이드는, 자신의 매칭률 범위 내에서 특정 에스퍼와의 매칭률 자체를…… 의지에 따라 조정할 수도 있다고요.”

“…….”

“이론상으로는요. 능력이 월등한 가이드가 고도로 숙련되었을 경우에만….”

“그러니까…… 이 결과가 사실이라면, 비선별 가이드님이 능력을 개발하는 경우 김여현 에스퍼님과의 매칭률을 90.01%의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말씀인 거죠?”

요련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기는 했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그런 계산식을 기기에 입력해버린 자기 자신이 더 바보 같게 느껴졌다.

“네에……. 결과, 그냥 그 결과에만 따른다면, 그 범위 내에서 10%까지 매칭률을 낮추어 고통을 줄 수도, 50%에 맞추어 평범한 가이딩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예요.”

“음…….”

매칭 랩 안의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했다.

저런 결과지 같은 미친 먼치킨 사기캐가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그 사기캐는 B급이 아니라 D급 가이드만 되더라도 세상을 뒤집을 것이다.

“……허무맹랑하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요련은 축 처진 몸을 이끌고 문서파쇄기 앞으로 갔다.

위잉.

드륵. 드륵드륵.

그렇게 종이 한 장은, 파쇄기의 덜덜거리는 소음과 함께 사라졌다.

***

야심한 새벽. 요련은 캐비닛을 뒤적거렸다.

‘발간되지 않은 윤 교수님 논문이 여기쯤 있지 않았던가…….’

툭. 톡.

촤르륵.

집게로 철해진 문서 더미를 하나씩 빼보았다. 그렇게 수십 분을 보낸 다음, 요련의 얼굴에 미소가 폈다.

[에스퍼와 가이드 절대다수의 매칭률은 45%~55% 구간 내에 몰려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경우에 에스퍼와 가이드의 매칭률은 크게 문제되지 않으며, 특수한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매칭률에 대한 학계의 관심도 크게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학계의 관심과 무관하게, 매칭률은 각성자들에게 언제나 큰 관심사였다.]

찾고 있던 문건의 일부가 맞았다.

‘이 다음은 어디에…….’

[그 숫자는, 그들에게는 안식을 보장하는 구원이 될 수 있다. 특히 에스퍼에게.

안식.

안정.

에스퍼를 보듬는 절대적인 평화.]

촤르륵.

요련은 페이지를 더 넘겼다.

[정점에 설 자는, 강력한 에스퍼가 아니라 강력한 에스퍼와의 매칭률을 평균범위 외까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가이드다.

에스퍼에게 유일하고 절대적인 평안, 궁극의 환희와 쾌락을 그 의지에 따라 안겨줄 수 있는 그 혹은 그녀가 에스퍼의 의지를 무자비하게 독재하는 항해사가 될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가.

물론 그 독재자가 Pla--나 Nie--가, 혹은 우리가 염원하는 이상적인 어떠한 군주와도 같은 인물이라 선한 의지를 가지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겠으나…….

역사적으로, 우리가 개인의 선, 윤리, 도덕에 기대어 세계를 구원하리라 믿었을 때 그 믿음이 실현된 적이 있었던가?

앞으로는 있을 것인가?

나는 회의적이다. 많은 이들이 나와 뜻을 같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가 나타난다면, 부디 선한 뜻을 가진 자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이 논문을 통해 매칭률 자체를 의지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가이드가 있을 가능성을 밝히면서, 실제로 이 이론에 부합하는 능력을 가진 가이드가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나의 소망 역시 밝히고자 한다.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우연히, 아주 엄청난 우연에 따라, 그런 가이드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될 가능성.

우연에 우연에 우연을 곱하여 나타날.

미약한 가능성.

- 윤희유, 「매칭률에 대한 숙고」 미탈고 초고 서문(미간행) 中 발췌]

우연의, 가능성.

요련은 심장을 꾹꾹 누르는 것 같은 문장들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

김여현 에스퍼 팬페이지

- 최근 비선별 가이드 등장썰에 뉴비들이 스멀스멀 늘어나고 있음

- 그를 신경 쓰는 타 랭커들 팬도 견제차 유입되는 중

[제목: 매칭률 기사 뜰 때까지

나는 매칭률 문제로 오늘부로 비선별가이드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지지관계에서 벗어나

비선별가이드느님과 나는 한몸으로 일체가 된다

비선별가이드님에 대한 공갹은 나에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댓글(0) 추천(5)]

[제목: 드레곤 레어에 있다 인사차 들림

서씨 성을 가진 용 (ฅ⁍̴̀◊⁍̴́)و ̑̑

서울시장드래곤 ٩(๑❛ワ❛๑)و

김여현의 머리 위에 있다 ೕ(⁍̴̀◊⁍̴́ฅ)

댓글(0) 추천(-18)]

[제목: 비선별님 피부 엄청 조으시다

맑고 하얗고 뽀송뽀송

(사진)

사랑에빠져버렸어요♡-♡(야광봉//)

영원히 여현좌랑 행복해주세요♡-♡(야광봉//)

댓글(4) 추천(3)

1 아니 이 마이크로 포토샷 하나 대체 어디까지 우려먹는거냐

└여현좌 덕들이 늘 그러치뭐

└오늘이라고 어제랑 다르게 뭐 특별할 줄 알았냐

└익-숙-해

2 센터님들아 사진만 몇 장 더 뿌려주시면 레알 무증세 복지 가능합니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젭라.......... 목이 말라........ 배가 고파...........

3 센터에서 여현님이나 비선별님 사진 더 안 뿌리나??? 괴애애애애애애애롭.... 여기가 만년 보릿고개인가(털썩)

└아니 왜이렇게 오늘 어르신들 같은 분들이 많이 댓글 쓰시는 것 같지... 어르신 나이대가??

└아니 왜이렇게 오늘 어르신들 같은 분들이 많이 댓글 쓰시는 것 같지... 어르신 나이대가??

└너님 댓 중복 ㅇㅇ 나님은 앞자리가 3입니다

└헛 오래 고이셨군요

└ㅠㅠ

└참고로 저는 4입니다(헤헷>_<꺙!)

└!!

4 새사진 떳는줄 알고 헐레벌떡 텨왔는데 똑같은 사진이야..... 대체 지금 같은 페이지 글 20개 중에서 16개에 이사진 사골로 우려먹는중.............. 다른 떡밥을 달라!!(광광)]

***

털썩.

“하아, 하…….”

다시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여현이 사무실 소파에 널브러졌다.

드륵. 드르륵.

삑. 삑.

가쁜 호흡을 멈춘 여현은 미동도 없이 정지했다. 그는 눈을 감고 고통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에는 숨고, 도망치고 싶었다. 내장을 끄집어내고 살갗을 벗겨내는 것만 같은 통증을 주기적으로 느끼느니 그냥 삶이 그곳에서 멈추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매칭률 때문에 억울하고 괴로울 것도 없었다.

10대 후반에 이미 스스로 평생 기계에 의존해 가이딩을 받기로 정했다.

그 이후로는 인간 가이딩이 더 역하고 끔찍해졌다.

그런데도 몇몇 주변인들이 유난이었다.

‘여현아, 비선별이 새로 왔다는데. 이번에는 어쩌면…….’

‘이름은 심영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아직 매칭률을 돌려보지는 못했다지만…….’

영원.

거북한 이름.

본명이든 아니든,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었다.

무엇도 기대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괜찮다.

이 순간의 여현은 그저, 가능하다면, 오늘 밤보다 편안한 잠에 들 수 있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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